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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궁궐·왕릉·묘ㆍ원

[20060815]광복절에 서울도심(종묘와 창경궁, 낙산공원, 청계천, 서울광장) 산책을 다녀오다 - 2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6.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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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5일(화) 서울도심(종묘와 창경궁, 낙산공원, 청계천, 서울광장) 산책을 다녀오다.

 

광복절이자 건국기념일인 오늘은 산행이 아니라 산책으로 님들과 한다.

 

종로3가역에서 세계문화유산 中 '종묘' 탐방을 시작으로 5대궁궐 中 '창경궁'을 탐방하고,

젊음의 거리 '대학로'를 거닐다가, 한국의 몽마르뜨언덕이라는 '낙산공원'에서의 낙조감상,

그리고 '동대문'을 거쳐 '청계천' 물길을 따라가며 탁족도 하고 '청계천 야경'을 감상하다가,

마지막으로 서울시청 청사에 '청사초롱'으로 태극기 문양을 만들었다기에 그 구경을 겸하고,

'서울광장' 잔디밭에서 간단한 뒤풀이로 마무리를 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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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주제별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하여 3부로 올리고자 한다.

 

★ 1부는 세계문화유산 '종묘'

★ 2부는 고궁나들이 '창경궁'

★ 3부는 '낙산공원'과 '청계천', 그리고 '서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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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에 대하여...

 

☞ 창경궁

 

사적 제123호. 이 궁궐에서 장조(莊祖)·정조(正祖)·순조(純祖)·헌종(憲宗) 등 여러 왕들이 태어났다.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다른 궁궐은 모두 남향하고 있으나 이 궁궐만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동향하여 있다.

 

본래 태종이 아들 세종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면서 자신이 거처할 궁궐로 지은 수강궁(壽康宮)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1484년(성종 15) 이 수강궁 자리에 새로이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 8) 다시 세웠다.

 

이때 동향으로 세워졌던 명정전(明政殿)을 남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김일손의 상소가 있었으나 도감(都監)에서는 만약 남향으로 할 경우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의 내청룡으로 이어지는 맥이 함춘원(含春苑)의 남쪽 지맥을 끊게 된다면서 그대로 둘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으로 소실된 많은 전각들이 1633년에 중건되었다. 1656년(효종 7)에 요화당(瑤華堂)·난향각(蘭香閣)·취요헌(翠耀軒)·계월각(桂月閣) 등 4개의 전각을 지어 효종의 네 공주들을 머물게 했다.

 

1909년에는 일제가 강제로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든 다음 일반인들에게 관람시켰으며,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짓고 이름을 창경원(昌慶苑)으로 격을 낮추어 불렀다.

 

1984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던 문정전(文政殿)과 월랑(月廊) 등을 복원하고 정비하면서 다시 이름을 창경궁이라고 했다.


동향한 궁궐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을 들어서면 금천(禁川)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이 개천 위에는 금천교(禁川橋)인 옥천교(玉川橋)가 있다. 옥천교를 건너면 정전의 정문인 명정문(明政門)에 이르고, 이 문을 들어서면 높은 월대(月臺) 위에 서 있는 정전인 명정전과 마주하게 된다.

 

동서로 길게 뻗은 월랑은 홍화문과 명정문의 남북 양쪽에서 뻗어나온 월랑과 합쳐져 'ㅂ'자 모양을 이루면서 정전의 좌우 앞쪽을 둘러싸고 있다.

 

명정전의 남서쪽에는 편전인 문정전과 그 월랑이, 북서쪽에는 많은 내전과 행각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나머지 수천 간의 전각과 행각 등은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 궁궐의 전체적인 배치는 창덕궁처럼 지형의 높고 낮음을 그대로 두고 꼭 필요한 곳만을 골라 집터를 잡고 정원을 꾸민 것이 특징이다.

 

〈동궐도 東闕圖〉(국보 제249호, 고려대학교 박물관)를 통하여 1830년대의 창경궁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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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성하(盛夏)의 고궁나들이 '창경궁'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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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사진 中에 크게 보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마우스 왼쪽을 '클릭'하면 큰이미지(원본이미지)가 새로 나타나고,

다시 한 번 더 '클릭'하면 큰이미지는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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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안내도 ☜

 

 

1. 홍화문   2. 옥천교   3. 명정문   4. 명정전    5. 문정전    6. 관천대    7. 숭문당 
8. 빈양문   9. 함인정    10. 경춘전   11. 환경전    12. 함양문   13. 통명전   14. 양화당
15. 구박물관    16. 풍기대   17. 영춘헌    18. 성종태실비    19. 춘당지    20. 대온실 
21. 관덕정    22. 집춘문    23. 과학문    24. 월근문    25. 선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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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에서 창경궁 연결문으로 들어서며...


 

▼ 종묘/창경궁 연결다리 위에서 '율곡로'를 내려다보니...


 

▼ 창경궁쪽으로 들어서서...


 

▼ 창경궁 안내도


 

▼ '궁궐의 잔디밭은 건물의 무덤이다'라는 말이 있다.


 

▼ 문정전 앞 잔디밭은 그 옛날에는 여러 건물과 담장이 둘러쳐진 곳이었는데...


 

▼ 지금은 주요 건물만 남고 모두 사라지고...


 

▼ 문정전


 

문정전은 창경궁 창건 때 편전으로 건립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명정전과 함께 중건하였다. 1930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朝鮮古蹟圖譜」에 실린 명정전 정면 사진에 동측면의 일부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 이 전각이 존속했던 것으로 알 수 있으나, 그후의 자세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1984년부터 시행한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에서 건물의 기단과 동쪽에 두 곳, 서쪽 한 곳의 계단이 확인되었는데, 기단의 규모는 남북 20미터, 동서 18미터였다. 1986년 창경궁 중창공사 때 중건되었는데, 발굴조사와 문헌 고증에 의하여 방주에다 정면 3칸, 측면 3칸, 내삼출목, 외이출목, 단층 팔작집(38평)으로 겹처마이며 남향하여 세웠다.

이 건물의 서쪽에서, 숭문당 남쪽면으로는 경사진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남북 방향으로 아름다운 2단의 화계(花階)를 꾸몄고 동쪽에는 문정문이 있다

 

▼ 그 옛날에는 궁궐이 이처럼 넓고 여유롭지는 않았다고...


 

▼ 이 푸른 잔디밭 대신에 동궁전 등 궁중나인, 병사들이 생활하던 건물도 있어야 했으니...


 

▼ 회랑(回廊) - 정당(正堂) 양옆 있는 집채. 행각(行閣).


 

▼ 금천 - 금천(禁川)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금천교(禁川橋)인 옥천교(玉川橋)가 있다.


 

▼ 홍화문


 

▼ 홍화문 밖에서 안내도를 읽고 있는 님들...


 


 


 

▼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으로 명정전과 마찬가지로 동향하였다. 조선 성종 15년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 8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의 건물로, 기둥 위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이 놓이고, 다포계 양식(樣式)의 외오포작 이출목, 내칠포작 삼출목의 공포를 짜았는데, 견실한 구조와 공포의 짜임은 조선 초기 형식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정면의 3칸에는 각각 판문을 달고 그 위로는 홍살을 하였으며, 북쪽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련돼 있다. 이층은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꾸몄다.

 

홍화문의 좌우로는 궁장(宮墻)이 남북십자각을 지나 궁역을 형성하였다.

 


 

▼ 다시 홍화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들어서며...


 

▼ 옥천교를 건너며...

옥천교는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御溝) 위에 설치한 다리다.

조선 왕궁은 모두 명당수 위의 석교를 건너서 정전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졌다.

 

옥천교는 길이가 9.9미터, 폭6.6미터와 두 개의 홍예로 구성되었는데, 홍예가 연결되는 중앙에 귀면(鬼面)이 조각되어 잡귀를 쫓고 있다.

 

다리 좌우에는 돌난간이 조각되었는데, 난간 가장자리에 법수(法首)를 세우고 네 개의 연잎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5칸을 형성하고, 한 장의 돌로 만든 풍혈판이 설치되었으며 돌란대가 얹혀 있다.

 

교상(橋床)은 장마루 같은 청판돌로 짜고 중앙에는 어도(御道)를 한 단 높게 만들었다. 이 다리는 1483년 조성되었다.

 


 

▼ 옥천교를 건너서 창조사업님이 보는 것은...


 


 

▼ 명정문


 

이 문은 명정전을 둘러싼 월랑 중 명정전과 마주보고 있는 동월랑의 중앙부에 있으며, 창경궁의 외문인 홍화문보다 안쪽에 놓여 중문의 기능을 갖는 평삼문이다.

 

위치로 보아서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상에 정확히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미터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월랑을 어느 정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이에 의하여 둘러싸인 명정전의 중정(中庭)은 정확한 방형이 아니고 기울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다포계 건물인데, 잘 다듬은 원형 주초석 위에 중앙열의 주열(柱列)에는 각 칸마다 2매씩의 육중한 판문을 달아 안으로 열리게 하였다.

 

이 건물은 포작(包作)과 건축의 형식으로 보아 명정전과 함께 광해군 때 재건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명정전


 

조선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이 조성되고, 그 정전으로서 명정전이 세워졌다. 이때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이었다. 이는 창경궁의 지세에 따른 것이다.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다른 궁의 정전과 같이 이중의 월대를 두어 그 위에 건물 기단을 마련하고, 큰 사각 주초 위에 원형의 운두 높은 주좌(柱座)를 조각하여 초석을 배열하였다. 월대의 형식은 다른 궁의 것과 달리 지형에 맞추어 전면 동쪽과 북쪽 일부만을 이중단으로 하고, 건물 좌우와 뒷편에서는 1단으로 하였다. 평면으로 보아 정면 5칸, 측면 3칸에 후퇴(後退)를 한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겹처마이다.

평주 위에는 모서리를 많이 굴린 창방이 놓이고 운두가 낮은 평방 위에 다포계 양식의 외삼출목, 내사출목의 공포를 짜았다. 건물 사면은 모두 꽃살창으로 돌려져 있는데, 그 위로는 교살창이 있다. 내부 바닥에는 전(塼)을 깔았고, 뒤편 중앙부에는 왕좌인 용상이 있는데 그 뒤로 일월도의 병풍이 놓였다.

그 위로는 닫집으로 짜은 보개(寶蓋)가 있고 천정의 중앙부에는 한층을 접어올린 쌍봉문(雙鳳紋)이 있는 보개천정을 장식했으며, 그 주위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단청은 모로단청을 하고, 특히 천정판에는 화려한 연화문의 반자초 단청(丹靑)을 시문했다.

월대의 전면에는 명정전 어간에 맞추어 중앙에 삼도의 이중계단이 놓였다. 가운데 어계의 폭은 2.4미터이고, 양측 협계(挾階)의 폭은 각 1.3미터이다. 상하 계단은 모두 6단씩으로, 어간의 답도(踏道) 석판 중앙에 사분심엽형(西分心葉形) 윤곽을 양각(陽刻)한 후 그 안에 날개를 활짝 편 한쌍의 봉황을 조각해 장식했고, 챌판에도 당초(唐草)와 보상화(寶相華), 운문(雲紋) 등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하층 계단 앞에는 명정문과 연결되는 어도가 있고 좌우에 24개의 품계석(品階石)이 있다.

 


 

▼ 봉황을 조각한 면석을 놓은 어계가...


 

▼ 명전전 어좌와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창조사업님과 꽃노을님


 

▼ 명전전 어좌와 일월오봉도


 

☞ 일월오봉도

임금이 앉는 자리 뒤쪽에 놓아 국왕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하는 이 작품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형식을 보여준다.

 

다섯 봉우리의 산과 물결치는 파도, 아름드리 소나무, 이들을 배경으로 떠 있는 해와 달은 좌우대칭으로 구성되어 매우 장엄한 느낌을 주며, 임금이 통치하는 삼라만상과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 소재들은 매우 도식화된 모습으로 병풍마다 별 차이 없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궁중화가들이 전통적인 본(本) 을 따라 그렸기 때문이다.

 

▼ 숭문당


 

이 건물은 조선 경종 때 건립되었으며, 순조 30년에 큰 불로 소실된 것을 그해 가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崇文堂'의 현판과 '日監在玆'라 쓴 게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영조는 특히 학문을 숭상하고 영재를 양성하였는데, 이곳에서 친히 태학생을 접견하여 시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연(酒宴)를 베풀어 그들을 격려하기도 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홑처마이며, 지형에 따라 앞면에만 방형의 장초석을 사용하여 누각처럼 세웠다. 기둥 위에는 간단한 초익공의 공포를 짜았고, 기둥 사이에는 화반 없이 굴도리 밑에 장여를 받고 있는 소로만을 끼워 장식하였다.

평면으로 보아 전후와 남쪽에 퇴간을 두고 마루를 깔았으며, 가운데칸의 마루와 동선을 연결시켰고 그 좌우에 방을 놓았다.

 

▼ 수령 300백년의 주목


 


 

▼ 함인당


 

이곳에는 원래 성종 15년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 11년(1633)에 인경궁의 함인당을 이건하여 함인정이라 한 것이다.

 

이곳은 특히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았고, 주간에는 화반 두 개씩을 놓았다.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내진주(內陳柱)로 구획된 마루는 한 단 높게 처리하여 그 위로는 우물천정을 하고 사방둘레의 퇴간(退間)에는 연등천정을 하였다 

 


 

▼ 환경전


 

이 건물은 성종 15년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에 중건하였다. 그 후 순조 30년(1830)의 큰 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그 34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곳은 창경궁의 한 내전으로 왕이 늘 거동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익종이 승하했을 때는 빈궁(殯宮)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간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건물의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고, 외진평주(外陳平柱)와 내진고주(內陣高柱)를 배열하여 퇴량을 걸고 그 위로는 연등천장을 하고 안쪽으로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대량(大樑)은 내진고주 사이에 걸었다.

 


 

▼ 경춘전


 

이 전각은 창경궁의 내전으로 성종 14년에 건립되었다. 그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에 재건하였으나, 순조 30년에 불탄 것을 그 3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정면 7칸, 전후퇴칸을 포함해서 측면 4칸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사모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간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네면에는 모두 세살문을 달았고 그 위에 교살창을 하였다.

 

내부에는 모두 마루를 깔았는데 양측으로 각 2칸과 전후퇴칸은 연등천정을 하고 우물천정을 하였다

 


 

▼ 영춘헌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集福軒)은 영춘헌의 서행각으로 초창 연대는 알 수 없다. 집복헌에서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정조 14년(1790) 6월에는 순조가 태어났으며 정조는 영춘헌에서 거처하다가 재위 24년(1800) 6월 승하하였다.

 

순조 30년(1830) 8월 1일 오전 화재가 발생하여 환경전, 경춘전등과 함께 소실되어 순조 34년 장남궁을 헐어다 그 재목으로 재건하였다. 
 
1983년 동물사 본관에 있던 창경원 관리 사무소가 동물사의 철거로 인하여 이곳으로 옮겨 임시 관리 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86년 중건 공사 때 창경궁 관리 사무소를 신축하고 이 건물은 변형된 부분을 보수하였다.

 

영춘헌은 본채 5칸이 남향하여 ㅡ자형을 이루고 본채의 좌우와 뒷면으로는 행각이 둘러져 있어 ㅁ자형을 이루었으며 서쪽으로 ㅁ자형의 행각이 이어져 맞붙어 있다.

 

주위 건물과 비교해 볼 때 통명전, 경춘전, 환경전 등은 이익공식이고 양화당은 초익공식인 데 비하여 영춘헌은 기둥의 높이도 낮고 익공의 끝을 몰익공식으로 둥글게 굴려 초각하였으며 행각은 더욱 간결하게 굴도리집으로 처리하여 각 건물의 격을 엿볼 수 있다.

 

▼ 양화당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곳에 거처한 일이 있으며, 고종 15년(1878) 철종비 철인왕후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세벌대의 장대석 기단 위에 각주(角柱)를 세우고 초익공계 포작(包作)을 짜았다. 기둥간에는 화반(花盤)없이 굴도리 밑에 장여를 받고 있는 소로만을 끼워 간결한 장식을 하였다. 
 
건물의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전면 중앙의 2칸에만 툇마루를 창 없이 개방하였다. 외진평주와 내진고주 사이에는 퇴량을 걸었고, 그 위로는 연등천장을 하고, 안쪽으로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대들보는 내진고주 사이에 걸리었다

 


 

▼ 통명전


 

통명전은 창경궁의 연조 공간으로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이다. 창경궁 창건 때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이 되고, 다시 이괄의 난과 정조 때 화재를 입었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중건된 것이다. 남향한 전면에는 월대를 두고 양모서리에는 청동제 드므를 놓고 그 북쪽에 외벌대 기단 한 단을 두어 건물을 세웠다. 
 
 정면은 7칸이고 측면이 4칸인 이익공계(二翼工系)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였다. 지붕 위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고, 전후퇴칸을 두었다.

 

북서쪽 일부의 방을 제외하고는 건물 내부 바닥에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원래는 정면으로 보아 양측에 2칸씩 방을 꾸몄음이, 1984년의 발굴조사에서 연도지(煙道址)가 노출됨으로써 확인되었다. 

 


 

▼ 창경궁 탐방하는 님들...


 

▼ 계단을 올라...


 

▼ 통명전을 내려다 보니...


 

▼ 풍기대


이 풍기대는 영조 8년(1732)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풍기대 위의 구멍에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재던 것으로, 방향은 24방향으로 측정하였다.

 

전체 높이는 228.1센티미터인데, 하부대석 높이는 92.4센티미터, 상부 팔각주의 높이는 135.7센티미터이다

 


 

▼ 지금 몇 시인가요?


 


 


 

▼ 낙산에서의 낙조감상을 우려케하는 구름이...


 

▼ '성종태실비'가 있는 곳으로 가는 님들...


 

양화당의 동북쪽 구릉지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태실은 4각형의 지대석 위에 석종형(石鍾形)의 몸체를 놓고 8각형의 지붕돌을 얹었으며 상륜부(相輪部)는 보주로 장식하였다.

 

태실비는 태실 동쪽에 있는데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를 갖추고 있고 비신 앞면에는 "성종대왕 태실"이라 새겨져 있다. 이들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태를 묻은 곳인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에 있었던 것인데 1930년 5월 전국에 있는 조선 역대 임금의 태실을 대부분 서삼릉으로 이봉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성종은 세조 3년(1457) 덕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예종의 뒤를 이어 1469년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 뒤 25년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경국대전」의 반포 등 조선의 문물 제도를 완비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창경궁을 창건한 임금이기도 하다.

 


 


 


 

▼ 이제 '춘당지'로...


 

▼ 이곳 연못은 원래 왕의 논이었으나 일제의 공원화사업에 의해 논이 연못이 되었다.


 

▼ 연못을 바라보는 님들...


 


 


 


 

▼ 연못을 따라 걸으면서...


 

▼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 춘당지

춘당지는 1909년에 조성된 원지(苑池)이다.

 

두 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의 것이 1,107평방미터, 아래 것이 6,483평방미터이다. 연못 속의 섬(366평방미터)과 다리는 1984년에 조성한 것이다.

 

춘당지가 있는 이곳은 원래 연산군이 서총대(瑞총臺) 앞 대지를 파다가 중종반정으로 중단한 곳이다. 그 후 권농장(勸農場)의 논이 있었는데 연못으로 만들었다.

 


 

▼ 왜가리


 

▼ 식물원

1909년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이다. 건축 당시 한국 최대의 목조구조 식물원이었으며,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공사를 계기로 자생목본류를 중심으로 야생화와 함께 전시하고 있다. 현재 대온실은 2004년 2월 6일에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었다.

 


 

▼ 이제 다시 홍화문을 향해...


 

▼ 백송


 


 


 


 


 

▼ 이제 홍화문으로 돌아와서...


 

▼ 옥천교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 맥가이버, 꽃노을님, 왕언니님, 창조사업님, 노랑국화님, 지혜님, 세인트님 


 

▼ 홍화문 밖으로 나와서...


 

▼ 창경궁 동쪽 담장을 따라 대학로를 향해서...


 

▼ 이 문이 월근문(달 月, 뵐 覲 문 門)


 

창경궁 사무소 정면에 있는 이 문은 정조가 그 부친 사도세자의 묘(廟)인 경모궁(서울대학교병원 부지 어디엔가 있었다고)에 수시로 참배하기 위하여 정조 3년(1779)에 건립하였다.

 

정조가 매달 초하루 경모궁에 참배하러 거둥할 때에는 반드시 이 문을 경유하였기 때문에 월근문(月覲門)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 다시 보이는 월근문...


 

☞  여기까지 2부 성하(盛夏)의 고궁나들이 '창경궁'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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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5일(화) 광복절에

서울도심(종묘와 창경궁, 낙산공원, 청계천, 서울광장) 산책을 다녀오다.

 

☞  1부는 세계문화유산 '종묘'

 

☞  2부는 성하(盛夏)의 고궁나들이 '창경궁'

 

☞  3부는 '낙산공원'과 '청계천', 그리고 '서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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