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꿈이 어린 길… 금강 줄기를 따라 걸어본다
공주 고마나루 명승길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봉우리와 너른 들판 사이로 평화롭게 흐르는 금강에는 백제의 숨결이 오롯이 남아있다.강이라기보다 큰 개울처럼 얕고 완만한 물길은 충남 공주를 거쳐 부여로 흐르며
조금씩 폭을 넓히고 깊어지지만 여전히 기왓장에 새겨진 백제인의 미소처럼 순한 모습이다.
고마나루 명승길은 백제의 꿈이 어린 공주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금강의 소담스러운 강변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걷기 코스다.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으로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다.
- ▲ 공주 공산성의 서쪽문인 금서루. 비단결 금강이 감싸 흐르는 고풍스러운 성곽을 따라
- 걷다 보면 1500년 전 고대 왕국 백제의 향취가 가슴속으로 다가온다.
- / 김승완 영상미디어기자 wanfoto@chosun.com
트레킹의 출발점은 공주 한복판에 있는 공산성(公山城).
금강에 접한 해발 110m, 85m의 마주 선 봉우리 두 개를 에워싼 모습으로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았다.
그래서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성곽이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모습이다.
백제 문주왕 원년(475년)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후 성왕 16년(538년)
부여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5대 63년 동안 웅진시대의 방어 거점이었던 산성이다.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성곽의 총 길이는 2.6㎞.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 선조·인조 때 석성으로 개축했다.
금강교 인근 관광안내소에서 공산성 입구인 금서루(錦西樓)가 올려다보인다.
매년 4~10월 주말이면 왕성을 호위하던 수문병(守門兵) 교대식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금서루에서 오른쪽 성벽길로 방향을 잡았다.
성은 동그스름한 모양이어서 어느 방향으로 돌아도 다시 출발지로 돌아온다.
성벽은 높이 2.5m, 폭 3m 정도로 보수돼 있다.
성벽을 따라 노란색 바탕에 봉황 등이 그려진 수많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 쌓은 성벽길을 오르니 공주 시내와 금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성안에는 10여개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는데, 성벽길을 따라가다 눈에 띄는 유적을 돌아보면 된다.
금서루에서 성벽 쪽으로 오르는 대신 성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잠시 피난했을 때
이곳에 머물렀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쌍수정을 만날 수 있다.
백제의 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된 추정왕궁지,
왕이 신하들과 연회 장소로 사용한 임류각,
정유재란 당시 왜적을 평정하고 선정을 베푼 명나라 장수 송덕비 등도 보존되어 있다.
산성의 북쪽 구간에 다다르니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겨울이라 강바닥을 드러낸 곳이 곳곳에 눈에 띄고,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겨울 철새들이 가끔 정적을 깰 뿐이다.
성벽 아래로는 아찔한 해안 절벽이 강변까지 이어진다.
강 건너편으로 공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산등성이에서 계곡으로 이어진 산성길은 가파른 내리막이다.
아래에는 영은사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세조 4년(1458년)에 지은 사찰로 임진왜란 때는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은사 앞에는 금강에 접한 성벽 안쪽으로 연지(蓮池)가 자리하고 있다.
산성 내부에서 사용할 물을 보관하기 위해 돌로 쌓은 깊이 9m의 연못이다.
북쪽문인 공북루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창살 문이 달린 콘크리트 구조물을 발견했다.
안내 표지판을 보니 잠종(蠶種)냉장고다.
일본 강점기 때 금강에서 채취한 얼음을 이용해 뽕잎이 피어나는 시기(5월)에 맞춰
누에의 부화를 늦추는 일종의 지하 냉장창고라는 설명이다.
성벽길을 따라 공북루와 공산정을 지나면 다시 금서루에 닿는다.
◇금강과 유적 어우러져
공산성에서 내려와 금강교를 건너 정안천생태공원으로 향한다.
금강에 합류되는 정안천 양쪽을 걷기 좋은 생태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자그마한 하천을 따라 각종 야생화단지를 만들고 원두막 등을 배치해 걷기에 지루하지 않다.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 ▲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 설치된 흙으로 만든 토끼 조형물.
- / 김승완 영상미디어기자
생태공원에서 연미산(239m)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금강변을 따라가다 연미산 기슭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9만9000㎡)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8월 이곳에서 열린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설치됐다 남겨진 국내외 작가의 작품 5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공원 입구에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나무, 흙 등 자연 재료를 주로 이용해 만든 작품들이
소나무·자귀나무 등의 숲과 어우러져 배치돼 있다.
길 중간에 전망대와 평상, 계단 등이 마련돼 있어 쉬어갈 수 있다.
연미산에서 강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산모퉁이 넘어 금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물은 흐름이 워낙 잔잔해 어디 쪽으로 흘러가는지 가름하기 힘들 정도였다.
강폭이 서서히 넓어지더니 지난해 10월 완공된 공주보(길이 280m)가 보였다.
보(洑)는 무령왕을 상징하는 봉황이 비단수(금강)를 지키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봉황의 머리 및 날개, 여의주를 상징하는 조형물도 설치됐다.
공주보를 건너 시내 쪽으로 가다 보면 한옥 10여채가 모여있는 공주한옥마을이다.
공주시가 전통 한옥의 구들장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숙박촌이다.
가족 단위 여행객들을 위해 단지 내 오토캠핑장도 마련했다.
한옥마을에서 공주국립박물관은 지척 거리다.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은 송산 남쪽 비탈길에 자리 잡고 있다.
웅진시대 백제왕릉 8기가 모여 있다.
1997년 영구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 후 고분의 내부를 직접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송산리고분재현관을 먼저 들러야 한다.
공주시내에 있는 황새바위 순교지는 19세기 말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어 순교한 곳.
순교자들을 기리는 추모탑과 예배당, 고적한 산책길이 들어섰다.
자그마한 동산에 자리한 순교지에 오르니 트레킹을 시작했던 공산성에 눈에 들어왔다.
공산성 앞은 공주에서 유명한 먹자골목이 있다.
쌈밥, 밤요리, 따로 국밥, 칼국수, 장어구이 등 공주의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여행수첩
공주국립박물관→무령왕릉→황새바위 순교지→산성시장→공산성(14㎞, 4시간 30분 소요)
공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나와 금강교를 건너면 왼쪽에 트레킹의 출발지인 공산성이 있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8번, 25번) 등을 이용해 공산성 앞에 하차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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