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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인왕산 범바위에서 서울 야경을 본 적 있나요

by 맥가이버 Macgyver 2020. 7. 18.

[아무튼, 주말] 인왕산 범바위에서 서울 야경을 본 적 있나요

 

2020년 여름 서울의 밤

한여름, 도시의 낮은 완상(玩賞)의 여유를 허하지 않는다. 머리 위엔 이글거리는 태양이, 발 아랜 불타는 아스팔트가 숨 막히게 한다. 여기 하나 더. 올여름엔 입과 코를 막은 마스크까지 더해졌다. 올여름 이중고 겪는 낮을 피해 도시를 즐기려면 밤으로 도망쳐야 한다.

땅거미 내려앉고 뜨끈한 열기가 점차 식어갈 무렵 도시의 밤을 즐길 채비를 하자. 색다른 공기, 낭만적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무더위와 코로나를 피해 여름밤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한적한 공간도 찾았다. 준비물은 단 하나. 기다림이다. 해가 지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요즘 등산 입문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인왕산. 탁 트인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일몰과 야경을 감상하는 야간 등산도 인기 있다. 성곽길을 따라 초보자도 정상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김종연·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레깅스족 '산린이'의 야간 등산

지난 7일 해 질 무렵 인왕산(338m)에 올랐다. 인왕산은 코로나 이후 등산에 입문한 20~30대 '산린이(등산+어린이, 등산 입문자를 일컫는 신조어)'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산. 초보도 오르기 쉽고 대중교통 이용도 편리하다. 암벽과 성곽길이 어우러지고 동서남북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인왕산의 다이내믹한 뷰가 인증샷을 부른다. 해가 길어진 요즘엔 일몰 무렵 산에 올라 일몰과 야경을 감상하고 내려오는 '야등(야간 등산)'의 열기가 뜨겁다. 직장인 장시영(34)씨는 "퇴근 후에 바로 야간 등산을 즐기기 위해 산으로 퇴근하는 '퇴등(퇴근 후 등산)'도 인기"라고 했다. 산린이를 꿈꾸는 기자도 야간 등산의 로망이 있었다. 탁 트인 정상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 맛이 궁금해졌다. 레깅스를 꺼내 입고 야등족(야간 등산 족) 틈에 꼈다.

인왕산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사직공원에서 출발해 표지판만 잘 따라가도 성공이다. 인왕산자락길을 지나 성곽길로 올라가면 범바위와 인왕산 정상으로 갈 수 있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레깅스를 입고 오르기에도 충분하다. 반바지 입거나 슬리퍼 신고 정상을 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범바위에서 한숨을 돌린다. 광화문과 경복궁, 남산타워 등 서울 도심과 일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범바위에서 정상으로 가는 가파른 암릉이 고비 중의 고비다. 인왕산 정상엔 삿갓을 엎어놓은 듯한 삿갓바위가 있다. 인왕산 포토존이다. 해가 넘어갈 무렵이 되자 등산객의 수는 점점 더 많아졌다. 서울 야경 명소를 찾아온 외국인도 많았다. 저마다 자리를 잡고 서울의 밤을 눈과 카메라에 담는다. 인증샷도 빠지지 않았다.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인왕산에서 밤늦게까지 여름밤의 운치와 야경을 즐겼다. 가만히 멍 때리는 시간도 좋았다. 서울 도심에서 가볍게 야간 등산을 더 즐겨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인왕산은 동서남북으로 난도가 다른 코스로 등산이 가능하다. 사직공원에서 범바위, 인왕산 정상, 부암동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많이 이용하지만 자신의 수준에 맞게 무리하지 않고 코스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 야간 등산이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들은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고 등산객이 많은 우면산(293m)이나 아차산(295m) 등 서울 도심과 가까운 낮은 산을 목적지로 삼는 게 좋다. 우면산과 아차산도 산린이들이 많이 찾는 야간 등산 코스다.

등산이 영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걸을 수 있는 둘레길 산책으로 서울의 밤을 즐기면 된다. 배봉산은 동대문구 전농동과 휘경동에 걸쳐 있는 해발 108m 낮은 산. 배봉산둘레길은 배봉산을 순환하는 4.5㎞의 숲길이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만들어진 지그재그 데크길과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 등 색다른 길을 만날 수도 있다. 배봉산 전망대에선 멀리 남산타워와 롯데월드타워가 눈에 들어온다. 일출과 야경도 감상할 수 있다. 배봉산둘레길은 야간에도 안전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LED 조명이 설치돼 있다. 늦은 여름밤에도 더위를 피해 숲길을 걸을 수 있다. 천장산하늘길은 동대문구와 성북구에 걸쳐 있는 천장산(140m)에 조성된 숲길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시험림(홍릉숲)과 경희대 사유지가 있어 일반에 개방되지 않았던 천장산 남쪽 산책로를 정비해 올 1월 천장산하늘길을 개통했다. 국립산림과학원(홍릉숲)에서 경희대 평화의 전당 뒤, 이문어린이도서관으로 이어지는 1.76㎞ 코스는 조용하고 깊은 산을 즐길 수 있는 숲길이다. 야간 조명이 설치돼 있어 한여름밤 산책도 문제없다.

서울 야경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는 인왕산 범바위에서 야간 등산을 기념해 인증샷을 남겼다.

 

한강에서 튜브 모양의 보트를 타고 일몰과 야경을 즐기는 ‘튜브스터’

 

50년간 버려졌던 유진상가 하부 공간을 공공미술로 되살린 ‘홍제유연’. 홍제천을 따라 설치미술과 미디어 아트 작품 등이 설치돼 있다. /김종연·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물길 따라 서울 산책

올여름엔 북적이는 한강 대신 서울의 도심 하천을 따라 걸어보는 건 어떨까. 홍제천은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에 걸쳐 흐르다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하천 따라 이어지는 길 따라 유유히 여름밤 산책을 즐기기 좋다. 졸졸 흐르는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홍제천 폭포마당'을 만나게 된다. 폭 60m, 높이 25m에 달하는 폭포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는 한여름 더위를 식혀준다. 직장인 김은정(47)씨는 "서울에 이런 폭포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보고만 있어도 시원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폭포마당은 다음 달까지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인공폭포 뒤 산책로는 '연희숲속쉼터'와 '안산자락길'로 이어진다. 안산은 등산 입문과 야간 등산 코스로 인기가 많다. 안산자락길은 산허리를 한 바퀴 돌면서 걷는 길이다. 홍제천과 함께 안산을 가볍게 둘러보기엔 안산자락길이 좋다. 홍제천 위를 지나가는 내부순환도로 교각엔 명화 사진을 걸어놓은 '홍제천 미술관길'이 있다. 박보검, 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남자친구'에도 등장했던 곳으로 홍제천을 걷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지난 1일 홍제천에 볼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50년간 버려졌던 유진상가 하부 공간을 빛의 예술길로 되살린 '홍제유연'이다. 그동안 막혀 있던 유진상가 지하 250m 구간이 개통되면서 끊어졌던 홍제천 구간도 이어졌다. 유진상가는 1970년 북한군의 남침을 대비해 대전차 방호 목적으로 홍제천을 복개해 만든 고급 주상복합이다. 건물을 받치는 기둥 100여 개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설치미술과 조명예술, 미디어 아트, 사운드 아트 등 여덟 작품이 설치됐다. 빛과 소리, 색, 기술이 결합한 작품이 지하 공간을 예술로 물들인다. 지하 공간의 색다른 변신은 여름밤 홍제천과 함께 돌아보기에도 좋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까지.

은평구, 서대문구, 마포구에 걸쳐 흐르는 불광천은 홍제천과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간다. 한때 쓰레기와 악취로 가득했던 불광천은 꽃과 수초가 어우러진 생태 하천으로 변신했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오리와 물고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불광천 산책을 즐기기엔 선선한 저녁이 좋다. 음악 분수 쇼가 열리는 시간(오후 6시 40분, 7시 40분, 8시 40분)을 맞추면 더 좋다. 컬러 레이저를 사용한 화려한 불빛과 물줄기가 음악과 어우러져 여름밤의 낭만을 더해준다.

양재천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지난해 서초구가 양재1교와 2교 사이에 200m 장밋빛터널을 조성하면서 밤 산책이 더 즐거워졌다. 양재천의 명소인 칸트의 산책길과 아이리스원에는 조명 효과가 더해진 쿨링포그가 설치돼 여름밤 운치를 더한다. 매헌다리에 설치된 미디어 글라스는 투명 소재를 활용해 낮에는 양재천 풍경을 볼 수 있고 야간에는 미디어아트 작품과 생활 정보 등을 제공하는 캔버스가 된다. 강남구와 서초구를 가로지르는 양재천은 물길 따라 숲길과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도심 속 휴식처다. 밤에도 걷기 좋은 양재천에서 더위를 식혀보길 권한다.

 

양재천의 밤을 빛으로 물들이는 장밋빛터널.

 

일몰 후 무지갯빛 조명을 밝힌 서울식물원 온실.

 

탁 트인 호수를 따라 걷기 좋은 서울식물원 호수원 야경.

 

‘홍제유연’이 생기면서 개방한 홍제천 구간에서 시민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강정미 기자·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여름밤 한적한 서울 산책

코로나 확산으로 수도권에 방역 조치가 강화되면서 운영을 중단한 시설이 많아졌다. 서울식물원도 그중 한 곳. 서울식물원의 랜드마크인 온실과 주제정원, 마곡문화관 등 주제원은 문을 닫았지만 열린숲과 호수원, 습지원 등의 야외공간은 이용이 가능하다. 탁 트인 호수와 습지, 한강까지 이어지는 야외 공원은 개인 방역을 지키며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야경을 감상하며 밤 나들이도 즐길 수 있다. 서울식물원 온실은 일몰 후 무지갯빛으로 물든다. 온실에 설치된 256색 LED 조명이 색다른 장관을 보여준다. 오후 9시 30분까지 화려한 온실의 불빛을 즐길 수 있다.

문화비축기지도 문을 닫았다. 월드컵경기장 인근 매봉산에 둘러싸인 문화비축기지는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계기로 석유를 비축하기 위해 만든 저장고를 재생한 공간이다. 실내 공간은 문을 닫았지만 야외 공원은 열려 있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한적하게 밤 산책을 즐기기 좋다. 거대한 석유 탱크와 구조물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문화비축기지를 둘러싼 해발 94m 매봉산은 가볍게 올라볼 만하다. 월드컵경기장과 성산대교, 한강이 어우러진 일몰과 야경을 감상하기 좋은 포인트다. 매봉산에서 내려다본 문화비축기지 야경도 멋있다.

서울로 7017은 야경을 감상하며 여름밤을 보내기 좋은 장소다. 야외 공간이라 언제나 열려있다. 매일 저녁 푸른빛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원형 조명이 고가를 밝힌다. 서울로 7017 주변엔 1970~1980년대 도시화의 상징 건물인 서울스퀘어, 르네상스식 건축물인 문화역 서울 284, 국보 제1호 남대문, 고딕양식 석조건물인 남대문 교회 등 근현대 건축물이 즐비하다. 이 건물들의 야간 경관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다. 만개한 수국과 연꽃, 원추리 등 여름꽃과 느티나무, 소나무, 보리수나무는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서 계절의 생기를 더해준다.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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