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龍仁 瑞鳳寺址 玄悟國師塔碑]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서봉사터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승려 현오국사의 탑비. 보물.
시대 : 고려
문화재 지정 : 보물 제9호
건립시기 : 1185년
성격 : 탑비
유형 : 유적
크기 : 비신 높이 1.88m, 너비 0.97m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산110
내용
보물 제9호. 비신 높이 1.88m, 너비 0.97m. 점판암으로 화강암의 부석(趺石) 위에 섰으며 이수(螭首)는 없다. 제액(題額)은 ‘贈諡玄悟國師碑銘(증시현오국사비명)’의 8자로 자경(字徑) 8㎝의 전서(篆書)이며, 본문은 자경 3.3㎝의 해서(楷書)이다.
명문(銘文)에 의하면 현오국사는 고려 중기의 승(僧)으로 이름은 종린(宗璘), 자는 중지(重之), 속성(俗姓)은 왕씨(王氏)이다. 인종이 일찍이 대각국사(大覺國師)의 여풍(餘風)을 이을 사람이 없음을 두려워하였으나, 마침내 현오가 뒤를 이어 나이 15세에 불일사(佛日寺)에서 수계(受戒)하고 1147년(의종 1) 이후 수좌(首座)가 되었다.
1178년(명종 8) 나이 53세(法臘 39세)로서 시멸(示滅: 고승의 죽음)함에 왕이 심히 슬퍼하여 상서호부원외랑(尙書戶部員外郎) 최광유(崔光裕) 등을 보내어 국사에 봉하고 시호를 현오라 하였으며 동림산(東林山) 기슭에서 다비(茶毘)하게 하였다.
비의 설립 연대는 대정(大定) 25년, 즉 1185년(명종 15)이며, 문인 등이 서봉사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찬자(撰者)는 이지명(李知命), 서자(書者)는 유공권(柳公權)이다.
탑비의 조형은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寶境寺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忠州億政寺址大智國師塔碑, 보물 제16호),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扶餘普光寺址大普光禪師碑, 보물 제107호)에서와 같이, 윗변의 양각(兩角)을 귀접이(물건의 귀를 깎아 둥글게 하거나 접어 붙이는 일)한 규형(圭形)이고, 지대석(地臺石)도 4변을 접은 간략한 것으로서, 개석(蓋石)과 여러 조식(彫飾)을 생략한 고려 말 석비의 새 계류를 형성하는 좋은 보기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龍仁 瑞鳳寺址 玄悟國師塔碑]
지정번호 : 국가보물 제9호
지정년월일 : 1963. 1. 21.
시대 : 고려시대(명종 15년.1185)
소재지 :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산 111
규모 : 비신 높이 1.88m, 너비 0.97m
재료 : 신석-판암, 대석-강암
이 비석의 제액(題額)은 [고려국 대화엄 부석사 주지 증시현오국사비명 병서(高麗國大華嚴浮石寺住持贈諡玄俉國師碑銘 幷序)]이다. 비신(碑身)은 높이 1.88m 너비 0.97m의 점판암으로, 화강암의 부석(趺石)위에 세워졌으며, 이수( 首)는 없다. 제액(題額)의 글자는 지름 약 8㎝의 전서(篆書)이며, 본문은 3.3㎝의 해서(楷書)이다. 제액 다음 행문(行文)에 찬자(撰者)와 서자(書者)를 다음과 같이 명기(明記) 하였다.
「朝散大夫左散騎常侍翰林學士寶文閣學士知 制誥兼 太子賓客 賜紫金魚袋臣 李知命」「入內侍?將作少監國學直講充史館修撰官兼 太子中允賜紫金魚袋臣 柳公權」이 기록을 통해 「서봉사 현오국사탑비」의 본문을 지은 이는 이지명(李知命)이며, 글씨를 쓴 이는 고려 때 초서(草書)로 유명한 유공권(柳公權)임을 알 수 있다 비문의 말미(末尾)에 「大定二十五年 乙巳二月 日門入等奉 宣銷峰寺立石 興王寺大師 敏求 刻字」라는 기록이 있는데, 대정(大定) 25년은 명종 15년(1185) 으로서 현오국사가 시멸(示滅)한지 7년 후이다. 흥왕사(興王寺)의 대사(大師)인 민구(敏求)가 각자(刻字) 하였음도 확인할 수 있다.
비석의 조형은 보경사원진국사비(寶鏡寺圓眞國師碑), 억정사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 보광사중창비(寶光寺重創碑)와 같이 윗변의 양각(兩角)을 귀접이한 규형(圭形)이고, 지대석(地臺石)도 4변을 접었다. 개석(蓋石)과 여러 조식(彫飾)을 생략한, 고려말 석비(石碑)의 새로운 계류(系流)를 형성하는 좋은 사례이다.
명문(銘文)에 의하면 현오국사는 고려 중기의 승려로 휘(諱)는 종린(宗璘), 자(字)는 중지(重之)이며, 속성(俗姓)은 왕씨(王氏)이다. 어려서부터 기량이 뛰어나고 심대하였다. 15세에 불일사(佛日寺)에서 수계(受戒)하고 의종(毅宗) 원년(1147)에 수좌(首座)가 되었다.
명종(明宗)은 원년(1171) 중추(仲秋)에 그에게 좌세(佐世)의 호(號)를 내리고, 내전(內殿)에 불러들여 가사(袈裟)한 벌을 하사하였다.명종 8년(1178) 7월에 53세 나이, 법랍(法臘) 39세로 시멸(示滅)하였다.
명종은 매우 애통해하며 최광유(崔光裕) 등을 보내어 국사(國師)를 봉하고, 시호(諡號)를 현오(玄悟)라 하였다. 같은 달 17일에 동림(東林) 산기슭에 다비(茶毘)하였다. 현오국사는 대각국사(大覺國師)의 여풍(餘風)을 이은 대표적인 고승(高僧)이다.
출처 : 용인시 수지구청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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