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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유적ㆍ유물ㆍ문화재 등

문정공 정암 조광조선생 묘 & 신도비[文正公 靜庵 趙光祖先生 墓 & 神道碑]

by 맥가이버 Macgyver 2021. 10. 19.

문정공 정암 조광조 선생 묘 & 신도비[文正公 靜庵 趙光祖先生 墓 & 神道碑]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166

지정년월일 : 1986.5.31.

시대 : 조선 선조18(1585)

소재지 :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16-9(상현동 203-2)

규모 : 높이 244cm,  93cm, 두께 34cm

재료 : 토분 및 석물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묘소는 수지 상현동(서원말)에 있다. 묘는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추증된 이씨(李氏)와 합장한 것이다. 묘 앞에는 대리석으로 묘표와 평상석·향로석·좌우에는 망주석·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선조18(1585) 건립된 것으로 재료는 대리석이며 높이 244,  93, 두께 34의 규모이다. 장방형 비좌 에는 국화문이 조각되어 아무런 치장이 없는 품격 높은 비신과 조화를 이루었다. 비 앞면 상단에는 전자(篆字)문정공정암조선생신도비명 (文正公靜庵趙先生神道碑銘)이라 횡서(橫書)했다.

 

신도비문은 노수신 (盧守愼)이 짓고, 이산해(李山海)가 글씨를 썼으며, 김응남(金應南)이 전()을 썼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중종때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김굉필 에게 수학(修學)하였다. 중종 5(1510) 진사, 중종 10(1515)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한 뒤 전적(典籍감찰을 역임하였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케 했고,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단행케 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등용케 하고, 정국공신의 훈공을 대폭 삭제하는 등 급진적 개혁을 단행하여 훈구(勳舊派)의 반발을 샀다. 훈구파의 남곤 (南袞심정(沈貞)등이 무고(誣告)하여 능주(凌州)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사사(賜死)되었다. 선조(宣祖) 초에 신원(伸寃)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문집으로 정암집(靜庵集)이 있다.

 

출처 : 용인시 수지구청 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