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특집Ⅰ| 억새 산행] 강화 고려산~혈구산
-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쓸쓸한 인생을 위하여
호젓한 억새밭 거치며 역사와 전설 아우르는 낙조봉~혈구산 10.5km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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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조봉 남사면 억새 군락지. 쓸쓸한 가을날에는 하늘하늘 억새처럼 흔들리며 삶의 위안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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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 서른 살은 온다.’
왜 억새를 보면 최승자의 ‘삼십 세’의 시구가 떠오를까. 삼십은커녕 사십도 훌쩍 넘었는데…. 예전에는 사십 대가 불혹(不惑)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나이는 아닐까. 그러니 온몸으로 열심히 살 수밖에. 사는 게 팍팍하고 쓸쓸한 가을날에는 억새를 찾아가자. 백발 휘날리며 ‘죽은 듯 살아가는’ 억새와 함께 바람처럼 흔들려 보자.
고구려 고찰 적석사에 떨어진 붉은 꽃
“억새가 있긴 하지만, 만족하시진 못할 것 같습니다.”
강화군청 산림 담당자가 걱정을 한다. 고려산~혈구산 코스가 진달래 산행 코스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억새를 찾아오는 사람은 뜸하다는 말이다. 그렇고 보니 가을에 찾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고려산(436.3m) 낙조봉과 혈구산(466m)은 오래 전부터 억새 명소로 알아주는 곳이다. 군데군데 억새 군락이 누렇게 익어 가는 들판과 바다와 어우러져 제법 깊은 가을 풍광을 맛볼 수 있다.
출발점인 적석사에 도착하니 동행하기로 한 구명자(66) 여사는 벌써 도착해 쓰레기를 줍고 있다. 구 여사는 강화군청 소속 등산안내인이다. 일주일에 5일 도시락을 싸들고 산으로 출근한다. 연세가 많아 힘드시겠다고 하자, “말년에 산복이 터졌어요~” 하며 시골 사람 특유의 해맑은 미소가 돌아온다. 적석사 앞마당에는 두 그루 느티나무가 손을 잡고 있다. 그래서 부부목이다. 수백 년 손을 잡고 대웅전에 합장하는 형상을 보니, 전생에 큰 덕을 쌓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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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도 중앙에 자리해 조망이 뛰어난 혈구산 정상. 예로부터 혈구산은 마리산과 더불어 태양신이 머무르는 성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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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산의 원래 이름은 오련산(五蓮山)이다. 고구려 장수왕 때인 416년 천축조사가 이 산정의 연못(오련지)에 피어난 적, 황, 청, 백, 흑색의 다섯 송이 연꽃을 허공에 던져 그 꽃들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현 적석사), 황련사, 청련사, 백련사, 흑련사(묵련사) 5개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적석사에는 왜 붉은 꽃이 떨어졌을까. 절 왼쪽으로 잘 다듬어놓은 돌계단을 따르면 낙조대가 나온다. 낙조대 위의 낙조봉 일몰은 강화팔경 중 하나일 정도로 유명하다. 해가 지는 각도에 따라서 낙조봉보다 낙조대 일몰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천축조사가 던진 붉은 꽃은 일몰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낙조대에 나무데크를 깔아 말끔하게 단장해 불공드릴 자리도 넓게 마련했다. 난간에 서자 고려저수지, 석모도와 함께 드넓은 바다가 밀려들어온다. 자고로 유명한 기도 도량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절경과 신비로운 전설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3대 기도 도량인 낙산 홍련암, 남해 보리암, 석모도 보문사가 그러하다. 이곳 적석사도 경관과 전설 그 무엇 하나 뒤지지 않는다. 해수관음상 앞에서 하루 종일 절을 올리다 장엄한 노을을 맞는다면 어느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낙조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설렁설렁 오르면 낙조봉이다. 하나둘 억새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능선을 따르면서 점점 많아진다. 사실 낙조봉 남사면 일대는 온통 억새밭이지만, 능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낙조봉 안부에는 적석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다. 그리로 좀 내려가면 풍성한 억새 군무를 감상할 수 있다. 아직 피지 않은 억새는 붉은빛을 띠면서 하늘거린다. 낙조봉 일대 억새는 약 30년 전에 큰불이 나면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억새는 산불과 연관이 깊다. 산불이 휩쓸고 간 폐허와 죽음 속에서 스멀스멀 살아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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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만하고 호젓한 낙조봉 능선. 고려산은 산세가 웅장하면서 부드럽고, 혈구산은 험하면서 호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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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걷다 보면 널찍한 돌들이 널려 있다. 고천리 고인돌군이다. ‘세계문화유산 고인돌’이란 팻말이 없다면 고인돌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길섶에 있기에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다. 고인돌이 왜 산정에 자리 잡았을까. 그저 의문투성이다.
“예전에는 바다가 고려산 발목까지 들어왔어요. 강화는 땅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요. 간척하면서 넓어졌지요.”
구 여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재촉하니 전망대에 닿는다. 능선 왼쪽 아래로는 온통 진달래밭이다. 연분홍 물결이 휩쓸고 지난 자리는 잔치가 끝난 듯 쓸쓸하다. 잎은 점점 빛을 잃고 월동 준비를 하고 있다. 꽃피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던가.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꽃피던 이십 대를 너무나 찌질하게 보냈다는 걸. 다시 이십대가 온다면 멋지게 살 수 있을 텐데…. 무슨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놓치지 않을 텐데….
고인돌, 연개소문, 미군부대 사창가
말끔하게 단장한 데크길을 따르면 고려산 정상 앞이다. 정상은 군부대가 꿰차고 있어 출입금지 구역이다. 레이더기지를 비롯한 철탑들이 위압적이다.
“저기 철탑 왼쪽으로 오련지가 있는데, 지금은 쓰레기로 메워졌다고 해요.”
구 여사의 말이 마음을 찌른다. 고려산에서 가장 유서 깊은 보물이 푸대접을 받는 것이다. 예전에는 서해 일대를 감시하는 전략적 요충지라서 많은 미군이 근무했다. 그래서 부대와 가까운 부근리 근처에는 제법 큰 사창가까지 형성됐다고 한다.
부대 앞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고려산의 부드럽고 웅장한 산세가 느껴진다. 반면 건너편의 혈구산은 기운차고 호방하다. 어머니 같은 고려산의 품에서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경기도와 강화도의 지지(地誌)인 ‘강도지(江都誌)’에 따르면 고려산 기슭 부근리에서 연개소문이 태어났고, 치마대와 오정(五井)에서 무예를 갈고 닦았다. 치마대와 오정이 어디인지 나와 있지는 않지만, 고려산 능선의 바위지대와 정상의 오련지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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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군부대를 빙 둘러 혈구산으로 향한다. 한동안 급경사 내리막을 구르듯 내려오면 작은 고갯마루가 나온다. 이곳이 강화읍과 외포를 연결하는 옛 구비고개 고갯마루로 적막하고 호젓하다. 이 길을 따라 강화나들길 5코스인 고비고갯길이 지난다.
한 사람이 지나면 꽉 차는 오솔길을 따르고 싶은 유혹을 꽉 누르고 능선을 따르자 곧 고비고개다. 고려산과 혈구산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고비고개에서 혈구산까지는 세 개의 봉우리를 넘는다. 비알 길을 한동안 오르면 평평한 공간이 나오는데, 여기가 첫 번째 봉우리다. 이제 길은 순해지며 두 번째 봉우리 직전에 왼쪽으로 지름길이 나 있다. 산비탈을 타고 도는 멋진 길이다.
휘파람 불며 숲길을 지나면 세 번째 봉우리 앞. 여기도 왼쪽으로 지름길이 이어진다. 인생에서도 이런 오솔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많이 있을 것이다. 눈과 귀가 어두워 그 길을 찾지 못할 뿐. 호젓하게 이어진 오솔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오른쪽 비탈을 따라 올라야 한다. 능선에 다다르자 푸른 하늘이 쏟아지면서 억새가 휘날린다. 앞쪽 정상에서 도란도란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그곳으로 자석처럼 이끌려 저절로 발걸음 옮기다 보면 왈칵 시야가 열리면서 혈구산 꼭대기에 올라선다.
정상 산세가 뾰족하고 암반이 깔린 덕분에 혈구산 조망은 특급이다. 북쪽으로 걸어온 고려산 줄기가 한눈에 잡히고 그 뒤로 서해 건너 북녘의 땅이 아스라하다. 동쪽으로 강화읍과 염하 너머에 김포 땅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진강산과 마리산이 우뚝하다. 가야 할 서쪽 능선은 석모도를 향해 뻗어 가다 외포리에서 바다로 스며든다. 이 멋진 풍광을 더욱 빛내주는 것이 억새 물결이다. 정상 일대에 고루 분포한 억새들은 바람에 하늘거리며 초록에서 누렇게 변하는 들판, 푸른 하늘, 멀리 일렁거리는 바다와 어울려 한 폭의 서정적인 가을 풍경을 완성한다.
호젓한 억새밭 거치며 역사와 전설 아우르는 낙조봉~혈구산 10.5km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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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조봉 북사면의 강아지풀과 억새 군락지. 들판은 시나브로 누렇게 몸을 바꾸고, 별립산이 고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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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이 머무르는 혈구산
“산 이름이 왜 혈구인지 아세요.”
구 여사가 넌지시 묻는다.
“옛날에 이 산에 아홉 동굴이 있었대요. 헌데 아홉 번째 굴은 찾지 말라는 터부가 내려왔는데, 한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오질 못했답니다.”
그 동굴은 도대체 어디로 연결된 것일까. 민간에 내려오는 전설이지만, 알 수 없는 상징으로 가득하다. 강화도 최고봉인 혈구산은 예로부터 명산으로 주목받았지만, 민족의 성산 마리산에 눌리고 지금은 고려산 진달래의 명성에 가렸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은 그 진면목에 푹 빠질 것이다.
혈구산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적이 한번 있었다. 13세기 고려가 몽골의 침입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다. 고종(1213~1259) 때는 사태가 심각했다.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조정은 수도 개경을 버리고 강화로 피난을 가게 됐다. 국운이 다했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고 신하들의 사기도 저하되었다. 이때 풍수를 업으로 삼은 백승현이란 술관이 고종의 뜻을 알아차리고 왕업을 연장시킬 방도를 제시했다.
“혈구사(穴口寺)에 들러 ‘법화경’을 강론하시면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삼랑성 등에 궁궐을 짓는다면 영통한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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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최근 새로 단장한 낙조대는 불공드릴 자리를 널찍하게 마련했다. 하루 종일 절을 올리다 노을을 맞기 좋은 곳이다. 2 적석사 앞마당에는 부부송이 수백 년 자리를 지키고 있다. 3 고려산 진달래 전망대. 연분홍 물결이 휩쓸고 지난 자리는 잔치가 끝난 듯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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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현은 국교인 불법과 풍수설의 위력을 빌려 사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하들의 난상토론 끝에 백승현의 건의대로 삼랑성과 신니동에 궁궐을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궁궐공사는 시작만 했을 뿐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웠다. 많은 인력과 재물이 투입되는 큰 공사인 만큼 도리어 국력이 소진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혈구사에서 고종의 강론은 없었지만, 강화도 혈구산에 대일왕(태양신)이 머문다는 백승현의 견해는 현재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혈구산의 맥은 마리산까지 이어지고, 이곳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강화도가 하늘 또는 태양신과 밀접한 관계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혈구산 등이 최고의 명산이란 백승현의 주장이 후대에 널리 전승되어 ‘정감록’에도 강화도는 전국의 길지(吉地) 가운데 하나로 이름이 올라 있다.
“저는 여기서 고비고개로 내려갈게요. 오늘 좀 무리했어요.”
머리에 쓴 손수건을 고쳐 쓰며 구 여사가 입을 연다. 순간 펄럭~ 바람이 그녀의 흰 머리카락을 헝클어 억새처럼 흔들어 놓는다. 그랬구나. 그녀 역시 몸에 ‘죽은 듯 살아’ 가는 억새를 품고 있었구나. 작고 가냘픈 그녀의 뒷모습이 오랫동안 눈에 밟힌다.
배낭을 다시 멨다. 멀리 석모도 앞바다가 서서히 저물면서 빛난다. 반짝반짝 난반사를 일으키는 바닷물이 마치 거대한 빛의 동굴 같다. 그곳을 향해 서둘러 능선을 밟는다. 혹시 저곳이 혈구산의 아홉 번째 구멍은 아닐까.
산행길잡이
낙조봉 남사면, 혈구산 정상부에 억새 군락 펼쳐져
고려산과 혈구산 억새산행은 억새 군락이 형성된 낙조봉 일대와 혈구산 정상을 중심으로 코스를 짠다. 산꾼들은 진달래 산행 코스와 마찬가지로 고려산~혈구산~퇴모산 종주산행을 즐긴다. 적석사~낙조대(보타전)~낙조봉~고려산~고비고개~혈구산~퇴모산~강화농업기술센터 코스는 GPS 측정 약 10.5㎞, 5시간 30분쯤 걸린다. 이 코스를 역으로 타면 낙조봉 혹은 낙조대(보타전)에서 일몰과 함께 산행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다. 이 경우 산행이 좀 힘들고 돌아갈 때는 적석사에서 택시를 불러야 한다. 취재팀은 적석사에 차를 대고 농업기술센터로 내려와 택시를 타고 적석사로 되돌아와 일몰을 감상했다.
출발점은 적석사와 미꾸지고개를 선택할 수 있다. 미꾸지고개는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편하고, 적석사는 낙조대를 들를 수 있다. 낙조봉을 지나 적석사로 내려오는 갈림길까지가 억새 군락지다. 능선에서 보면 잘 안 보이지만, 적석사 하산로를 따라 조금 내려와 위를 올려보면 제법 풍성한 억새를 감상할 수 있다. 적석사 오른쪽 산길을 따라 억새 군락을 지나 능선에 붙는 것도 방법이다.
고려산에서 혈구산으로 가려면 고비고개(나래현)로 내려와야 하는데,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혈구산까지 3개의 봉우리를 넘는다. 중간에 산비탈을 타고 가는 지름길이 나 있어 힘이 덜 든다. 혈구산은 정상 일대가 억새밭이다. 그중 정상에서 찬우물약수 방향으로 내려가는 동쪽 능선이 가장 좋다. 흔들리는 억새 너머로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진 조망이 일품이다.
하산은 황련사와 안양대 강화캠퍼스가 가장 가깝다. 혈구산에서 퇴모산까지는 수풀 우거진 길이다. 퇴모산에서는 남쪽으로 시야가 열려 덕정산과 진강산이 잘 보인다. 하산은 강화농협기술센터, 좀 더 능선을 타고 외포고개로 내려올 수 있다.
교통 서울에서 강화 가는 버스는 신촌전철역 1번 출구 GS25 앞 정류장에서 3000번. 영등포에서 1번과 88번이 다닌다. 그밖에 인천, 부평, 일산 등에서 강화 가는 버스가 있다. 강화버스터미널(032-934-4363)에서 적석사 입구는 황청리행 38번 버스가 8:00 11:20 15:10 17:00 운행. 미꾸지고개(산화고개)는 30번 버스가 06:30~21:35까지 16회. 농촌기술센터는 4, 40번 버스가 06:10~21:30까지 26회 다닌다. 강화택시 032-934-7898, 032-934-3737.
맛집(지역번호 032) 뒤풀이는 외포리 횟집과 강화풍물시장 2층 식당가에서 밴댕이회무침에 인삼막걸리가 제격이다. 강화읍 신문리의 우리옥(932-2427)은 소박한 백반으로 유명한 집. 10여 가지 반찬을 내오는 백반(5,000원)이 훌륭하다. 병어찌개(1만 원)나 불고기(1만 원, 한우)를 추가하면 푸짐한 밥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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