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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트레킹코스|김포첫째길] 조선시대 포진지 ‘덕포진’ 명승으로 거듭나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10. 1.

[DMZ 트레킹 코스| 김포 첫째 길] 조선시대 포진지 ‘덕포진’ 명승으로 거듭나

DMZ(Demilitarized Zone·비무장지대).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DMZ는 수십 년간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통제된 지역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만의 공간으로 거듭나, 세계적인 생태 보고(寶庫)로 주목받고 있다. 그 세계적인 생태보고를 바로 옆에서 걸으면서 볼 수 있도록 ‘DMZ트레킹코스’가 만들어졌다. 격세지감이다.

DMZ는 서해안의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강원도 고성에 이르기까지 총 248㎞에 달한다.

한반도 허리를 비스듬히 가르고 있다.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의 큰 산줄기가 DMZ를 가로지르고, 임진강과 한탄강, 북한강 등 주요 강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 서해로 빠져든다.

한반도의 가장 중심지역인 DMZ를 선보이는 트레킹코스는 김포, 고양, 파주, 연천 등 경기도의 4개 시군을 거쳐 가도록 개통했다.

김포시엔 3개 코스 38.4㎞가 이어져 있고, 고양엔 2개 코스 24.5㎞, 파주엔 4개 코스 56.3㎞, 연천군엔 3개 코스 62.2㎞ 등 12개 코스 총 181.4㎞로 연결돼 있다.

김포의 대명포구에서 출발한 트레킹 코스는 고양~파주를 거쳐 경원선 남한의 종점인 연천군 신탄리역 ‘철마는 달리고 싶다’ 이정표 앞에서 끝이 난다. <박스 참조>

이 중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고, 역사성이 있으며 동시에 교통도 편리한 김포 첫 코스를 이번달에 소개하고, 다음호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임진강의 주상절리를 감상할 수 있는 연천의 두 개 코스를 소개한다.

먼저 김포 첫째 길이다.

첫째 길은 대명항~덕포진~쇄암리 신촌~김포CC~문수산성까지 이어지는 총 15.4㎞의 거리다.

한반도 최초의 벼 재배지로 알려진 김포에서, 육지의 최북단 항구로 알려진 대명항에서 출발이다.

대명항은 한국관광공사 추천 겨울바다 7선에 꼽혔을 정도로 주변이 아름다운 경치로 둘러싸여져 있다.

항구에 도착하니 역시 신선한 바다 향기가 코를 스쳐 지나간다. 드넓은 바다를 보는 순간 가슴마저 시원해진다. 

첫째 길 입구 주변은 아직 공사를 하는 듯 다소 어수선하다.

동행한 경기 2청 특별대책지역과 한태우씨가 “지금 한창 함상공원을 조성 중이며, 올 8월 완공과 동시에 개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럴 듯한 함정이 철제 울타리에 가려져 있다.

철제 울타리가 벗겨지고 함정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것만으로도 볼만할 것 같다.

함정은 주변의 특색을 살린 해병대 상륙함정이라고 한다.

1944년 제작된 함정은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하고, 한국전이 끝난 직후 1955년 우리 해군이 인수해 월남전에 7회나 참전하는 등 62년간의 임무를 완수한 한국군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함정이라고 소개했다. 

함상공원 바로 옆 들머리는 철책문에 들어가는 것으로 길은 시작된다.

다소 긴장감이 들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문을 들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름다운 길이 연속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덕포진 언덕길에 한쪽은 바다, 한쪽은 들판이 시원스레 길을 열고 있다. 



덕포진은 한양으로 통하는 바닷길 요충지

덕포진, 이름만 들어도 뭔가 있을 것 같다. 덕포진은 조선시대 진영으로, 한양으로 통하는 바닷길의 요충지였다.

마주 보는 강화도의 초지진과 김포의 덕포진 양쪽에서 외적의 침입을 포로 쏘며 저지하는 군사진영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한강과 임진강 수로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선조 때 창설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한말엔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려는 미국(신미양요)과 프랑스군(병인양요)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지역으로 역사적 가치와 유물사적 의의가 있는 곳이다.

지금 사적 제292호로 지정돼 있다.

잠시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866년은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펴면서 천주교를 박해할 즈음이다.

급기야 대원군은 프랑스 신부들을 포함하여 수천 명의 천주교도를 국가 기강을 해이하게 한다는 명목을 씌어 처형했다.

프랑스는 이 사건을 빌미로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을 조선에 급파해 한 달 동안 강화도를 점령하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빼앗아 갔다.

이때 이들이 약탈해 간 귀중한 유물이 지금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일체다.

조선군대는 덕포진에 진을 치고 프랑스군과 대치한 끝에 결국 프랑스군이 철수했다.

이 사건이 바로 병인양요다.

1871년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다 평양 주민과 충돌하여 셔먼호가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신미양요가 일어났으며, 미국은 5척의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를 공격하고 초지진을 점령했다.  

두 사건 다 덕포진과 마주 보는 강화 초지진을 외국군에 내줬으며, 덕포진은 우리 군대가 외국군과 대치하는 해상 군사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역사의 현장은 온데간데없고 포진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덕포진을 걷다 보면 먼저 7개 포대가 강화도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다.

조금 더 가면 5개 포대가 강화 초지진과 맞서 있다.

마지막으로 3개 포대가 강화 초지진과 남장포대를 향해 있다.

해상로를 이용해 침입해 오는 적을 강화도 초지진과 합심해서 양쪽에서 포를 쏘아 바다에서 섬멸하겠다는 전략으로 조성된 진영이다.

마지막 포대진지 가기 전에 파수청이 있다.

파수청은 각 포대에 공급할 불씨를 보관하던 장소다.

이 파수청에서 각 포대진지로 부랴부랴 불씨를 실어 날랐던 것이다.

파수청 바로 옆에 있는 이정표에는 그 역사적 사실을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

‘(전략) 이 건물은 포대와 돈대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포를 쏘는 불씨를 보관하는 장소인 동시에 포병을 지휘하던 장대로 생각된다.’

이 조그만 길의 현장에서도 한국사의 비극이 그대로 몸으로 전해졌다.

덕포진의 역사는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수십 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내버려져 있었다.

단절된 역사를 김포의 열성적인 향토사학자가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떠올렸다.

그 당사자가 지금 덕포진 문화해설사로 있는 김기송씨다.

그가 아니었으면 덕포진과 파수청은 아직 땅 밑에 묻혀 있을지 모른다.

김기송씨는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된 1970년 초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손돌묘를 찾으러 다녔다.

그즈음 경기도 공보실장으로 있었던 이재곤씨로부터 덕포진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들었다.

손돌묘와 비슷한 지역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다음날부터 사비를 들여 덕포진과 손돌묘를 동시에 찾기 시작했다.

문화해설사 김기송씨가 덕포진·파수청 찾아

다행히 손돌묘는 쉽게 찾아 1970년 묘를 복원하고 그해 4월 6일 김포군의 공보실장과 관련 공무원 및 주민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처음으로 성대한 제사를 올렸다.
그러나 덕포진은 문화재 발굴허가가 나지 않아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렇게 9년의 허송세월을 보냈다.

김기송씨는 그대로 있지 않았다.
끈질긴 설득으로 9년 뒤인 1980년 문화재청 전문위원들과 함께 드디어 덕포진과 파수청을 발굴해 내는 개가를 올렸다.
문화재청에서는 1981년 8월 20일 사적 제292호로 지정하고 유물까지 발굴한 뒤 원형 복원공사를 끝냈다.
당시 중·소포 6문과 포탄 7개,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 2개가 출토되었으며, 건물터 안에는 주춧돌과 화덕도 있었다.
발굴된 6문의 대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2문, 덕포진 유물전시관에 2문, 전쟁기념관에 1문, 독립기념관에 1문씩 보관 중이다.
하마터면 영원히 묻힐 뻔한 우리의 역사가 열정의 향토사학자인 김기송씨 개인의 노력에 의해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것이다.
그의 이름은 김포시에서 발간한 책자 곳곳에 등장한다.

김기송씨는 “우리 역사를 우리가 찾지 않으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며 “어릴 적 할머니와 주변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끝까지 추적해 결국 찾아낼 수 있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누군가 끈질기게 찾으면 어떤 역사적 현장도 못 찾을 게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 길을 걸으며 그 역사와 역사를 찾는 한 인간의 열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그의 열정을 생각하니 아름다운 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쪽 방향으로 철책이 있지만 바다를 끼고 도는 길은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롭다.
철책 안으로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지역이라 거칠지만 아름답게 보인다.
더욱이 호기심까지 자극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전장의 흔적이 지금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아름다운 길로 변해 있다.

덕포진 끄트머리에 고려시대 뱃사공 손돌의 묘가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김기송씨가 발굴했다.
손돌은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란할 때 뱃길을 잡은 뱃사공이었다.
묘지가 있는 바로 앞 바다는 물살이 센 곳이라 험한 물길에 불안을 느낀 왕은 뱃사공이 몽골의 사주를 받아 이 길로 인도한다고 의심해 그의 목을 베라고 어명을 내렸다.
손돌은 마지막으로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워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뒤 죽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손돌을 죽이고 바가지를 따라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한 왕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장사를 성대하게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은 바다의 물살이 빠른 여울목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물살이 가장 빠른 울돌목(명량해협)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소용돌이를 동반한 물살이 치는 험난한 뱃길이다.
손돌의 이름을 빌려 이곳을 손돌목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까지 영호남 지방에서 거둔 세곡(稅穀)을 한양으로 운송하던 주요 해상로였고, 인천 앞바다에서 마포나루까지 올라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다.
▲ (위) 수십 년 만에 일반에 개방한 DMZ트레킹 코스를 찾은 방문객이 철책길을 따라 걷고 있다. 바로 밑에는 삼성그룹 방송팀이 코스를 촬영하고 있다. 멀리 배경에 보이는 다리가 강화와 김포를 잇는 초지대교이다.(아래) 덕포진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 따라 난 아름다운 곡선길로 방문객들이 걷고 있다.
언덕 왼쪽 사면 조금 파인 홈이 바로 포진지.
들길·산길·둑방길·철책길·해변길 등 고루 걸어

손돌목을 지나 넓은 평야가 나왔다.
김기송씨는 이 평야 일대와 덕포진을 묶어 교육·레저·생태 종합관광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라고 했다.
조감도까지 보여줬다. 전통과 테마, 미래가 공존하는 ‘관광도시 김포’의 조감도였다.
아직 토지를 매입한 것은 아니지만 점차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젠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드넓은 평야엔 학들이 날아들어 즐겁게 노닐고 있다.
시간이 멈춘 세계인 듯하다. 평화와 여유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 샛길로 시간과 함께 스쳐 지나쳤다. 바쁜 인간의 모습이다.

조그만 포구가 나왔다. 철책 안에 있지만 어업허가 받은 사람은 수시로 출입이 가능하고, 초소에 얘기하면 일반인도 잠시 안에 들어가 구경할 수 있다.

조그만 방파제까지 가까이 접근했다.
마침 썰물 때였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건강한 갯벌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 갖가지 꾸물거리는 생물들을 볼 수 있었다.
갯벌엔 조그만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었다.

바로 앞엔 조그만 섬이 하나 있다. 훌쩍 뛰면 닿을 것 같은 지척이다.
또 다른 방향의 지척엔 갈대숲이 우거진 멋진 생태갯벌이 다소곳이 모습을 보여줬다.
규모는 작지만 순천만 갯벌에 버금갈 수준이었다. 예산만 있다면 나무데크로 연결시켜 훌륭한 생태코스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조그만 섬은 이미 대기업의 사유지가 됐다고 한다. 그 섬이 바로 부래도이다.
한강에서 떠내려 왔다고 해서 부래도라 이름 붙었다고 한다.
그만큼 작은 섬이다. 면적이 20,000㎡ 정도 되며, 섬에는 조그만 성터도 남아 있다.

포구를 빠져나왔다. 민통선 철책 따라 길은 계속된다.
철책길을 벗어나 마을길로 들어섰다. 길 양옆으로는 모내기를 끝낸 벼들이 쑥쑥 자라는 듯했다.

쇄암리 마을정자에 도착했다.
쇄암(碎岩)이라는 마을이름은 해안이 잘 부스러지는 바위로 이루어져서 붙여졌다고 한다.
옛날엔 그냥 나무그늘 아래서 쉬던 쉼터가 지금은 정자로 단장했다.
한낮이라 그런지 농부들이나 사람들이 전혀 눈에 띄질 않는다.

해안선을 따라 잠시 걷다 야트막한 산길로 접어든다. 마침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웠다. 시원했다.
길은 약 50m마다 리본이 달려 있었다. 리본을 찾아 계속 따라가면 된다.

산길 왼쪽으로 무덤들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예부터 있던 묘들이며 공동묘지는 아니라고 했다.
한태우씨는 “아마 여기가 옛날부터 이름난 명당자리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분명 무슨 곡절이 있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동묘지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묘지를 지나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지나는 길에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언덕 위에 하얀 집’ 같은 아담한 집이 나온다.
가수 윤수일의 집이라 한다.
팬들을 피해 조용한 해변에 거처를 마련한 듯한 윤수일씨는 앞으로 DMZ트레킹코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다시 거처를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고양리에 도달했다. 강화도의 화도를 오가는 나루터가 있어 고양포(高陽浦)라고 불리던 곳이다.
고양포는 원래 원머루나루를 한자로 옮긴 말이다.
언덕을 의미하는 원과 높은 곳을 나타내는 마루가 머루로 어휘 변형을 일으켜 ‘원머루’로 됐다고 한다.
이를 다시 한자로 옮겨 고양포가 된 것이다. 원머루나루터를 원포나루터라고 부른다.
지금은 나루터는 없고 소형 어선을 가진 어부들이 군의 허가를 받아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포CC(골프장)가 나온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이 보인다.
길은 군사도로인 듯 군용 트럭이 이따금 지나간다. 햇빛은 따갑다.
해안 철책선 따라 가는 길이라 가로수도 없고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채 걷는다.
이 길은 골프장을 지나 포내천까지 이어졌다.
포구의 내부에 있는 하천이라고 해서 포내천이라 하는가 보다.

포내천 양쪽으로는 넓은 평야지대다. 포내천의 풍부한 물이 있으니 벼농사도 잘될 것 같았다.
하긴 한반도에서 최초로 벼농사를 지은 지역이니…. 포내천 끝 지점에 포내수문이 있다.
바닷물이 하천을 넘나들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하천 제방을 따라 걷는 길은 햇빛으로 따갑지만 모처럼 확 트인 공간을 바라보는 맛도 새삼스럽다.
김포 1구간 끝지점에 거의 다 왔다.

문수산이 바로 앞에 보인다. 삼거리가 나왔다.
마을산성 입구라는 이정표가 서 있고, 바로 그 밑에는 김포 첫째 길 끝지점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문수산성 남문까지는 불과 20m밖에 안된다. 문수산성이 첫째 길 끝지점이자 둘째 길 출발지점이다.

문수산성은 조선 숙종 20년(1694)에 축성된 성으로, 강화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새다.
신라 혜공왕(765~780년) 때 산 정상에 창건된 문수사라는 절에서 문수산이란 이름이 유래했으며, 1964년 사적 제139호로 지정됐다.

문수산성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김포 첫째 길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김포의 숨은 역사를 하나씩 들춰보며 DMZ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매우 의미 있는 길이다.

김포 3개·고양 2개·파주 4개·연천 3개 등 모두 12개 코스 조성


경기도가 개통한 DMZ트레킹코스는 4개 시군을 거쳐 총 181.4㎞로 연결된다.

김포시의 3개 코스는 한강을 넘지 않고 고양을 바라보는 봉성산에서 끝을 맺는다.

반면 고양과 파주, 연천은 시군은 다르지만 트레킹 마지막 지점이 다음 코스 출발지점으로 연결돼, 코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김포에는 3개 코스가 있다.

 

첫 코스의 출발지점은 대명항이다.

대명항에서 출발한 트레킹 코스는 덕포진, 쇄암리~김포CC를 거쳐 문수산성 남문, 산성마을 입구까지이다.

총 15.4㎞에 약 4시간가량 소요된다.

둘째 코스는 문수산성~청룡회관~조강저수지~애기봉 전망대 입구까지 총 8㎞에 약 2시간30분 내외 걸린다.

 

셋째 코스는 애기봉 입구~금성초교~배수문~전류리 포구까지 총 15㎞에 4시간 남짓 소요된다.

고양시에는 두 개 코스가 있다.

 

행주산성을 출발해서 행주대교 북단을 돌아 삼성당마을~섬말다리를 거쳐 호수공원까지 가는 코스가 첫 구간이다.

총 10.2㎞ 거리에 소요시간은 2시간40분 정도 예상된다.

둘째 코스는 호수공원에서 킨텍스~이산포IC~장월평천교를 거쳐 출판도시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총 14.3㎞에 대략 3시간30분 걸린다.

파주시에는 네 개 코스가 있다.

 

첫 코스는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출판도시를 통과해 문발IC~송촌리다리~파주NFC를 거쳐 통일동산까지

총 12.4㎞에 3시간10분 내외 걸리는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코스는 통일동산에서 경기영어마을과 헤이리마을, 프로방스 카페촌을 거쳐 파주시 환경센터에서 반구정까지 가는 길이다.

총 17㎞에 4시간30분 내외 잡으면 된다.

셋째 코스는 반구정에서 마정초교와 장산전망대를 거쳐 율곡2리까지 총 11.2㎞에 소요시간은 3시간20분 예상된다.

넷째 코스는 율곡2리 화석정을 출발하여 두포리와 파평중학교를 거쳐 임진강 절경인 적벽산책로와 장파사거리를 지나 황포돛배까지 간다.

총 15.7㎞에 4시간10분 정도 예상되는 거리다.

연천군에는 세 개 코스가 있다.

 

첫 코스는 파주의 마지막 구간인 황포돛대에서 출발해 장남면사무소~노곡리 비룡대교 입구를 거쳐 고려 태조 왕건의 위패가 모셔진 숭의전까지 총 21.6㎞에 이르는 거리다.

예상 소요시간은 대략 6시간40분 정도.

둘째 코스는 숭의전에서 출발해 임진강 주상절리~우정리 황공천다리~군남면사무소를 거쳐 군남홍수조절지까지다. 총 21.8㎞에 예상 소요시간은 6시간40분.

마지막 구간인 셋째 코스는 군남 홍수조절지에서 상리초교와 도신리 방아다리를 거쳐 ‘철마는 달리고 싶다’ 이정표가 있는 신탄리역까지 총 18.8㎞ 거리다.

예상 소요시간은 5시간.

▲ 1 대명항을 통해 들어가는 김포 첫째 길 입구. 철책문을 통해 들어가게 돼 있다. 2 1981년 국가사적 제292호로 지정된 덕포진지터. 이곳에서 조선시대 대포 6문이 발굴됐다. 3 덕포진 바로 옆에 있는 파수청터. 포 진지에 불씨를 실어 나르던 장소이다. 4 포내천 양옆으로 펼쳐진 드넓은 평야엔 학들이 수시로 날아와 여유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평화롭게 날고 있는 학을 담았다.

 

[ ‘DMZ트레킹코스’ 어떻게 만들어졌나?]


직원 아이디어로 추진… 담당 4명이 예산 1억원으로 관련 시군 협조 얻어 조성


DMZ트레킹코스는 2009년 말 경기 2도청 직원 최진숙씨의 아이디어에 의해 전격 시작됐다.

주한미군 이전기지 활용계획 수립과 그린벨트 관련 업무를 하는 특별대책지역과의 최씨는 접경지를 활용할 방안이 없을까 고민하다 직원회의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모두 공감했다. 그러나 이미 예산 수립은 끝난 상태. 일단 예산 없이 밀어붙이기로 했다.

새해 들어 특별대책지역과 밑의 전략과제팀에서 전담, 추진키로 하고, 김포, 고양, 파주, 연천 등 4개 시군에 공문을 보내 협조를 당부했다.

경기 2청사에서 담당직원은 계장 포함 4명. 관련 시군 담당직원들과 올 2월 첫 회의를 열었다.

관련 시군으로서는 별도의 팀을 구성한 건 아니고 맡은 업무를 하면서 부가적으로 일을 떠안아 불평이 나올 수도 있었지만 모두 ‘지역발전의 계기가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연천군 문화관광과 관광시설팀 임항진 팀장과 채정병씨, 김포시청 문화예술과 조현식씨 등이 그들이다.

특히 경기 2청사의 한태우씨는 모든 일에 앞장섰다.

180㎞ 이상 되는 트레킹코스를 일일이 발로 직접 답사하며 일반인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인지, 더 좋은 길은 없는지 등을 주도면밀하게 살폈다.

물론 관련 시군의 담당직원들의 코스에 대한 조언도 적극 구했다.

12개 코스를 전부 5번 이상을 직접 발로 걸으며 확인했다. 일부 코스는 10번 이상 걷기도 했다.

예산이 없으니 직원들이 직접 나서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시작된 일이긴 하지만 배정된 예산은 불과 1억원.

그것도 다른 항목의 예산에서 조금씩 전용해서 끌어들인 것이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험한 자연의 길 180여㎞를 조성하는 데 배정된 예산치고는 너무 적었다.

150㎞ 내외쯤 되는 서울 외사산 트레킹 코스 조성하는 데 배정된 예산은 무려 3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자문회의에 참석했던 한 걷기전문가는 “500억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경기 2청사 특별대책지역과 전략과제팀 직원 4명이 몸으로 때운 결과 지난 5월 8일 첫 선을 보였다.

1억원 예산은 홍보물과 리본 등 이정표 제작에 전부 사용했다. 

DMZ트레킹코스를 갔다 온 사람들은 모두 환영일색이다.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왜 이런 코스를 미리 만들지 않았느냐”부터 시작해서 “생태트레킹코스로 영원히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경기 2청사 특별대책지역과의 한태우씨는 “아직 완성된 코스는 아니며 일부 조정될 코스가 군데군데 많다.

올 하반기에 예산이 확정되면 훨씬 더 단장된 코스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 1 한강에서 떠내려 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부래도. 생태 트레킹 코스로 개발할 수 있으나 아쉽게도 대기업 소유로 밝혀진 섬이다. 2 민통선 철책과 논 사이로 난 트레킹코스로 방문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3 DMZ트레킹코스엔 50m마다 리본이 달려 있다. 제일 앞에 약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이 경기 2청사 특별지역대책팀 한태우씨.

 

[DMZ트레킹코스 탐방 가이드]


아직 확정 안 된 일부 구간 있어 관련 시군에 필히 문의해야


DMZ트레킹코스를 지난 5월 8일 전격 개통했지만 준비기간이 워낙 짧았고, 예산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직 완성상태는 아니다.

부랴부랴 개통했음에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많이 찾는 이유는 그동안 통제됐던 DMZ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길 중간 50m마다 리본은 달았지만 변경되는 코스의 구간 확정문제도 일부 있고, 푯말 작업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처음 가는 사람들은 필히 관련 시군이나 경기 2청 특별대책지역과(031-850-2931, 031-850-3953) 등으로 문의하고 가는 게 좋다.

김포 문화관광과는 031-980-2743, 고양은 031-8075-3377, 파주는 031-940-4364, 연천은 031-839-2061.

대부분 지역은 코스가 길어 간식과 물을 필히 준비해야 한다.

도시락도 가급적 지참하는 게 좋다.

특히 김포 첫째 길은 15㎞가 조금 더 되지만 중간 탈출로나 음식점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구간에 음식점과 수퍼마켓이 딱 한 군데씩 있다.

길 중간 지점인 고양포마을에 한우소고기전문식당인 원포나루터(070-8823-2141 또는 010-6363-2141)는 음식점에서 한우를 잡는 집과 직접 연계해 언제나 싱싱한 소고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음식점 바로 앞에 유일한 수퍼마켓이 있다.

연천 구간은 중간중간에 음식점이 있어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다.

특히 첫째 길 옆 약대산 자락에 있는 방갈로 카페(010-4155-0835)엔 민박과 정식이 가능하다.

교통

김포는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첫째 길 시작지점인 대명항은 서울에서 여러 대의 버스가 운행한다.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60-3(전화 031-983-8245),

영등포시장에서 출발하는 6(031-983-8245),

대명항에서 일산 킨텍스 순환하는 605(031-983-8246) 등이 모두 대명항이 종점이다.

 

첫째 길 종점인 문수산성 남문은 버스정류장인 성동검문소와 약 100m 떨어져 있다.

성동검문소 정류장엔 960(강화~일산), 1(강화터미널~영등포역), 70(강화터미널~인천터미널),

90(강화터미널~부평역), 8(강화터미널~송정역) 등 여러 버스가 정차한다.

연천 첫째 길 시작지점인 황포돛대엔 대중교통이 없다.

연천 적성터미널까지 접근해서 그곳에서 택시(031-832-0044)를 불러 황포돛대까지 갈 수 있다. 요금은 5,000원.

셋째 길 출발지점인 선곡교 앞까지 가는 버스는 구 전곡터미널에서 59번 버스가 운행한다. 약 40분 소요.

택시는 031-834-1177에 문의하면 된다.

고양 콜택시는 첫째 길은 1588-1382 또는 1588-1385, 둘째 길은 1577-2030이다.
파주 콜택시는 1577-2030 또는 1544-8482로 하면 된다.



/ 글 박정원 부장대우 jungwon@chosun.com 
  사진 정정현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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