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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유적ㆍ유물ㆍ문화재 등

태실 胎室, 태봉 胎封

by 맥가이버 Macgyver 2023. 4. 6.

태실 胎室, 태봉 胎封

 

요약

왕족의 태반(胎盤)을 묻은 석실.

 

태봉(胎封)이라고도 한다.

왕자가 출생하면 태실도감(胎室都監)을 설치하고 길일·길지를 택해 안태사(安胎使)를 보내어 태를 묻게 했다.

태실은 대개 대석·전석(磚石우상석(遇裳石개첨석(蓋檐石) 등으로 만들었다.

 

경국대전예전에 의하면 지방은 관찰사가 왕·왕비·왕세자(王世子)의 태실과 종묘(宗廟) 각실, 왕후 부모의 묘소까지 모두 살피게 되어 있다. 태실의 간수군(看守軍)은 선왕과 선후의 경우 각 4명으로 하되, 4대손이 다하면 2명으로 하며, 왕과 왕비는 각 8, 왕세자는 4명으로 했다.

 

속대전에는 대왕태실의 석물을 개조할 때 예조의 당상관 및 감역관(監役官)이 감독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대왕태실의 경계는 300, 왕세자의 태실은 200보로 하고, 이 경계 밖의 수목을 기르는 곳까지 일반인의 출입을 금했으며, 금지구역으로 설정하여 푯말을 세워둔 화소처(火巢處) 내에서 나무를 베거나 시체를 매장한 사람은 원·능의 수목을 도벌한 율(盜園陵樹木律)에 의하여 처벌했다.

그리고 왕자의 태를 묻은 경우에는 3년마다 1번씩 태실안위제(胎室安慰祭)를 지냈으나 세종 때 폐지했다.

 

태실의 설치는 군현 명호의 승격·위상과도 밀접히 관련되었고, 영역확대 등의 특혜가 주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므로 태실을 자기 지방에 유치하고자 지역간에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출처 :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