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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山과길의 글·시

산을 배우면서부터 / 이성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5. 12. 12.

 

 

 

 

 

산을 배우면서부터 / 이성부

                                        

    산을 배우면서부터
    참으로 서러운 이들과 외로운 이들이
    산으로만 들어가 헤매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느껴질 때는
    이미 그것들 저만치 사라지는 것이 보이고

    산과 내가 한몸이 되어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잊어버렸을 때는
    머지않아 이것들이 가까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집과 사무실을 오고 갈 적에는
    자꾸 산으로만 떠나고 싶어 안절부절

    떠나기만 하면 옷 갈아입은 길들이 나를 맞아들이고
    더러는 억새풀로

    삐져나온 나뭇가지로
    키를 넘는 조릿대 줄기로

    내 이마와 빰을 때려도
    매맞는 즐거움 아름답게 살아남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오르락내리락
    더 흘릴 땀도 말라버려 주저앉을 적에는
    어서 빨리 집으로만 돌아가고 싶었다

    산을 내려가서
    막걸리 한 사발 퍼마시고 그냥 그대로 잠들고만 싶었다

    이렇게 집과 산을 수도 없이 오가면서
    슬픔과 외로움도 산속에서는

    저희들끼리 사이 좋게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위 사진은 2005년 12월 9일 관악산 팔봉능선에서 찍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