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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서울한양도성

[20130504]숭례문(남대문)복원 준공식날에 하는 순성놀이-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5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3. 5. 5.
 

30909

 

 
 
 2013년 05월 04일(토)  
숭례문(남대문) 복원 준공식날에 하는 순성놀이 -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를 다녀오다.
- 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ㆍ남산 연계산행 -
   맥가이버의 '숭례문(남대문) 복원 준공식날에 하는 순성놀이 -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 코스
 

서울역→남대문(숭례문)→대한상공회의소→소의문터→순화빌딩→배재공원→정동교회→이화여고→서대문터(돈의문)→강북삼성병원(경교장)

→월암근린공원→홍난파기념관→딜쿠샤ㆍ권율장군집터→옥경이슈퍼→범바위→인왕산 정상(삿갓바위:338m)→청운공원(윤동주시인의언덕)

→자하문고개→창의문(자하문)→창의문쉼터→북악산 정상(백악마루:342m)→숙정문→말바위 쉼터→와룡공원→서울과학고 후문→경신고교

→서울시장공관→혜화문(동소문)→한성대입구역→삼선주유소→낙산 정상(駝駱山:125m)→동대문성곽공원→동대문(흥인지문)→오간수문

→이간수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한양공고→광희문→신당동 성당→장충체육관 뒤→신라호텔 담→반야트리호텔(舊타워호텔)→국립극장

→N서울타워(루프테라스)→남산 정상(팔각정:262m)→잠두봉포토아일랜드→남산분수대→백범광장→힐튼호텔→남대문(숭례문)→서울역

 

 맥가이버의 '숭례문(남대문) 복원 준공식날에 하는 순성놀이 -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 이야기

 

 

서울성곽의 탄생


국가를 상징하는 궁궐과 종묘 · 사직이 세워지면서 이를 방어할 도성(都城)이 필요했다.

이른바 성곽(城郭)의 구축이다.

성곽이 서고서야 도성의 규모가 갖춰지는 것이며, 명실공히 수도의 면모를 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원래는 도성도 한양 신도(新都) 건설 당시 동시에 쌓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궁궐과 종묘 · 사직의 건설이 먼저였기 때문에 곧 착수하지 못하다가,

태조 4년(1395) 9월 궁궐과 종묘의 공사가 끝날 무렵 도성 축조령이 떨어졌다.

즉 9월 26일에 좌 · 우 정승에게 다음 해 정월부터 각 도의 장정들을 징집해 도성을 쌓을 것을 명했던 것이다.


태조는 "성(城)은 국가의 울타리요, 강폭한 적을 방어하고 민생을 보호하기 위해 없을 수 없는 것"이라며

직접 산에 올라 성 쌓을 곳을 살폈다고 한다.

정도전은 윤 9월에 백악 인왕산 남산 낙산에 올라

이 네 개의 산을 연결한 총 길이 59,500척의 성터를 실측, 성곽의 기본을 잡았다.

남산을 제외한 백악 인왕산 낙산이 모두 종로구 지역임을 감안하면 서울 성곽 · 도성의 55% 이상이 종로인 셈이다.


도성축조와 관련,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

도성을 어느 규모로 쌓아야 할 지 고심하던 중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밤 사이 눈이 내렸는데,

지금의 도성 울 안쪽은 눈이 녹고, 바깥 쪽에만 하얀 눈이 줄을 그은 듯 남아 있었다.

이에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그 선을 따라 도성을 쌓았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는 새 왕조에서 불교의 쇠퇴를 막기 위해 인왕산 서쪽 장삼에 고깔 쓴 스님 형상의 선바위를

도성 안에 넣고자 인왕산에서 무악으로 연결시키는 도성을 쌓을 것을 주장했다.

러나 이것이 정도전의 반대로 무산되자

"이후 불자는 유생의 책 보따리나 져 나르는 심부름꾼을 면치 못하겠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곽 축조공사

 

오늘 날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보로도 올라있는

서울 성곽(둘레 약 17킬로미터)은 태조 5년(1396) 1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49일간 계속되었다.

공사 진행 방법은 59,500척의 성터 중 600척을 1區로 정하고, 각 구마다 천자문으로 표시했다.

예컨대 백악산 동쪽에서 天字로 시작, 낙산 남산 인왕산을 거쳐 백악산 서쪽에서 字로 마쳤다.

59,500척의 성터를 600척씩 97字 區로 나누면 1,300척이 남는데,

이것은 인왕산 정상에 성을 쌓지 않아도 좋을 자연 석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전체의 성터를 600척씩 97字 구로 나누고,

1자 구를 다시 100척씩 6號로 나누어 동북면(백악산 동쪽 정상-숙정문),

강원도(숙정문-동소문), 경상도(동소문-남대문), 전라도(남대문-옛 서대문),

서북면(옛 서대문-백악산 서쪽 정상) 등의 구획으로 각 도(道) 인구비례에 따라 일을 분배했다.

 

이때 경기 충청 황해도의 장정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전년도 궝궐 공사에 동원했기 때문이고,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의 국방을 감안해 서북면 안주 이북과 동북면 함주 이북의 장정들도 제외했다고 한다.


축성공사는 완벽을 기하기 위해 이중 삼중의 책임자와 감독자를 두어

그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성벽 바깥 쪽 돌에 감독자의 출신지와 성명 등을 새기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17킬로미터의 성을 쌓느라 부실하고 조잡한 데가 있었다.

때문에 1396년 8월부터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의 백성 7만 9,400명을 징발해 2차 공사를 또 했다.

2차 공사는 1차 공사에서 완성하지 못했던 부분의 완성과 여름철 장마에 무너진 곳의 개축,

낮은 성문의 보수, 누각을 짓는 일 등에 주력했다.

4대문 4소문 등 8개 성문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승려 · 군인들을 동원한 성곽 보수공사는 계속되다가

세종 4년(1422)에 와서야 도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한편 성곽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다시 부서지고, 그 후 또 보수하기를 거듭했다.

일제 강점기의 도시계획과 6. 25 한국전쟁 때도 성문과 벽이 많이 부서졌다.

현재 남아 있는 서울성곽은 대체로 태조 · 세조 · 숙종 때의 것이라 한다.

삼청동 성북동 장충동 일대에 성벽이 남아 있고, 흥인지문(동대문)과 숙정문 · 홍화문이 남아 있다.

국보1호로 지정되었던 숭례문(남대문)은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 얼마 전 불타고 지금은 복원공사 중이다.

2008년 2월 10일 완전소실된 숭례문(남대문)은 5년 3개월의 복원공사 끝에 오늘(2013년 5월 4일) 준공식을 하였다.

 

4대문과 4소문

 

성곽의 축성과 더불어 자연히 성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로서의 문들도 생겼다.

서울 성곽은 전체 둘레 약 17킬로미터 구간 요소마다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小門)을 만들어 냈다.

이른바 '4대문 4소문'이다.


4개의 대문은 유교의 5상(5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에 의해

동쪽에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에 돈의문(敦義門), 남쪽에 숭례문(崇禮門), 북쪽에 숙정문(肅靖門)을 두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해당되는 곳에 보신각(普信閣)을 두어 도읍지의 이상과 정치이념을 나타냈다.

또한 대문과 대문 사이의 요충지에 작은 문을 두어 관문으로 활용토록 했으니

혜화문(동소문), 광희문, 소의문(서소문), 창의문(자하문)이 그들이다.

 

 

순성(巡城)놀이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은 동서남북으로

바깥쪽은 외사산(아차산, 덕양산, 관악산, 북한산)이 둘러싸고 외수(한강)가 흐르며,

안쪽으로 내사산(낙산, 인왕산, 목멱산, 백악산)과 내수(청계천)가 있는 명당이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를 건국한 뒤 내사산을 잇는 서울성곽을 축조하였는데 2/3는 토성이었다.

그 뒤 세종이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숙종 때 보수공사를 고쳐 오늘에 이르렀다.

 

서울 도성의 둘레는 약 사십여리(18)인데,

순성(巡城)놀이는 봄과 여름철에 성안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성곽 둘레를 따라서 한 바퀴 돌며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하고 과거 급제를 비롯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조선 정조 때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라는 책에는

도성을 한 바퀴 돌아서 도성 안팎의 화류(花柳) 구경을 하는 것이 멋있는 놀이인데,

새벽에 출발하여 저녁종 칠 때에 다 볼 수 있다.

산길이 깎은 듯 험해서 지쳐서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하였다.

 

2013년 05월 04()에 맥가이버와 함께 하는 '순성놀이'는

서울역에서 만나 숭례문을 출발하여 내사산(인왕산, 백악산, 낙산, 목멱산)과

4대문(돈의문, 숙정문, 흥인문, 숭례문), 그리고 4소문(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을 거치며,

600년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생태도시 서울을 두 발로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는 여행이다.

 

지난 2008년 2월 10일 남대문(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5년 3개월의 복원공사로 마무리 되어

당일(5월 4일)에 남대문(숭례문) 준공 기념식을 한다니 더욱 뜻깊은 순성놀이가 되리라 여기면서...

 

 

 

  그간의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 일주'에 관하여...

 

 --☞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를 꿈꾸다가

지난 2006년 3월 2일자 모 일간지에 [건축가 황두진의 서울성곽 하루에 돌기]를 보고...


2006년 3월 05일(일)에 그 신문을 들고 '서울성곽일주'를 위한 답사를 나서 홀로 '서울성곽 길찾기 일주'를 하였었고,

두 번째는 2006년 4월 30일(일)에 좋은 님들과 함께 11시간 20분에 걸쳐 '서울성곽일주'를 하였으며,

세 번째는 2006년 9월 22일(금)~23일(토) 양일간에 걸쳐 '야간 서울성곽일주'를 한 적이 있었으며,

네 번째는 2009년 2월 22일(일)에 10시간 10분이 걸쳐서 보다 완전한 '서울성곽일주'를 하였으며,

그러니까 '서울성곽일주'는 네 번째가 제대로 된 ‘서울성곽일주’인 것이었다.


처음과 두 번째, 세 번째 '서울성곽일주'는 북악산 구간이 통제되었었고,

야간에 통행이 불가한 관계로 북악산 성곽 구간을 빼고

창의문(자하문)에서 청와대 앞을 지나 삼청동을 거쳐 감사원길을 따라

와룡공원으로 우회하여 북악산의 나머지 성곽을 걸었었다.

 
그러다가
2006년 4월 1일에 북악산 지역 서울성곽이 처음 개방된 '홍련사 코스'는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 구간으로 1.1㎞이고,
그리고
2007년 4월 5일 2단계로 '말바위 쉼터 코스'가 와룡공원-숙정문-청운대-백악마루-창의문으로 4.3㎞가 개방되면서
이 두 지역이 개방됨으로써 북악산 구간의  서울성곽을 완전하게 답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한 팀당 100명씩만 입장(2시간30분 동안 관람)을 시키는 제한적 개방인지라
'인터넷 예약이나 현장에 선착순' 등을 하면서
'서울성곽일주'를 하기에는 곤란함이 있어 완전?한 서울성곽일주를 할 수 있는 '언젠가'를 기다리며 지내는데...
 2007년 7월 1일을 기해 사전예약이나 선착순이 아닌 무제한 자유 탐방이 실시되었다.
 
해서 보다 완전한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를 하고자 날을 잡다가 2008년 3월 1일에 하려고 계획 중이었는데
2008년 2월 10일 20시 50분에 발생한 남대문(숭례문)화재로 허탈함에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를 연기하게 된다.
-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의 마지막 여정으로 하는 '남대문(숭례문) 야경 감상'이 압권이었기에...-

다시 차일피일하다가
2009년 2월 22일(일)에 하게 된 네 번째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는
이전보다는 충실한? '서울성곽일주'이었지만 남대문(숭례문) 야경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은 컸다.
 
그리고 남대문(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고 복원공사를 하며 가림막 속에 숨어 있어 아쉽지만
다섯 번째로 2010년 4월 25일(일)에는 09시간 27분에 걸쳐서 '서울성곽일주'를 하였고,
여섯 번째로 2010년 7월 10일(일)에는 11시간 10분에 걸쳐서 '서울성곽일주'를 하였고,
일곱 번째로 2012년 8월 25일(토)에는 약 9시간 10분에 걸쳐서 '서울성곽일주'를 하였으며,
 
남대문(숭례문)이 지난 5년 3개월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남대문(숭례문) 복구 준공식을 하는 2013년 5월 4일에
여덟 번째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를 9시간 20분에 걸쳐서 의미 있게 하였습니다. 
 

 

 

'숭례문(남대문) 복원 준공식날에 하는 순성놀이 -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의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누군가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다.
맥가이버는 '산 따라 강 따라 길 따라' 걷는 것을 죽고사는 차원이 아닌 즐기는 차원에서 걷는다.
즉, 좋은 길을 걷다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느끼고, 감동 받고, 깨닫는 것을 즐긴다.
 

 

 
 '모든 만남은 걷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풍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맥가이버가 '때론 함께, 때론 홀로' 산행이나 여행, 도보를 하면서 후기를 주로 사진으로 작성함은
인간의 만남이 또한 유한함을 알기에 어떤 연유로 비록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추억 속에서 함께 하고자 함이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다 표현치 못하는 무능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든다면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숭례문(남대문) 복원 준공식날에 하는 순성놀이 -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를 다녀오다 - 5부를 시작하며...

 

 

▼ 18시 52분 - 남산 팔각정에서 인증샷

 

 

 

 

 

 

 

 

▼ 남산엔 5개의 봉수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제3봉수대'를 복원한 것이라고...

 

▼ 18시 56분 - 잠두봉포토아일랜드를 향해...

 

 

 

 

 

 

▼ 19시 01분 - 잠두봉포토아일랜드

 

 

 

 

 

 

 

▼ 잠두봉포토아일랜드에서 인증샷

 

 

 

 

 

 

 

▼ 19시 03분 - 이제 남대문(숭례문)을 향해...

 

 

 

 

 

 

 

 

 

▼ 19시 12분 - 삼순이계단에서 낙조를 보니...

 

 

 

 

 

▼ 19시 13분 - 안중근의사기념관

 

 

 

 

 

▼ 19시 15분 - 백범김구선생 동상

 

▼ 성재 이시영선생 동상

 

 

 

이시영(李始榮) 

호 : 성재(省齋)·시림산인(始林山人)

출생 연월 : 1869.12.3

사망 연월 : 1953.4.19

 

생애

1891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부승지(副承旨)에 이어 우승지(右承旨)에 올라 내의원(內醫院)·상의원(尙衣院)의 부제조(副提調)를 겸하고,

다시 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궁내부(宮內部) 수석참의(首席參議)를 역임하였으나,

1896년 장인인 김홍집(金弘集)이 살해되자 사직하였다.

 

1905년 외부교섭국장(外部交涉局長)에 재등용되고,

1906년 평남 관찰사로 나갔다가 1908년 한성(漢城)재판소장 ·법부 민사국장(民事局長)·고등법원 판사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자 만주로 망명, 류허현[柳河縣]에서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

독립군양성에 힘쓰다가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법무총장 ·재무총장을 역임,

1929년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창당에 참가, 초대 감찰위원장에 피선되고,

1933년 임시정부 직제개정 때 국무위원 겸 법무위원이 되어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귀국하였다.

 

그 후 대한독립촉성회(大韓獨立促成會) 위원장으로 활약하다가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비민주적 통치에 반대하고 1951년 부통령을 사임,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53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노환으로 죽었다.

국민장으로 정릉(貞陵) 남쪽에 안장되었다가 1964년 수유리로 이장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업적 및 활동

본관 경주(慶州). 호 성재(省齋)·시림산인(始林山人). 본명 성흡(聖翕). 1869년 12월 3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885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 1886년 가주서(假注書), 1887년 형조좌랑(刑曹佐郞)을 거쳐,

1888년 세자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로서 서연관(書筵官)이 되었다.

 

 

 

 

▼ 19시 20분 - 최근 복원된 성곽을 따라...

 

 

 

 

▼ 19시 24분 -

 

 

 

▼ 19시 31분 - 남대문(숭례문) 옆 '수선전도' 위에서는...

 

 

▼ 숭례문(남대문)복원 준공식날에 하는 순성놀이-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를 마치고 인증샷

 

 

 

 

 

 

 

 

 

 

 

 

▼ 19시 39분 - 남대문(숭례문) 야경을 배경으로 인증샷...

 

 

 

 

 

 

▼ 19시 52분 - 뒤풀이

 

 

 

▼ 20시 50분 - 뒤풀이를 마치고 서울역으로 이동하면서...

 

 

 

 

 

 

 

 

 

 

 

▼ 21시 00분 - 정확히 11시간만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서...

 

 

 

☞ 여기서 '숭례문(남대문) 복원 준공식날에 하는 순성놀이 -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를 다녀오다 를 마친다.

 

 

 
 2013년 05월 04일(토)  
숭례문(남대문) 복원 준공식날에 하는 순성놀이 - 서울성곽(서울한양도성)일주를 다녀오다.
- 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ㆍ남산 연계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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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부[숙정문→와룡공원→혜화문→한성대입구역→낙산 정상→동대문성곽공원→동대문(흥인지문)]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 4부[동대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광희문→반야트리호텔→국립극장→N서울타워→남산 각정]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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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을 이루면 그 은 또다른 이의 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