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2일(화)
'김포 문수산성[김포대학-홍예문-중봉-정상(376.1m)-북문-남문-성동검문소]'을 다녀오다.
오늘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문수산 문수산성을 다녀왔다.
5호선 송정역 1번 출구 밖에서 김포대학 가는 88번 버스를 타고 '김포대학'에서 하차하여
정보관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 하얀 눈을 밟으며 한참을 오르니 문수산성의 성곽과 '홍예문'이 나오고
'홍예문'을 들어서서 정상을 향해 오르니 넓은 헬기장과 '문수제단'이 있는 '중봉'을 거치게 되고,
중봉에서 군부대 철문을 통과하여 조금 더 오르니 중봉보다 넓은 봉우리에 닿게 되는 데 '문수산 정상'이다.
문수산 정상(376.1m)에서 잠시 휴식한 후, '한남정맥 1구간'을 따라 군부대 철망을 우회하여
폐티이어로 만든 참호(교통로)를 따라 오르다가 성곽을 따라 하산하다보니 '암문'이 나오고
암문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계속 하산을 하다가 한남정맥과 갈라지는 '북문갈림길'에서
'북문'쪽으로 진행하여 북문에 닿고, 이어 78번 지방도를 따라 걷다가 '문수산 산림욕장입구'에서
'문수산 산림욕장'으로 들어서서 안내도를 살펴보고, 관리소에서 안내문을 받아들고
'문수산 산림욕장'은 다음 날에 오기로 하고, 78번 지방도로 다시 내려와서
강화대교 방향(48번 국도)으로 진행하다보니 좌측 언덕 위에 '남문'이 보이기에
남문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바로 앞이 '모란각'이다.
모란각을 지나쳐 48번 국도 건너편 '성동검문소'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려고 보니
'모란각 입간판' 바로 뒤 산자락에 등산로 입구가 있다.
'다음에는 저곳으로 오르면서 문수산성 성곽 일주를 하고, 문수산 산림욕장을 둘러보는 여정을 꿈꾼다.'
☞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 블로그 사진으로 대신한다.
☞ 문수산성(文殊山城)에 대하여...
문수산성(文殊山城)은 강화 갑곶진을 마주보는 문수산 험준한 산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책을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강화도 수비를 위하여 유수(留守) 민종주로 하여금 산성을 축조케 하였다.
지금 대교가 놓인 나루터부터 문수산 산정까지 화강석을 다듬어 성벽(길이 6201m)을 잇고
동문, 서문, 북문을 세웠다.
그 후 순조 14년(1812)에 유수 홍의호가 공해루를 개수하여 희우루라 개칭하였다.
한말의 개국과 쇄국의 양론이 분분하던 고종대에 미, 영함의 내습으로 시국이 어수선할 무렵
대외전에 크게 공헌하였고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서울의 변방인 강화도를 옹호하고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고려때 몽고의 침입을 당했을 때 적의 발길이 이곳까지 미쳤고
근세에서는 병인양요때 불란서군과 격전을 벌였던 역사에 빛나는 격전지였다.
1866년 9월 5일 불란서 함대 7척의 연합함대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도 갑곶진에 상륙하여
8일 강화성을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18일 문수산성을 침공하였다.
이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조선군의 화승총은 백보(百步)밖에 못 나가는 것이었고,
불란서군의 총은 500보를 날아가는 우수한 것이었다.
결국 무기의 열세와 병력의 열세로 우리 군사는 문수산성에서 후퇴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 포수 4명이 전사, 2명이 부상, 1명이 포로가 되었고
불란서군은 2명 전사, 25명이 부상하자 이에 대한 분풀이로 성내 민가 29호를 불질러 버렸고
성내의 누각과 공해루, 취가루, 남문루 등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 퇴각하였다.
그 후 북문을 시작으로 남문의 성곽, 홍예문을 복원하였다.
문수산성은 수려한 주변경관으로 정상에서는 북한 땅이 보이고
한강포구를 거쳐 서울의 삼각산이 보이고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절경이기도 하다.
또한 사계절을 통하여 자연의 경치를 자랑할 수 있는 김포의 금강(金剛)이라 할 수 있으며
수도권 지역 최고의 안보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다.
☞ 김포문화원에서 가져옴.
☞ 문수산성(文殊山城)에 대하여...
강화도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해발 376m의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포용하여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의 산성으로,
현재 해안쪽 성벽과 문루(門樓)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은 본래의 것이 남아 있다.
↑ 위 부분은 수정되어야 겠다.
성이 있는 산은 비솔산(比率山) 혹은 비아산(比兒山)·통진산(通津山)이라고도 불려온 산으로
서쪽으로 강화도로 건너는 요충이었다.
고려말 몽고군은 이 산에 올라 강화를 바라보고 건너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산성의 명칭은 문수사(文殊寺)에서 유래하였다.
이 산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하여, 1694년(숙종20)에 축성되었는데
기록에는 둘레가 5,529보이고, 여장이 2173첩(堞)에 서문·남문·북문이 있었으며,
강화부에 소속되어 별장 한사람과 군관 161인·사병 56명·돈군 6명·수첩군 80명·모입군 72명 등이 지키고 있었다.
이후 1812년 (순조12)에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뒤에 여장(女墻)을 둘렀다.
당시 성문은 취예루(取豫樓)·공해루(控海樓) 등 세 개의 문루와 세 개의 암문(暗門)이 있었다.
이 가운데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하였다.
특히, 이 산성은 1866년(고종(高宗)3)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룬 곳으로 유명하다.
1866년 9월 7일 프랑스군의 로스제독이 규리르호(號)를 기함(旗艦)으로 하여
포함과 해방함 및 통보함 등 7척으로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갑곶진에 상륙하여 이튿날 강화성을 점령하고,
18일에는 이곳 문수산성으로 침입하였다.
이때 문수산성에는 봉상시사(奉常寺事) 한성근(韓聖根)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명령으로
광주(廣州)의 별파군(別破軍) 50명을 이끌고 수비하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작은 배가 성의 남문밖에 정박하였는데,
한성근이 이끄는 우리 수비군이 프랑스군을 기습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성근은 후퇴하였는데,
포수 4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하였으며 1명이 포로로 잡혔다.
프랑스군은 2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자 성안의 민가 29호를 불살라 버렸다.
이 격전으로 해안가의 성벽과 문루 등의 시설이 파괴되고 성안이 유린되었다.
1995년에 일부가 조사되어 길이 16m이고 너비가10m 규모의 치성(雉城)이 서남쪽 끝에서 확인되었고,
평탄지에서는 성벽이 내외겹축 되어 있었음이 밝혀졌다.
☞ 문화재청에서 가져옴.
☞ 1부를 시작하며...
▼ 송정역에서 88번 버스를 타고 김포대학에서 하차하여...
▼ 정보관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
▼ 오르고...
▼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을...
▼ 가지치기를 하여...
▼ 저 위에는 또다른 능선길과 만나는 갈림길이...
▼ 이 쉼터에서도 또다른 길(청룡회관에서 오는 길)과 만나고...
▼ 일단 '홍예문'을 향해 오르고...
▼ 홍예문 입구에서...
▼ 비탈진 오름 끝에 보이는 저 문이...
▼ 홍예문(虹霓門)
▼ 문 안에 '홍예문(虹霓門)'이라고...그래서 여기를 '홍예문'이라고 부르는구나...
'홍예문(虹霓門)'이란 '문의 윗부분이 무지개처럼 굽은 모양을 한 문'을 통칭하는 것인데...
인천 중구에 대한제국시대 때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홍예문'이라는 문이 있다고는 하지만
▼ 마치 북한산성의 어느 암문처럼 보이는데...
▼ 어느 글에서 보니 '동문'이라는 글이 있는데...'문루'만 있다면 그럴 듯하고...
▼ 이정표에는...
▼ 홍예문 아래로 이어진 성곽을 보니...
▼ 문수산성 안내문에는...
▼ 홍예문 위쪽은...
▼ 홍예문으로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니...
▼ 홍예문 안으로 들어와서...
▼ 정상을 향해...
▼ 눈이 등산화에 엉겨붙어서...
▼ 쉼터가 있는 저곳이...
▼ '중봉'이라 불리는 넓은 헬기장 좌측에는...
▼ 2000년 1월 1일에 만들어진 '문수제단'이...
▼ 무너진 성곽의 아랫쪽을 보니...
▼ 윗쪽도...
▼ 낙락장송?
▼ 무너진 성곽에는...
▼ 열려진 철문이...
▼ 지금은 통과 가능 시각...
▼ 성곽?
▼ 저 위가 정상...
▼ 정상을 오르는 계단 옆에 철망아랫길이 '한남정맥 구간'이네....
▼ 문수산 정상(376.1m)에는...
▼ 정상에서는 내리는 눈으로 인해 조망이 없어 '겨울나무'들만 찍어보고...
▼ 한남정맥꾼들이 남기고 간 표시기들을 바라보며...
▼ 급경사길을 내려서다가...
▼ 폐타이어로 만든 군교통로를 따라 오르고...
▼ 마치 현대판 성곽이라고 여기며...
▼ 폐타이어 군교통로를 따라 오르고....
▼ 마치 산호초같다고 느끼며...
▼ 군교통로가 끝나고 저 끝에서는...
▼ 성곽이 이어지고...
▼ 눈꽃이라 여기며...
▼ 성곽길을...
▼ 저기는...
▼ 암문 안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 북문 갈림길로...
▼ 여기가 북문 갈림길 - 직진하면 한남정맥의 끝이자 시작점인 보구곶리로 가는 길...
▼ 북문 방향으로 접어들어...
문수산(376m)에 소재한 문수산성(文殊山城)은 사적 제 139호로서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강화도 방어를 위해 쌓은 성이다. 당시에는 북문, 서문, 남문이 있었으나 병인양요때 북문, 서문, 남문이 병화로 소(燒) 되었다. 북문은 1995년도, 남문은 2002년도에 복원이 완료되었다. 성의 총 길이는 6km이며 현재 미복원구간은 4km가 남아있다. 문수산성은 수려한 주변경관으로 정상에서는 북한 땅이 보이고 한강포구를 거쳐 서울의 삼각산이 보이며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절경이기도 하다. 또한 사계절을 통하여 자연의 경치를 자랑할 수 있는 김포의 금강이라 할 수 있다. 구한말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산교육장으로 의의가 깊은 곳이며 가까이엔 신라 진성여왕때 창건하였다는 문수사가 있다. 등산은 군하리, 성동리 어디서든 가능하다.(산행시간 약 50분) ☞ 한국관광공사 여행정보사이트에서 가져옴.
|
☞ 이것으로 1부를 마치고...
2008년 1월 22일 (화)
'김포 문수산성[김포대학-홍예문-중봉-정상(376.1m)-북문-남문-성동검문소]을 다녀오다' 中
-▥☞ 1부[김포대학-홍예문-문수산 정상-북문 갈림길]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2부[북문 갈림길-북문-문수산 산림욕장-남문-성동검문소]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문화유적탐방후기☞ > ♣ 문수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1226] 김포 문수산성 일주산행하며, 문수사와 풍담대사 부도&비를 찾아가다 - 2부 (0) | 2021.12.26 |
---|---|
[20211226] 김포 문수산성 일주산행하며, 문수사와 풍담대사 부도&비를 찾아가다 - 1부 (0) | 2021.12.26 |
[20170219]김포 문수산성 성곽일주(성동검문소-중봉-홍예문-문수산 정상-북문-남문-성동검문소) - 2부 (0) | 2017.02.19 |
[20170219]김포 문수산성 성곽일주(성동검문소-중봉-홍예문-문수산 정상-북문-남문-성동검문소) - 1부 (0) | 2017.02.19 |
[20080122]김포 문수산성(김포대학-홍예문-중봉-정상-북문-남문) - 2부 (0) | 2008.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