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의 '생명'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 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 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돗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천 부싯돌임을 보라.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감동과 깨달음☞ > ♡ 좋은 시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것은 길을 낸다 / 아란 이정자 (0) | 2011.01.15 |
---|---|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0) | 2011.01.15 |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고정희 (0) | 2011.01.15 |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저녁노을 / 도종환 (0) | 2011.01.14 |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도종환 (0) | 2011.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