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골산과 호암산을 거쳐 삼성산 성지' 코스 :
구로전화국앞 정류장→한울중학교→문성중학교→독산고교→영남초교→삼각점봉→정심초교→금천정ㆍ금천체육공원→호압사 갈림길
→목골산 정상(164.3m)→관악산생태공원→선우약수→호압사갈림길→천불사갈림길→산림감시초소→산복터널→호압사→구름발치길
→전망바위→돌고래바위→헬기장→민주동산(393m)→흔들바위→조망대→육각정→삼호약수→삼성산성지→삼성산청소년수련관
맥가이버의 '목골산과 호암산을 거쳐 삼성산 성지까지' 이야기
오늘은 구로전화국앞 정류장에서부터 한울중학교 담을 따라 난 길을 가다가 문성길을 건너 문성중학교 정문앞에서
독산고교쪽으로 죄회전하여 영남초교 정문 좌측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일단 목골산으로 향하면서 널널산행이 시작된다.
☞ '목골산과 호암산을 거쳐 삼성산 성지에 다녀오다'의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 '목골산과 호암산을 거쳐 삼성산 성지에 다녀오다' - 3부를 시작하며...
▼ 11시 27분 - 전망바위
▼ 지나온 목골산이 보이고...
▼ 구름산도 보이고...
▼ 사진 중앙의 봉우리가 호암산의 호랑이 엉덩이 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호암산성과 한우물, 불영사가 있다...
▼ 팥배나무 열매?
▼ 호압사를 내려다 보니...
▼ 돌고래바위
▼ 11시 39분 - 돌고래바위 정상에 올라서서...
▼ 조망대(좌)와 민주동산(우:393m)의 태극기가...
▼ 조망대 너머로 칼바위능선이...
▼ 민주동산의 태극기
▼ 산철쭉이 꽃을 피웠네...
▼ 11시 49분 - 민주동산 헬기장
▼ 민주동산 태극기
▼ 바로 아래 흔들바위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 흔들바위를 흔들어보고...
▼ 한손으로도 흔들어진다.
▼ 달팽이바위(맥가이버가 임의로 작명하여 후기에 쓰고있다)
▼ 멸치바위(마찬가지로...)
▼ 11시 54분 - 조망대로...
▼ 칼바위능선을 보니...
▼ 칼바위능선의 국기봉을 당기니...
▼ 달팽이바위를 다른 방향에서 본 모습...
▼ 그 아래 죠스바위
▼ 달팽이바위와 흔들바위
▼ 흔들바위 옆에 있는 입술바위
▼ 사진 중앙에 있는 바위로 가야지...
▼ 12시 07분 - 기암...누군가 '삼성기도원'이라고...
▼ 이 바위는...
▼ 저금통처럼 입을 벌리고...
▼ 조망대를 올려다보니...
▼ 12시 12분 - 송암약수 위 육각정을 지나...
▼ 시계가 약간 늦게 가네...
▼ 전망터에서 바라보니...
▼ 팥배나무 열매?
▼ 12시 32분 - '삼성산 성지'라고...
▼ 약수터가...
▼ 삼호약수
▼ '삼성산 성지'를 둘러보러...
◎ 삼성산성지
삼성산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軍門梟首)의 형을 받고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가
1836년부터 1901년 11월 2일 명동 성당 지하 묘소로 모셔질 때까지 묻혀 있던 묘자리이다.
본래부터 삼성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이곳은 세 분의 순교성인이 묻힘으로써
명실공히 삼성산(三聖山)의 품위를 갖추게 되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한국 천주교회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 발을 디딘 외국인 성직자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후
30년만인 1831년 조선의 천주교회는 중국 북경교에서 독립해 '조선 교구'로 설정된다.
이어서 1836년과 1837년 사이에 프랑스 선교사인 모방, 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주교가 입국함으로써
조선의 교우들은 주문모 신부 이후 한 세대가 훨씬 지나서야 목자에 대한 갈증을 풀게 된다.
이들 세 성직자는 상복(喪服)으로 얼굴을 가리고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교우들을 찾아
밤낮으로 험한 산길을 걸으며 복음 전파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불과 1년 사이에 신자수가 9천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던중 외국 선교사의 입국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교우들에 대한 탄압이 가열되고
가엾은 어린양들의 희생이 늘어나자 목자들은 가슴 깊이 피눈물을 흘린다.
앵베르 주교는 수원의 한 교우집에 피신하던 중 모방, 샤스탕 두 신부를 불러 중국으로 피신할 것을 권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단념하고 몸조심을 당부한 다음 각자 소임지로 돌려보냈다.
바로 이즈음 한 배교자의 책략으로 인해 거처가 알려져 포졸들이 들이닥친다.
그는 화(禍)가 여러 교우들에데 미칠 것을 염려해 스스로 잡핸 몸이 되고 두 신부에게도 자헌 치명(自獻致命),
곧 스스로 관헌에 나아가 신앙을 고백한 후 순교하기를 권했다.
기해박해(1839년)가 시작되고 세 명의 외국인 사제는 38년 전,
주문모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새남터에서 희광이의 칼 끝에 이슬이 되고 만다.
이 때 앵베르 주교의 나이 43세,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35세로 동갑이었다.
이들의 시체는 사흘 동안 버려져 있다가 한강변 모래톱에 묻힌다.
교우들이 유해를 거두고자 애쓴 지 나흘째 되는 날
세 명의 교우가 시체를 훔쳐 내려다 그중 한명이 붙잡혀 옥에 갇히고 만다.
그 후 스무 날 가량 지난 뒤 7-8명의 교우가 죽음을 무릅쓰고 감시의 눈을 피해 유해를 거두는 데 성공한다.
교우들은 유해를 큰 궤에 넣어 노고산(老姑山)에 임시로 매장했다.
그리고 4년 후, 당시 파수를 피해 유해를 훔쳐 낸 교우 중 하나인 박 바오로가
가문의 선산인 관악산 줄기 삼성산에 유해를 이장한다.
박 바오로는 이 사실을 아들인 박순집에게 알려 주고
그 자신도 일가들과 함께 병인박해의 와중에서 순교하게 되니 1868년 3월 절두산에서의 일이다.
이 때 가까스로 화를 면한 박순집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이 묘소를 고증해 명동 성당 지하묘소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산 증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순교한 가족들의 시신을 찾고 베르뇌 주교를 비롯해
브르트니에르·볼리외·도리 신부 등의 시신을 새남터에서 찾아내
용산 왜고개에 이장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부터 4년간 박순집의 가문은 16명의 순교자를 배출했고,
자신은 1982년 82세를 일기로 선종하기까지 인천 교회의 창설에 여생을 바쳤다.
16세 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에 들어가 우리 나라 최초의 수녀가 된
박 사베리오(1872-1966년)는 박순집의 막내딸이기도 하다.
한편 박순집 일가를 기념하기 위한 비가 절두산 순교 기념관 정원에 세워져 있어 순례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삼성산에 1834년부터 1901년까지 58년간 묻혀 있던 세 성직자는 1925년7월 25일 시복되었다.
1970년 5월 김수환 추기경과 고(故) 노기남 대주교, 오기선 신부는
이곳에 세 분의 매장지임을 확인하고 이를 기념하는 소형 비석을 그 자리에 세웠다.
또 1981년 9월에는 신림동 본당 교우들에 의해 구상 시인의 헌시와 비문이 새겨진 현재의 비석이 세워졌다.
1984년에는 한국 천주교 2백주년을 기해 세 성직자가 시성의 영광에 오른다.
이를 기념해 사적지 부근의 땅 1만 6천여 평을 매입, 1989년에 그 유해를 다시 천묘해 축성식을 가졌다.
그리고 1992년에는 신림본동 본당에서 분리, 삼성산 본당이 신설됐다.
- 천주교광주대교구 학다리성당 홈에서 -
▼ 성지월례미사는 매월 21일이라고...
▼ 삼성산 성지 안내문
▼ 12시 42분 - 마치 누군가가 조형한 듯한 바위들이...
▼ 아래에서 보니...
▼ 12시 45분 - 저기가...
▼ 12시 47분 - 삼성산 청소년수련관
▼ 삼성산 성지ㆍ삼성산청소년수련관 입구
▼ 12시 50분 - 삼성산 성지 정류장
☞ 이것으로 '목골산과 호암산을 거쳐 삼성산 성지에 다녀오다'를 마친다.
'목골산과 호암산을 거쳐 삼성산 성지에 다녀오다'
-▥☞ 1부[구로전화국앞→한울중→영남초교→정심초교→금천정→목골산 정상→관악산생태공원]는 여기를 클릭.☜▥-
-▥☞ 2부[관악산생태공원→선우약수→갈림길→배드민턴장→산복터널→호압사→구름발치길→전망바위]는 여기를 클릭.☜▥-
-▥☞ 3부[전망바위→돌고래바위→민주동산→조망대→육각정→삼호약수→삼성산성지→삼성산청소년수련관]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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