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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7]인왕산 역사문화탐방(불국사-수성동계곡-만수천약수-305봉-미륵존불-석굴암-호랑이상-단군성전-사직단) - 2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8.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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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17일(토)

인왕산 역사문화탐방(불국사-수성동계곡-만수천약수-305봉-미륵존불-석굴암-호랑이상-단군성전-사직단)을 다녀오다
 

 

 

 '인왕산 역사문화탐방(불국사-수성동계곡-만수천약수-305봉-미륵존불-석굴암-호랑이상-단군성전-사직단)' 코스 


시청역→옥인제일교회→불국사→수성동계곡→치마바위(추정)→석굴암입구→만수천약수→데크계단→성곽길→305봉

→전망바위→왕바위책바위→복세암터(추정)→인왕산암벽코스→삼신할매→미륵불/산신각→닭바위 조망→매바위(추정)

→석굴암 산신각→석굴암 대웅전→천향암→코끼리바위→양바위→폐기도터→석굴암입구→호랑이상→단군성전→사직단



 


  '인왕산 역사문화탐방(불국사-수성동계곡-만수천약수-305봉-미륵존불-석굴암-호랑이상-단군성전-사직단)' 이야기 


오늘은 지난 번 인왕산 바위탐방을 하면서 확인하지 못한 석굴암 앞의 닭바위, 코끼리바위,

그리고 병풍바위 밑에 있다는 마애미륵존불과 마애산신각, 삼신할매가 있는 곳을 찾아보고,

또다른 '전설의 치마바위'로 추정되는 곳을 확인하고자 인왕산으로 역사문화탐방을 나선다.

 

'인왕산 역사문화탐방(불국사-수성동계곡-만수천약수-305봉-미륵존불-석굴암-호랑이상-단군성전-사직단)'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 '인왕산 역사문화탐방(불국사-수성동계곡-만수천약수-305봉-미륵존불-석굴암-호랑이상-단군성전-사직단)' - 2부를 시작하며...


 삼신할머니 제단을 나서서...





 닭바위가 보이네...





 아래에는 인왕산 암벽코스 약수터가 보이고...


 석굴암 미륵전을 찾아 가는 길에...


 건물터가 보이고...


 바위벽에 미륵불이 보인다.


 이 마애미륵불은 인왕산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높이가 약 2.5m 정도 되는 듯...


 이 선각마애불의 이름은 '미륵존불'이라고 명문이 되어 있다.


 병풍바위 밑 미륵존불 옆에는 산신각이 있다.


 조성시기는 약 100년 정도로 본다고...


 미륵존불 옆에 있는 산신각에는...


 석굴암 옆의 산신단의 산신도는 마애선각인데 비해 이곳 산신각의 산신도는 양각(부조)산신도이다.


 산신과 동자승의 얼굴이 훼손된 것을 애써 복원하여...


 마애미륵불과 산신각을 한 번 더 돌아보고...


 누군가 이곳을 관리를 하고 있는 듯...



▼ 닭바위를 발견하고...


 사진으론 본모습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닭의 모습니다.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 경회루와 수성동계곡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네...


▼ 민간에 전해지던 전설에 의하면 수성동계곡에서 경회루가 보이지만...역사에 나오는 '치마바위'의 위치는 사직골이었다고 하니... 


▼ 석굴암 가는 길에 인왕산암벽코스도가 있는 곳에 약수터


▼ 인왕산악회의 인왕산 암벽코스 안내도


▼ 인왕산악회 약수터



▼ 이 바위 밑에...




▼ 저 바위는...


▼ 앞모습은...


▼ 매바위?



▼ 석굴암 주변에 매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이게 매바위일 듯해서...


▼ 마치 매처럼 보이긴 하는데...


▼ 저기 가는 외국인 커플에게 인왕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 석굴암 산신단으로...


▼ 산신단


▼ 산신단 내부에는...


마애산신도


음각한 마애산신도는 1957(북방불기 2984)에 조성했다고...


▼ 불기 2984년이면 서기로 2440년인데...불기=서기+544년이니까...뭔가 다른 계산이 있는 듯...


▼ 산신단에서 석굴암으로...


▼ 석굴암에서 궁궐(경복궁)이 보인다...그렇다면 석굴암이 그 옛날 '인왕사'인 듯...


▼ 인왕사와 복세암, 금강굴이 궁궐을 내려다보고 있기에 불경하다는 신하들의 건의가 있어 연산군이 폐사를 지시했다고...


▼ 그 당시에 인왕사가 지금의 석굴암이었을 듯...


▼ 인왕산 석굴암 대웅전 내부는...





▼ 석굴암은 박정희의 산중암자철거령(1968)과 새마을운동의 일환이었던 전국미신타파운동(1978)에도 폐사되지 않았다고...


▼ 석굴암은 최고 기도터의 세 가지 조건, 곧 영험한 바위와 샘물(용궁), 그리고 석굴을 모두 갖추었다.


▼ 천향암으로 가면서...







▼ 천향암




▼ 천향암도 석굴암과 마찬가지로 최고 기도터의 세 가지 조건, 곧 영험한 바위와 샘물(용궁), 그리고 석굴을 갖추었다고 한다.




















▼ 다시 석굴암으로 와서...


▼ 다음에 오면 어떤 작품으로 변해 있을까...





▼ 석굴암 돌계단을 따라 내려서다가...


▼ 코끼리바위?를 발견...


▼ 뒤에는 새끼코끼리도 한 마리 있고...



▼ 닭바위도 보이고...



▼ 기도터...이게 금강굴은 아닐 것이고...


▼ 인왕산에서 궁궐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인왕사(현 석굴암)와 복세암, 금강굴이 있었다고 하니...금강굴이 근처에 어디 있을 텐데...


▼ 떨어지는 약수가 만든 얼음신발?...유리구두처럼...




▼ '1960 양'이라고...


▼ '1960 양'바위


▼ 그 바위 위에는...


▼ 뭔가 했더니...옛날 암벽등반에 쓰이는 쇠못(피톤)이네.


▼ 인왕산 3대 산악회 중 하나인 'PITON CLUB'의 로고를 새긴 듯...


▼ 山모양 위아래에 'TOP'과 피켈모양의 'T'자를 옆으로 눕혀서 새긴 '인왕산악회'의 전신인 '알파인탑클럽'의 로고가 새겨져 있고...


▼ 여기도 기도터?


▼ 금강굴은 아니고...금강굴은 다시 다음에 확인하러 와야겠다.


▼ 닭바위를 다시 보고...


▼ 데크계단을 따라 내려서다가...






▼ 데크계단을 내려서다가...




▼ 폐 기도터를 살펴보며...
















▼ 석굴암 데크계단과 만나서...


▼ 석굴암약수터 가는 데크계단


▼ 석굴암입구로 내려서고...




▼ 석굴암 입구로 내려서서...


▼ 인왕스카이웨이를 따라...




▼ 수성동계곡에 있었다는 치마바위로 추정되는 바위






▼ 호랑이상



▼ 서울성곽 무악동입구에서...














▼ 바로 여기...좌측의 넓은 바위터가 보이는 저 곳이...



▼ 사직골에 있었다는 '전설의 치마바위'로 추정되는 바위에서 경회루가 보인다.


▼ 사직단도 가깝고, 인가도 가까우니 오르내리기도 수월했을 것이고...호랑이 걱정도 덜었을 것이고...


치마바위

 

종로구 사직동 사직공원 서쪽에 있는 넓고 평평하게 생긴 바위로,

중종의 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후와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즉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晋城大君이 중종이 되자

그 부인 愼氏는 친정아버지 愼守勤이 반정 때 피살되었는데

반정을 주도해온 朴元宗 등이 죄인의 딸은 왕비가 될 수 없다하며 반대하자

인왕산 아래 사직골 옛 거처로 쫓겨나 살게 되었다.

 

중종은 부인을 잊을 수 없어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곤 하였으며,

신씨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종을 시켜 자기가 입던 붉은 치마를

경회루가 보이는 이 바위에 걸쳐 놓음으로써 간절한 뜻을 보였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 불렀다.

또 중종이 사직단에 나올 때에는 언제나 말죽을 쑤어 주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옥인동에 있는 인왕산 중턱 병풍바위 앞에 우뚝 솟은 바위를 치마바위라고 한다.

 

출처 : 서울지명사전





▼ 아래에서 보니...


▼ 마치 쇼파바위처럼 보이네...










▼ 단군성전










▼ 단군성전에서 사직공원(사직단)으로 가는 길이 통행금지.






▼ 사직단


사직단[社稷壇]

서울 종로구 사직동(社稷洞)에 있는 조선시대의 단지(壇址).

 

  지정종목 : 사적

지정번호 : 사적 제121

지정일자: 19630121

시대 : 조선

크기 : 면적 9,075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한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

고려의 제도를 따라 경복궁 동쪽에 종묘(宗廟),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1395(태조 4) 공사를 착수하여 설단(設壇)이 완성되자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신실(神室)과 신문(神門)을 세웠다.


사직단은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의 동·서 양단(東西兩壇)을 설치하였는데 동단에는 국사(國社:正位土神),

서단에는 국직(國稷:正位穀神)을 모셨으며, 단에는 주척(周尺)으로 높이 2.5, 너비 1자의 석주(石柱)를 각기 세워

후토씨(后土氏)와 후직씨(后稷氏)를 배향하였다.

 

단은 네모반듯하며 세벌장대석을 높이 3자가 되게 하고

한 변이 25(주척)의 크기로 평면을 설정하였다.

단의 4면에는 3층의 돌계단을 설치하였으며

단상 네 귀퉁이에는 구멍난 돌이 박혀 있고 큰 쇠고리가 꽂혔는데,

이는 기둥을 세우고 차일을 치도록 설비하였던 것이다.

 

사직단에는 1년에 네 차례의 대사(大祀)와 선농(先農선잠(先蠶우단(雩壇)을 제사지내는 중사(中祀),

그 밖에 기곡제(祈穀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 사직단의 설치와 함께 사직서(社稷署)가 생겨 제사의 수발을 맡았다.

 

[출처 : 두산백과]



사직단[社稷壇]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제단.

사적 제121. 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토신과 곡신을 제사하던 제단이다.

 

시대 : 조선

성격 ; 단묘

건립시기 : 조선시대

규모(면적) : 43,587

지정번호 : 사적 제121

지정일 : 1963121

 

개설

 

사적 제121. 면적은 43,587.

사직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을 가리킨다.

두 신을 제사지내는 단을 만들어 모신 곳이 사직단(社稷壇)이다.

조선시대 사직단을 관장하던 관청은 사직서(社稷署)였다.

 

내용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禮)에 기록되어 있는 조선 초기의 사직단을 보면,

한 가운데에 사단과 직단이 각각 동쪽과 서쪽에 위치하였는데 너비는 25자이고 높이는 3자였다.

유의 한쪽 면의 길이는 25()였으며, 사방으로 홍살문이 있었다.

그 밖으로 다시 네모난 담장이 둘러쌌으며 이 담장에도 역시 사방으로 홍살문이 있었다.

특히 홍살문은 모두 문이 하나인데 담장의 북문은 3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신이 출입하는 문이므로 격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유의 바깥 서남쪽에 신실(神室)이 있고 유의 북문과 담장의 북문 사이에는 국왕이 서 있는 자리인 판위(版位)가 있었다.

 

사직단은 임진왜란으로 건물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단만 남았다.

신위는 개성의 목청전(穆淸殿)에 묻어 보관되었다가 평양으로 옮겨졌으며,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게 되자 세자가 받들고 황해·강원도 등으로 다니다가

환도해서는 심의겸(沈義謙)의 집에 종묘의 신위와 함께 모셨다.

1596(선조 29)에 신실을 지어 봉안하였다.

사직단이 완전히 중건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1603(선조 36)

사직단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1608(선조 41) 종묘가 중건되기 전에 복건된 것으로 보인다.

 

중건된 사직단은 초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따랐지만

높이가 34치이고 유의 한쪽 면의 길이가 22보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규모에서 약간 차이가 있었으며 부속 건물의 위치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1783(정조 7) 편찬된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사직서전도(社稷署全圖)에는 부속 건물이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서쪽에 제기고, 재생전, 전사청, 잡물고, 수복방 등이 위치하고

동쪽에 악기고, 안향청, 차장고, 악공청, 부장직소 등이 위치하는 등 양쪽에 퍼져 있었다.

사직에 제사드리고 관리하는 일이 더욱 많아지고 세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사직의 규모가 매우 축소되었으며 부속 건물 가운데 재실(齋室)로 쓰이던 안향청과 정문만이 남아 있다.

 

조선의 사직 제사는 1년에 3, ·가을 납일(臘日)에 제사를 지내고, 기고(祈告) 제사도 사직에서 지냈다.

주현에서 지내는 사직 제사는 봄·가을 두 번 지냈으며, 국왕 대신 그 지역의 수령이 제사를 지냈다.

사직단은 종묘와 더불어 국가자체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일 정도로 상징적인 곳이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사직단 입구에서 여정을 마치고...시청역까지 걸어서...


▼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라네...





▼ 사청역에서 전철로 귀가.



☞ 이것으로 '인왕산 역사문화탐방(불국사-수성동계곡-만수천약수-305봉-미륵존불-석굴암-호랑이상-단군성전-사직단)'을 마친다.


2018년 02월 17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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