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사찰] 말 귀가 내뿜는 힘찬 기운! 감당할 그릇,그 누구인가
마이산 금당사 고금당
전라북도 진안군은 전체 면적의 80%가 덕태산(1,113m), 선각산(1,141m), 구봉산(1,002m) 등 산림으로 이루어진 고원지대다.
이른바 진안고원이다.
평균 해발고도가 약 500m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면적이 약 2,000km2가 넘어 국내에서 드문 규모로 호남의 지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진안고원을 이루는 주요 행정군인 무주·진안·장수군의 앞글자를 따서 ‘무진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특한 산 모양새
진안 마이산馬耳山(686m)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괴한 모습을 한 산일 것이다.
진안고원 위로 느닷없이 말귀를 닮은 거대한 바위 두 덩어리가 솟아 있다.
보면 볼수록 ‘무진장’ 기묘한 경관이다.
주변은 상대적으로 야트막한 야산으로 이뤄져 있는데 유독 이 두 봉우리만 툭 튀어나와서 그 모습이 생경하기까지 하다.
오랜 지각변동으로 지금 모습이 됐을 것이라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 이해하기엔 납득가지 않을 만큼 특이한 형상이다.
예부터 마이산을 부르는 이름은 계절 따라 달랐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엔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여 용각봉, 가을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 부른다.
두 봉우리 중에서 동쪽 것을 수마이산, 서쪽 것을 암마이산으로 부른다.
신라시대에는 마이산을 서쪽에서 가장 이로운 산이라 하여 서다산西多山이라 했다.
고려 때는 하늘로 용솟음치는 힘찬 기상을 상징한다 하여 용출산이라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39권 전라도 진안현 편에 ‘마이산은 현의 남쪽 7리에 돌산이 하나 있는데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용출봉이라 이름하였다.
높이 솟은 봉우리 중에서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는데,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이 마치 깎아서 만든 것 같다.
그 높이는 천 길쯤 되고 꼭대기에는 수목이 울창하고 사면이 준절해 사람들이 오를 수 없고 오직 모봉의 북쪽 언덕으로만 오를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동봉 위에는 작은 못이 있고, 서봉의 정상은 평평하고, 샘이 있어서 적병을 피할 수 있고, 날이 가물어 비를 빌면 감응이 있다고 한다.
본조 태종이 산 아래에 이르러서 관원을 보내어 제사를 드리고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 사람들이 한결같이 마이산의 개성적인 모습을 두루 언급했다.
마이산 종주 산행은 대개 서쪽 끝 마령에서 출발해 마이산 탑사에서 끝낸다.
강정리의 합미산성에서 출발해 능선 타고 광대봉을 거쳐 비룡대, 봉두봉, 암마이봉, 탑사를 경유해 남부주차장으로 하산하면 약 12km, 5시간 걸린다.
아니면 마령 49번국도 상의 덕천교에서 태자굴 능선을 넘어 월운계곡을 거쳐 광대봉을 오른 다음 탑사로 종주하는 코스로 12.5km에 5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여자들이 수마이봉 못 보게 한 이유
이 코스들 중에서 합미산성을 들머리로 하는 길은 능선을 종주하면서 멀리서 드러나는 마이산 모습을 감상하면서 다가가는 코스다.
마이산은 암마이봉 위로 가면 발치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이산은 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더 아름다운 산이다.
암마이봉을 옆에 끼고 봉두봉을 내려서면 마치 요세미티 거벽처럼 압도적이다.
수백 미터의 거대한 절벽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시멘트와 자갈을 섞어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대한 역암 덩어리. 움푹 파인 곳이 많아 마치 달 표면 같다.
이런 지질현상을 타포니Taffoni라고 한다.
암석이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다.
마이산의 타포니는 세계에서도 규모가 큰 편이다.
이 거대한 역암 덩어리는 땅속에 잠긴 부분까지 합하면 1,500m에 이른다고 한다.
마이산에서 시작된 역암층은 멀리 임실읍까지 넓게 퍼져 있다.
그래서 지질학계도 ‘마이산역암층’이라 부른다.
이곳이 역암층이 된 것은 까마득한 옛날 이곳이 호수였기 때문이라 한다.
1억 년 전으로 거슬러 가 중생대 백악기쯤이다.
고도를 올릴수록 수마이봉의 위용이 드러난다.
멀리서 봤을 때는 하나의 바위처럼 보였던 수마이봉이 양옆에 작은 암봉을 하나씩 끼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영판 불알 두 쪽을 닮았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과거에는 수마이봉이 보이는 마을에는 모두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집에서 수마이봉이 바로 보이면 여자가 바람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수마이봉은 원체 가파른 바위봉이라 오르는 코스가 없으며, 암벽등반도 하지 못하도록 통제되어 있다.
암마이봉의 압도적인 풍광
마이산 해발 550m 지점에 천연 바위동굴이 서너 개 있다.
이 중에서 제일 큰 동굴을 ‘천상굴天上窟’이라고 부른다.
바위절벽 중간에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아 보이지만 길이 나있다.
이 동굴에서 고려 말의 고승 나옹대사가 수행했다고 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같은 뛰어난 선시禪時를 남긴 인물이다.
거대한 천연 콘크리트 암반 중간에 굴이 있고, 굴 위에는 바위가 반석처럼 되어 있다.
반석에서 앞을 바라다보면 마이산의 두 개 봉우리 중 암마이산이 앞에 우뚝 솟아 있다.
이 두 개의 바위 봉우리 중에서 암마이산의 봉우리를 정면에서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가 현재의 고금당이다.
해발 528m의 탄금봉 바로 아래에 매달리듯 얹혀 있는 고금당은 마이산이 내뿜는 에너지가 쏟아지는 터에 자리해 풍수적으로 기가 세다고 알려져 있다.
들머리에서 직선거리로 600m밖에 안 되지만 가파른 경사가 계속되기에 고금당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바로 옆이 낭떠러지라 난간을 붙잡지 않으면 위험하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고금당이다. 황금색 지붕을 얹고 있어 티베트의 포카라궁을 연상하게 한다.
오르막 난간을 위태롭게 부여잡고 땅만 보면서 걷다가 뒤로 돌면 암마이봉의 압도적 위용이 펼쳐져 있다.
기氣라는 형이상학적 가상 물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도 고금당으로 쏟아지는 마이산의 드센 힘에 압도당할 것이다.
고려 말 나옹화상이 명산대천 중에서 굳이 진안의 이 험준한 바위굴에서 수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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