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통인·옥인·통의·효자동
-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천천히 걷는 것도 서촌 탐방의 재미 중 하나다. 국화꽃 화분이 좁은 골목길을 환하게 만들고 있다.
- /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서촌(西村)은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동네다. 인왕산 자락의 예스러운 동네인 이곳엔 낡고 남루하기보다는 따스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면서도 그 사이사이에는 가장 세련되고 개성 있는 가게들이 보물찾기처럼 숨어 있다. 홍대 앞 거리, 가로수길, 삼청동길처럼 분위기 좋기로 이름난 길들이 비슷비슷하게 상업화하는 중에도 고유의 정취를 지키며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 서촌이라 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 종로구 통인·옥인·통의·효자동 등이 이 지역에 해당한다. 좁은 골목길을 누비며 찾아낸 먹을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들을 소개한다. 끌리는 곳이 있으면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한 곳 두 곳 구경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옥인동·통인동]
이상의 집
시인 이상(1910∼1937)이 살았던 집터에 들어선 문화공간. 현재 한옥이 이상이 살던 집으로 알려져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가, 이상이 떠난 후 새로 지어진 건물로 밝혀지면서 지정이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내년 4월 17일까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제비다방’으로 운영된다. 월요일 휴관. (02)741-8374
빈티지공방
손때 묻은 인형과 장난감들이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손으로 직접 만든 옷이나 액세서리들도 구입할 수 있다. 건물 1층의 주차공간 안쪽에 있어 지나치기 쉽다. 주차장 입구에 그려진 ‘빈티지공방’ 표지를 찾으면 된다. (02)725-2532
티쉬운트
오래된 조명, 선풍기 등의 소품이 멋스러운 앤티크 숍. 화려하게 장식된 찻잔 등도 구경할 수 있다. 대부분 독일 등 유럽에서 들여온 제품들이다. (02)720-0109
영화루
50여년간 이 길을 지킨 중국 음식점. 고추간짜장이 유명하다. 짜장 소스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먹다 보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2009년 방영된 MBC 드라마 ‘잘했군 잘했어’ 배경이 되기도 했다. (02)738-1218
동양백화점
철인28호, 아톰, 마징가Z 등의 인형이 반겨 주는 잡화점. 각종 그릇·부엌칼 등 주방용품, 장식품, 소형 완구들도 다양하다. 주로 일본에서 구입해온 물건이 많다고 한다. (02)732-2001
슬로브레드 에버(EVER)
지난 7월 문을 연 빵집. 유화제 같은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발효종으로 천천히 빵을 만든다고 한다. 겉에 깨가 촘촘하게 붙은 흑임자 고구마빵이 고소하다. (02)734-0850
바르셀로나
산책길에 간단하게 술 한잔 하고 싶을 때 들러볼 만한 바. 셰리주(브랜디 등을 섞어 알코올 함량을 높인 와인)를 맛볼 수 있다. 셰리주는 알코올 도수가 18% 정도로 와인보다 높지만 달콤한 맛이 강해 역한 술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02)735-1117
옥인길26
주소를 그대로 상호로 삼은 카페. 벽돌과 통유리로 마감한 겉모습은 현대적이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천장에 보·서까래 같은 한옥의 구조가 남아 있다. 유리창 너머 거리 풍경을 보며 쉬어가기 좋은 곳. (02)733-2296
옥인상점
서촌의 명소와 이야기를 담은 책 ‘서촌방향’의 저자 설재우씨가 만든 문화공간. 이 자리에 있었던 ‘용오락실’의 게임기처럼 동네 흔적이 남아 있는 물건과 사진 등을 구경할 수 있다. 한국어와 함께 영어·일본어·중국어로 표기된 서촌 안내지도를 나눠준다. (02)737-4788
남도분식
분식이라는 간판을 걸었지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밥집에 가깝다. 만둣국 국물이 담백하다. 튀긴 새우·오징어를 상추에 싸서 양념장과 함께 먹는 ‘상추튀김’은 독특한 간식거리. 재료를 준비하는 오후 3∼5시 잠시 문을 닫는다. (02) 723-7775
카페 와이엠(YM)
이름의 영문 머리글자가 ‘YM’으로 같은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 실내를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몄다. 커피, 차 종류 외에도 맥주 같은 간단한 주류도 판매한다. 요즘처럼 쌀쌀할 땐 따끈한 글뤼바인(와인에 계피·레몬 등을 넣고 끓인 음료)도 좋다. (02)395-6722
박노수 가옥
한옥과 중국식, 양식(洋式) 가옥의 특성이 섞여 있는 주택. 서울시 문화재자료 1호로 지정돼 있다. 동양화가 박노수 화백이 살던 집이어서 ‘박노수 가옥’으로 불린다. 현재는 종로구가 매입해 박물관을 조성하기 위한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다.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담장 너머로 건물 일부를 볼 수 있다.
수성동 계곡
옥인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오면 푸른 나무와 계곡이 눈앞에 나타난다.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이다. 서울시가 1971년 이 자리에 들어섰던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해 지난 7월 공개했다. 깔끔하게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야트막한 서촌 너머로 서울 도심 고층빌딩이 서 있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그래픽=김현지 기자, 사진=이경민·이신영·백이현 영상미디어 기자
[통의동·효자동]
디미
경복궁 돌담길 모퉁이에 있는 카페 겸 이태리 식당이다. ‘디미’는 ‘음식의 맛을 알아간다’는 한자 ‘지미((知味)’에서 만든 이름. 매일 오전 밀가루를 반죽해 파스타의 생면을 만들고, 유기농 야채를 쓴다. 파스타 소스는 강하지 않고 양도 많지 않아 오히려 면과 재료의 맛을 잘 살린다. 깔끔하고 담백하다. 가게 안의 독특하고 예쁜 그릇과 컵들은 가게를 운영하는 이희재·안지윤씨가 여행을 다니면서 모아온 것들이다. 그릇을 따로 찾는 단골들이 있어 판매도 한다. 파스타 1만3000~1만5000원. (02)730-4111
대림미술관
서촌은 ‘갤러리촌’이란 이름으로 대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동네다. 하지만 미술에 관심 없거나 갤러리에 가는 게 낯설다면 대림미술관부터 시작해도 좋다. 문외한이어도 보고 즐길만한 전시 프로그램이 많다. 요즘엔 크리스털 명품으로 유명한 ‘스와로브스키’ 전시가 열리고 있다. (02)720-0667
유로 구르메
샌드위치 맛이 어쩐지 풍만하다 했더니, 큼직하게 썬 치즈가 들어가 있다. 오픈키친에서 샌드위치와 그라탕 등을 만들고, 치즈, 와인, 올리브 오일 등 수입 식재료도 파는 델리다. 특히 치즈 종류가 다양하다. 합리적 가격대의 와인도 추천한다. 샌드위치 9000~1만2000원. (02)739-7711
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서 가져온 메밀을 쓰고, 메밀 함량은 60%다. 손으로 반죽한 면을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즉석에서 삶아 내놓아 면발이 차지고 탱탱하다. 메밀콩국수와 메밀비빔국수, 메밀칼국수가 있다. 큼직한 접시에 얇게 부쳐 나오는 메밀부침은 담백하고 고소하다. 국수와 부침 모두 7000원. (02)734-0367
MK2
처음 갈 때 앉았던 의자가 마음에 들어 다시 찾아갔더니 없다. 팔렸단다. 사진가 이종명씨가 운영하는 이곳은 ‘가구 카페’다. 이씨가 유럽에서 직접 골라온 의자들로 카페를 꾸미고, 팔기도 한다. 탁자와 조명 등도 판매한다. (02)730-6420
퍼블릭
낮에는 카페, 밤에는 펍이다. 오붓하게 모여 앉아 커피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 때문에 사랑방 분위기에 더 가깝다. 다양한 국적의 맥주와 국적 불문의 안주 조합이 이상적이다. ‘치즈 앤 칠리 프라이’ ‘홍합라면’ 등이 인기다. (02)722-1506
두오모 북스 앤 쿡스
빨간 벽돌벽에 하늘색 문이 눈에 띄는 이태리 식당이다. 공들인 음식을 아담하고도 조용한 곳에서 먹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장수 인기 메뉴인 ‘루꼴라 올리브 오일 파스타’는 느끼하지 않고 올리브 오일 특유의 향미가 느껴진다. 파스타 2만원 내외. (02)730-0902
가가린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도록(圖錄)이나 미술잡지를 싼값에 살 수 있는 중고책 서점이다. 위탁판매를 하고 싶다면 연회비 2만원, 평생 회비 5만원을 내면 된다. (02)736-9005
여수한두레
겨울과 봄에는 새조개, 여름에는 하모(갯장어), 가을에는 전어를 내놓는 식당이다. 전어는 너무 마르지도, 기름지지도 않다. 하모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는 하모 샤부샤부는 담백하고 신선하다. 새조개 샤부샤부 (2~3인용) 8만원. (02)737-4343
- 특급호텔 총주방장 출신이 셰프로 있는 '가스트로 통'.
가스트로 통
웨스틴 조선, 신라, 리츠칼튼, 하얏트 제주 등 특급호텔의 총주방장을 지낸 스위스 베른 출신의 요리사 롤랜드 히니가 이곳의 셰프다. 셰프의 명성 때문에 주눅 들어 갔다가, 잘난 척하지 않는 음식에 마음이 놓이는 식당이다. (02)730-4162
르 프렌치
이해하기 힘든 메뉴와 그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가격 때문에 프렌치를 꺼린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소박한 단품 메뉴가 많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소 어깨 살과 사태를 24시간 동안 재운 뒤 뭉근한 불에서 6~8시간 조려내는 ‘뵈프 부르기뇽’(2만3000원)이 인기다. (02)739-0930
- 입력 : 2012.11.29 00:10
서촌 토박이 설재우씨 추천, 꼭 알리고 싶은 가게 4곳
서촌의 과거와 현재를 충실히 기록한 '서촌방향'의 저자 설재우씨(서촌라이프 발행인)는 서촌에서 나고 자랐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살고 있는 작가는 동네가 점점 변해가는 것이 안타까워 2009년부터 서촌을 알리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퇴출 위기에 있던 서촌의 마지막 오락실 '용오락실'을 인수해 지역문화 창작공간 '옥인상점'을 냈다. 그는 '서촌 지역 이야기꾼'으로 불리길 원한다.그는 "문화인과 유명인들이 서촌을 주목한다는 기사가 많이 나가면서 이 동네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새로 생긴 예쁜 가게들이 주목을 받았지 인터넷도, 홍보도 할 줄 모르는 동네 가게들은 정작 알려지지가 않아 안타까웠다"고 했다. 설씨가 꼽는 서촌 가게들의 매력은 바로 '스토리'다. 설씨가 "꼭 알리고 싶은" 가게 4군데를 소개한다.
①적선시장 할머니 떡볶이
이 동네 떡볶이는 빨간 국물이 흥건한 여느 떡볶이와 다르다. '떡볶이'라는 이름에 충실하게, 떡을 볶아서 만든다. 한평 남짓한 공간에 비닐 천막으로 가게를 만들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100세 가까운 김정연 할머니가 40여년간 장사를 해온 공간이다.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기까지 한 할머니지만 어버이날에는 꽃을 열댓 개 받을 정도로 동네에서 인기가 좋다. 젊었을 적 채소와 꽃을 팔고, 나이 든 후 떡볶이를 팔아가며 악착같이 모은 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유산으로 기탁한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적선시장(혹은 금천교시장)의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솥뚜껑 같은 철판에 빨간 의자가 놓인 곳이 가게다.
하루 재료가 다 떨어지면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후 2시 30분이면 문을 닫는 날이 많다. 그만큼 재료가 신선하다. 명색이 중국집인데 배달도 하지 않는다. 사장의 고집과 철학이 강한 만큼 맛도 특별하다. 예를 들면 깐펑지(깐풍기·1만8000원). 소스가 많아 튀김이 다 젖어버린 깐풍기가 아니라 닭을 감싸는 튀김이 바삭할 정도로 내놓는다. 튀김옷엔 보통 물과 녹말가루, 계란을 넣는데 이 집에선 계란을 빼고, 소스도 건조할 정도로 적게 넣는다. 가게 문을 닫고 난 다음에는 '동네지킴이' 순찰을 돌 정도로 사장의 동네 사랑이 지극하다. 청운초등학교 후문에 있다.
③아담집
식탁 4개 정도 들어갈 정도로 아담한 공간에서 체구가 아담한 할머니가 음식을 내놓는다. 모든 메뉴 가격은 4000원. 비빔밥, 비빔국수, 백반 등이 있는데 할머니 손맛 때문에 뭘 시켜도 맛있다. '우리 할머니'가 해준 밥상 같다. 특히 이 집의 비빔국수는 끝맛까지 첫맛처럼 깔끔함을 유지한다. 반찬으로 나오는 아삭한 생채는 가히 최고다. 적선시장 골목을 끼고 배화여대 쪽으로 100m 정도 쭉 들어오다 보면 우측에 있다.
④뽀빠이 화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뽀빠이 화원을 보면, 맞는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꽃집이다. 이곳의 '뽀빠이 아저씨'는 없는 꽃도 주문하면 구해다 주고, 작은 금액이라도 늘 열심히 꽃다발을 만들어준다. 졸업식, 밸런타인데이,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같은 특별한 날이면 다른 꽃집의 꽃값은 천정부지로 뛰지만, 이 집에선 늘 똑같은 값을 받는다. '뽀빠이 아저씨'의 다른 별명은 맥가이버다. 서촌 일대에 국립서울맹학교가 있는데, 아저씨는 언젠가부터 이곳 학생들의 카세트 플레이어 등 전자기기를 고쳐주기 시작했다.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이 고장 난 전자제품을 들고 찾아가기 시작했다. 전자파와 꽃향기가 뒤엉킨 아이러니한 꽃집이다. 통인시장 입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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