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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현충원·사육신묘

[20080705]국립서울현충원(동작동 국립묘지)에 다녀오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08.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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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05일(토) 국립서울현충원(동작동 국립묘지)에 다녀오다.

  

 

 

국립현충원(국립묘지)

 

☞ 국립묘지(국립현충원)의 역사

 

⊙ 설립경위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군이 창설되어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여 오던 중 북한 인민군의 국지적 도발과 여수/순천사건 및 각 지구의 공비토벌작전으로 전사한 장병들을 서울 장충사에 안치하였다.

 

그러나 전사자의 수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육군에서 묘지 설치문제가 논의되어 1949년말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서 서울근교에 묘지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6.25전쟁으로 묘지 설치문제는 중단되었고 각 지구 전선에서 전사한 전몰장병의 영현은 부산의 금정사와 범어사에 순국 전몰장병 영현 안치소를 설치,봉안하여 육군병참단 묘지등록중대에서 관리하였다.

 

계속되는 격전으로 전사자의 수가 점차 증가하여 육군에서는 다시 육군묘지 설치 문제가 논의되고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주관하에 묘지후보지 답사반을 구성하여 제1차로 대구지방, 제2차로 경주지구 일대를 답사한 결과 경주시 형산강 지류인 천북대안 일대를 육군묘지 후보지로 선정하고 추진하던 중, 군 고위층에서 현지를 답사하여 검토한 결과 지역적으로 편재되어 있고, 침수의 우려가 많을 것을 고려하여 타지역으로 후보지를 재선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져 일단 중지하게 되었다.

 

1952. 5. 6. 국방부 국장급 회의에서 육군묘지 설치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결과, 육군묘지를 설치하게 되면 타군에서도 각기 군묘지를 만들어 관리상 많은 예산과 인원이 소요되고, 영현관리의 통일성을 기할 수 없는 등 여러가지 폐단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육군묘지 설치문제는 일단 보류하도록 지시하고, 3군종합묘지 설치를 추진하되, 묘지의 명칭은 국군묘지로 칭할 것을 결의하였다.

 

1952. 5.26. 국방부 주관으로 국군묘지 후보지 선정을 위하여 3군 합동답사반을 편성하고, 동년 11. 3. 군묘지설치위원회를 구성한 후 ‘52.11월부터 ’53. 9월까지 11개월 동안 7차에 걸쳐 10개 지역을 답사하였다.

 

답사 결과 동작동 현 위치를 국군묘지 후보지로 선정하여 ’53. 9.29.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국군묘지 부지로 확정하고 ’ 54. 3. 1. 정지공사를 착공한 이래 3년에 걸쳐 묘역 238.017㎡ 을 조성하고, 그 후 연차적으로 68년 말까지 광장 99.174㎡, 임야 912.400㎡ 및 공원행정지역 178.513㎡을 조성하였다.

 

1955. 7. 15. 군묘지 업무를 관장할 국군묘지관리소가 발족되고, 이어서 1956. 4. 13. 대통령령으로 군묘지령이 제정되어 군묘지 운영 및 관리를 위한 제도적 기틀이 마련되어 전사 또는 순직한 군인, 군무원이 안장되고 덧붙여 순국선열 및 국가유공자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안장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6.25 전쟁으로 발생한 많은 전사장병 처리를 위해 지금까지 군인위주로 이루어져 왔던 군묘지 안장업무가 1965. 3. 30. 국립묘지령으로 재정립되어 애국지사, 경찰관 및 향토예비군까지 대상이 확대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아울러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모시게 되어 그 충의와 위훈을 후손들에게 영구히 보존,계승시킬 수 있는 겨레의 성역으로서 국립묘지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2005.7.29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제정 공포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 제7649호, 시행 2006.1.30"에 의거 동작동 국립묘지의 명칭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대상자에 포함되었다.

 


⊙ 지형지세

 

국립서울현충원은 한강과 과천 사이 넓은 벌판에 우뚝 솟은 관악산 공작봉(孔雀峰)기슭에 위치해 있다.


공작봉은 관악산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내려 불끈 솟아올랐다가는 엎드리는 듯 줄기와 봉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면서 늠름한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호위하는 모양으로 기운이 뭉쳐 있다.


사방의 산은 군인들이 모여 아침 조회를 하는 것처럼 보이고 지하의 여러 갈래 물줄기가 교류하여 생기가 넘치는 명당자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체의 형국은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있는 모습(孔作張)이며,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장군대좌형(將軍對座形)이다.


즉, 좌청룡(左靑龍 )의 형세는 웅장한 산맥의 흐름이 용이 머리를 들어 꿈틀 거리는 듯 한강을 감싸 호위하는 형상이고, 우백호(右白虎)의 형세는 힘이 센 호랑이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며 전후좌우로 솟은 사방의 봉우리와 산허리는 천군만마(千軍萬馬)가 줄지어 서 있는 형상과 같다.


정면 앞산을 바라보면 주객이 다정하게 마주앉은 모양이고, 멀리 보이는 산은 마치 물소뿔 모양이며 한강물은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들어 마치 명주 폭이 바람에 나부끼듯 하늘거리며 공작봉을 감싸 흘러 내려가고 있다.


이와 같이 국립서울현충원이 위치한 공작봉은 산수의 기본이 유정(有情)하고 산세가 전후좌우에 펼쳐져 흐르는 듯하여 하나의 산봉우리, 한 방울의 물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은 곳이 없으며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渴形象)으로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다.

 

 

☞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National Memorial Board]

 

군인·군무원으로서 사망한 사람과 국가에 공이 있는 사람의 유골 또는 시신을 안장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 소속으로 둔 묘지.

 

6·25전쟁을 전후로 사망한 장병들의 영령이 전국에 산재해 있으므로 이들의 집단안치를 목적으로 1954년 육군공병단에 의해 착공되어 1957년에 준공되었다.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령'(대통령령 제2092호)에 의해 당초의 국군묘지에서 국립묘지로 승격하고 그 수용범위와 규모가 커졌다. 또한 1996년 6월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청사를 준공했다.

 

안장 대상은

① 현역군인, 소집중의 군인 및 군무원(종군자 포함)으로서 사망한 사람,

② 군복무중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이 현저한 사람, 장관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사람 중 전역·퇴역 또는 면역(免役)된 후 사망한 자로서 국방부장관이 지정한 사람,

③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葬儀)된 사람,

④ 전투에 참가하여 전사한 향토예비군 대원과 임무수행중 순직한 경찰관,

⑤ 국가 또는 사회에 공로가 현저한 사람 중 사망한 사람으로서 국방부장관의 제청에 의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한 사람,

⑥ 우리나라에 공로가 현저한 외국인 사망자 중 국방부장관의 제청에 의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한 사람 등이다.

 

국립현충원의 묘역(墓域)은 국가원수·애국지사·국가유공자·군인·군무원·경찰관·일반묘역·외국인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국방부장관 소속으로 국립묘지관리소가 설치되어 묘지를 관리하는데, 소장은 1급 상당의 별정직 국가공무원으로 임명되며 그 아래에 관리·전례과를 두었으나 1991년 현충선양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1999년 조직을 개편하면서 전례과와 현충선양과를 현충과로 통합했다. 국립현충원의 위치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에 있으며, 대전시에도 관리소가 있다.

 

 

  

 

☞ 충성분수대

 

충성분수대는 국가의 자유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밑거름이 된 영령들의 위훈과 그 정신을 상징하여 1976. 11. 5. 건립된 것으로, 화강암 좌대를 상.중.하단으로 구분하고 그 밑에는 두 마리의 청룡 동상이 조각되어 있다.


상단의 태극기를 받쳐 들고 한 손으로 횃불과 월계수를 들고 있는 남녀상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국가를 상징하고, 중단의 남녀노소상은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노력하며 애국애족하는 국민을 상징하였고, 하단의 육.해.공군.해병대. 예비군 등 6인의 동상은 국가와 국민의 수호에 충성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위훈과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이 분수대는 높이 13m, 원형직경 31.2m에 60개의 노즐로 구성되어 있다.

 

 

 

 

 

 

☞ 현충탑

 

현충탑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추앙하면서 동,서,남,북 4방향을 수호한다는 의미를 지닌 十(십자)형으로 된 서울현충원을 상징하는 탑이다. 이 탑의 앞쪽에는 오석평판 제단이 설치되어 있고 제단 뒤쪽에는 헌시가 오석에 새겨져 있으며 제단 앞에는 향로와 향합대가 놓여 있다.

 

탑의 좌우에는 화강암 석벽이 펼쳐져 있으며 좌측석벽 끝에는 5인의 애국투사상이, 우측석벽 끝에는 5인의 호국영웅상이 각각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또한 탑의 내부에는 위패봉안관이 있고 위패봉안관 지하에는 납골당이 설치되어 있다. 이 탑은 화강암 돌붙임 공법으로 1년여간의 공사 끝에 1967. 9.30. 준공 되었으며, 탑의 높이는 31m이다.

 

현충탑 제단 오석에 새겨진 헌시는 이은상 선생이 지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한 헌시(일명"현충시"라고도 함)가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 호국종

 

이 종은 조국을 위해 산화한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1973. 5. 8. 재향군인회에서 회원들의 성금으로 제작하여 서울현충원에 기증한 종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호국종”이라 명칭하고 휘호하였다.


이 종은 현충문 오른쪽 서쪽 순환도로 입구(아람길 우측)에 있는 6각형 종각 내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 종각은 국방부에서 건립한 건물로 6개의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지붕에는 기와를 얹은 고전 한국식 건물이며, 종각의 면적은 9.2㎡이다.

 

이 종은 매년 6월 25일 재향군인회에서 실시하는 추념행사 후에 타종하는데 횟수는 1950. 6. 25을 기준으로 경과한 햇수만큼 타종하다 95년도 부터는 6.25참전 16개국, 의무지원 5개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22개국을 상징하는 의미로 22번 타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