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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 '에밀레종' 소리의 전설은 왜 생겼을까요?

by 맥가이버 Macgyver 2021. 3. 10.

[뉴스 속의 한국사] '에밀레종' 소리의 전설은 왜 생겼을까요?

성덕대왕신종

 /그래픽=박상훈

 

국립경주박물관 앞뜰에 있는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神鐘)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체험관이 최근 문을 열었습니다.

2004년 이후 성덕대왕신종을 치는 행사가 열리지 않았으니

17년 만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성덕대왕신종이라는 이름이 낯선가요?

만약 그렇다면 이 종의 별명을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바로 '에밀레종'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종이죠.

종을 만들 때 어린아이를 종 속에 넣었다는 무서운 전설 때문에 생긴 이름이죠.

 

실제로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를 분석해 보니

1초에 5~8번 '엉~ 엉~' 울리는 게 애타게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에밀레종 전설'은 사실일까요?

왜 이런 전설이 생겼을까요?

정말 아이를 넣었을까

전설 내용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신라 경덕왕은 부친인 성덕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종을 만들기로 했어요.

스님들은 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쇠붙이를 시주받으러 돌아다녔는데요.

그때 어린 자식을 안고 있던 한 아낙이 "우리는 내놓을 게 이 애밖에 없다"고 푸념했죠.

 

그런데 절로 돌아간 스님은 꿈에서

"종이 제대로 울리려면 아이를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었어요.

결국 그 아이를 희생시켜 쇳물에 넣자 마침내 종이 완성됐다는 전설이지요.

이후 종을 칠 때마다 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는 것처럼 '에밀레'란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제사나 특별한 의식을 위해 사람의 몸을 바치는 것을 '인신(人身) 공양'이라고 해요.

실제로 신라시대에 이런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성덕대왕신종을 만들 때 아이를 넣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사람의 뼈는 화학 성분인 인으로 이뤄져 있어요.

만약 사람을 넣어 만들었다면 종에 인 성분이 있어야 하는데,

1998년 성덕대왕신종의 성분을 분석해 보니 인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답니다.

통일신라 왕실의 권력 투쟁

신라 경덕왕 때는 통일신라의 전성기였어요.

불국사와 석굴암도 이때 만들어졌죠.

그런데 경덕왕은 끝내 에밀레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어요.

 

종이 완성된 것은 771년,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 때였습니다.

그런데 신라 전성기의 마지막 왕으로 불리는 혜공왕은 불행한 임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왕위에 올랐을 때가 고작 여덟 살이었어요.

그래서 어머니 만월부인이 어린 아들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렸어요.

만월부인이 친오빠를 중요한 자리에 앉혀 국정을 쥐락펴락하면서 나라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에밀레종 완성 3년 전에는 큰 반란이 일어나 왕궁이 한 달 넘게 포위되기도 했어요.

780년 다시 반란이 일어나 23세의 혜공왕은 왕비와 함께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후 통일신라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죠.

바로 이런 정치적 상황이 앞에서 말한 에밀레종 전설로 변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전설에 등장하지 않는 아이의 '아버지'는 죽은 경덕왕,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어머니'는 정치적 실패로 반란을 막지 못한 만월부인,

제물로 바쳐진 '어린아이'는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된 혜공왕을 각각 상징한다는 것이죠.

19세기 이후 정착한 설화

이 해석이 사실이라면 에밀레종 이야기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전해졌을 거예요.

에밀레종 전설은 어떤 책에 기록된 걸까요?

'삼국사기'일까요, '삼국유사'일까요?

일단 이 두 책 어디에도 전설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에밀레종 전설이 적힌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선교사·의사이자 주(駐)조선 미국 공사를 지낸 호러스 알렌이

1895년 영문 잡지 '코리안 리포지토리'에 쓴 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록된 에밀레종 전설은 성덕대왕신종이 아니라

서울의 보신각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에밀레종 전설이 성덕대왕신종과 결합돼 등장한 것은

1920년대 '경주의 전설' 등 일본인이 채록한 기록에서부터였습니다.

 

나라에서 큰일을 벌일 때마다 재산 일부를 내야 했던

백성들의 고통과 한(恨)이 19세기 말쯤 이런 설화로 표현됐고,

이 설화가 20세기 초 한반도에서 가장 큰 종이었던 성덕대왕신종과 결합해

'에밀레종'이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죠.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전설처럼

정말 어린아이를 종에 넣은 것은 아니니 안심해도 됩니다.


[신라의 상대·중대·하대]

1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신라는 전통적으로

상대(上代)와 중대(中代), 하대(下代) 세 시기로 시대를 구분합니다.

 

상대는 건국('삼국사기' 기록엔 기원전 57년)부터 28대 진덕여왕(서기 654년)까지,

삼국시대의 한 나라로 성장한 시대입니다.

 

가장 전성기인 중대는 29대 태종무열왕(654년)부터 36대 혜공왕(780년)까지로,

통일을 이뤄 전성기를 누렸던 시대입니다.

혜공왕은 이 시대 마지막 왕이었죠.

 

이후 37대 선덕왕(780년)부터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935년)에 이르는 시대를 하대라고 하는데,

극심한 분열과 왕권 쇠퇴가 일어나고 각 지역에 호족 세력이 등장해 끝내 신라가 멸망에 이르는 시대입니다.

기획·구성=최원국 기자 유석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