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승’ 명산 ①] 천관산, 정상에 수많은 기암괴석 天子가 면류관 쓴 듯…
호남의 5대 명산으로 평가… 117번째 명승 지정
천관산의 빼어난 바위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 이유이다.
장흥 천관산天冠山(723.1m)이 지난 9월부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8월 6일 장흥 천관산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하면서 한 달 뒤인 9월 5일부터 명승으로 지정된다고 밝혔다.
문화재 전체로는 117번째 명승이면서 산으로는 32번째 해당한다. 1970년 지정된 오대산 소금강이 명승 제1호. 문화재지정 규모로는 총 133만3,013㎡(40만3,236평)이며,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문화재청이 밝힌 천관산의 명승 지정사유는
▲산등성과 정상 부근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기암괴석 등의 화강암 지형경관, 억새군락 등의 식생경관, 정상부에서 조망할 수 있는 다도해 경관 등 경관이 탁월하게 연출되어 경관적 가치가 뛰어남
▲백제·고려와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일대 행정구역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국가 치제를 지내거나 봉수를 설치해 국방의 요충지로 활용된 역사성을 가지며, 일대에 천관사, 탑산사 등 사찰·암자와 방촌마을 고택 등 문화관광자원이 다수 분포해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이유 등이다.
요약하면 경관적·역사문화적 가치가 탁월해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장흥 천관산에서는 남해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천관산이 지닌 역사·문화적 가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보자.
천관산은 조선시대까지 기우제를 지낸 산으로 유명하다. 정상 연대봉烟臺峰엔 태백산에서 보던 제단이 똑같이 세워져 있다. 옛날 기우제 지낸 제단을 재현한 것이다. 연대봉이란 명칭도 옛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연기를 피우던 제단이란 의미다. 이에 대한 기록이 <세종실록>권46에 나온다.
세종 11년(1429) 예조에서 전국의 영험한 장소에 제사 드리는 것을 국가에서 행하는 치제의 예禮에 따를 것을 건의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이에 전국의 명산 포함 영험한 장소가 나열된다. 그중 명산에 장흥 천관산이 거론된다.
영험한 명산으로 언급된 명산은 해풍 백마산, 가평 화악산, 강화 마리산, 임강 용호산, 진천 태령산, 산양 희양산, 문경 관혜산, 가은加恩 재목산梓木山, 장흥 천관산, 영암 월출산, 광주 무등산, 제주 한라산, 원주 거슬갑산, 홍천 팔봉산, 서흥 나장산·백서산, 해주 지성산, 수안 요동산, 곡산谷山 신류산·무산·증격산·남산·미륵산, 상원 관음산, 영흥 백두산 등 전국 25곳이 해당한다.
마치 조경석 같아 정원암이라 명명된 바위.
조선시대에는 한양, 고려시대에는 개성으로부터 수백 km 남쪽으로 떨어진 지방의 한 도시가 역사적으로 인정을 받을 때에는 강력한 호족세력의 기반이 있거나 그 기반으로 인한 중앙과의 끈끈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그렇다. 특히 고려 왕건은 알려진 대로 지방호족 세력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정략결혼을 통해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편다.
왕건은 지방호족의 딸과 29번의 결혼을 통해 6명의 왕후를 두고 나머지 23명은 후궁으로 삼았다. 왕건과 결혼해서 왕후나 후궁이 된 지방호족의 딸은 자연스레 출신 지역을 챙기고 중앙에서도 그 지역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고려 이후의 왕들도 어느 정도 정략결혼제도를 맺으면서 중앙과 지방관계를 유지한다.
영봉 원숭이 바위는 완전 원숭이 같이 생겼다.
호족세력 고려 인종 공예태후의 고향이 장흥
장흥도 바로 정략결혼한 지방호족 세력 중의 하나였다. 고려 인종 때 공예태후 임씨의 고향이었다. 이로 인해 고려 때 잠시 장흥이 지장흥부사로 승격했고, 나아가 원종 6년에는 회주목으로 승격되기도 했다.
천관산 북쪽 자락에 위치한 천관사도 천관산을 역사·문화적으로 가치가 있게 하는 사찰이다. 신라 진평왕 때 승려 통령通靈이 보현사·탑산사·옥룡사 등과 함께 천관사를 창건했으며, 천관보살을 봉안해서 천관사라 했다고 전한다.
통령화상이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가지고 있던 석장이 날아서 산봉우리를 지나 북갑에 이르러 꽂혔다. 꿈에서 깨어 석장이 꽂혔던 곳을 어렴풋이 찾아 절을 지으니 그것이 바로 천관사라는 것이다.
조선 성종 때 서거정이 쓴 <동문선> ‘천관산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장흥편에 ‘천관사는 천관산에 있다’고 나오는 내용으로 볼 때 천관산이란 지명은 천관사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왜냐하면 천관사가 먼저 있었다면 대개 천관산은 천관사에서 유래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천관산이란 지명은 경관적 가치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정상 일대의 수많은 기암들이 마치 천자天子의 면류관 같아 명명됐다는 설, 산꼭대기에 부처를 닮은 바위가 마치 책바위같이 천태만상으로 솟아 명명됐다는 설이 있다.
또 신라 김유신이 사랑한 천관녀가 숨어 살았다는 전설도 있다. 이같이 천관산은 만물상 형상을 한 바위산으로 유명했다. 그 자세한 내용이 <신증동국여지승람> 장흥 불우편에 자세히 소개된다.
‘절에서 남쪽을 보면 바위들이 더욱 기이한데 높이 우뚝 서있는 것이 당암幢巖이요, 튀어나와 외로이 걸려 있는 것이 고암鼓巖이다. 구부리고 공손히 절하며 명령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것이 측립암側立巖이요,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울부짖는 것 같은 것이 사자암이다.
층층이 쌓아놓은 것이 마치 잔치 그릇에 음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것이 상적암과 하적암이요, 하늘을 찌를 듯이 공중에 홀로 솟아 있는 것이 사나암이며, 우뚝하고 험한 것이 서로 끌어안아 이지러진 데를 보충하고 있는 것이 문수 보현암이다.
천관사에서 남쪽으로 500보를 가면 작은 암자가 낭떠러지 아래 외진 곳에 있는데 그것을 구정암이라 부른다. 그 암자에서 낭떠러지를 따라 100여 보를 올라가면 돌 대臺가 펀펀한 것이 있으니 환희대라 한다. 그것은 올라가는 사람이 험한 길에 지친 몸을 여기에서 쉬게 되므로 즐겁고 기쁘기 때문이라 한다.
(중략) 이상하고 기괴한 것들이 많은데, 오뚝한 것, 숙인 것, 우묵한 것, 입을 벌린 것, 우뚝 일어선 것, 숨어 엎드린 것, 울툭불툭한 것 등이 천태만상 기괴하고 이상하여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어찌 조물주가 여기에 정수를 모아 놓고 바다를 한계로 하고 넘어서 달아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관산은 기묘한 바위가 정상을 덮고 있다. 중간이 대세봉.
옛 이름 천풍·지제산은 전형적 불교 지명
장흥산의 경관적 가치는 이 정도만 해도 명승으로 지정되기에 손색없다.
조선 최대 지리지 <택리지>에도 ‘장흥 천관산은 바위의 형세가 기이하고 빼어나며, 자줏빛 구름과 흰 구름이 항상 산 위에 떠 있다’고 나온다. 뿐만 아니라 <산경표>에도 ‘천관산, 일명 천풍이며, 또 다른 이름은 지제산이다. 장흥 남쪽 5리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천관산을 천풍 혹은 지제산支提山이라 부른 사실이 여러 옛 문헌에 등장한다. 지제산은 전형적인 불교식 지명. 불교의 ‘천관보살이 머무는 곳’이란 의미가 바로 지제이다. 또한 지제는 불탑을 나타내기 때문에 정상의 수많은 기암들이 불탑 형상을 하고 있어 명명됐다는 설도 있다.
천풍은 말 그대로 하늘 위에서 부는 바람이다. <택리지>에서 설명한 대로 자줏빛 구름과 흰 구름이 항상 산 위에 떠 있어, 산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바다에서 바라보는 정상은 더욱 높게 보여 명명됐을 수 있다.
천관산 정상에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을 그대로 재현했다.
마지막 경관적 가치는 호남의 5대 명산이라는 점이다. 지리산·월출산·내장산·변산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호남의 5대 명산의 유래는 조선 성종 때 문인 성임成任(1421~1484)이 내장산을 방문하고 남긴 기록 <정혜루기>에 의해서다. 정혜루는 내장산 내장사 앞에 있는 누각 이름. 여기에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변산)이 있다.
정읍 내장산도 그중의 하나다’라고 나온다. 이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그대로 인용하면서 호남의 5대 명산이라 불리게 됐다.
천관산은 봄이면 진달래 능선으로 유명하다. 정상 연대봉에서 장천재로 내려서는 능선 전체가 진달래꽃으로 뒤덮인다. 연분홍 바다를 연상케 한다. 또한 가을에 정상 일대는 온통 억새가 넘실거린다. 기암과 어울린 만추의 억새는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뿐만 아니라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남해 바다의 일몰은 환상적인 노을빛으로 변한다. 봄 진달래, 여름 계곡과 바다, 가을 억새와 기암, 겨울 노을은 천관산이 명승으로 지정되고도 남을 충분한 가치를 있게 한다.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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