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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마운스토리] 여름 물한계곡과 겨울 설경으로 유명

by 맥가이버 Macgyver 2020. 8. 1.

[8월 마운스토리] 여름 물한계곡과 겨울 설경으로 유명

영동 민주지산
옛 문헌에는 19C까지 백운산으로 나와…일제 <조선지지자료>에 민주지산 등장

민주지산 물한계곡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여러 봉우리에서 발원한 물이 합류하면서 수량은 매우 풍부하다.

 

여름엔 계곡 좋은 산을 많이 찾는다. 계곡이 좋으면 자연 산도 깊고 숲도 좋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격언에 따라 높은 산은 깊고 좋은 계곡을 필수적으로 만든다. 한국의 3대 계곡인 지리산 칠선계곡(18㎞), 설악산 천불동계곡(7㎞), 한라산 탐라계곡에서 알 수 있듯 남한의 가장 높은 산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운 계곡을 만드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들 3대 계곡과 길이나 수량면에서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는 영동 물한勿閑계곡이 바로 민주지산岷周之山(1,241.7m)에 있다.

충북 영동에서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민주지산과 삼도봉에서 발원한 물이 합류해서 흐르는 물한계곡은 총 연장 20㎞ 가까이 된다. 첩첩산중 높고 깊은 산만큼이나 원시림이 잘 보존돼 있다. 남쪽으로는 민주지산휴양림, 북쪽으로는 잣나무숲 등을 통해 원시림을 만끽할 수 있다. 원시림에는 우리나라 전체 식물종의 16% 정도가 자생하고, 각종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실제로 물한계곡과 민주지산휴양림 등 남북에서 이틀 머무는 동안 여러 마리의 뱀과 너구리를 직접 목격했다.

민주지산을 중심으로 각호산·삼도봉·석기봉 등에서 흘러나온 물은 물한계곡으로 합류해서 물한천·초강천으로 흐른다. 길이가 긴 만큼 용소·옥소·의용골폭포·음주골폭포 등 다양한 폭포와 소도 곳곳에 형세를 이뤄 아름다운 계곡을 자랑한다. 아름다움도 기세를 제압하거나 압도적이지 않은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칠선계곡이나 천불동, 탐라계곡에서 보여 주는 압도적인 폭포나 깊은 소沼는 없지만 수량면에서는 전혀 뒤지지 않는다. 산이 깊어 한여름에도 계곡의 물에 한기가 돈다고 알려져 있다. 피서객들이 여름 한더위에 물한계곡을 많이 찾는 이유다. 물한계곡은 오히려 인간 친화적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게 물에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지산은 특히 설경이 좋아 겨울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사진 C영상미디어

 

‘물한’이란 지명은 하천이 흐르는 물한리에서 유래했다. <여지도서>에 상촌면 물한리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흔히 알려진 지명유래로 물이 차다고 해서 명명됐다고 전해지나 영동 향토사학자들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물한이란 지명이 명명됐다”고 설명한다. 부정적 의미의 ‘勿’에 한가할 ‘閑’은 한가할 수 없는 의미라는 것이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고, 평지가 없는 지역에서 충분히 유래할 만한 지명으로 판단된다.

임대경 영동 향토연구회 회장은 “지금이야 임산물을 채취하거나 가공해서 비싸게 내다팔 수 있지만 옛날에는 임산물만으로 먹고살기 힘들었다.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 정도밖에 안 됐다. 그래서 임산물 채취하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해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물한이란 지명이 유래한 것 아닌가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확한 지명유래에 대해서 아직 정설이 없다고 임 회장은 밝혔다.

 

대륙성기후로 여름 집중호우, 겨울 폭설 잦아

물한계곡 중간쯤 다래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은 “물한계곡에는 여름철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등산객만으로 보면 겨울에 훨씬 더 많이 찾는다. 겨울의 설산은 남한의 어느 산보다 적설량도 많고 풍광이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실제 영동군의 기후는 연평균 11.8℃이고, 1월 평균기온 영하 3.5℃, 8월 평균기온은 25.9℃로 연교차가 다른 지역보다 더 심하다.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나타낸다. 여름철엔 집중호우, 겨울철엔 폭설이 특히 잦다. 민주지산은 한반도 중간에 우뚝 솟아 눈구름이나 비구름이 산을 넘지 못해 민주지산을 중심으로 무거운 눈과 비를 전부 흩뿌리고 가벼운 구름만 홀가분하게 지나가는 모습이다. 따라서 여름엔 피서객, 겨울엔 설산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겨울 설산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 불과 20여 년 전 있었다. 물한계곡 입구에 세워진 민주지산 순직자 위령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비석은 1998년 4월 민주지산에서 천리행군을 하던 당시 육군5공수특전여단 23대대 소속 장병 6명이 기상급변으로 인해 갑자기 쏟아진 폭설로 순직하는 사고를 당해, 이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4월인데도 엄동설한을 능가하는 추위를 대처하지 못해 유명을 달리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은 특히 날씨에 예민하고 조심한다고 전했다.

민주지산의 지명유래는 ‘물한’만큼 애매하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명유래집에는 ‘民周之山, 珉周山, 민두름산이라고도 하며, 이 산을 상촌면 물한리에서 바라보면 삼도봉부터 각호봉까지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가 솟아 있어 산세가 밋밋해 보인다고 한다. 산세가 민두름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민주지산이라는 지명이 유래됐다고 전한다’고 설명한다.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 되는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조금 정리를 하자면, 영동 최고 높이의 산으로서 민주지산은 주변 산세를 두루 내려다보고 있다고 해서 한자로 산이름 ‘岷’자에 두루 ‘周’자를 사용해서 명명했다는 뜻이다. 다른 한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산이름을 네 글자를 가진 산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왜 네 글자를 가지게 됐을까’부터 ‘민두름인지 민주인지 지명을 어떻게 갖게 됐는지’ 유래를 밝혀내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그렇다면 옛날 고지도나 기록에는 민주지산을 어떻게 표기하고 있을까? 고지도나 옛 문헌을 살펴보기 전에 담당 행정기관에서 어떻게 소개하는지 먼저 보자.

영동군청에서는 ‘정상에 오르면 각호산, 석기봉, 삼도봉을 비롯해 주변의 연봉들을 두루 굽어볼 수 있다 해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해발 1,241.7m의 민주지산을 뚫고 지나는 주능선의 길이는 15㎞에 달한다. 주봉을 중심으로 1,202m의 각호산, 1,242m의 석기봉, 1,178m의 삼도봉 등 곧게 선 산들이 늘어서 있어 산세가 무척 장쾌하다. 삼도봉에서 각호산까지 4개 봉우리를 지나는 구간은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코스이다. 또한 산이 깊어 처음 민주지산을 찾은 사람이라도 원시림과 같은 산의 자연미에 감탄한다. 충북, 전북, 경북의 세 지역에 걸쳐 있고, 각 시군에서 정비한 등산로가 편안해 언제든지,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민주지산은 이름에 걸맞게 주변 산들을 두루 내려다볼 수 있다. 옛 이름과 같이 정상에 구름이 자주 낀다.

 

 

무주군청에서는 ‘해발 1,242m의 민주지산은 전북 최동북단에 위치하여 충청, 전라, 경상 삼도를 가르는 삼도봉을 거느린 명산으로 옛 삼국시대는 신라와 백제가 접경을 이뤘던 산이기도 하다. 이 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충북 영동군의 절경 물한계곡과 경북 김천 황악산 기슭의 직지사가 유명하고, 동남쪽으로는 마애불상의 미소를 머금은 석기봉과 태종 14년(1414) 전국을 8도로 나눌 때 삼도의 분기점이 된 삼도봉이 웅거하여 삼남을 굽어본다’고 소개한다. 김천시에서는 민주지산에 대한 소개는 없고, 삼도봉에 대한 내용만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이 관련 행정기관에서 민주지산의 현상과 실태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지, 실제 옛기록이나 고지도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청도 영동편에 나오는 게 아니라 전라도 무주현에 나온다. ‘(백운산) 무풍 북쪽 15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충청도 영동현에는 아예 찾아볼 수 없고, 인근 황간현편에서 동쪽의 황악산과 서쪽의 백화산을 소개하고 있다.

민주지산을 설명하다가 왜 뜬금없이 백운산이 등장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잠시 충청도라는 행정구역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충청도라는 용어는 고려 말 공민왕 5년(1356)에 처음 생겼다. 이후에도 소속 군현은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로 왔다 갔다 하는 혼선을 빚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편에 ‘조선 태종 13년(1413)에 여흥·안성·음죽·양성·양지를 떼어 경기에 붙이고, 경상도 옥천·황간·영동·청산·보은을 충청도에 붙였다. 목 4, 군 12, 현 38개를 관할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로부터 100여 년 뒤인 1530년 발간된 관찬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조차 백운산(현재 민주지산)을 전라도 무주편에서 소개하고 있다. 같은 책 앞과 뒷부분이 다르고 완전히 체계가 잡히지 않았다는 의미다.

민주지산 물한계곡엔 갑작스런 폭우가 잦아 구름다리를 설치해 놓아 위험을 예방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산경표 등엔 모두 백운산

19세기 후반 제작된 <대동여지도>를 보면 민주지산의 위치에 정확히 백운산이 자리 잡고 있다. 백운산 오른쪽에 삼도봉도 표시돼 있다. 그렇다면 민주지산의 옛 지명은 백운산이 틀림없는 것이다.

옛 문헌으로 지명을 계속 추적했다. 19세기 발간된 또 다른 지도에도 백운산으로 소개된다. 16세기 후반에 발간된 <동람도> 전라도편에 백운산이 등장한다. 광양 백운산은 백계산으로 표시돼 있다. 18세기 영조 때 제작된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에서 뻗은 능선에서 살짝 비켜서 삼도봉의 새 줄기능선에 도마치 고개 다음으로 백운산이 등장한다. 도마치 고개는 지금 석기봉으로 추정되는 위치이다. 19세기 중반 제작된 <여지도서>무주편에도 ‘(백운산) 삼도봉에서 뻗어 나오며, 관아의 동쪽 50리에 있다’고 수록돼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민주지산은 옛 지도나 문헌에서 백운산이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그런데 <조선지지地誌자료>에 백운산 위치에 민주지산이 등장한다. <조선지지자료>는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 통치하기 위해 1911년 전국의 지명과 지지를 일본식으로 바꿔 기록한 지리지이다. 조선총독부 임시 토지조사국에서 출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30년 발간한 <조선지명사서>의 기초 자료집으로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민주지산의 원래 이름인 백운산이 일제 초기 민주지산으로 바뀐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지지자료>에 ‘민주지산은 영동군 용화면 안하동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제가 백운산을 왜 민주지산으로 바꿨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백운산이란 지명이 한반도에 너무 많아서 변경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민주지산의 유래로 전하는 내용도 당시 일제가 정리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분명한 사실은 20세기 들어 일제가 백운산을 민주지산으로 바꿨다는 내용밖에 없다.

여기서 백운산白雲山이 한반도에 얼마나 되고, 왜 많은지 살펴보자. 백운산은 흰 구름이 늘 끼여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산이름은 봉화산이다. 전국에 47개나 된다. 외침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봉화를 피우던 데서 유래했다. 기능 측면에서 그럴 수 있다. 두 번째로 많은 산이름은 43개나 되는 국사봉. 대개 국사봉은 국가에서 봉화대를 세웠거나 정상에 제단이 있어 국가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일종의 봉화산과 비슷한 기능을 가진 지명이다. 세 번째 옥녀봉이 39개. 풍수적으로 설명되는 봉우리다. 뒤를 이어 매봉산이 4위로 32개다.

5위 남산은 31개. 옥녀봉·매봉산·남산은 풍수적 개념에 가깝다. 뒤이어 백운산이 23개로 6위.

백운산이란 지명이 왜 많을까? 산에 관심 있거나 연구를 하는 전문가 몇 명에게 물어봐도 딱히 알 수 없다고 한다. 상상할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는 자성의 원래 자리를 체體라고 하고, 나타나는 형상을 용用이라고 한다. 도가에서 말하는 도道와 덕德의 관계와 같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자연상태는 체이고, 백운으로 나타난 형상은 용이다. 따라서 자연의 나타난 하나의 형상으로 좇아갈, 또는 수행의 대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도교에서는 도덕을 말하지만 최고의 가치는 무위자연이고 유유자적이다. 무위자연과 유유자적의 형상이 바로 백운인 것이다. 또한 그 백운은 신선과 동일시된다. 따라서 도교의 최고 선善인 신선이 되기 위해선 백운이란 용의 형상을 좇아야 하기 때문에 조선 선비들은 은둔과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하지 않았나 상상할 수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난 산이 바로 백운산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실제 구름의 유무와는 별 상관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농암 김창협의 ‘산으로 돌아오다’란 시에 조선 선비들이 산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산에 대한 감상을 그대로 보여 준다.

‘산 떠날 제 내 마음 시름겹더니別山懷耿耿/ 산으로 돌아오자 흡족해지네還山意得得/ 산으로 돌아오면 뭐가 좋은지還山何所樂/ 나 자신도 그 영문 알 수 없어라我亦不自識 (후략)’

결론적으로 민주지산의 원래 지명은 백운산이었으며, 일제 초기에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고, 여름에는 피서객, 겨울에는 등산객이 더 많이 찾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 속의 원시림은 잘 보존돼 있으며, 여기서 발원한 물한계곡은 그 길이면에서는 국내 최고에 속한다. 봄에는 진달래 능선으로도 유명하다.

올여름 더위를 피하러 물한계곡에 가서 민주지산을 거쳐 삼도봉까지 한 바퀴 돌고 오는 것도 좋은 피서가 되리라 싶다. 등산은 북쪽 물한계곡에서 출발해서 삼도봉을 거쳐 민주지산으로 하산하는 방법과 민주지산휴양림에서 출발해서 정상을 거쳐 각호산을 지나 원점회귀하는 방법이 있다.

 

글 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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