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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째 전국 교수들이 선정·발표 - 사회상 집약해온 사자성어들] ‘오리무중’부터 ‘과이불개’까지… 사자성어를 보면 한 해가 보인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22. 12. 24.

[아무튼, 주말] ‘오리무중’부터 ‘과이불개’까지… 사자성어를 보면 한 해가 보인다

22년째 전국 교수들이 선정·발표
사회상 집약해온 사자성어들

 
전국 교수들이 선정한 2022년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 휘호.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상옥 전 동방문화대학원대 총장이 썼다. /교수신문
 

해마다 세밑이면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뉴스를 장식한다.

2022년에 뽑힌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이불개는 논어 위령공편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是謂過矣·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라 말했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박현모 여주대 교수는 그 이유로 “여야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야당 탄압’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이불개에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국가적 비극에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세태, 잘못을 인정하면 패배자가 될 것이라는 강박에 일단 우기고 보는 풍조가 반영됐다는 시각도 있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2001년 11월 교수신문 편집회의에서 ‘우리도 한 해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보자’는 제안에서 시작됐다. 당시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한 해를 한자 한 글자로 정리해 발표했는데, 우리도 비슷한 작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2001년 12월에 발표된 첫 올해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9·11 테러로 인한 국제정세 불안, 꼬리에 꼬리를 문 각종 게이트,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교육정책 등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혼돈스러운 한 해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의 사자성어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개혁과 보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등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외교·경제 등 각 분야에서 정책 혼선이 빚어졌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이듬해 선정된 사자성어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였다. 이는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는 공격한다’는 뜻. 정치권이 대통령 탄핵, 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놓고 정파적 입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1년 내내 대립만 한 것을 적확히 묘사해 호응이 컸다.

 

처음으로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자성어가 등장했다는 점도 큰 반향에 일조했다. 당시 하도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이 말을 인용해, 신선감이 떨어진다는 반응까지 나왔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 때는 소통 부재와 독단적 국정 운영을 우려하는 표현이 많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첫해의 사자성어는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의 ‘호질기의(護疾忌醫)’.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촛불 시위, 미국발 금융위기 등에 대한 정부의 대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반영된 것.

 

이를 추천한 김풍기 강원대 교수는 당시 “호질기의는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귀를 열고 국민들과 전문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2011년의 사자성어는 ‘엄이도종(掩耳盜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이 잘못된 것은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비난이나 비판을 두려워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한미 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통과,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 매입 의혹 등이 한 해를 달궜지만, 국민을 향한 정부의 소통 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의 사자성어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였다. 미래지향적 가치를 주문하는 국민의 열망을 읽지 못하고 과거 회귀적 모습을 보이는 정부에 대한 우려가 담겼다. 경제민주화 같은 대선 공약이 파기됐다는 점도 지적됐다.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나라가 암흑에 뒤덮인 듯 온통 어지러움)’ 등을 거쳐 2016년에는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됐다. 군주민수는 ‘백성은 물, 임금은 배와 같다’는 뜻. 강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는 것처럼, 국민이 나라의 지도자를 세울 수도 물러나게 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당시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성난 민심이 대통령 탄핵소추를 이끌어낸 상황을 빗댄 것이다.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힌 '아시타비' 휘호.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는 뜻의 아시타비는 신조어 '내로남불'을 한자화한 것이다. 정상옥 전 동방문화대학원대 총장이 썼다. /교수신문
 

2017년에는 처음으로 긍정적 의미를 담은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이 선정됐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담겼다. 하지만 3년 뒤인 2020년 뽑힌 말은 ‘아시타비(我是他非)’였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의 아시타비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 아닌,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로 사용량이 폭증한 신조어 ‘내로남불’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교수들은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소모적 싸움만 무성하다” “코로나 발생을 두고서도 사회 도처에서 ‘내로남불’ 사태가 불거졌다” 등의 평을 전했다.

 

그간 발표된 사자성어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교수신문 초대 편집국장을 지낸 최영진 중앙대 교수는 “선정된 사자성어에 부정적인 표현이 많은 것은 (사회가) 좀 더 잘됐으면 하는 바람과 아쉬움이 담겼기 때문”이라며 “비판을 통해 반성을 촉구하는 일은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옥진 기자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