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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깨우치는 한마디

아인슈타인

by 맥가이버 Macgyver 2005. 2. 23.

 

 

천재 아인슈타인의 학창시절

 

아인슈타인 Einstein, Albert, 1879.3.14~1955.4.18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국적 : 미국

활동분야 : 이론물리학

출생지 : 독일 울름

주요수상 : 노벨물리학상(1921)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아인슈타인상(賞) 을 마련하고 해마다 2명의 과학자에게 시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과학의 천재를 말해 보라고 하면,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아인슈타인이 아닐까 싶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결코 쉽지 않은 그의 이론을 이해해서라거나,  그가 말년에 가졌던 사상적 측면을 공감해서도 아닐 것이다. 단지 다른 과학자들 보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우리들에게 많이 들려왔고, 그의 이론들이 기존의 이론들을 완전히 뒤엎을 만한 위대한 것이라는 막연한 동경심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토록 천재성을 인정받은 대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 14일 남부 독일 울름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걱정거리를 안겨주곤 했는데

 

그 첫째가 지나치게 머리가 커서 기형아가 아닐 까 하는 점이었다. 그의 뒷머리가 들어갈 즈음에는 지나치게 살이 찌기 시작했고,  거의 말을 하지 않고 혼자 놀기만 해서 벙어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했다. 2년 6개월이 지나자 거의 정상은 되었으나,자신이 말한 내용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습관을 7살까지 지니고 살았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다분히 신경질적이어서 여동생을 다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사고를 치기고 했다. 그러한 그를 가르쳤던 교사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나쁘기만 했다.

 

그가 공립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고, 반사신경이 너무 둔하여 늘 엄한 교사로부터 손바닥을 맞아야만 했다.

 

계산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었고 그나마 틀린 답을 내놓기 일쑤였다. 아무도 그가 수학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9살에 김나지움에 진학했는데 그 학교는 인문주의 교육을 주로 하는 학교 였기 때문에 언어 기억력이 부족한 그에게는 큰 고통거리였다. 라틴어는 "양", 그리스어는"가"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급기야는 그를 담당한 그리스어 교사가 "너는 제구실을 해 낼 인물은 못될 것 같다."는 예언을 하게 만들었다. 뒤에 그는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마는 데 7학년 때 만났던 그리스어 교사의 퇴학 권고 사유는 "너의 존재가 내 학급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한다."는 것이 었다.

 

이러한 교사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뒷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천재 과학자가 되었다.

 

훌륭하고 영감 있는 모든 것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 의해서 창조된다.

 

- 아인슈타인 -

 

교사의 임무는 독창적인 표현과 지식의 희열을 불러 일으켜주는 일이다. - 아인슈타인 -

 

보고 이해하는 기쁨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 아인슈타인 -

 

분노는 바보들의 가슴속에서만 살아간다. - 아인슈타인 -

 

오직 남들을 위하여 산 인생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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