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19일(토) 세계문화유산 종묘와 창경궁, 그리고 대학로 나들이 다녀오다.
이번 나들이는 '세계문화유산 나들이' 그 세번째로 종묘를 둘러보고,
구름다리를 건너 '창경궁'으로 가서 만추의 고궁을 거닐다가...
젊음과 문화의 거리 대학로를 찾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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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많아 각각의 부분으로 나누어 아래처럼 올리고자 한다.
1부는 세계문화유산 '종묘'
2부는 만추의 고궁나들이 '창경궁'
3부는 젊음과 문화의 거리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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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사진 中에 크게 보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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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에 이어서 제2부 만추의 고궁나들이 '창경궁'을 다녀와서...
1.홍화문 2.옥천교 3.명정문 4.명정전 5.문정전 6.관천대 7.숭문당
8.빈양문 9.함인정 10.경춘전 11.환경전 12.함양문 13.통명전 14.양화당
15.구박물관 16.풍기대 17.영춘헌 18.성종태실비 19.춘당지 20.대온실
21.관덕정 22.집춘문 23.과학문 24.월근문 25.선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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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에서 창경궁을 건너는 구름다리로 가는 길에 고목이...
▼ 구름다리를 건너기 전에...
▼ 구름다리 밑으로 흐르는 자동차들...
▼ 창경궁으로 들어서서...
▼ 구름다리의 통행시간 안내
▼ 창경궁 안내도
▼ 신선놀음에 도끼는 썩고...
▼ 관천대 (보물 제851호)
이 관천대는 소간의(小簡儀)를 설치하여 천문을 관측하던 곳으로, 「書雲觀志」에 보면 숙종 14년(1688)에 조성된 것이다. 원래 창덕궁 금마문 밖에 있던 것을 일제 때 창경궁으로 옮겨 왔다.
높이는 2.2미터, 넓이는 2.4*2.3미터이며, 주위에는 돌난간을 돌렸다. 대의 중앙에는 높이 99센티미터의 관측기를 설치하는 작은 대가 있고, 그 위에 넓이 73.4*52.6센티미터, 두께 24.5센티미터의 또하나의 판석이 있다. 여기에 남북방향으로 관측기를 고정했던 5개의 구멍이 파여 있다. |
▼ 창경궁 문정전(左)과 길건너 있는 서울대학병원이 대조적...
▼ 뒤에 보이는 건물이 문정전
▼ 홍화문을 찍기 위해 잠시 창경궁 밖으로 나와서...
▼ 홍화문 밖에 있는 창경궁 안내도
▼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으로 명정전과 마찬가지로 동향하였다.
조선 성종 15년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 8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의 건물로, 기둥 위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이 놓이고, 다포계 양식(樣式)의 외오포작 이출목, 내칠포작 삼출목의 공포를 짰는데, 견실한 구조와 공포의 짜임은 조선 초기 형식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정면의 3칸에는 각각 판문을 달고 그 위로는 홍살을 하였으며, 북쪽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련돼 있다. 이층은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꾸몄다.
홍화문의 좌우로는 궁장(宮墻)이 남북십자각을 지나 궁역을 형성하였다.
▼ 홍화문 사이로 명정문이 보이고...
▼ 명정문
이 문은 명정전을 둘러싼 월랑 중 명정전과 마주보고 있는 동월랑의 중앙부에 있으며, 창경궁의 외문인 홍화문보다 안쪽에 놓여 중문의 기능을 갖는 평삼문이다.
위치로 보아서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상에 정확히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미터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월랑을 어느 정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이에 의하여 둘러싸인 명정전의 중정(中庭)은 정확한 방형이 아니고 기울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다포계 건물인데, 잘 다듬은 원형 주초석 위에 중앙열의 주열(柱列)에는 각 칸마다 2매씩의 육중한 판문을 달아 안으로 열리게 하였다.
이 건물은 포작(包作)과 건축의 형식으로 보아 명정전과 함께 광해군 때 재건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옥천교 (보물 제386호)
옥천교는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御溝) 위에 설치한 다리다.
조선 왕궁은 모두 명당수 위의 석교를 건너서 정전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졌다.
옥천교는 길이가 9.9미터, 폭6.6미터와 두 개의 홍예로 구성되었는데, 홍예가 연결되는 중앙에 귀면(鬼面)이 조각되어 잡귀를 쫓고 있다.
다리 좌우에는 돌난간이 조각되었는데, 난간 가장자리에 법수(法首)를 세우고 네 개의 연잎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5칸을 형성하고, 한 장의 돌로 만든 풍혈판이 설치되었으며 돌란대가 얹혀 있다.
교상(橋床)은 장마루 같은 청판돌로 짜고 중앙에는 어도(御道)를 한 단 높게 만들었다. 이 다리는 1483년 조성되었다.
▼ 명정문
▼ 명정문에서...
▼ 명정문에서 본 홍화문
▼ 명정전 앞
▼ 명정전
조선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이 조성되고, 그 정전으로서 명정전이 세워졌다. 이때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이었다. 이는 창경궁의 지세에 따른 것이다.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다른 궁의 정전과 같이 이중의 월대를 두어 그 위에 건물 기단을 마련하고, 큰 사각 주초 위에 원형의 운두 높은 주좌(柱座)를 조각하여 초석을 배열하였다.
월대의 형식은 다른 궁의 것과 달리 지형에 맞추어 전면 동쪽과 북쪽 일부만을 이중단으로 하고, 건물 좌우와 뒷편에서는 1단으로 하였다. 평면으로 보아 정면 5칸, 측면 3칸에 후퇴(後退)를 한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겹처마이다.
평주 위에는 모서리를 많이 굴린 창방이 놓이고 운두가 낮은 평방 위에 다포계 양식의 외삼출목, 내사출목의 공포를 짜았다. 건물 사면은 모두 꽃살창으로 돌려져 있는데, 그 위로는 교살창이 있다.
내부 바닥에는 전(塼)을 깔았고, 뒤편 중앙부에는 왕좌인 용상이 있는데 그 뒤로 일월도의 병풍이 놓였다.
그 위로는 닫집으로 짜은 보개(寶蓋)가 있고 천정의 중앙부에는 한층을 접어올린 쌍봉문(雙鳳紋)이 있는 보개천정을 장식했으며, 그 주위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단청은 모로단청을 하고, 특히 천정판에는 화려한 연화문의 반자초 단청(丹靑)을 시문했다. 월대의 전면에는 명정전 어간에 맞추어 중앙에 삼도의 이중계단이 놓였다.
가운데 어계의 폭은 2.4미터이고, 양측 협계(挾階)의 폭은 각 1.3미터이다.
상하 계단은 모두 6단씩으로, 어간의 답도(踏道) 석판 중앙에 사분심엽형(西分心葉形) 윤곽을 양각(陽刻)한 후 그 안에 날개를 활짝 편 한쌍의 봉황을 조각해 장식했고, 챌판에도 당초(唐草)와 보상화(寶相華), 운문(雲紋) 등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하층 계단 앞에는 명정문과 연결되는 어도가 있고 좌우에 24개 품계석(品階石)이 있다.
▼ 품계석 - 우측에도 12개의 품계석이 있다.
▼ 명전전 어좌를 배경으로...
▼ 단체사진
▼ 숭문당
이 건물은 조선 경종 때 건립되었으며, 순조 30년에 큰 불로 소실된 것을 그해 가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崇文堂'의 현판과 '日監在玆'라 쓴 게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영조는 특히 학문을 숭상하고 영재를 양성하였는데, 이곳에서 친히 태학생을 접견하여 시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연(酒宴)를 베풀어 그들을 격려하기도 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홑처마이며, 지형에 따라 앞면에만 방형의 장초석을 사용하여 누각처럼 세웠다.
기둥 위에는 간단한 초익공의 공포를 짜았고, 기둥 사이에는 화반 없이 굴도리 밑에 장여를 받고 있는 소로만을 끼워 장식하였다.
평면으로 보아 전후와 남쪽에 퇴간을 두고 마루를 깔았으며, 가운데칸의 마루와 동선을 연결시켰고 그 좌우에 방을 놓았다.
▼ 함인정
이곳에는 원래 성종 15년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 11년(1633)에 인경궁의 함인당을 이건하여 함인정이라 한 것이다.
이곳은 특히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았고, 주간에는 화반 두 개씩을 놓았다.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내진주(內陳柱)로 구획된 마루는 한 단 높게 처리하여 그 위로는 우물천정을 하고 사방둘레의 퇴간(退間)에는 연등천정을 하였다.
▼ 경춘전과 환경전 앞
▼ 환경전
이 건물은 성종 15년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에 중건하였다. 그후 순조 30년(1830) 큰 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그 34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곳은 창경궁의 한 내전으로 왕이 늘 거동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익종이 승하했을 때는 빈궁(殯宮)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간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건물의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고, 외진평주(外陳平柱)와 내진고주(內陣高柱)를 배열하여 퇴량을 걸고 그 위로는 연등천장을 하고 안쪽으로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대량(大樑)은 내진고주 사이에 걸었다.
▼ 경춘전
이 전각은 창경궁 내전으로 성종 14년에 건립되었다. 그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에 재건하였으나, 순조 30년에 불탄 것을 그 3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정면 7칸, 전후퇴칸을 포함해서 측면 4칸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사모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간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네면에는 모두 세살문을 달았고 그 위에 교살창을 하였다.
내부에는 모두 마루를 깔았는데 양측으로 각 2칸과 전후퇴칸은 연등천정을 하고 우물천정을 하였다.
▼ 통명전
통명전은 창경궁의 연조 공간으로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이다.
창경궁 창건 때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이 되고, 다시 이괄의 난과 정조 때 화재를 입었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중건된 것이다. 남향한 전면에는 월대를 두고 양모서리에는 청동제 드므를 놓고 그 북쪽에 외벌대 기단 한 단을 두어 건물을 세웠다.
정면은 7칸이고 측면이 4칸인 이익공계(二翼工系)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였다. 지붕 위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고, 전후퇴칸을 두었다.
북서쪽 일부의 방을 제외하고는 건물 내부 바닥에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원래는 정면으로 보아 양측에 2칸씩 방을 꾸몄음이, 1984년의 발굴조사에서 연도지(煙道址)가 노출됨으로써 확인되었다.
▼ 함양문으로 오르느 계단길
▼ 통명전을 내려다 보니...
▼ 양화당 위 벤취에서 단체사진
▼ 남산타워가...
▼ 성종태실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 성종태실비
양화당의 동북쪽 구릉지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태실은 4각형의 지대석 위에 석종형(石鍾形)의 몸체를 놓고 8각형의 지붕돌을 얹었으며 상륜부(相輪部)는 보주로 장식하였다.
태실비는 태실 동쪽에 있는데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를 갖추고 있고 비신 앞면에는 "성종대왕 태실"이라 새겨져 있다.
이들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태를 묻은 곳인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에 있었던 것인데 1930년 5월 전국에 있는 조선 역대 임금의 태실을 대부분 서삼릉으로 이봉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성종은 세조 3년(1457) 덕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예종의 뒤를 이어 1469년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 뒤 25년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경국대전」의 반포 등 조선의 문물 제도를 완비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창경궁을 창건한 임금이기도 하다.
▼ 춘당지에서...
▼ 춘당지
춘당지는 1909년에 조성된 원지(苑池)이다. 두 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의 것이 1,107평방미터, 아래 것이 6,483평방미터이다.
연못 속의 섬(366평방미터)과 다리는 1984년에 조성한 것이다.
춘당지가 있는 이곳은 원래 연산군이 서총대(瑞총臺) 앞 대지를 파다가 중종반정으로 중단한 곳이다. 그 후 권농장(勸農場)의 논이 있었는데 연못으로 만들었다.
▼ 춘당지 내 섬에 있는 나무 위에는...
▼ 왜가리
▼ 창경궁 담을 따라...
☞ 이것으로[제2부 만추의 고궁나들이 '창경궁'을 다녀와서...']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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