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곡서원 深谷書院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조선후기 조광조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사적.
시대 : 조선
건립시기 : 1650년(효종 1)
성격 : 서원, 교육시설
유형 : 유적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16-9(상현1동 203-2)
내용
1650년(효종 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하여 위패를 모셨다.
조광조의 무덤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원을 세우기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재력이 부족하여 모현면에 있는 정몽주(鄭夢周) 제향의 충렬서원(忠烈書院)에 입향하였다가 위패를 옮겨오게 되었다.
설립과 동시에 ‘심곡’이라고 사액되었으며, 양팽손(梁彭孫)을 추가 배향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서, 선현 제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祠宇)·일소당〔日昭堂: 현재의 講堂〕·재실(齋室)·장판각(藏板閣)·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조광조와 양팽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지붕의 좌우에 방풍판(防風板)을 달고 겹처마로 되어 있다.
일소당은 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합각(合閣)지붕에 겹처마로 되어 있으며, 목판벽(木板壁)으로 각 칸마다 판자문비(板子門扉)를 달아 사면을 전부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 및 유림의 회합과 학문의 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반칸의 합각 홑처마로 된 재실은 원생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곳이다. 맞배지붕에 홑처마로 된 장판각에는 67종 486책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1985년에 도난을 당하여 현재는 『정암집(靜庵集)』·『조선사(朝鮮史)』 등만 남아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중정(中丁: 두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현재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원내에 있는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가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4,700평, 임야 약간 등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곡서원 深谷書院
지정번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호
지정년월일 : 1972. 5. 4
시대 : 조선선조 38년(1605년)
소재지 :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16-9(상현동 203-2)
규모 : 사당 11.96평, 강당 14평, 장서각 6.64평
대표자 : 원장 윤영기
서원은 명유(名儒), 또는 선현(先賢)을 봉사(奉祀)하는 사당과 자제를 교육하는 재(齋)가 결합 성립된 것으로, 이는 조선 중종3년(1543)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시대의 명유 안향의 관향인 순흥의 백운동에 서원을 세우고 장수(藏修)토록 한 것이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가 된다. 주세붕에 이어 퇴계 이황이 그곳 군수가 되었을 때, 조정에 품신하여 송나라의 고사에 따라 사액하여 줄 것, 토지와 노비를 내려줄 것, 등을 건의하여 서기1500년 명종은 "주자(朱子)의 백록동 서원을 계승(紹)하여 세웠다 (修)"는 뜻을 담아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縣板)을 사액하고 책, 노비, 전결(田結)등을 내려 장려하였다.
유생은 향교보다 서원에 들어가 수학(修學)하는 대신 붕당(朋黨)을 짓고 당쟁에 골몰할 뿐 아니라 심지어 양민을 토색하는 사회적인 악폐까지 끼쳐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조정에서는 여러 번 이와 같은 병폐를 시정하려 시도해 보았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조선조 말기에 이르러 대원군(大院君)이 섭정을 하면서 일대 개혁을 단행하여 전국 서원의 대부분을 철폐하고, 세상에 사표가 될 만한 서원47개만을 남겼다. 이 47개의 서원 중 경기도에 10개가 있었고 그 중 심곡서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심곡서원은 효종 경인년(1650)에 창건되었고 같은 해에 사액되었다. 본래 조광조(趙光祖)선생의 신위는 죽전동 충렬사(忠烈祠)에 포은 정몽주 선생의 신위와 함께 배향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후에 건립된 충렬서원(忠烈書院)에서 이향하였다. 현재 심곡서원이 위치한 곳은 본래 정암(靜菴)선생이 부친의 장례를 모신 후 여막을 짓고 시묘(侍墓)하던 곳이라고 전한다.
경내(境內)에는 정암선생이 식수(植樹)하였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2그루, 괴목1주와 향나무1주가 있다. 197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후 1974년 10월15일 외삼문을 해체 복원한 것을 비롯, 강당과 내삼문, 정전을 보수 단청하였다. 이듬해인 1975년 7월 1일에는 담당 65m를 복원하는 공사를 착공하였고 10월에 완공되었으며 서고(書庫)1동을 보수하는 한편, 홍살문을 세우고 일각문을 설치하였다.
전경이 보이는 주 진입방향과 직각으로 만나는 곳에 홍살문을 설치하였다. 이 홍살문은 1975년에 다시 세웠다. 강당 전면에는 외삼문은 1974년 해체복원한 것으로서 전면 중앙에는 심곡서원이라고 쓴 현판 1좌가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막돌 허튼층 쌓기 기단위에 정면 3간측면 3간 면적 46.7제곱미터(14.15평)크기의 강당이 있다. 강당 안에는 효종 9년에 편액된 현판1좌가 있고 산인재(山印齋)라 전액된 현판 1좌, 도암(陶庵) 이재(李縡)선생의 학규(學規)와 재향수시(縡香樹詩)를 비롯한 1종의 목판이 있다.
출처 : 용인시 수지구청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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