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 - '숭실대입구역에서 국립현충원 거쳐 반포 서래섬 유채꽃 감상하기'
숭실대입구역→국립현충원 상도동 통문→호국지장사→국립현충원 충혼당→충성분수대→국립현충원 정문→동작역 8번 출입구→동작역
→한강ㆍ반포천 합수점→동작역유람선 임시선착장→동작대교→반포 서래섬 유채꽃밭 일주→동작대교→한강ㆍ반포천 합수점→동작역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국립현충원(충혼당)을 들러 반포 서래섬 유채꽃 감상을 위한 도보여행을 다녀왔다.
숭실대에서 총신대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가 '사당이고개' 정상에서 좌측으로 난 길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약 50m 전방에 '서달산' 산책로에서 '국립현충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도동 통문'이 있다.
'상도동 통문'을 들어서서 국립현충원內에 있는 '호국지장사'를 거쳐 '충혼당'에 들렀다가 '국립현충원' 정문으로 나와
동작역으로 가서 한강변으로 내려서고...
반포서래섬으로 가서 유채꽃밭과 청보리밭, 밀밭을 둘러보고...
다시 동작역으로 돌아와서 귀가.
☞ 도보여행 - '숭실대입구역에서 국립현충원 거쳐 반포 서래섬 유채꽃 감상하기'의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 숭실대 앞 폭포ㆍ분수
▼ 어버이날이라고...
▼ 숭실대에서 총신대 방향으로...
▼ 저 위가 사당이고개(상도1동 숭실대학교에서 사당4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 그 연유는 옛날 이 고개에 큰 사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 좌측으로...
▼ 우측으로 계단길이...
▼ 세잎양지꽃
▼ 애기똥풀꽃
▼ 저기가 상도동 통문
▼ 국립현충원 개방문(상도동 통문)
▼ 호국지장사
▼ 능소화가 고목을 타고...
▼ 어린 능소화
▼ 능인보전
▼ 작약
▼ 모란
▼ 모란에는 향기가 없다?...아니다, 향기가 있다...그러면 설화가 잘못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저자인 김부식과 일연스님은 냄새를 맡지 못하는 무후각증(anosmia)을 앓고 있었던 것일까?
40대 전후 상당수는 모란에 향기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선덕여왕과 모란꽃’ 이야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을 요약하면 이렇다.
‘신라 진평왕(서기 7세기 전반) 때 당 태종이 모란꽃 그림과 종자를 신라에 보냈다.
꽃 그림을 본 덕만공주(훗날 선덕여왕)는 꽃은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왕은 이유를 물었다.
공주는 그림에 벌이나 나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씨를 심어 보니 과연 공주의 말이 옳았다’고 적었다.
원산지가 중국인 모란을 본 적이 없었던 1300년 전 덕만공주야 그림만 보고 ‘모란은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란에 향기가 없다고 기록한 김부식이나 일연스님은 사실 관계 파악에 소홀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1168~1241)가 지은 글을 보아도 모란이 고려시대에는 무척 ‘대중적인’ 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날, 아가씨가 모란꽃을 들고 서방님에게 물었다.
내가 고와요, 꽃이 고와요. 서방님은 꽃이 곱다고 했다.
아가씨는 그럼 꽃하고 사세요 라며 들고 있던 모란을 짓밟았다.’
김부식은 12세기에, 일연스님은 13세기에 살았다.
두 사람의 저서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따른다면, 모란이 중국으로부터 온 지 최소한 500년은 지난 시점이었다.
이규보의 글에서처럼 모란은 아가씨가 발로 짓밟을 수 있을 정도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때였다.
역사 기록도 곧이 곧대로 믿을 수만은 없음을 알려주는 사례다.
한데 중국인들은 왜 모란그림에 나비를 그리지 않았을까?
조용진 서울교대 교수는 “동양화에 등장하는 소재는 저마다 의미가 있다.
때문에 동양화는 볼 뿐 아니라,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옛 문헌에서부터 ‘꽃 중의 꽃(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 불리던 모란은 그 화려함 때문에 부귀를 상징했다.
나비는 한자로 蝶(접)이다. 한데 80세 노인을 나타내는 ?(질)과 중국에서는 같은 발음인 ‘뎨’로 읽는다.
때문에 모란과 나비를 그리면 “80세에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 된다.
한데 80세 이전에는 어떻다는 말인가? 이때 등장하는 게 고양이다.
고양이를 나타내는 猫(묘)는 70세 노인을 뜻하는 ?(모)와 발음이 같다. ‘마오’라고 읽는다.
때문에 모란에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려 넣어 “70~80대에 이르기까지 장수하며 부귀를 누려라”고 뜻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원복 국립광주박물관장도 “모란에 나비만 그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했다.
삼국유사는 선덕여왕이 죽기 전,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적었다.
“모란만 그린 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남자)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선덕여왕은 죽을 때까지도 동양화 읽는 법에 서툴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물론 당나라에서 선덕여왕의 통치를 낮잡아 본 것은 사실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선덕여왕 12년(서기 643년), 당으로 건너간 신라 사신에게 당 태종은
“그대 나라는 임금이 부인이어서 이웃 나라에서 업신여김을 받는다”라고 말한다.
- 한국분화재보존연구소에서 -
▼ 하늘매발톱
▼ 매발톱
▼ 연등 사이로 지장보살이...
▼ 호국지장사 전경
▼ 호국지장사 대웅전
▼ 호국지장사 유래
▼ 느티나무(보호수)
▼ 호국지장사 입구
▼ 현충원 산책로를 시계반대방향으로...
▼ 충혼당 방향으로...
▼ 이곳 가로수는 '칠엽수'
▼ 칠엽수꽃
▼ '칠엽수'라 잎이 7개
▼ 금낭화
▼ 등나무가 바위를 타고 등꽃을 피웠네...
▼ 흰제비꽃
▼ 국립현충원 충혼당
▼ ?
▼ 잣나무길
▼ 송화 만발
▼ 천지석
▼ 꽃시계와 현충문
▼ 충성분수대
▼ 국립현충원 정문
☞ 여기서 도보여행 - '숭실대입구역에서 국립현충원 거쳐 반포 서래섬 유채꽃 감상하기' - 1부를 마치고...
-▥☞ 1부[숭실대입구역→사당이고개→상도동 통문→호국지장사→충혼당→충성분수대→국립현충원 정문]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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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 ♣ 현충원·사육신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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