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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때]허물없이 나선 길,서해의 진주를 만나다 - 마실길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9. 9.

[여기 어때]허물없이 나선 길,서해의 진주를 만나다

부안 | 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ㆍ새만금 전시관~격포항 18km 조성, 황홀한 풍경·파도소리·바다냄새
ㆍ3코스 오가며 쉴틈없이 오감 자극, 채석강 일몰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


적벽강 몽돌과 일몰


전북 부안은 서해안 끄트머리 변산반도를 끼고 있다.
변산반도는 '서해의 진주'. 의상봉(509m)을 주봉으로 칠산 앞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땅이다.
느림의 미학이 트렌드가 된 이즈음 '변산 마실길'을 걷는다. '마실'은 '마을에 나간다'는 뜻.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을 합쳐놓은 듯한 옛길이다.
유수한 세월 속에 잊혀지고 묻혔던 이 길이 최근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저녁을 먹은 후 동네 마실가듯 허물없이 나선 길. 문득 만난 해송숲 솔향기에 흐트러진 마음이 가지런히 내려앉는다.

변산반도는 겉버기에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한적한 땅' 같지만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요모조모 볼거리가 알차다.

새만금전시관


특히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이 자랑.
세계 최고의 고려청자는 물론 실학의 거목 반계 유형원이 이곳에서 반계수록을 집필했고 조선시대 천재 여류시인 이매창의 한과 사랑, 예술혼이 이 땅에 남아 있다.

'변산 마실길'은 새만금전시관에서 격포항까지 18㎞ 거리.
새만금전시관에서 송포갑문까지 1코스, 송포갑문에서 성천갑문까지 2코스, 성천갑문에서 격포항까지 3코스로 나뉜다.
예전에 바다를 지키던 해안초소와 철조망길을 산책로로 개방해 지도상의 해안선이 곧 '변산 마실길'이다. 

유난히 눈이 많던 올 겨울, 관광객에게 치일 것도 없고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지도 않다.
이 생각 저 생각 아니면 아무생각 없이 혼자 걸어도 좋고 수다를 떨 길동무와 동행해도 좋다.

출발점은 새만금전시관. '후손으로부터 잠시 빌린' 환경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소다.
송포갑문까지는 오른쪽으로 변산 앞바다를 끼고 간다.
쉴 틈 없이 다가오는 포구와 마을, 개펄 풍경이 정겹다.
더디게 느리게 걷다보면 파도소리, 바다냄새, 흙냄새가 오감을 자극한다. 

1시간30분 거리의 1코스는 곤충해양생태원과 대항리 패총, 팔각정, 변산해수욕장을 거쳐 간다.
대항리 패총은 초소길을 따라가다 바닷길에 접어들어 고개 너머다.
패총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류의 껍데기가 쌓인 무더기. 

1967년 발견된 패총은 사방 10m 내외에 두께가 60㎝로 선사시대 유물이 함께 발견됐다.
여기서 변산해수욕장까지는 바닷길. 제법 운치가 있다.

고사포해수욕장 송림 일몰


송포갑문에서 시작하는 2코스는 사망마을을 거쳐 고사포원대수련원, 송림구간, 제7공수부대, 성천마을포구까지. 송포항을 떠나면 길은 호젓한 숲길을 지나 고사포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모래밭이나 바닷길을 제외하면 길은 대부분 해안초소길이다.
군경이 떠난 길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고사포해수욕장을 지나면 해안사구. 말 그대로 모래언덕이다.
때를 맞추면 한 달에 한 번 그믐날 하섬까지 바닷길이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 


2시간30분 거리의 3코스는 해안가를 따라 제법 볼거리가 늘어섰다.
성천·유동·반월마을을 지나면 적벽강, 수성당, 격포해수욕장, 채석강, 격포항 등 유명관광지가 줄줄이 이어진다. 

적벽강은 중국의 소동파가 노닐던 적벽강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채석강 역시 중국의 시선 이백이 강물 속 달을 따려다 빠져죽은 채석강과 닮아 얻은 이름이다.
적벽강에서 채석강을 잇는 해안선은 변산반도의 백미.

적벽강은 이름 그대로 암반과 절벽이 붉은 때깔을 띠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30m 거리에 있는 용굴과 몽돌이 볼만하다.
적벽강은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일반적으로 강으로 생각하거나 채석강의 유명세에 가려 묘미를 아는 이가 많지 않기 때문.
몽돌과 백사장으로 조성된 적벽해안은 여름철 피서지로 제격이고 해식동굴에서 바라보는 일몰 또한 장관이다.

서해바다를 지키는 수호신 '개양할머니'를 모신 수성당을 둘러보고 격포해수욕장과 채석강으로 간다.

채석강과 격포해수욕장, 격포항은 한 몸처럼 얽혀 있다.
격포해수욕장은 채석강을 끼고 있어 '채석강해수욕장'으로도 불린다.
채석강은 닭이봉 아랫도리를 감아 도는 모양의 해안 단층이 마치 수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하다. 

격포항 등대


해식동굴과 격포항 등대에서 바라본 일몰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채석강에 널브러진 바위에 앉아 한 숨 돌린다.
바다향이 상큼하다. 격포항 등대 너머로 떨어지는 저녁 해가 단아하다.
노을은 시간이 퇴적된 해안가를 붉게 적신다.

■불사의방장(不思義方丈)

불사의방장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으로 불리는 변산은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
불사의방장(不思義方丈)은 변산 최고봉인 의상봉 동쪽에 있는 절벽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준한 수행처이자 종교적 성지다.

불사의방장은 '세상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는 뜻. 통일신라 경덕왕 때 고승인 진표율사가 거처하며 미륵신앙을 잉태한 곳으로 원효, 의상, 부설거사, 진묵 등이 이곳에서 수행했다. 고승들이 참된 나를 찾아 떠나는 고행장소인 셈이다.

변산을 '능가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험해서 오르기 어려운 산이란 뜻.
이 능가산 천길 벼랑에 자리잡고 있는 불사의방장은 '세상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눈'으로도 찾기 어려운 곳이다.
부안사람들은 이곳을 '변산이 천년을 늙어가는 묵은 용처럼 누워 은밀하고 고독하게 숨겨온 비밀'이라 부른다.

가는 길도 험하다.
의상사 터에서 의상봉 쪽으로 올라가다 확 트인 벼랑 끝에서 밧줄을 타고 10m 정도 내려간다.
뒤쪽은 바위벽이고 앞쪽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까마득한 벼랑으로 진표율사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다람쥐절터'로 불렸다.

이규보의 글에는 '바람이 불어도 집이 쓰러지지 않도록 바다의 용이 절벽에 쇠말뚝을 박아 매었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집은 사라졌지만 절벽에는 쇠말뚝 끝이 아직도 박혀 있다.
천년 전 그 누가 이 말뚝을 험준한 이곳에 박았는지 모를 일이다.
이곳은 특히 전국에서 '기(氣)'가 가장 센 곳으로 알려져 이를 시험해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는 이가 적지 않다. 

■여행정보

▲찾아가는 길:서울→서해안고속도로→부안IC→30번 국도→부안→새만금전시관

▲특산품&먹을거리:개암죽염, 곰소젓갈, 변산누에, 부안김, 계화도 간척지쌀, 곰소 천일염 등/주꾸미, 백합죽, 바지락죽, 갑오징어, 석화, 뱅어(백어) 등

▲주변 볼거리: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줄포갯벌습지, 매창공원, 반계선생 유적지, 신석정 고택, 내소사, 개암사, 월명암, 의상봉, 직소폭포, 곰소항, 위도, 변산온천, 새만금방조제, 휘목미술관, 영상테마파크, 우금산성, 솔섬 등

▲숙박:504개의 다양한 객실을 갖춘 대명리조트(063-580-8800) 외에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펜션이 제법 많다. 30번 국도 모항과 줄포 사이 운호리에 자리한 변산바람꽃펜션(063-584-2885)은 캐나다산 통나무로 지은 복층식 펜션으로 오션뷰가 뛰어나다. 변산반도 펜션연합회(www.byeonsannet.kr) 참조

▲문의:부안군청 문화관광과 (063)580-4224

<부안 | 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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