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6일(수) 봄비를 맞으며 '소래포구'에서 '소래 해양생태공원'과 '인천대공원'을 거쳐 '송내역'까지 도보여행 - 1부.
오늘은 그동안 벼르던 '소래 해양생태공원'을 찾아가기로 하고 길을 나서려는데 봄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다.
그것도 천둥을 동반한...
살다가 보니 죄 지은 것이 있을 터고...
'하늘이 벌하면 소금밭에서 벼락을 맞을 텐데... 어떡하나'를 걱정하며...
사전에 염두에 두었던 여정은 '송내역'에서부터 걸어서 '인천대공원'을 둘러 본 후, '소래 해양생태공원'을 거쳐 '소래포구'를 둘러보고, '오이도'까지 가는 길을 찾는 것이었다.
오이도에서부터 逆(역)으로 올라올까도 생각했는데...
일단 '소래포구'까지 간 후 逆으로 올라오기로 하고 '소래포구(월곶)'가는 버스를 이용해서 월곶까지 간 후 '소래철교'를 건너 '어시장'을 지나 '소래 해양생태공원'과 '인천대공원'을 거쳐 '송내역'까지 봄비를 맞으며 걸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블로그 사진으로 대신한다.
'소래'란 지명은 첫째 지형이 소라처럼 생겼다는 설과,
둘째 냇가에 숲이 많다. 즉 솔내(松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셋째 지형이 좁다, 즉 솔다 -> 좁다 등의 이유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로는
신라 무열왕 7년(660)에 당나라 소정방이 나당 연합군의 일원으로
군사를 친히 이끌고 백제를 공략하기 위하여 중국 산동성의 래주(萊州)를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이 산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 뒤로부터 소정방의 '소(蘇)'자와 래주의 '래(萊)'자를 합쳐
'소래산'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래포구는 1933년 소래염전이 들어서고,
1937년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가 다니는 수인선이 개통됨에 따라 발전된 마을이다.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축척 1:50,000 지형도에 보면
소래포구는 바다 한가운데 비쭉 나와있는 곳으로
시흥시 월곶동으로 건너다니던 도선장이었다.
그리고 시흥시 포동(당시는 포리) 새우개까지 바다였다.
그후 1974년 인천내항이 준공된 후 새우잡이를 하던 소형어선의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한산했던 소래포구가 일약 새우파시로 부상했으며
지금은 새우 꽃게 젓갈등으로 널리 알려져
연평균 300만명의 인파가 몰리는 관광명소로 발돋움하였다.
그리고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인선 협궤열차가 달리던 레일은
자신을 덮은 판자속에서 지난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 1부를 시작하며...
▼ 소래가는 버스 - 노선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참 많은 정류장을 거쳐서 갔다.
▼ 월곶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안내도를 찍고...
▼ 소래포구(소래철교)를 향해 직진하여...
▼ 바닷가?에 도착하니...
▼ 소래철교가 보이고...
☞ 소래철교 - 소래 포구에는 60년을 넘긴 낡은 다리가 소래 포구의 상징이 되어 관광객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일제가 30년대 말에 대동아 전쟁 당시 화약의 원료로 쓸 소금을 수탈할 목적으로 건설한 다리이며 우리 조상들이 피와땀 과 눈물로서 건설된 이 다리는 39년도에 개통을 하여 군자와 소래 등에서 소금을 실어 나르다 해방 후에는 학생 등 승객을 태우고 다녔으며 6.25동란 때는 피난민들의 행렬이 이 다리를 건너갈 때 많은 인명이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
아무 것에도 의지 할 수 없던 것을 97년도에 인도화를 시키면서 양옆에 난간을 설치하여 지금은 안전하게 통행을 하고 있다.
▼ 소래 협궤열차가가 다니던 철길은 이렇게...
▼ 철로 위에 판자를 덮어서 사람이 다니기 좋게...
▼ 소래철교 건너편에 있는 장도포대
소래 철교의 옆에 있는 한줌 흙을 엎어놓은 듯한 야트막한 산은 2001년 4월에 인천지방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장도포대가 있었던 곳이며, 일명 댕구산 이라 부른다.
장도포대는 고종14년에 축조된 화도진의 8포대 중 하나로 남동구에서는 논현포대와 장도포대가 있다.
장도포대는 3혈의 포대가 있는데 2혈은 바다쪽인 뱀내 하구쪽을 향하고, 1혈은 동남쪽의 내륙을 향하여 있었다고 한다.
☞ 소래철교
소래 포구에는 60년을 넘긴 낡은 다리가 소래포구의 상징이 되어 관광객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일제가 1930년대 말에 대동아 전쟁 당시 화약의 원료로 쓸 소금을 수탈할 목적으로 건설한 다리이며 우리 조상들이 피와땀 과 눈물로서 건설된 이 다리는 1939년도에 개통을 하여 군자와 소래 등에서 소금을 실어 나르다 해방 후에는 학생 등 승객을 태우고 다녔다.
6.25동란 때는 피난민 행렬이 이 다리를 건너갈 때 많은 인명이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
아무 것에도 의지 할 수 없던 것을 97년도에 인도화를 시키면서 양옆에 난간을 설치하여 지금은 안전하게 통행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이전의 남인천역과 수원역을 통과했던 그당시 학생들과 상인들의 추억과 낭만이 서려 있는 이곳에는 지금도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겨 보려는 듯 소래철교를 찾는 이가 많다.
그러나 추락 위험이 많은 이유로 철도청에서는 통행을 금지시켰고, 이것마저 여의치 않자 1996년 6월에는 교각을 철거한다는 내용으로 한 공문을 남동구청에 보내왔다.
이에 따라 남동구에서는 5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완벽하게 보수하고 안심하고 통행할 수 있도록 소래철교 정비공사를 실시하여 남동구의 영원한 추억의 명소로 보존시켰다.
1970년대 불어온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국민소득이 향상되고 이곳 소래포구가 관광어촌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한때에는 하루 왕복 10회를 운행하였으며, 1일 이용객수도 1~2만명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남인천역과 수원역에서는 열차시간에 맞추어 반짝시장이 형성될 정도였다. 특히, 6.25전쟁중에는 이곳 소래철교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이 피난길에 오르다 희생자를 남긴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그후 서울근교의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서 터덜대던 협궤열차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인수 산업도로,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기능을 잃어버린 꼬마열차는 지난 1995년 12월 추억만을 남긴채 그 자취를 감춰버렸고, 지금은 그시절 어려웠던 때를 회상하면서 찾는 이만 있을 뿐이다.
▼ 소래대교와 소래포구가 보이고...
▼ 만선의 기쁨을 힘찬 엔진소리에 담아 포구로 들어오는 통통배...
만선(滿船)
시조/이요조
푸른 그물 머리채 건져 올려 빗질하라
어부의 장딴지에 힘이 불끈 주어지면
바다여 길을 내어라 황금 비늘 어장으로,
풍어로 희색만면한 구릿빛의 미소들
포구를 감도는 너울도 춤인 양하여
만선을 등에 업으면 해와 달도 벙싯댄다.
▼ 소래포구를 당겨보니...
▼ 비 오는 하늘엔 갈매기들이 어지러이 날고...
▼ 꿈★을 향해 날아가는 갈매기?
▼ 가로등 위에 앉아 꿈★을 찾는 갈매기?...
▼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지만...
▼ 하늘의 별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발 아래의 아름다운 꽃을 느끼지 못한다.
▼ 소래철교 끝에 당도하여 포구를 보니...
어부 /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 소래철교를 건너와서...
▼ 꿈★을 이룬 갈매기?
▼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추억 또한 흐르는 시간에 젖지 않는다'는데...
▼ 빗방울이 바다를 파고 든다.
▼ 어시장과 포구사이를 지나면서...
▼ 소래어시장 안은...
▼ 안내도에서...
▼ 그 언젠가 갈 '그곳'만을 확대해 보고...
▼ '소래 해양생태공원'이 있을 듯한 방향을 향해 토끼굴로 들어가니...
▼ 커다란 안내판만 있고...
▼ 이런 곳인지라...물었더니...
▼ 이 길을 따라 가다가...
▼ 이곳에서...
▼ 화살표방향으로 가면...
☞ 해양생태공원 - 해양생태공원은 아직도 염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바다 습지가 잘 보존되어 있는 해양생태공원에서는 소금채취과정으로 학생들이 직접 가래질을 하며 소금을 긁어모으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으며, 갯벌에 맨발로 들어가 개흙의 촉감을 느낄 수 있다.
해양생태공원은 총 넓이는 약 350만㎡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폐염전을 중심으로 66만 ㎡가 1999년 6월 개장되었다. 이 공원에는 생태전시관과 자연학습장, 염전학습장, 갯벌체험장, 담수연못, 조류관측소 등 의 시설이 들어서 있다. 주차장과 화장실, 매점, 벤치, 파고라 등의 편의시설, 팔각정으로 된 휴게시설 도 갖추었다. 공원입구에서 생태학습장으로 가는 길에는 보리밭이 있고 유채꽃과 갈대가 자라고 있으며 군데군데 소금창고와 폐염전이 남아 있다.
생태전시관은 염전창고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벌노랑이·해당화 등 염생 식물의 사진과 소금작업 광경, 소래포구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근처에 마련된 자연학습장에서는 생태공원의 식생과 염전 에 관한 영상교육을 실시한다. 또 염전학습장에서는 하루 400-1,200kg의 소금을 직접 생산하고 있어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가 있다. 염전학습장 곁에는 맨발로 갯벌에 들어가 게와 조개 등 살아있는 생명체를 관찰할 수 있는 갯벌 체험장도 마련되어 있다. 또 근처에는 붕어와 잉어들이 서식하고 있는 담수연못도 있다.
▼ '소래 해양생태공원' 입구가...
▼ 나오고...
▼ 그곳에는 '수도권 해양생태공원'이라고...
▼ 그런데 입구는 공사 中...
▼ 다리가 보이는데...
▼ '소염교'라고 - '소래염전으로 가는 다리'라서 이름이 그리 된 듯...
▼ 소염교를 건너다가...
▼ 공사중인 길을 따라 가다가...
▼ 길 한쪽을 보니...
▼ 보리가...
▼ 갯벌에는 물길이...
▼ 갈림길이...
▼ 우측 안내판에는...
▼ 자전거길을 따라 '인천대공원' 거쳐 '송내역'까지...
▼ 갈림길 정면에는...
▼ 좌측으로 진행하기로...
▼ 뚝길로 가지 않고 공원안으로...
▼ 붓꽃이...
▼ 좌측 낮은 지붕을 '해주'라고 한다네...
▼ 밟지마세요!
▼ 수차
▼ 보리밭
▼ 뚝길로...
▼ ?
▼ 다시 염전쪽으로...
▼ 빗방울
▼ 맥가이버
▼ 염전창고 옆에는 오동나무가...
▼ 꽃을 피우고...
▼ 염전은 이제 갈대밭으로 변하고...
▼ 세찬 비바람에 우산을 썼지만 몸이 젖어 춥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 오규원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 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 염전바닥은 이렇게 타일을 깔기도 하고..
▼ 아카시아나무에는 꽃이...
▼ 저 건물은...
▼ 자물쇠가 걸렸네...
▼ 소래옛모습전시관
▼ 이제 뚝길로 나가면서...
▼ 뒤돌아 보니...
▼ 이제 아카시아나무가 좌우에 늘어선 뚝길로...
▼ 부서진 목책...
▼ 뚝길을 따라...
▼ 폐건물
▼ 그 안은...
▼ 다시 뚝길을 따라...
▼ 갈대밭
▼ 앞쪽에서 사람들이...
▼ 이곳을 걷는 이들이 있네...
▼ 새 도로의 교각 공사가...
▼ 퉁퉁마디?
▼ 갈대의 새순이...
▼ 바닥에는...
▼ ?
▼ 하늘에는...
▼ 우측으로 좁은 길이...
▼ 직진하여...
▼ 문
▼ 안녕히 가십시오.
▼ 문밖 좌측으로 길이 있고...
▼ 우측으로 길이 있는데...
▼ 우측 길을 따라 간다.
☞ 여기서 1부를 마치고...
2007년 5월 16일(수)
'소래포구'에서 '소래 해양생태공원'과 '인천대공원'을 거쳐 '송내역'까지 걷다. 中
'▣인천·경기 도보후기☞ > ☆ 인천·부천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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