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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탐방후기☞/♣ 성당·사찰·교회

[20070822]인천 답동성당에 다녀오다.

by 맥가이버 Macgyver 2007. 8. 24.

2007년 8월 22일(수) 인천 답동성당에 다녀오다.

 

 

 

19세기말 제물포에 성당이 건립된 것은 이곳이 서울의 관문이고 외국 무역의 거점이 될 수 있는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눈 여겨 본 당시 조선교구장 블랑(1884∼90년 파리외방전교회) 주교의 결정에 의해서였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의 체결로 개항지에서의 토지 매입과 성전 건축이 가능해지자 블랑 주교는 국제도시로 부상하고 있던 제물포에 코스트 신부(1842∼1896년)를 파견해 성당 건립을 서두르게 된다. 이후 페낭신학교에 있던 빌렘(홍 요셉 1860∼1938년)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를 맡아 인천지역 첫번째 본당인 제물포본당(답동본당의 원래 이름)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때가 1889년 7월 1일이다.

빌렘 신부는 일주일 후 임시 성당으로 마련한 가옥에서 84명(한국인 59명과 일본인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감격적인 첫 미사를 봉헌했다.

답동성전의 건립은 빌렘 신부가 이듬해 지금의 성당 자리인 답동 언덕에 대지 3,212평을 매입함으로써 첫 발을 내딛게 된다.

1890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전임된 빌렘 신부에 이어 르 비엘 신부(신바오로 1890~1893)가 2대 신부로 부임해 성당 건립 기금을 마련하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수녀를 요청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병으로 인해 휴양을 떠나면서 성전 건립은 1893년에 부임한 마라발(서요셉 1893∼1904년) 신부의 몫으로 넘어갔다.

마라발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수녀원 건립을 시작하는 동시에 코스트 신부로부터 성전 설계도를 받아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잠시 중단되었던 성전 건립은 1895년 정초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이듬해 종탑이 완공되고 마침내 1897년 7월 4일 조선교구장 뮈텔(1890∼1933년 재임)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축성식이 거행됐다. 300평 규모로 전면에 3개의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전이었다.

1933년 신자수가 1500여명에 육박하게 되자 제 4대 드뇌(전 으제니오1904∼1937년) 신부는 증축계획을 세우고 1935년부터 성전의 외곽을 벽돌로 쌓아올리는 개축작업을 시작하여 2년 후인 1937년 원 라리보(1933∼1940년 재임) 주교 주례로 성대한 축성식을 가졌다. 웅장하고 화려한 자태로 인천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답동성당은 문화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사적 287호로 지정됐다.

 

 

 

 

 

인천 답동성당 [仁川畓洞聖堂] 


인천광역시 중구 답동(畓洞)에 있는 성당.

지정번호 : 사적 제287호 

지정연도 : 1981년 9월 25일 

소재지 : 인천 중구 답동 3-1  

시대 : 일제강점기 

면적 : 건축면적 약 1,015㎡ 

분류 : 종교유적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7호로 지정되었다.

벽돌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건축면적이 약 1,015㎡이다.

1890년대에 건축된, 한국 성당 중 가장 오래 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E.J.G.코스트(한자명 高宜善) 신부의 설계로 1897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1937년 코스트 신부와 같은 소속인 P.시잘레(한자명 池士元) 신부의 설계로 증축되었다.

앞면에 설계된 3개의 종탑은 건물의 수직 상승감을 더해주며,

8개의 작은 돌로 된 기둥(pilaster)이 8각(角)의 종머리 돔(dome)을 떠받들고 있다.

앞면의 출입구는 화강석을 사용하여 벽감(壁龕) 모양의 아치로 하였고, 처마는 맹(盲)아치로 설계하였다.


6·25전쟁 때 훼손된 부분은 모두 복원되었고, 1979년에는 창문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는 등,

이 성당은 그 위용과 아름다움으로 개항장(開港場) 제물포(濟物浦) 시대부터 이 곳의 역사적인 건축물로 꼽혀왔으며,

인천교구 내 102개 본당의 주교좌 성당이다.


-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에서 -

 

 

 인천 답동성당 [仁川畓洞聖堂]


종목 : 사적  제287호 

명칭 : 인천답동성당(仁川沓洞聖堂)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천주교/ 성당 

수량/면적 : 8,262.5㎡

지정일 : 1981년 09월 25일

소재지 : 인천 중구  답동 3-1 

시대 : 일제강점기

소유자 : 인천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신부 홍요셉이 세운 벽돌 구조의 성당이다.

 1897년에 세웠으며, 1937년에는 성당은 그대로 두고 외곽을 벽돌로 쌓아 올려 지금에 이르고 있다.

두차례에 걸친 내부공사가 있었지만, 비교적 옛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다.


성당의 평면은 십자형으로, 붉은 벽돌을 주재료로 하여 중요한 곳에는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정면의 중앙과 양 옆으로 출입구가 나있고, 가운데 출입구 위로 장미꽃 모양의 창을 설치했다.

 

건물 중앙에 큰 탑을 두고 경사진 지붕을 날개로 단 다음, 끝부분에 장식적인 작은 탑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20세기 초에 지어진 우리나라 교회건물의 보편적 형식이다.


이 성당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죠셉비리엠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면서 설립되었다.

1893년 임시성당을 건립하고, 1895년 8월11일 성당정초식을 갖고, 1897년 고딕양식의 성당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그후 드누(Eug Deneux)신부가 증가하는 신도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성당개축공사에 착수하였는데,

본래 舊성당을 그대로 두고, 그 바깥으로 現성당 공사를 한만큼 어려운 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평면은 장방형의 끝쪽에 각형 후진(Apse)을 두었는데 내부는 네이브(Nave)와 양측 아일(Aisle)로 구분된다.

본래 마루바닥에 의자없이 미사를 드렸으나, 1973년 인조대리석바닥으로 개조하여 의자를 비치하였다.

천장은 네이브부는 반원 볼트(Vault)이나 양측랑(Aisle)은 그로인볼트(Groin vault)이다.


외관은 로마네스크식으로 정면 중앙과 좌우에 반원아취(Rounded arch)로 된 포오치를 두고 상부에는 반원아취창을 두었다.

또 정면 중앙에는 원화창(Rose window)를 두고 석재의 띠돌림으로 코니스를 이루고 있다.

정면 중앙의 탑상부와 양측 소철탑의 상부에는 뾰죽돔(Pointed dome)을 얹어 아름다운 외관을 형성하고 있다. 


- 문화재청 홈에서 -

 

 

 

 

 

 

 

 

 

 

 

 

 

 

 

 

 

 

 

 

 

 

 

※ 교통편 안내 (대중교통) * 버스노선 : 2번 34번 4번 3번 * 전 철 : 동인천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