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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궁궐·왕릉·묘ㆍ원

[20070808]도심나들이(경복궁-북촌한옥마을-인사동-조계사-보신각) - 3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7. 8. 9.

 

18939

 

2007년 8월 8일(수) 도심나들이(경복궁-북촌한옥마을-인사동-조계사-보신각)를 다녀오다.

 

오늘은 많은 비가 내린다기에 산보다는 도심나들이를 공지하고...

'경복궁역'에서 만나 비에 젖은 '경복궁'을 관람하고 나서, 삼청동길을 걸어 감사원앞에서 '북촌한옥마을'으로...

'북촌한옥마을'의 기와집을 구경하며 그 골목길을 걸어보고,

안국동 '종로경찰서' 부근에 있는 어느 음식점으로 가서 '삼합'을 먹어보고...

'인사동 쌈지길'을 구경하고, 인사동을 거닐다가 '조계사'로 향하고...

'조계사' 관람을 마치고, 청진동으로 가서 그 유명한 집에서 특★해장국을 먹고...

'종로 보신각'을 둘러보고 예정시각인 18시 30분에 '종각역'에서 해산하였다. 

 

☞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 블로그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 3부를 시작하며...

▼ 경복궁을 나서며... 

 

 ▼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 앗! 위험해요!

 

 

▼ 비 내리는 삼청동길을 걸으며...

 

 

 

 

▼ ?

 

 

 

 

 

 

 

 

 

 ▼ 현대식 돌담

 

 

▼ 돌확 속의 부레옥잠

 

 ▼ 베트남 대사관

 

▼ 베트남 대사관 담을 따라...

 

▼ 한옥집과 골목길이...

 

▼ 이준구 가옥 방향으로...

 
북촌한옥마을

북촌지역은 예로부터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이다.

조선왕조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조선성리학에 기초하여 배치된 궁궐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뛰어난 자연경치를 배경으로 거대한 두 궁궐 사이에 밀접하여 전통 한옥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가지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600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로부터 원서동, 재동, 계동, 가회동, 인사동으로 구성된 이 지역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north villag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당시로서는 왕실의 고위관직에 있거나 왕족이 거주하는 고급 주거지구로 유명하였다.

곳곳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몇 채의 한옥들은 이때의 명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선말기에 이르러 이 지역은 사회, 경제상의 이유로 대규모의 토지가 잘게 나뉘어 소규모의 택지로 분할되었으며, 지금 볼 수 있는 어깨를 맞댄 도심주거형 한옥은 1930년도를 전후하여 개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한옥형식의 변화는 근대화 시기의 도심으로 밀려드는 인구들로 인해 고밀도화 되어가는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전의 대형한옥이 고급자재와 전문 목수(도목)에 의해 설계, 시공되고 건물의 배치가 성글게 놓이어진 데 비해 이 시기에 지어진 도심 한옥군은 필요에 의해 대규모로 생산되었으며, 중정을 갖는 전통배치를 유지하면서도 좁은 공간 속에서 최대한의 공간활용을 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여러 채의 한옥이 지붕처마를 잇대고 벽과 벽을 이웃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풍경은 우리들이 잊고 살았던 따뜻한 정과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해준다.


북촌지역을 걷다보면 이어진 처마선의 아름다움만큼이나 골목길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서구의 네모반듯한 도로가 아니라 마치 물이 흘러 내려가듯 가지에 가지를 치는 도로체계는 이 지역의 오랜 특성 중의 하나이다. 인사동길은 원래 청계천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타고 형성되었으며, 삼청동과 가회동의 길 또한 북한산의 지류를 따라 형성되었다. 때론 지나는 이웃의 어깨가 닿을듯한 폭에서 옛 우마가 지날듯한 골목은 미로처럼 연결되어있으며, 좁아졌다 넓어지고 다시 좁아지곤 하는 골목의 연결을 따라 옛 한옥들이 맞닿아 있는 풍경은 이 지역의 맛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북촌지역은 한옥들로 이루어진 전통한옥군 이외에도 수많은 사적과 문화재, 민속자료를 가지고 있는 도심 속의 거리 박물관으로 불리워진다. 이러한 역사문화 자료들은 북촌지역의 한옥과 골목과 함께 영원히 보존되어야 하는 우리의 민족 문화이다. 지역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간 보존되어 온 지역의 역사 자료들은 지역의 곳곳에 숨겨진 보물처럼 남아있다. 조선시대로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유적과 문화재들은 이 지역을 찾는 이들에게 이 지역의 역사를 이야기 해 주고 있다.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볼 때 서울에서의 최상지는 경복궁이고, 다음이 창덕궁이니 이 궁궐을 연결하는 선상의 지역, 북악과 응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서 현 율곡로 좌우측 일대는 주거입지 즉, 양기풍수상(陽氣風水上)의 최길지(最吉地)였으며, 이 지역은 이른바 북고남저(北高南低)로서 겨울에 따뜻하고, 배수가 잘 될 뿐 아니라 남쪽은 넓게 트였으며, 안산(案山)인 남산의 전망도 좋아 정침(正寢)이나 사랑(斜廊)이 항상 남면(南面)할 수 있는 장점도 지녀 이 일대에 그때마다의 권문세가(權門勢家)들이 모였던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곳에 집거함으로써 자기들끼리의 대면을 통한 정보 교환이 가능했으며 그들의 지배를 언제나 합리화하고 장기화하기 위한 유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물론 그 내부에 있어서는 오히려 분파활동(分派活動)을 활발하게 하는 요인도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곧 서울에 있는 북촌(北村)의 형성 과정이다.


한편 당대의 권문세가가 아닌 하급관리들이라든가 양반의 자손이기는 하나 현직의 고급관인이 아닌 자들은 남산 기슭인 이른바 남촌(南村)에 살았다. 그곳은 음지(陰地)이기는 하나 배수가 잘 되고 지하수가 풍부하여 취수에 편리했으니 오늘날의 중구 남산동에서 필동을 거쳐 묵정동에 이르는 지역으로,

『매천야록(梅川野錄)』권1 상에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老論)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少論) 이하 삼색(三色)이 섞여서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황현(黃炫)의 『매천야록(梅泉野錄)』권1 상은 고종 원년(1864)에서 동 24년(1887)의 일을 두루 적었는데 이 당시 북촌에는 노론만이 거주하였고 소론과 남인 북인은 설령 고급관인일지라도 남촌에 섞여 살았다고 한다. 

 

 

 

 

 

 

 

 

 

 

 

 

 

 

 

▼ ?

 

 

▼ 비스켓 나눠먹기

 

 

▼ 이곳이...

 

▼ 비오는 수요일엔 빨간장미를...

 

 

 

 

 

▼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

 

 

▼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의 골목길

 

▼ 뭔 냄새가 이리 지독하냐?

 

 

 

 

 

 

 

 

 

 

▼ 인사동으로...

 

▼ 인사동 거리

 

▼ 쌈지길

 

☞ 여기서 3부를 마치고...

 

 

 2007년 8월 18일(수)    
'도심 나들이(경복궁-북촌한옥마을-인사동-조계사-보신각)를 다녀오다' 中
 
-▥☞ 1부(경복궁역→경복궁 근정정→향원정)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2부(집선재→경회루→민속박물관)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3부(삼청동길→북촌한옥마을→인사동)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4부(인사동 쌈지길→조계사→청진동→보신각)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