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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때]‘하늘이 숨긴 암자’···허언이 아니로세!-전남 영암 상견성암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9. 9.

[여기 어때]‘하늘이 숨긴 암자’···허언이 아니로세!

영암 | 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ㆍ전남 영암 상견성암

전남 영암(靈巖)은 '신령한 바위'란 뜻. 이는 월출산(해발 809m)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방 100리에 큰 산이 없어 더욱 도드라진 산은 땅 위의 기를 모아 하늘로 솟구쳤다.
영암을 '기(氣)의 고장'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 산은 절을 품고 절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산자락에 안긴 도갑사의 12암자 중 동암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상견성암(上見性庵)은 '영암의 기'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기암을 병풍처럼 두른 암자는 가파른 절벽 위에 풍경처럼 매달렸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과 약수 맛이 기막힌 선승들의 수도처다.

상견성암 풍경


암자에서 '나홀로 수행' 중인 범종 스님(37)은 도갑사에 내려와 있었다.
좀처럼 암자에서 내려오지 않는데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길이란다.
스님은 오후에 돌아올테니 암자에 가 있으라며 해맑게 웃는다. 

'남쪽 고을에 그림 같은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서 오르더라.'

매월당 김시습이 월출산을 노래한 구절이다.
월출산은 '달뜨는 산'이다. 백제와 통일신라시대에는 '월나악(月奈岳)',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불렀다.
또 조선시대 이후부터 '월출산(月出山)'이란 이름을 얻을 만큼 달과의 인연이 끊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바위 산 위로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달의 모습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한데 혹자는 "음력 열사흗날 상견성암 앞뜰에서 산등성이 너머로 떠오르는 달을 보지 않고는 월출산 달을 말하지 말라"고 하니 암자에서 바라본 '월출'의 아름다움이 오죽하랴.

견성암은 원래 상·중·하견성암 등 3개의 암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견성암만 남아 있다.
도갑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으니 암자의 연륜도 어림잡아 1000년을 훌쩍 넘는다. 

노적봉 아래에 터를 잡은 암자는 가는 길이 만만찮다.
도갑사에서 50여분 걸리는 산길은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외지인이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도갑사 뒤편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들어 놓은 자연관찰로를 거쳐 간다.
가는 길에는 정자 아래 용수폭포와 부도전, 도선국사비를 만난다.
계곡에는 버들치와 갈겨니가 살고 산중습지도 볼 수 있다. 
 

상견성암 진입로 대나무 숲


여기서 몇 걸음 지나 왼쪽 대숲으로 향하는 길이 암자로 통한다.
험준한 돌산에 이만한 규모의 대숲이 있다는 게 신비롭다.
산죽(山竹) 아래에는 야생 차나무가 자란다.
한 점 바람에 사각거리는 댓잎 위로 이리저리 부서지는 초봄 햇살이 부산하다. 

산길은 동백나무와 단풍나무가 우거진 숲길로 이어진다.
땅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조릿대도 밭을 이루고 붉가시나무도 보인다.
5월에 꽃을 피우는 붉가시나무는 월출산이 북방한계선이다.
산새소리에 박자를 맞춰 흐르는 계류는 얼음처럼 차갑다.

상견성암 대나무 문


이마에 흐른 땀이 옷깃을 적실 즈음 대나무숲 사이로 시야가 툭 터진다.
대나무 담장 너머로 기와집 한 채가 기암을 등지고 오롯이 앉아있다.
상견성암이다.
암자 입구에는 중견성암 자리를 표시라도 하듯 그 옛날 스님들이 사용했던 맷돌이 이끼를 두른 채 그대로 남아있다. 

월출산의 내로라하는 봉우리와 기암에 둘러싸인 암자는 마치 천혜의 요새 같다.
암자 바로 앞에는 '천봉용수 만령쟁호(千峰龍秀 萬嶺爭虎)'란 글을 두른 바위가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다.
'천개의 봉우리는 빼어남을 자랑하는 용과 같고 만개의 계곡은 호랑이들이 서로 다투는 듯하다'는 뜻이란다. 

암자 앞 바위


바위 옆에는 좌선을 위한 평상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스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슬쩍 앉아보니 마치 산신령이 된 기분이다.
기암괴석을 병풍처럼 두르고 발아래로 능선이 물결치는 풍광은 곧 '천상의 세계'다.

발길 뜸한 산속의 스님 처소는 여염집 아낙네의 살림방보다 깔끔하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장작더미와 손바닥만한 텃밭도 잘 정돈됐다.
기와로 만든 앙증맞은 담장 아래에는 꽃무릇이 봄볕에 졸고 있다. 

암자 법당


암자는 예부터 구참스님들의 수행처로 사용됐다.
그런데 대흥사에 적을 둔 30대 중후반의 스님이 안주인이 된 영문은 무엇일까. 

"젊었을 때 원없이 수행을 해보고 싶어 암자행을 고집했습니다.
제 뜻을 안 도갑사 주지스님이자 사형이신 월우 스님의 배려로 상견성암에 짐을 풀게 됐죠.
3년 수행을 목표로 왔으니 이제 이곳 생활도 1년 남짓 남았네요." 

암자는 도선국사와 초의선사는 물론 장좌불와(長坐不臥)와 하루 한 끼 식사 등 목숨을 건 수행과 무소유를 실천한 청화(靑華) 스님이 3년간 묵언수행한 곳으로 유명하다.
또 청화 스님의 제자인 대원 스님이 범종 스님에 앞서 이곳에서 4년간 수행했다.

스님은 한 달에 1~2번 하산하는 것을 제외하곤 암자에 머문다.
특별한 일과는 없다.
하루 3시간 눈을 붙이는 시간 외에 예불과 정진, 공양, 텃밭 가꾸는 일을 되풀이한다. 

1000년간 수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암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일까.
스님은 이곳이 영암에서 두 번째로 기가 센 곳이라고 했다.
게다가 마당 앞 바위는 철분이 많아 수시로 번개를 맞는 탓에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버틸 일이 아니란다. 

도갑사


지난 2년간 수행하면서 이곳의 어떤 풍광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물었다.

"글쎄요. 뜨는 달과 지는 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도 아름답고 구름덩어리가 바다를 이룬 모습도 아름답고.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아름답지요." 

도갑사에서 발행한 책자에는 상견성암을 두고 '비경, 그리고 신비, 신선의 자리'라고 쓰여 있다.
'하늘이 숨겨 놓은 암자'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 듯싶다.

■여행정보

▲찾아가는 길:서울→호남고속도로→광산IC→국도 13번(나주, 영암 방면)→영산포→신북→영암읍→819번 국도 독천 방면→도갑사/서해안고속도로→목포IC→국도 2번→지방도 819호선(독천 방면)→도갑사 

덕진차밭


▲주변 볼거리:구림마을, 왕인박사유적지, 문산재, 영암도기박물관, 마한문화공원, 기찬랜드, 덕진차밭, 원풍정 등 

▲맛집:갈비탕에 낙지를 넣은 갈낙탕이 유명하다. 한석봉 어머니가 떡을 팔았다는 독천시장 내에는 30여개의 낙지식당이 있다. 이중 청하식당(061-473-6993), 독천식당(061-472-4222), 영명식당(061-472-4027)이 유명하다. 기찬랜드 입구 월출산한우판매장(061-473-7788)에서는 매실을 발효시켜 먹인 영암매력한우를 맛볼 수 있다. 

'영암왕인문화축제'


▲축제:'기찬 여행! 벚꽃 세상, 왕인의 영암으로'를 주제로 4월3~6일까지 '영암왕인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 축제는 크게 왕인·소통·상생·대동의 날 등으로 나누어 퍼레이드 '왕인박사 일본가오'를 시작으로 수능 고득점 기원 왕인학등 달기, 왕인의 생기(生氣) 솟는 길 걷기, 천인 천자문 새(鳥), 왕인 아리랑, 천자문 양산 만들기 체험, 백제인형 만들기, 백제의 빛깔놀이 등의 행사를 운영한다.
또 왕인 전래문물인 도기와 종이를 테마로 한 기획전시와 워크숍, 체험학습 프로그램은 물론 '개막축하 한·일 우정공연'과 마당극 '氣찬들 천지 밥' 등의 특별공연이 눈길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모정저수지


▲숙박:'달빛이 도장처럼 찍히는 집'이란 뜻의 월인당(061-471-7675)은 장작불을 지피는 한옥 펜션이다. 주인장이 고구마를 구워주고 바로 옆 원풍정에서는 모정저수지에 비친 월출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구림마을 민박(ygurim.namdominbak.go.kr), 호텔현대(061-463-2233), 월출산온천관광호텔(061-473-6311), 월출산고인돌민박(061-471-5599), 안용당(010-3114-1313) 등

▲문의:영암군청 문화관광과 (061)470-2224



<영암 | 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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