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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3]인왕산 바위탐방(선바위-얼굴바위-모자바위-해골바위-범바위-치마바위-석굴암-기차바위-무계원) - 3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8.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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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13일(화)

인왕산 바위탐방(선바위-얼굴바위-모자바위-해골바위-범바위-치마바위-석굴암-기차바위-무계원)을 다녀오다
 

 

 

 '인왕산 바위탐방(선바위-얼굴바위-모자바위-해골바위-범바위-치마바위-석굴암-기차바위-무계원)' 코스 



독립문역→인왕사일주문→인왕사국사당→선바위→전망바위→얼굴바위→모자(帽子)바위→해골바위→모자(母子)바위

→범바위→인왕천약수터→석문치마바위(추정1)→석굴암입구→치마바위(추정2)→토끼와 거북이바위/석굴→주변탐색

→석굴암 데크계단→석굴암→천향암→인왕산 암벽코스→복세암추정터→전망바위기차바위능선 갈림길초소→해골바위

→기차바위→부암약수→반계 윤웅렬별장→청계동천각자안평대군집터/무계정사→무계원(舊오진암)→부암동주민센터



 

  '인왕산 바위탐방(선바위-얼굴바위-모자바위-해골바위-범바위-치마바위-석굴암-기차바위-무계원)' 이야기 


오늘은 특별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인왕산의 바위 탐방을 나선다.


인왕산은 유독 특이한 바위들이 많은데...

그동안 테마를 가지고 지나가다 보니 그 길에 있는 바위들만 보게 되었다.

해서 오늘은 인왕산의 바위들을 최대한 많이 볼 수 있는 길을 기획하고 나서기로 한다.


인왕산 바위들 중 논란이 있는

병풍바위 옆의 '주름치마바위'와 단경왕후 전설의 '치마바위'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모자바위는 모자(帽子)바위와 모자(母子)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다르다는 것을...

기차바위능선은 정상의 가차레일이 아니라 옆에 기차바위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외 범바위와 공작머리바위, 해골바위, 닭바위 등의 바위들을 찾아서 인왕산 바위탐방을 다녀왔다.

 

'인왕산 바위탐방(선바위-얼굴바위-모자바위-해골바위-범바위-치마바위-석굴암-기차바위-무계원)'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 '인왕산 바위탐방(선바위-얼굴바위-모자바위-해골바위-범바위-치마바위-석굴암-기차바위-무계원)' - 3부를 시작하며...


 석굴암을 관리하는 스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 인왕산 정상 방향으로 가면서...


▼ 석굴암 앞의 파고라엔 보온을 위해 비닐장막으로...


 매바위?...석굴암 부근에 '매바위'가 있다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데...


 병풍바위를 올려다 보고...


 병풍바위면에 일제가 새긴 글자들을 뭉개버린 흔적


 닭바위인 듯해서 확인차 갔다가 너무 가까이에서...초소가 있어 몸통부분을 빼고 찍었더니...


 병풍바위를 올려다보며...




 매바위(추정)를 지나...





 매가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





 인왕산악회 임벽코스 안내도가 있는...




 병풍바위의 '주름치마바위'를 확인하고...


▼ 마치 주름을 잡은 듯...


 이 바위는 예전에 성곽공사에 동원되었던 듯...







 기이한 모습으로 자라는 소나무



 전망바위에서...


 주름치마바위를 확인하고...


 모양이 치마처럼 생겨 치마바위라 부를 수 있지만...


 '전설의 치마바위'는 절대 아님....그 옛날 누가 저기다가 치마를 펼칠 수 있단 말인가?


 바위 중간에 로프가 보이네...저곳으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인데...


 '주름치마바위'를 다시 한 번 올려다보고...






 전망이 터지는 넓은 암반이 나오고...


▼ 경복궁이 보이네...





 이런 돌계단은 언제 만들었을까?


 석굴에 돌을 쌓아 비트를 만든 것인가? 


 현대 건물이면 벽돌로 쌓았을 텐데...


 내부를 살펴보니 기도터의 흔적이 보이고...


 누군가 쉼터용으로 가져다 놓은 듯하고...


 방의 모습을 꾸민 듯하고...


 자연 통풍창?


▼ 내부 공간이 꽤 넓다.


 이 밑엔 물이 나왔을 것으로 보이고...


 이곳이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에 세운 개인암자 '복세암 터'가 아닐까?


▼ 마치 두꺼비가 산으로 오르는 형상의 바위 밑에 있는 것이 수양대군의 개인암자 '복세암' 중 일부일까를 추측하며... 


▼ 성곽이 있는 능선으로 오르다가...



 책바위 아래에서...


 전망바위로 가서...



▼ 전망 좋은 곳에 앉아 전화통화하는 외국인. 


 이 바위는...


 王자가 새겨져 있어서...'王자바위'라고 하자.


 王인가? 玉인가?


 병풍바위와 주름치마바위를 다시 확인하고...


▼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수양대군이 인왕산 산정 부근에 개인암자를 세워놓고 기도를 했다니... 


 저곳이 그곳이 아닐까?...세조의 '복세암터'로 추정되는 암자터를 내려다보고...


 전망 좋은 곳에 앉아서...


 이제는 청와대를 찍어도 된다네...


▼ 경복궁


▼ 남산


▼ 성곽길로 올라서서...


 305봉 능선갈림길에서 기차바위를 향해 가기 전에...


▼ 주변을 둘러보고...





 기차바위를 찾아 가면서...












 마치 규화석을 연상시키네...



 인왕산의 또다른 해골바위




 기차바위능선...양쪽에 난간이 기찻길처럼 보인다고 해서 '기차바위 능선'인 줄로 아는데...


 그렇다면 '기찻길능선'이라고 해야지...


 이곳이 '기차바위 능선'인 이유는...


 정상 능선에 난간 때문이 아니라...



 마치 이곳이 기찻길처럼 보이기에...


 '기차바위능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찻길'이 아니라 '기차바위'라고 했으니...


 기차처럼 생긴 바위가 어디에 있다는 것이고...












 '기찻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뒤돌아 보면...


 저 바위가 바로 기차처럼 생겨서...


 홍제동쪽에서 보면 기차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인다.


 해서 이곳을 '기차바위능선'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 이곳부터 한동안 소나무길이 이어진다.





 이곳을 맥가이버는 '명품소나무길'이라고 부른다.


▼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 이런 길을 걸으면 괜히 좋다.


 바위와 소나무가 서로 배려하며 세월을 함께 하는 모습. 


 전망바위








 군사용 포대자리에 전망데크를 설치...




 갈림길에서...


 부암동(성덕사) 방향으로...







 프레임에 북악산을 넣어보니...




 돌탑에...


 돌을 하나 더 올리고...


 저 아래 약수터가...


 부암약수터


 대나무 울타리





 반계 윤웅렬 별장


반계 윤웅렬 별장

 

반계 윤웅렬 별장(磻溪 尹雄烈 別莊) 또는 반계 윤웅렬 별서(磻溪 尹雄烈 別書)

대한제국 시기에 법부대신과 군부대신을 지낸 반계 윤웅렬이 당시 도성 내에 유행하던 성홍열 등을

피해 지내기 위해 도성 밖 경승지로 첫 손에 꼽히던 창의문 밖 부암동에 조성한 별장이다.

 

19056월에 착수, 19063월 이전에 2층의 벽돌조 양풍 양식으로 건립되었다.

1911년 윤웅렬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 셋째 아들인 윤치창이 상속받아 안채 등

한옥 건물을 추가로 조성하여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1977317일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2호 부암동 윤웅렬대감가로 지정되었다가,

200676일 반계 윤웅렬 별서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이후 현재의 명칭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개요

 

독립운동가 겸 계몽사상가, 정치인 윤치호의 아버지이며 조선 말기의 무신인 윤웅렬이

조선 말기 창의문 밖 경승지의 땅을 매입하고 1906년 초, 지은 별장이다.

나중에 벽돌로 지은 서양식 2층 건물로 개조하였다가,

윤웅렬 사후 윤치창이 상속받고 안채 등 다시 한옥 건물을 추가로 지었다.

 

이 집은 경사진 언덕 위에 석축을 쌓고 약간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향庚坐甲向하여 자리잡았는데,

넓은 정원을 지나면 전면 높은 석축 위에 행랑채가 있고, 그 안에 사랑채와 안채가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대문간이 있는 행랑채는 정면 5, 측면 1칸의 ''자형 평면으로, 1칸 대문간 좌우로 각각 방 2칸이 있다.

막돌쌓기 기단 위에 사다리꼴 모양의 주춧돌을 놓아 사각기둥을 세웠으며,

가구(架構)3량이고,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으로 보이는 사랑채는 ''자형 평면을 하였는데,

한옥 뒷부분에 자리한 2층 붉은 벽돌 건물이 이 별서 건물군(建物群) 가운데 가장 먼저 지어진 것이다.

 

안채는 사랑채 북쪽에 위치하였는데, 대문간을 들어와 오른쪽으로 꺾여 안마당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안채는 전형적인 서울·경기지방의 ''자형 평면을 바탕으로 하여 ''자형 평면에 가깝게 구성되었다.

회첨골을 이룬 곳에 2칸 크기의 안방이 위치하였고, 안방 왼쪽으로 정면 2칸 크기의 대청과 1칸 건넌방이 차례로 있다.

안방에서 앞으로 꺾여 나온 곳에는 각각 1칸 크기의 부엌과 찬방이 차례로 자리잡았다.

대청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전면에는 세살덧문을 달았고 그 안에 유리분합문을 달았다.

 

대청안방부엌찬방 앞에는 ''자로 이어지며 좁은 널마루를 깐 쪽마루가 놓였다.

건넌방 앞에는 세살덧문을 단 누마루 반 칸이 앞으로 돌출되었고, 이 곳에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건넌방 앞에 누마루를 둔 것은 대한제국시기 전통가옥의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반계 윤웅렬 별서'로 명칭 변경사유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2호는 윤치호(尹致昊,1865~1945)의 아버지로

대한제국 시기에 법부대신(法部大臣)과 군부대신(軍部大臣)을 지낸 반계(磻溪) 윤웅렬(尹雄烈,1840~1911)

당시 도성 내에 유행하던 성홍열(猩紅熱, scarletfever)을 피해 지내기 위해

도성 밖 경승지로 첫 손에 꼽히던 창의문 밖 부암동에 조성한 일종의 별장 유적이다.


19056월에 착수해 19063월 이전에 완공되었는데 2층의 벽돌조 양풍 양식으로 지어졌다.

1911년 윤웅렬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셋째 아들인 윤치창(尹致昌)이 상속받아 안채 등 한옥 건물을 추가로 조성했다.

이와 같은 동 문화재 조성연대, 조성자, 용도 및 성격,

문화재청의 중요민속자료 지정명칭 부여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문화재 지정명칭을 <부암동 윤응렬대감가(付岩洞 尹應烈大監家)>에서

<반계 윤웅렬 별서(磻溪 尹雄烈 別墅)>로 변경하고자 한다.


아울러 문화재 지정대상도 1977년 지정 당시 일곽이라는 불확정 개념으로 고시되었고,

동 유적 가운데서 최초 조성되고 유적의 성격을 가장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2층 벽돌조 양풍 건물은

사실상 일곽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바 동 2층 벽돌조 양풍 건물을 중심으로 하여 추가 조성된 한옥까지를 포함,

문화재 지정대상을 총 3동으로 명시함으로써 문화재 관리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기타

 

반계 윤웅렬 별장은 도성 밖의 인왕산 북쪽 계곡에 세워진 별장으로서

외국으로부터 도입된 근대 건축 양식이 주택에 적용되었다.

안채는 근대 서울 한옥의 변화상을 보이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반계 윤웅렬 별장 안내문




 특이한 모양의 지붕을 한 주택.



 청계동천 각



 이곳은 안평대군의 무계정사이자 현진건의 집터


 예전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는데 이제 복원 중이네...


 나무 뒤로 '무계동' 각자바위가 보이고...



무계정사武溪精舍, 무계정사지武溪精舍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조선 전기 안평대군의 집터

 

    시대 : 조선전기 

문화재 지정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

건립시기 : 15세기

성격 : 집터

유형 : 유적

면적 : 1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 728-4(부암동 319-4)

 

개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

안평대군이 사용하던 정사 터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다.

2003125일에 무계정사(武溪精舍)’에서

무계정사지로 문화재청의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다시 안평대군 이용 집터로 변경되었다.

 

내용

 

조선시대 세종의 셋째 왕자인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세운 정사로

안평대군이 꿈에 도원(桃園)에서 놀고 나서 그곳과 같은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정자를 세우고 글을 읊으며 활을 쏘았다고 전해진다.

 

유지 앞의 바위에는 한쪽 면을 다듬고 그 윗부분의 가운데

큰 현판 모양으로 장방형 틀을 판 평면에 무계동(武溪洞)’이라고 새겼는데,

이 글씨는 필적으로 보아 안평대군의 글씨로 추정된다.

 

그는 도성의 북문인 창의문(彰義門) 밖 이곳에 정사를 짓고 1만 권의 장서를 갖추었으며,

또한 용산 강가에는 담담정(淡淡亭)을 지어 이곳 정자들을 오가며

글 잘하는 선비들을 불러 모아 함께 시문을 즐겼다고 한다.

1453(단종 1) 안평대군이 역모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은 이후 이곳도 폐허가 되고 말았다.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래 사진은 2009년 12월에 찍은 무계정사의 모습.


 아래 사진은 2009년 12월에 찍은 무계정사의 모습.


 아래 사진은 2009년 12월에 찍은 무계정사의 모습.


 아래 사진은 2009년 12월에 찍은 무계정사의 모습.


 아래 사진은 2009년 12월에 찍은 무계정사의 모습.


 아래 사진은 2009년 12월에 찍은 무계정사의 모습.



 전에 없던 이 건물은...


 무계원이라고...


 입춘대길하고...


 건양다경해야지...


 무계원은...예전 요정 오진암을 이축한 거라네...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한 옛 오진암을 둘러보니...




















 무계원에서는 이런 것들을 한다네...







 부암동주민센터/무계원 정류장에서 여정을 마치고...



☞ 이것으로 '인왕산 바위탐방(선바위-얼굴바위-모자바위-해골바위-범바위-치마바위-석굴암-기차바위-무계원)'을 마친다.


2018년 02월 13일(화)

'인왕산 바위탐방(선바위-얼굴바위-모자바위-해골바위-범바위-치마바위-석굴암-기차바위-무계원)'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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