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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박쥐 탓?… 박쥐 없애면 더 위험할 수 있어요

by 맥가이버 Macgyver 2021. 4. 20.

[재미있는 과학] 코로나가 박쥐 탓?… 박쥐 없애면 더 위험할 수 있어요

 

생물 다양성과 감염병

 /그래픽=안병현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치려 세계적으로 백신을 접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확산 사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가 박쥐 같은 야생동물에게서 시작해 인간에게 전파됐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과거 세계적으로 유행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도 모두 야생동물에게서 옮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온갖 생물이 사는 야생 지역이 감염병 대유행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밀림이나 늪지대 등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곳에 사는 동물들이 감염병을 일으키는 원인일까요?

생물 다양성이 인간을 감염병에서 보호

'생물 다양성'이라는 말이 있어요. 생물 종류,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 생물이 지닌 유전자 등의 다양성을 포괄하는 개념이에요.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생물의 다양성이 감염병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믿음"이라는 요지의 논문이 발표됐어요. 생물 다양성이 인간에게 감염병을 퍼트린다면 동물이 다양할수록 위험한 병원체가 더 많이 나타나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 논문을 발표한 미국 캐리생태시스템연구원의 펠리시아 키싱 박사는 그 반대로 "생물 다양성이 높을수록 인간이 위험한 감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 이유는 "생물 다양성이 높으면 감염병을 인간에게 옮길 만한 생물이 인간이 사는 곳으로 먹이를 찾아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자연이 황폐해져 생물 다양성이 낮은 환경에서 사는 동물들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쉽게 전파하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최근 50년 동안 도시 개발로 나무를 잔뜩 베어내는 바람에 생태계가 파괴됐고, 박쥐 같은 동물들이 서식지를 잃고 사람이 동물을 키우는 농장 등지에 나타나면서 바이러스를 퍼트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죠.

감염병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의 조나 마제트 교수는 "10년 동안 전 세계 숲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으면 코로나 이후 인류에게서 감염병이 또 발발할 확률을 40%까지 낮출 수 있다"고 말했어요. 인간이 야생 생태계를 침범하고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면 야생에 갇혀있던 바이러스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으로 옮겨올 수 있다는 거예요.

박쥐는 생태계에 이로운 동물

그렇다면 박쥐가 바이러스를 옮기니까 지구에서 멸종시켜야 할까요. 실제로 라오스·잠비아·호주 등 일부 나라에서는 박쥐 소탕 작전까지 벌이고 있어요. 박쥐는 수백만 마리씩 모여 살아 한 마리만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무리 속으로 급속하게 전파됩니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 콜린 웹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박쥐가 보유한 바이러스는 총 137종입니다. 박쥐는 바이러스를 보유하면서도 그 자신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진화했어요.

그러나 과학자들은 박쥐를 없애면 오히려 바이러스가 확산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박쥐가 생물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인데요. 박쥐는 꽃에서 꿀을 빨아 먹으면서 몸에 붙은 꽃가루를 퍼트려 식물이 수정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또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와 같은 해충을 잡아먹기도 하지요.

박쥐는 바이러스와 공생해요. 박쥐가 멸종하면 이 바이러스들은 기생할 다른 동물을 찾게 됩니다. 그럼 우리가 치명적 바이러스와 접촉할 가능성은 박쥐가 인간에게 직접 바이러스를 옮길 때보다 더 커지는 거예요. 이런 이유로 질병 생태학자인 릭 오스트펠드 등 과학자들은 "박쥐를 때려잡았다간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확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작은 동물이 바이러스 옮길 가능성 커

지구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25%가 멸종 위기라고 합니다. 독도에 살았던 바다사자 '강치'와 같은 동물은 이미 멸종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게 됐어요. 전문가들은 앞으로 20년 동안 우리가 동식물의 멸종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수백만 종의 운명이 결정 날 것이라고 전망해요. 키싱 박사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감염병을 막으려면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돼지·소·사슴·쥐·박쥐 같은 동물들이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해 먹이사슬이 무너지면 몸집이 큰 생물이 사라지고 작은 동물이 번성한다고 합니다. 작은 동물들은 수명이 짧고 빨리 커 자손을 많이 퍼트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작은 동물은 수명이 짧아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짧다 보니 면역력이 약하다고 해요. 이런 이유로 작은 동물은 바이러스에 잘 감염되고, 바이러스를 잘 옮기기도 한답니다.

생물 다양성 보전은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동물은 각자 생태계에서 맡은 역할이 있기 때문이죠.

[세계 생물 다양성의 날]

매년 5월 22일은 유엔(UN)이 제정한 '세계 생물 다양성의 날'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전 세계가 생물 다양성을 보존·관리하고 생물 다양성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됐습니다.

생물다양성협약은 지구상의 생태계·유전자를 포함한 모든 생물을 보호하고자 마련된 국제 협약인데요. 전 세계 150여국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협약, 사막화 방지 협약 등과 함께 유엔 3대 환경 협약으로 불리고 있어요.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최원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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