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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의 맛 세상] 수리취떡·준치만두·앵두편을 아시나요

by 맥가이버 Macgyver 2013. 9. 12.

[김성윤의 맛 세상] 수리취떡·준치만두·앵두편을 아시나요

 

  • 김성윤 대중문화부 기자
  • 입력 : 2013.09.1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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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편은 추석뿐 아니라 잔칫날도 먹어… 대보름엔 오곡밥·묵은 나물·약식
    端午엔 도행병·앵두화채·제호탕… 명절 음식 다양했는데 어느덧 사라져
    어설픈 '퓨전 향토 음식' 실망스러워… 스토리 담긴 옛 節食들에 관심을

    
	김성윤 대중문화부 기자 사진
    김성윤 대중문화부 기자

    송편은 추석에 빠질 수 없는 명절 음식이다. 그런데 기사를 쓰려고 취재하다 보니, 송편은 추석에만 먹던 떡이 아니었다. 정월 대보름날 송편으로 차례를 지냈고, 중화절(음력 2월 1일)에도 송편을 먹었다. 음력 3월 3일인 삼짇날과 초파일(석가탄신일), 음력 5월 5일 단오(端午), 6월 15일 유두절(流頭節)에도 송편을 빚었다는 기록이 있다. 명절이나 잔칫날에 흔히 준비한 떡이었다. 내친김에 절식(節食), 즉 명절에 먹는 음식을 찾아봤다.

    설날을 대표하는 절식은 떡국이다. 떡국 국물은 본래 꿩고기로 뽑았다. 하지만 사냥을 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면 꿩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서민들은 닭고기를 썼다. 여기서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이 유래했다고 한다. 음력 1월 15일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묵은 나물, 약식을 먹었다. 찹쌀·차수수·차조·콩·팥으로 지은 오곡밥을 이웃과 나누었다. 부자들은 오곡밥보다 고급인 약식을 먹었다. 약식(藥食)은 찹쌀과 밤, 잣, 대추 따위를 섞고 간장과 참기름, 꿀로 양념해 만든다. 일반 멥쌀도 구경하기 힘든 시절 찹쌀을 주재료로 한 데다 약으로 치던 꿀까지 넣었으니, 약식이라 부른 건 과장이 아니었으리라. 대보름엔 부럼도 했다. 잣, 호두, 밤 등 견과류와 엿을 깨물며 일년 내내 무탈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기를 기원했다.

    한식(寒食)은 설이나 추석만큼 큰 명절이었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중국 춘추시대 진(晋)나라 충신 개자추는 모함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나자 어머니와 산에 숨어 살았다. 진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관직에 부름 받았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불을 놓으면 산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끝내 그는 나오지 않고 타 죽었다. 미리 준비해둔 차가운 음식, 즉 한식을 먹으며 그의 혼령을 위로하게 됐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단오에는 수리취떡과 도행병, 도미면, 준치 만두, 앵두편, 앵두화채 따위를 먹고 마셨다. 수리취떡은 수리취나 쑥을 멥쌀과 섞어 만든 절편이고, 도행병은 복숭아·살구가루에 꿀이나 설탕을 버무리고 꿀 팥소를 넣고 잣가루를 묻힌 단자떡이다. 도미면은 도미살을 전유어로 부쳐 고기와 채소, 당면과 함께 끓인 고급 전골이고, 준치 만두는 준치의 살을 넓게 포 떠서 다진 쇠고기 소를 넣고 동그랗게 빚은 만두다.

    앵두편은 앵두즙에 설탕이나 꿀을 넣고 조린 일종의 젤리이고, 앵두화채는 앵두 씨를 빼고 꿀이나 설탕에 재웠다가 끓여서 식힌 물을 부어 만든다. 상류층에서는 앵두화채보다는 제호탕을 마셨다. 오매육(烏梅肉)과 사인(砂仁), 초과(草果), 백단향 등 한약재를 꿀에 재워 끓여뒀다가 냉수에 타 마시는 음료로, 임금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먹었을 정도로 몸에 좋은 음료이다.

    음력 6월 15일 유두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밀가루로 만든 유두면(流頭麵)을 먹었고, 7월 7일 칠석(七夕)에는 복숭아화채나 수박화채를 마시며 더위를 잊었다. 칠석에도 밀국수나 밀전병을 먹었는데, 밀의 수확이 여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복(三伏)에는 지금처럼 민어탕, 개장국(보신탕), 계삼탕(삼계탕) 등 복달임 음식으로 지친 몸을 보했다.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에 먹던 음식은 복날과 비슷하다.

    음력 11월 중, 양력 12월 22일쯤 찾아오는 동지(冬至)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를 지나면서부터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데, 우리 조상은 이를 '태양의 귀환'으로 여겨 반가워했다. 해를 본떠 동그랗게 빚은 새알심을 넣고 팥죽을 쑤었다. 동지를 '작은 설날'이나 아세(亞歲)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자기 나이와 같은 수로 새알심을 팥죽에 넣어 먹었다.

    절식이 그렇게 다양했다는 게 놀랍고, 송편과 떡국 등 소수를 제외하면 보기도 힘들 만큼 사라졌다는 게 놀라웠다. 한반도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제철 음식이며, 그렇기에 요즘 각광받는 이른바 '로컬 푸드'이기도 했다. 음식마다 재미난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재료 자체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 드러낸다는 점에서 현대인 입맛에 오히려 더 부합한다는 장점도 있다.

    요즘 전국 지자체마다 향토 음식을 개발하느라 애쓴다.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관광의 낙(樂)은 결국 경치 그리고 음식으로 이뤄지는데, 어쩌면 경치보다 음식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솜씨가 조상만 못해서인지 새로 개발했다는 음식이 전통 음식보다 나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 같은 요리 선생에게 배운 듯 지역 특색이 없고 천편일률적인 '퓨전 향토 음식'이라 실망스러웠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비빔밥과 불고기를 먹고 나면 그다음은 뭐가 있느냐고 궁금해한다. 잊힌 절식을 되살려낸다면 여러 고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