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 노닐고 왕이 잠든 곳… 수수께끼 가득한 ‘경주 낭산’에 가보셨나요?
[아무튼, 주말]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
오세윤과 떠난 낭산 여행
“내가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그날이 오면 도리천(忉利天)에 묻어달라.”
신라 최초 여왕이자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이 유언을 했다. 신하들은 도리천이 어디인지 몰라 당황했다. 도리천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이상 세계. 선덕여왕은 신하들에게 “낭산 남쪽”이라고 일러줬고, 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신하들은 그곳에 정성 들여 장사를 지냈다.
경주 남산은 누구나 알지만, 낭산(狼山)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한다. 신라 왕궁인 월성(月城)의 동남쪽에 있는 이 산은 해발 100m에 불과해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깝지만, 신라인들이 일찍이 신성한 장소로 여기던 곳이다. 선덕여왕릉, 사천왕사, 망덕사, 황복사, 능지탑 등 중요한 문화유산이 모여있다. 학계에선 “파도 파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곳”이라 말한다. 산의 형세가 이리가 엎드린 형상이라 해서 ‘이리 낭(狼)’ 자를 썼다는 설도 있지만, 사마천은 ‘사기’에서 “동쪽의 큰 별을 ‘낭(狼)’이라 부른다”고 했다. 신라 왕궁의 동쪽에 자리한 산이라 ‘낭산’이라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낭산, 도리천 가는 길’ 특별전(9월 12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풍부한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낭산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오세윤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는 “바람이 선선하게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가 낭산을 즐기기 딱 좋은 계절”이라며 “전시를 관람한 후 박물관에서 15~20분만 걸으면 바로 낭산에 닿는다”고 했다. 오 작가와 함께 경주 낭산 여행에 나섰다.
◇수수께끼 산에 깃든 비밀
시작은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이다. KTX 신경주역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다. 특별전은 낭산에 얽힌 신비한 이야기와 발굴 성과를 유물과 함께 엮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413년 낭산에서 누각(樓閣) 형태의 구름이 나타났고 향기가 가득 퍼져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이를 본 실성왕(재위 402~417)은 “이는 반드시 신선이 내려와 노니는 것이니 응당 이곳은 복스러운 땅이다”라고 하며, 낭산에서 나무 한 그루도 베지 못하게 했다. 삼국유사는 사천왕사가 세워진 곳에 원래 신들이 노닐던 숲을 뜻하는 신유림(神遊林)이 있었다고 전한다. 불교가 유입된 이후 낭산 사방에 사천왕사, 망덕사 등 중요한 사찰이 세워졌다. 진평왕릉과 선덕여왕릉이 낭산 일원에 들어서면서 왕들의 영원한 안식처로도 자리매김한다.
전시는 낭산이 신라 초기 신선들이 노닐던 토착 신앙의 성지에서 왕들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점차 개인의 소망을 기원하는 장소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1942년 황복사지 삼층 석탑에서 수습된 사리 장엄구 일체가 발견 80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공개됐다. 국보로 지정된 순금 불상 2점을 비롯해 금합, 은합, 굽다리 접시, 유리판과 팔찌, 각종 구슬…. 1300년 전 삼국 통일과 함께 새로운 문화의 태동을 보여주는 신라의 타임캡슐이다. 사천왕사의 목탑 기단 벽면을 장식했던 신장상(神將像)도 전시의 백미다. 통일신라의 조각승 양지(良志)가 만든 이 조각상은 날개 달린 투구와 화려한 갑옷을 갖추고 악귀를 깔고 앉아 눈을 부릅 뜬 무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낭산 서쪽 자락에서 발견된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약사불 좌상도 함께 나왔다.
낭산 유적을 담은 오세윤 작가의 사진 세 점도 전시장에 걸려있다. 눈 덮인 한겨울의 황복사지 풍경이 늦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준다. 경주뿐 아니라 요즘 전국 국립박물관·문화재청에서 발간하는 도록의 유물 사진 상당수가 그가 촬영한 것이다. 고향은 경북 김천이지만 “경주는 내게 신앙과도 같은 곳”이라는 그의 경주 사랑이 유별나다.
전시관 밖으로 나오면 야외 전시장에 서 있는 높이 3.76m 관음보살상을 만난다. 원래 머리와 몸체가 각각 따로 전하다가 머리는 일찍이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고, 몸체는 낭산 능지탑 근처에 반쯤 묻혀 있었다. 1997년 4월 지금 모습으로 ‘합체’됐다. 오 작가는 “관음보살상을 마주 보고 서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산이 바로 낭산”이라고 했다.
◇소나무들의 교향곡
직접 걸어봐야 더 많이 보인다. 유물이 발굴된 장소를 하나씩 찾아가 본다. 먼저 배반동 낭산 남쪽 기슭에 있는 사천왕사지.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사천왕사는 통일신라의 으뜸가는 호국 사찰이었다. 문무왕 10년(670) 당나라 군대의 침공을 막기 위해 명랑 법사가 밀교(密敎) 의식의 일종인 문두루(文豆婁) 비법을 행한 곳에 세워졌다. “(명랑 법사가 문두루 비법을 쓰자)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나 당나라 전함이 모두 침몰했다. 그 후 절을 고쳐 짓고 이름을 사천왕사라 했다.”(삼국유사)
신라 향가의 대표곡 ‘제망매가’와 ‘도솔가’를 지은 월명 스님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드넓은 금당 터와 목탑 터에 초석들이 덩그러니 남아있어 옛 절터의 영광을 증명한다. 오 작가는 “경주의 폐사지(廢寺址)가 모두 그렇지만 폐허의 미(美)가 느껴지는 곳이라 일몰 때 일부러 찾아오는 답사객이 많다”고 했다.
이제 범상치 않은 소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용 비늘처럼 거칠게 조각난 껍질, 비틀릴 대로 비틀린 거대한 소나무들 몸통에서 억겁 세월이 배어난다. 여왕의 안식처로 가는 길이다. 작가는 “바람 부는 날, 나무 사이로 감아 돌아 나오는 솔바람 소리가 환상적”이라며 “어떤 악기도 표현할 수 없는 소나무들의 교향곡”이라고 했다.
빽빽한 소나무 숲길 끝에 봉긋하게 솟은 선덕여왕릉이 나타난다. 낭산의 남쪽 봉우리 정상이다. 그래봐야 해발 100m 높이라 등산 싫어하는 사람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큰딸로 태어나 신라 최초 여왕이 됐다. 재위 16년간 분황사와 첨성대 등을 세웠고, 신라 최대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워 신라 불교 건축의 금자탑을 이뤘다. 훗날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와 명장 김유신 같은 영웅호걸을 거느리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기초를 닦은 왕이다. 어둑어둑한 숲길과 달리 능은 햇살에 반짝인다. 왕릉을 향해 좌우 양쪽에서 소용돌이치듯 몸을 누인 소나무들이 마치 여왕의 호위 무사처럼 이 신령스러운 공간을 지키고 있다. 수십 년째 계절 바뀔 때마다 이 길을 오른다는 작가는 “소나무 숲속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왕릉이 사진 찍기 좋은 뷰 포인트”라며 “정면보다 물러서서 볼 때 아우라가 더 살아난다”고 했다.
◇“힘들 때 어머니처럼 품어주는 산”
낭산 서편 능지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유적이다. 과거엔 신라 문무왕 화장터로 알려졌지만 1970년대 발굴 조사가 이뤄진 뒤 본존불을 모신 금당(金堂)이라는 설과 독특한 형식의 불탑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조사 당시 폭 5.8m가량의 사각형 단과 네 면에 설치된 너비 약 4m 감실이 확인됐다. 감실에선 진흙으로 빚은 소조불 좌상 조각들이 발견됐고, 모두 이번 특별전에서 볼 수 있다.
낭산 동북쪽에 있는 황복사지는 오 작가가 낭산에서 가장 좋아하고, 제일 즐겨 찾는 곳이다. 앞쪽 진평왕릉까지 펼쳐진 들판은 계절마다 색다른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특히 뭉게구름 아래 하늘거리는 벼 사이에서 메뚜기가 뛰어노는 가을을 가장 사랑한다. 새벽에 안개 낀 황복사지를 걷는 것도 작가에겐 충전하는 시간이다.
황복사는 신라 왕실이 복을 빌던 사찰로 654년 의상대사가 29세에 출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전에서 만난 사리 장엄구가 나온 탑이 바로 국보 황복사지 삼층 석탑. 이 중 금동으로 만든 사리 외함의 뚜껑 안쪽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692년 신문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 신목태후와 첫째 아들 효소왕이 함께 삼층 석탑을 세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곳 역시 “팔수록 미스터리가 커지는 보물섬”이다. 최근까지 이 일대 발굴 조사가 진행됐지만, ‘인백사(仁伯寺)’와 ‘선원사(禪院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만 출토돼 황복사가 맞는지부터 논란이 뜨겁다.
오 작가는 “천년 고도 경주의 수많은 볼거리 중에서 낭산 유적이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 의미가 크다. 신라인들에겐 성스러운 산이었고, 국가나 개인에 어려움이 있을 때 낭산을 찾아 평안을 빌었다”며 “나 역시 힘들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오는 곳이고, 언제든 어머니 품처럼 넉넉히 품어주는 장소”라고 했다.
[경주박물관 학예사들이 꼽은 최고의 맛은 ‘낭산 밥상’]
낭산여행에 어울리는 맛집과 카페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사들에게 ‘경주 낭산 여행’에 어울리는 맛집을 물었다. 이들이 꼽은 식당은 경주 도지동 낭산자락에 있는 농가맛집 고두반. 대표 메뉴가 ‘낭산 밥상’이다. 감자옹심이 된장찌개와 국산 콩으로 만든 가마솥 다시마 손두부가 정갈한 한 상에 차려져 나온다. 건강하고 풋풋한 제철 식재료가 이 집의 강점. 텃밭에서 키운 냉이, 상추, 브로콜리 등으로 버무린 텃밭샐러드도 맛볼 수 있다. 된장찌개 대신 한우두부전골이 나오는 ‘고두반 밥상’, 한우두부전골과 두부삼합이 함께 나오는 ‘이거반상’도 인기다. 경주박물관에서 차로 불국사 방향 10여 분 거리에 있다.
오세윤 사진작가는 경주 배동 남정 부일 기사식당을 추천했다. 즐겨 먹는 메뉴는 ‘짬뽕’. 중국집의 그 짬뽕이 아니다. ‘돼지고기볶음’과 ‘낙지볶음’ 두 가지를 섞은 메뉴다. 오 작가는 “짬뽕 먹자면서 사람들 데리고 가면 다들 ‘중국집 짬뽕인 줄 알았다’며 한 번 놀라고, 맛있어서 또 한 번 놀란다”고 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잠시 쉬고 싶다면 경주 외동 러스틱커피로 간다. ‘이런 외진 곳에 카페가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적한 시골길에 있다. 오래 방치됐던 교회를 리모델링해 카페로 꾸몄다. 김대환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요즘 경주에서 가장 핫한 곳”이라며 노서동 수제맥줏집 흐흐흐를 꼽았다. 신라 고분이 모여 있는 대릉원 바로 옆에 있다. 야외 벤치에 앉아 능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 ‘능맥’ 맛이 일품이다.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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