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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3]추석 나들이-'남산 한옥마을과 한국의 집'에 다녀오다 - 1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09. 10. 3.

 
 2009년 10월 03일(토)  

추석 나들이-'남산 한옥마을과 한국의 집'에 다녀오다.

 

 '추석 나들이 코스 :

충무로역→남산한옥마을 정문→천우각광장→남산한옥마을→피금정→서울천년타임캡슐→관어정

→남산국악마당→청류정→천우각광장→청학지→한국의집(해린관→취선관)→충무로역

  

 맥가이버의 '추석 나들이(남산 한옥마을과 한국의 집)' 이야기

 

추석이자 개천절인 10월 3일에 도심나들이로 짧게 다녀올 곳으로 남산한옥마을을 정하고...

충무로역 3번 출구로 나와 남산한옥마을 정문을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곳곳에서 체험 및 관람을 하고 있다.

 

추석 나들이-'남산 한옥마을과 한국의 집에 다녀오다'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추석 나들이-'남산 한옥마을과 한국의 집에 다녀오다'의 1부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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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북쪽 기슭 한옥마을이 들어선 필동(筆洞)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흐르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서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있던 곳이다.
또한 청학이 노닐었다고 하여 청학동으로도 불렸다.


청학동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리울 만큼 경관(景觀)이 아름다워 한양에서 가장 경치 좋은 삼청동(三淸洞), 인왕동(仁王洞), 쌍계동(雙溪洞), 백운동(白雲洞)과 더불어 한양 5동(漢陽五洞)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이곳의 옛 정취(情趣)를 되살려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골짜기를 만들고 물을 흐르게 하였으며, 정자(亭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전통정원(傳統庭園)을 조성하였다. 7,934㎡(2,400평) 대지 위에 서울의 팔대가(八大家) 중 하나였던 박영효 가옥(朴泳孝 家屋 )으로부터 일반평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傳統韓屋) 다섯 채를 옮겨놓았다.

이들 한옥들에는 집의 규모와 살았던 사람의 신분에 걸맞는 가구(家具)들을 예스럽게 배치하여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직접 보고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전통공예관(傳統工藝館)에는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기념상품을 늘 전시하고 있다.

 



구 분 개방시간 비 고
4월~10월 09:00 ~ 21:00 ※무료관람
11월~3월 09:00 ~ 20:00

※ 휴무일 : 매주 화요일 (단, 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무일로 함.)





3, 4호선 충무로역 하차, 3번출구(동국대학교충무로영상센터와 매일경제신문사 사잇길로 200m)



0013, 0211, 104, 105, 263, 371, 400, 604,
7011번 등 이용.
퇴계로3가 극동빌딩 앞 하차.

※ 남산골 한옥마을은 주차장이 협소하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십시오.


 

 

 

 

 

 

 

 

 

 

 

 

 

 

 

 

 

 

 


오랜 역사 속에서 맥을 이어온 찬란한 민족문화는 훌륭한 전통공예의 뿌리를 내렸다. 우리 민족은 각 시대마다 이웃을 통해 들어온 외래문화를 우리의 토착문화 속에 적절히 소화시키면서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해 냈다. 그 가운데서도 공예문화는 생활 습성에 알맞는 쓰임새대로 다양하게 다듬고 꾸며 만들어 사용하면서 대대손손 꽃피워 왔다.

옛 서울 양반마을의 정취가 서려있는 남산골 한옥마을에 우리 전통 공예품의 정수를 한자리에 상설 전시하는 전통공예관은 '한국전통공예의 멋과 아름다움'을, 또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서울장안의 명소가 되어 국내인은 물론 외국 관광객이 이곳에서 한국의 전통 생활문화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으며, 우리의 전통공예가 관광상품이 되어 세계 속에 널리 소개될 것이다.
전통공예 종목을 크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1. 도자공예 : 청자(靑磁), 백자(白磁), 분청사기(粉靑沙器), 옹기(甕器), 토우(土偶)
 2. 금속공예 : 유기(鍮器), 청동입사(靑銅入絲), 장도(裝刀)
 3. 목칠공예 : 목기(木器), 칠기(漆器), 목조각(木彫刻), 떡살,
                   다식판(茶食板), 능화판(菱花板), 죽물(竹物), 인형, 탈(假面)
 4. 복식공예 : 자수(刺繡), 매듭, 침선(針線), 직물(織物), 장신구(裝身具)
 5. 지 공 예 : 지물(紙物), 부채(扇子), 연(鳶), 지화(紙花), 지탈(紙假面),
 6. 초고공예 (草藁工藝) : 화문석(花紋席), 등메
 7. 피모공예 (皮毛工藝) : 가죽공예, 붓(毛筆), 갓, 망건(網巾), 탕건(宕巾)
 8. 각골공예 (刻骨工藝) : 화각공예(華角工藝), 궁시(弓矢)
 9. 악기공예 : 북, 장고, 가야금, 거문고, 징, 꽹과리, 태평소, 기타 악기
10. 옥석공예 : 옥제품, 벼루, 수석, 기타 석공예


 

 

 

 

 

 

 

 

 

 

 

 

 

 

 

 

 

 

 

 

 

  

 


지정번호 : 서울시 민속자료 제24호

소 재 지 : 중구 필동 2가 84-1 일대

사당채와 몸채로 구성된 '元(원)'자 평면

연면적 218.18㎡(66평)

이 가옥은 조선 제27대 순종(純宗)의 장인(丈人)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이 동궁(東宮)의 계비(繼妃)로 책봉(冊封)(1906)되어 창덕궁(昌德宮)에 들어갈 때 지은 집으로 전한다. 동대문구 제기동 224번지에 있던 것을 이곳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및 복원하였다.
이 집의 평면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元(원)'자 모양인데 제일 윗터에 사당(祠堂)을 배치하고 그 아랫터에는 몸채를 두었다. 사당은 1960년 4·19 혁명 때 불에 타서 없어졌던 것을 복원하였으며, 사당 앞에 두 단의 석축(石築)을 쌓아 화계(花階)를 구성하였다.
몸채는 일고주오량가(一高柱五樑架)이고 앞채는 삼량가(三樑架)이다. 장대석(長臺石) 기단(基壇)과 방형초석(方形礎石), 그리고 일부에는 굴도리를 사용하여 집의 격식(格式)을 높였다.

 

 

 

 

 

 

 

 

 

 

 

 

 

 

 

 

 

 

 

 

 

 

 

 

 

 


소 재 지 : 중구 필동 2가 84-1 일대

안채·사랑채·대문간채가 연결된 'ㅁ'자 평면

건평 224.79㎡(68평)

이 가옥은 조선 제27대 순종(純宗)의 황후(皇后)인 윤씨가 열세 살에 동궁(東宮)의 계비(繼妃)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다고 하는 집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건축양식으로 볼 때 1907년 순종의 즉위로 윤씨가 황후가 된 이후인 1910년대 부원군(府院君)의 궁(宮) 집으로 새롭게 중건(重建)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의 집은 종로구 옥인동 47-133번지에 있는데, 집이 너무 낡아 옮기지 못하고 건축양식 그대로를 본떠 이곳에 복원(復元)하였다. 집의 평면은 'ㄷ'자형 몸채 앞쪽에 사랑채를 두어 전체 평면은 'ㅁ'자형이다. 몸채와 사랑채 쪽은 지붕에 단차이(段差異)를 두었고, 사랑채 대청 부분은 바깥에서 볼 때 중층(重層)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것은 지형(地形)을 살린 구성이다.
장대석 기단(長臺石基壇), 방형초석(方形礎石), 초익공(初翼工), 운공(雲工)을 사용한 점, 후면과 측면 툇마루 바깥쪽으로 설치한 정자(井子) 살창, 사괴석(四塊石)과 전돌(塼石)을 사용한 화방벽(火防壁)이 설치된 점 등에서 최상류층의 저택임을 알 수 있으며, 언뜻 보면 별궁(別宮)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지정번호 : 서울시 민속자료 제18호

소 재 지 : 중구 필동 2가 84-1 일대

안채·사랑채·별당채로 구성

연면적 323.96㎡(98평)

 서울 팔대가(八大家) 중의 하나로 전해지는 이 가옥은 조선 제25대 철종(哲宗)의 딸인 영혜옹주의 남편 박영효 (1861∼1939)가 살던 집이다.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에 있던 것을 이곳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하였다.
이 가옥은 처음에는 안채, 사랑채, 별당채, 대문간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복원당시 안채만 남고 모두 없어졌던 것을 한옥마을을 조성하면서 사랑채와 별당채를 복원하였다.
안채는 ('') 자형 몸채에 'ㅡ'형 행랑간이 붙어 '' 형으로 되어 있으며, 부엌과 안방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개성(開城)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형(中部地方形)으로 서울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장대석(長臺石)을 사용한 기단(基壇), 칠량가(七樑架)의 가구(架構), 6칸 크기의 부엌 등에서 대가(大家)의 면모를 느낄 수 있으며, 파련각(波蓮刻)한 보아지와 파련대공(波蓮臺工)을 사용하고, 마루밑 고막이 벽에 투공문양(透孔紋樣) 벽돌을 사용하여 환기공(換氣孔)을 설치한 점 등은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것들이다.

 

 

 

 

 

 

 

 

 

 

 

 

  

 

 

 

 

 

 

 

 

 

 

 

 

 

 

 

 

 

 

 

 

 

 

 

 


지정번호 : 서울시 민속자료 제8호

소 재 지 : 중구 필동 2가 84-1 일대

'ㄷ'자형 안채에 'ㅡ'자형 사랑채 연결

건평 82.46㎡(25평)


이 가옥은 조선말기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 지은 집이다.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에 있던 것을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하였다. 'ㄷ'자형 안채에 'ㅡ'자형 사랑채를 연결시켜 ('')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 대청은 오량가(五樑架)이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삼량가(三樑架)이다.
판대공(板臺工)을 사용하고 홑처마로 꾸미는 등 전체적으로 평민주택(平民住宅)의 양식을 보이고 있지만, 안방의 뒤쪽 벽, 즉 길가에 면한 부분에 사괴석(四塊石)과 전돌(塼石)을 사용하여 화방벽(火防壁)을 쌓아 집의 격조를 더 높인 것이 특징적이다.

 

 

 

 

 

 

 

 

 

 

 

 

 

 

 

 

☞ 여기서 추석 나들이-'남산 한옥마을과 한국의 집에 다녀오다' - 1부를 마치고...

 

 

 

2009년 10월 03일(토)

'추석 나들이-'남산 한옥마을과 한국의 집'에 다녀오다.

   

-▥☞ 1부[충무로역→남산한옥마을 정문→천우각광장→남산한옥마을]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 2부[피금정→타임캡슐→남산국악마당→청학지→한국의집→충무로역]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