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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43)] 경북 안동 예던길 - 풍광을 참을 수 없어 … 퇴계는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14. 1. 9.

[그 길 속 그 이야기] (43) 경북 안동 예던길

 

[중앙일보] 입력 2013.11.08 00:10 / 수정 2013.11.08 09:32

풍광을 참을 수 없어 … 퇴계는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1 퇴계는 분명 이 자리에 서서 청량산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노래했을 것이다. 지금은 전망대가 들어선 언덕에서 바라본 청량산 풍경.


길에도 인연이 있다. 연재기획 ‘그 길 속 그 이야기’를 4년째 이어 오다 알게 된 이치다. 이를테면 경북 봉화의 ‘승부역 가는 길’은 겨울을 두 번 기다린 다음에야 걸을 수 있었다. 오지마을 승부리로 들어가는 길은 흰 눈 수북하게 쌓여 있어야 장면이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유배 중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벗을 만나러 걸었다는 전남 강진의 백련사 가는 길은 백련사 동백이 붉은 계절에 걸어야 했다. 길바닥 뒹구는 붉은 꽃잎 밟지 않겠다고 두 발에 잔뜩 힘이 들어갈 때 다산의 먹먹했던 심사의 한 조각이라도 겨우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북 안동에도 그런 길이 있었다. 예던길. 퇴계 이황(1501∼70)이 걸었다는 오솔길이다. 퇴계가 누구인가. 500년이 지난 오늘도 조선 선비 문화의 정신으로 추앙받는 지성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괴테가 걸었다는 ‘철학자의 길’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퇴계의 예던길이 있었다. 익히 유래를 들어 알고 있었지만 여태 이 길을 걷지 못한 건, 외려 이 길을 아낀 까닭이었다. 예던길은 일부 구간이 지금을 사는 후손들의 문제로 막혀 있었다. 퇴계의 정신을 헤아리면 지금의 문제는 사사로울 수 있다고 여겨 마냥 기다렸다. 그러다 오늘까지 왔다. 지금도 온전한 꼴을 회복한 건 아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소식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사람들이 말이다. 낙동강 따라 이어진 옛길을 못 걸으니 산을 올라 한참을 에둘러서라도 옛 선비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러면 됐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인연이 닿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2 도산서당. 3 퇴계종택.

퇴계의 이상향 청량산으로 가는 길

옛 선비에게는 유산기(遊山記)의 전통이 있었다. 산에 놀러 간 일을 적은 것이니, 요샛말로 산행기다. 그런데 선비가 산행을 글로 남기는 마음은 지금과 달리 무거웠나 보다. “유산은 독서와 같다”는 퇴계 말씀도 있었으니, 산에 가는 일이야말로 공부요 수행이라는 뜻일 터이다.

퇴계는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사람이다. 퇴계는 여기서 태어나 외지에서 벼슬살이를 했던 십수 년 세월을 제외하고 여기서 살다 여기에 묻혔다.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는 퇴계종택 지척에 도산서원과 퇴계 묘소가 있다. 여기에서 낙동강 물길 따라 사오십 리(里) 올라가면 청량산이 있다.

말하자면 예던길은 퇴계가 청량산으로 놀러 가던 길이다. 열세 살 때 숙부 송재 이우를 따라 처음 청량산을 오른 이후로, 청량산은 퇴계 일생에 이상향과 같은 곳이었다. 자신을 ‘청량산인’이라 불렀으며, 예순네 살에도 이 길을 따라 청량산을 간 기록이 전해온다.

퇴계 사상의 근원을 이루는 주자(朱子)가 고향에 있는 무이산을 예찬해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남긴 것처럼, 퇴계는 예순세 살에 청량산까지 낙동강 물길 따라 12개 굽이를 노래한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을 남겼다. 퇴계에게 청량산 가는 길이 그저 놀러 가는 걸음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퇴계는 예던길에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퇴계의 진가는 오히려 문학에 있는지 모른다는 해석이 있을 만큼, 하나같이 빼어난 시편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퇴계가 남긴 시편이 아니다. 퇴계 이후로 청량산을 둘러본 사람이 100명이 넘고, 전해오는 시편은 1000수가 넘는다. 당시 선비에게 청량산 유람은 일종의 시대 현상이었다.


4 퇴계의 제자 금난수가 지은 고산정. 5 백운지 마을에서 바라본 낙동강 물길. 졸졸졸 여울물 소리가 들린다.

녀던길·예던길 그리고 퇴계오솔길

‘고인(古人)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 몯 뵈 / 고인(古人)을 몯 뵈도 녀던 길 알페 잇네 / 녀던 길 알페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퇴계가 남긴 ‘도산십이곡’ 언학(言學) 3편 전문이다. 해석도 어려운 옛 글자를 그대로 옮겨 적은 이유는, 두 번이나 등장하는 ‘녀던 길’이라는 구절 때문이다. ‘녀던 길’은 풀이하면 ‘옛 성현이 걸었던 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진리의 길이고 사람이 살아가야 할 도리다. 도산십이곡 언학 3편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옛 성현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 또한 성현을 뵙지 못했네 / 옛 성현을 뵙지 못해도 그분들이 가던 길은 앞에 놓여 있네 / 그 길이 앞에 있는데 나 또한 아니 가고 어찌 하겠는가’.

예던길의 원래 이름은 ‘녀던 길’이었다. 발음이 어려워, 옛길이라는 의미를 얹어 예던길로 이름을 바꿨다. ‘퇴계 오솔길’이라는 이름도 있다. 안동시가 7년쯤 전 복원사업을 시작하며 새로 지은 이름이다. 지금도 세 이름이 섞여서 쓰인다.

예던길을 지도에서 보면 약 18㎞ 길이가 된다. 도산서원∼퇴계종택∼이육사문학관∼고산정을 지나 청량산 입구까지다. 그러나 지금 이정표에 의지해 걸을 수 있는 구간은 백운지 마을에서 가송리까지 절벽 위를 걷는 약 4㎞ 구간과 전망대에서 농암종택까지 산길을 걷는 약 6㎞ 구간 정도다. 옛길 일부는 아스팔트 도로와 겹치고, 다른 일부는 길이 끊겼고, 또 다른 일부는 흔적도 없다.

안동시가 예던길 복원사업을 시작하면서 전망대에서 낙동강을 따라 걷는 오솔길을 냈는데, 길이 통과하는 산자락의 주인이 길을 막아 버렸다. 예던길 복원사업이 차질을 빚은 이유다. 지금은 여러 우회 탐방로를 조성했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이를테면 퇴계가 극찬한 단사마을은 아예 빠져 있다.  

6 학소대 가는 오솔길.


“무정한 저 강산, 늙은 나를 알아볼까”

‘산봉우리 봉긋봉긋 물소리 졸졸 / 새벽 여명 걷히고 해가 솟아오르네. / 강가에서 기다리나 임은 오지 않아 / 내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아침 해가 솟는 시간. 청량산에 함께 가기로 한 친구를 물소리 들리는 강가에서 기다리고 있다. 급한 마음에 먼저 출발하며 친구에게 편지를 남긴다. ‘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퇴계가 친구 이문량에게 남긴 시다. 전망대에 올라 멀리 솟은 청량산 봉우리를 바라보면, 강가로 내려와 졸졸졸 여울물 소리 듣다 보면 퇴계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노래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감히 짐작한다. 퇴계는 아마도 이 풍광을 견딜 수 없어 청량산을 이상향으로 삼았을 것이다. 임금이 벼슬을 내리면 온갖 핑계를 대고 고향으로 돌아온 연유도, 알고 보면 이 그림 같은 장면을 가슴에 품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길이 주는 풍경은 사람을 압도한다.

‘옛날 어린 시절 여기에서 물고기를 잡았는데 / 서른 해 티끌 세계 풍월에 져버렸네 / 강산의 옛 모습을 나는 알지만 / 무정한 저 강산은 늙은 나를 알아볼까’.

중년 사내가 낙동강 굽이쳐 도는 연못 앞에 서 있다. 옛날 물고기를 잡고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세월이 흘렀지만 산과 강은 옛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강산은 늙어 버린 나를 알아볼까.

퇴계가 예던길을 걷고 남긴 ‘미천장담(彌川長潭)’이란 시다. ‘무정한 저 강산은 늙은 나를 알아볼까’라는 시구가 덜컥 소리를 내며 가슴에 걸린다. 읽고 또 읽으니 왠지 낯익다. 후세의 여러 시인이 퇴계의 이 시구를 베끼거나 인용한 것이 분명하다.

강가 자갈밭에 주저앉아 한참 미천장담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 사람을 생각했다. 스무 번 넘게 벼슬을 뿌리치며 고집스레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 두 다리 뻗기도 힘든 작은 방에서 건강을 해치며 책을 읽은 사람, ‘매화나무에 물 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사람, 그리고 이 풍경을 평생 그리워한 사람. 강물에 손을 담갔다. 그리고 정성껏 손을 닦았다.

●길 정보=트레일의 기준으로 보자면 예던길은 부족한 것투성이다. 옛길을 온전히 복원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곳곳이 포장도로여서 길 상태도 좋지 못하다. 그러나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낙동강 물길 따라 청량산 어귀까지 북쪽으로만 올라가면 되기 때문이다. 퇴계종택부터 가송리까지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좋다. 어차피 다 퇴계가 걸었던 길이다. 그래도 자동차가 있으면 불편하다. 연계 교통편이 부실해, 넘어온 고개를 다시 넘어야 한다. 이런 경우엔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걷기여행 전문 승우여행사(swtour.co.kr)가 가송리에서 백운지로 넘어가는 4㎞ 구간을 걷는 상품을 운영한다. 5만3000원. 02-720-8311.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www.aftf.or.kr)에 문의하면 예던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054-856-3013.
 
글·사진=손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