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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문수산성

[20080122]김포 문수산성(김포대학-홍예문-중봉-정상-북문-남문) - 2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8.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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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2일(화)

'김포 문수산성[김포대학-홍예문-중봉-정상(376.1m)-북문-남문-성동검문소]'을 다녀오다.

 

오늘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문수산 문수산성을 다녀왔다.

5호선 송정역 1번 출구 밖에서 김포대학 가는 88번 버스를 타고 '김포대학'에서 하차하여

정보관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 하얀 눈을 밟으며 한참을 오르니 문수산성의 성곽과 '홍예문'이 나오고

'홍예문'을 들어서서 정상을 향해 오르니 넓은 헬기장과 '문수제단'이 있는 '중봉'을 거치게 되고,

중봉에서 군부대 철문을 통과하여 조금 더 오르니 중봉보다 넓은 봉우리에 닿게 되는 데 '문수산 정상'이다.

 

문수산 정상(376.1m)에서 잠시 휴식한 후, '한남정맥 1구간'을 따라 군부대 철망을 우회하여

폐티이어로 만든 참호(교통로)를 따라 오르다가 성곽을 따라 하산하다보니 '암문'이 나오고

암문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계속 하산을 하다가 한남정맥과 갈라지는 '북문갈림길'에서

'북문'쪽으로 진행하여 북문에 닿고, 이어 78번 지방도를 따라 걷다가 '문수산 산림욕장입구'에서

'문수산 산림욕장'으로 들어서서 안내도를 살펴보고, 관리소에서 안내문을 받아들고

'문수산 산림욕장'은 다음 날에 오기로 하고, 78번 지방도로 다시 내려와서

강화대교 방향(48번 국도)으로 진행하다보니 좌측 언덕 위에 '남문'이 보이기에

남문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바로 앞이 '모란각'이다.

 

모란각을 지나쳐 48번 국도 건너편 '성동검문소'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려고 보니

'모란각 입간판' 바로 뒤 산자락에 등산로 입구가 있다.

'다음에는 저곳으로 오르면서 문수산성 성곽 일주를 하고, 문수산 산림욕장을 둘러보는 여정을 꿈꾼다.'

   

☞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 블로그 사진으로 대신한다.

 

 

☞ 문수산성(文殊山城)에 대하여...

 

문수산성(文殊山城)은 강화 갑곶진을 마주보는 문수산 험준한 산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책을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강화도 수비를 위하여 유수(留守) 민종주로 하여금 산성을 축조케 하였다.

 

지금 대교가 놓인 나루터부터 문수산 산정까지 화강석을 다듬어 성벽(길이 6201m)을 잇고

동문, 서문, 북문을 세웠다.

그 후 순조 14년(1812)에 유수 홍의호가 공해루를 개수하여 희우루라 개칭하였다.

 

한말의 개국과 쇄국의 양론이 분분하던 고종대에 미, 영함의 내습으로 시국이 어수선할 무렵

대외전에 크게 공헌하였고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서울의 변방인 강화도를 옹호하고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고려때 몽고의 침입을 당했을 때 적의 발길이 이곳까지 미쳤고

근세에서는 병인양요때 불란서군과 격전을 벌였던 역사에 빛나는 격전지였다.

1866년 9월 5일 불란서 함대 7척의 연합함대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도 갑곶진에 상륙하여

8일 강화성을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18일 문수산성을 침공하였다.

 

이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조선군의 화승총은 백보(百步)밖에 못 나가는 것이었고,

불란서군의 총은 500보를 날아가는 우수한 것이었다.

결국 무기의 열세와 병력의 열세로 우리 군사는 문수산성에서 후퇴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 포수 4명이 전사, 2명이 부상, 1명이 포로가 되었고

불란서군은 2명 전사, 25명이 부상하자 이에 대한 분풀이로 성내 민가 29호를 불질러 버렸고

성내의 누각과 공해루, 취가루, 남문루 등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 퇴각하였다.

그 후 북문을 시작으로 남문의 성곽, 홍예문을 복원하였다.

 

문수산성은 수려한 주변경관으로 정상에서는 북한 땅이 보이고

한강포구를 거쳐 서울의 삼각산이 보이고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절경이기도 하다.

또한 사계절을 통하여 자연의 경치를 자랑할 수 있는 김포의 금강(金剛)이라 할 수 있으며

수도권 지역 최고의 안보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다.

 

김포문화원에서 가져옴.

 

 

☞ 문수산성(文殊山城)에 대하여...

 

강화도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해발 376m의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포용하여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의 산성으로,

현재 해안쪽 성벽과 문루(門樓)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은 본래의 것이 남아 있다.

위 부분은 수정되어야 겠다.                           

 

성이 있는 산은 비솔산(比率山) 혹은 비아산(比兒山)·통진산(通津山)이라고도 불려온 산으로

서쪽으로 강화도로 건너는 요충이었다.

고려말 몽고군은 이 산에 올라 강화를 바라보고 건너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산성의 명칭은 문수사(文殊寺)에서 유래하였다.

 

이 산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하여, 1694년(숙종20)에 축성되었는데

기록에는 둘레가 5,529보이고, 여장이 2173첩(堞)에 서문·남문·북문이 있었으며,

강화부에 소속되어 별장 한사람과 군관 161인·사병 56명·돈군 6명·수첩군 80명·모입군 72명 등이 지키고 있었다.

이후 1812년 (순조12)에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뒤에 여장(女墻)을 둘렀다.

 

당시 성문은 취예루(取豫樓)·공해루(控海樓) 등 세 개의 문루와 세 개의 암문(暗門)이 있었다.

이 가운데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하였다.

 

특히, 이 산성은 1866년(고종(高宗)3)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룬 곳으로 유명하다.

1866년 9월 7일 프랑스군의 로스제독이 규리르호(號)를 기함(旗艦)으로 하여

포함과 해방함 및 통보함 등 7척으로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갑곶진에 상륙하여 이튿날 강화성을 점령하고,

18일에는 이곳 문수산성으로 침입하였다.

이때 문수산성에는 봉상시사(奉常寺事) 한성근(韓聖根)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명령으로

광주(廣州)의 별파군(別破軍) 50명을 이끌고 수비하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작은 배가 성의 남문밖에 정박하였는데,

한성근이 이끄는 우리 수비군이 프랑스군을 기습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성근은 후퇴하였는데,

포수 4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하였으며 1명이 포로로 잡혔다.

프랑스군은 2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자 성안의 민가 29호를 불살라 버렸다.

이 격전으로 해안가의 성벽과 문루 등의 시설이 파괴되고 성안이 유린되었다.

 

1995년에 일부가 조사되어 길이 16m이고 너비가10m 규모의 치성(雉城)이 서남쪽 끝에서 확인되었고,

평탄지에서는 성벽이 내외겹축 되어 있었음이 밝혀졌다.

 

문화재청에서 가져옴.

 

 

☞ 2부를 시작하며...

 

▼ 북문 갈림길에서...직진은 한남정맥 구간 보구곶리로 가는 길

 

▼ 북문을 향해...

 

▼ 겨울옷을 입은 소나무

 

 

 

 

 

 

 

▼ 강아지풀이...

 

 

 

 

 

 

 

 

 

 

 

 

 

 

 

 

 

 

 

 

 

 

 

 

 

 

 

 

 

 

 

▼ 염하강 건너 보이는 산은 강화도 당산(74.2m)

   ↑염하강 - 정확히 말한다면 김포 강화 해협으로,  강화섬과 김포반도 사이에 있어 江이라고 부른다.

 

▼ 문수산성의 북문이 보이고...

 

▼ 북문을 당겨보니...

 

▼ 좌측에는 강화대교와 신강화대교가 보이고...

 

▼ 북문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 북문 문루

 

▼ 북문에서 지나온 성곽길을 올려다보니... 

 

 

 

▼ 북문 옆에는 예쁜 집이...

 

 

 

 

 

▼ 북문

 

 

  

 

 

 

 

 

▼ 78번 지방도(문수로)를 따라...

 

▼ 가다가 바라본 북문은...

 

 

 

▼ 성동교를 지나...

 

▼ 문수산 산림욕장 입구에서...

 

▼ 산림욕장으로 들어서면서... 

 

▼ 우측으로 보니...

 

▼ 무료썰매장을 개장하여 준비 중인 마을 사람들...

 

 

 

 

 

 

▼ 다시 78번 지방도로 나와서 무료썰매장을 보니...썰매는 2000원에 대여한다고...

 

 

▼ 48번 국도를 만나는 지점에서...

 

▼ 우측을 보니...

 

▼ 위치상 남문인 듯...

 

 

 

▼ 남문으로 오르려니...

 

▼ 남문

 

 

 

 

▼ 남문에서 본 강화대교

 

 

▼ 남문을 나서며 보니...

 

 

▼ 모란각 앞 성동검문소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려고 길을 건너다 보니...

 

 

▼ 모란각 입간판 뒤로 등산로 입구가...

 

▼ 다음에는 이곳에서 문수산성 일주를 시작해야겠다.

 

▼ 바로 이 버스정류장(강화대교 건너기 전에 있는 성동검문소)에서 내려서...

 

 
문수산성(文殊山城)
위    치 : 경기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일원
홈페이지 :  www.gimpo.go.kr 
안내 및 문의 : 김포시청 문화체육과 031-980-2742
개    요 : 

문수산(376m)에 소재한 문수산성(文殊山城)은 사적 제 139호로서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강화도 방어를 위해 쌓은 성이다.

당시에는 북문, 서문, 남문이 있었으나 병인양요때 북문, 서문, 남문이 병화로 소(燒) 되었다.

북문은 1995년도, 남문은 2002년도에 복원이 완료되었다.

성의 총 길이는 6km이며 현재 미복원구간은 4km가 남아있다.

문수산성은 수려한 주변경관으로 정상에서는 북한 땅이 보이고

한강포구를 거쳐 서울의 삼각산이 보이며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절경이기도 하다.

또한 사계절을 통하여 자연의 경치를 자랑할 수 있는 김포의 금강이라 할 수 있다.

구한말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산교육장으로 의의가 깊은 곳이며

가까이엔 신라 진성여왕때 창건하였다는 문수사가 있다.

등산은 군하리, 성동리 어디서든 가능하다.(산행시간 약 50분)

* 주요문화재 - 1) 문수사지 풍담대사부도 및 비(유형문화재 제91호) 2) 문수산성(사적 제139호) 현지교통 : * 신촌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강화행 버스 이용. 김포대학 앞 하차(약 20분 소요) * 영등포에서 강화운수를 타고 성동리 입구에서 하차 * 인천 부평역에서 강화행 버스 이용. 김포대학 앞 하차(약 20분 소요) 도로안내 : * 김포공항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마송, 군하리를 지나 성동검문소 옆으로 들어감 * 인천에서 305번 지방도를 따라 마송, 군하리를 지나 성동검문소 옆으로 들어감

☞ 한국관광공사 여행정보사이트에서 가져옴.

 

 

 

☞ 이것으로 '김포 문수산성[김포대학-홍예문-중봉-정상(376.1m)-북문-남문-성동검문소]을 다녀오다' 를 마친다.

 

  

 2008년 1월 22일 (화) 

'김포 문수산성[김포대학-홍예문-중봉-정상(376.1m)-북문-남문-성동검문소]을 다녀오다' 中

 

-▥☞ 1부[김포대학-홍예문-문수산 정상-북문 갈림길]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2부[북문 갈림길-북문-문수산 산림욕장-남문-성동검문소]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