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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山과길의 글·시

크낙산의 마음 / 김광규

by 맥가이버 Macgyver 2006. 9. 4.

 

 

 

 

크낙산의 마음 / 김광규

      다시 태어날 수 없어 마음이 무거운 날은
      편안한 집을 떠나 산으로 간다


      크낙산 마루턱에 올라서면
      세상은 온통 제멋대로 널려진 바위와 우거진 수풀
      너울대는 굴참나무 잎 사이로

      살쾡이 한 마리 지나가고
      썩은 나무 등걸 위에서 햇볕 쪼이는 도마뱀

      땅과 하늘을 집 삼아
      몸만 가지고 넉넉히 살아가는

      저 숱한 나무와 짐승들
      해마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꽃과 벌레들이 부러워
      호기롭게 야호 외쳐보지만 산에는 주인이 없어
      나그네 목소리만 되돌아올 뿐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도

      깊은 골짜기에 내려가도
      산에는 아무런 중심이 없어
      어디서나 멧새들 지저귀는 소리

      여울에 섞여 흘러가고
      짙푸른 숲의 냄새 서늘하게 피어오른다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없고
      바위틈에 엎드려 잠잘 수 없고
      낙엽과 함께 썩어 버릴 수 없어
      산에서 살고 싶은 마음 남겨둔 채 떠난다 그리고
      크낙산에서 돌아온 날은

      이름 없는 작은 산이 되어
      집에서 마을에서 다시 태어난다


 

위 사진은 2006년 1월 17일(화) 강촌 검봉/봉화산 연계산행 時

'강선봉'을 오르는 도중에 찍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