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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山과길의 글·시

山을 오르며 / 도종환

by 맥가이버 Macgyver 2005. 12. 21.

* 山을 오르며 / 도종환 *

 


山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山 내려와서도

山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 도종환 시집 '슬픔의 뿌리' 중에서 -
 

 

 

 

위 사진은 2004년 12월 28일(화) 한라산에서 찍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