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8일(월)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 봉은사'에 다녀오다.
오늘은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며 오랜 숙제로 남아 있던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를 찾아보기로 하고...
지금으로부터 450여 년 전인 조선 중엽 명종 조에 서산대사가 곳곳을 유력하다가 이곳 봉은사를 들러 남긴 <봉은사기>의 첫 대목입니다. 조선시대 말에는 남호영기 율사가 판전을 짓고 화엄경판을 조성했으며, 당시 대학자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도 봉은사에 머물며 말년의 추사체를 완성시켰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
☞ 봉은사[奉恩寺]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에 속한다.
이 절의 기원은 794년(원성왕 10)에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한 견성사(見性寺)이다.
그뒤 1498년(연산군 4)에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성종의 능인 선릉(宣陵)을 위해
이 절을 중창하고 봉은사라고 절이름을 바꾸었다.
1551년(명종 6)에 문정왕후(文貞王后)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보우선사(普雨禪師)를 이 절의 주지로 삼았다.
이때 양주(楊州)의 회암사(檜巖寺)를
전국 제일의 수선도량으로 삼는 동시에 봉은사는 선종수찰(禪宗首刹)로,
봉선사(奉先寺)는 교종갑찰(敎宗甲刹)로 하는 승과(僧科)를 부활하여 불교재흥정책을 폈다.
1562년 보우선사가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을 선릉의 곁으로 옮기고 이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병화를 입어 소실된 것을
1637년(인조 15)에 경림(敬林)과 벽암(碧巖)이 중건했다.
1665년(현종 6)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92년(숙종 18)에 왕실의 시주로 중건했으며,
1747년(영조 23)에 다시 왕실의 시주로 상헌(尙軒)과 영옥(穎玉)이 중수했다.
1789년(정조 13)에는 선욱(善旭)과 포념(抱念)이,
1825년(순조 25)에는 경성(鏡星)과 한영(漢映)이 중수했다.
1912년에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1939년 실화(失火)로 주요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1941년 주지 도평(道平)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판전(板殿)·명부전·법왕루(法王樓)·심검당(尋劍堂)·
북극전(北極殿)·만세루·천왕문(天王門)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지정사년명(至正四年銘:1344)이 있는
고려청동누은향로(高麗靑銅縷銀香爐:일명 烏桐香爐, 보물 제321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가 있고,
판전에는 철종 때 영기대사(永奇大師)가 조각한 〈화엄경소〉를 비롯한
〈금강경〉·〈한산시〉·〈유마경〉 등 많은 목판본이 보존되어 있다.
이밖에 1392년에 주조한 동종이 있다.
- 다음백과사전에서 -
진여문
진여(眞如)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물의 본체로서 영원불멸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여는 우주 어느곳에서나 존재하는 본체(本體)를 뜻하는 말이고
이는 거짓이 없는 진실이라는 말과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다는 뜻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진여문에 들어선다는 것은 곧 절대불변의 진리를 찾아감을 의미합니다.
진여문에는 특이 2002년 서울시 지방문화재 160호로 지정된 사천왕을 모시고 있어 그 가치가 더욱 큰 곳입니다.
봉은사 진여문은 창건당시부터 있었으나 1939년 대웅전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1982년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眞如門
"眞如" 是在宇宙之內到處都存在的本體, 包含眞實的意味和永遠不變而常住的眞理二種意思.進入眞如門卽是尋求絶對不變的眞理的意味.初創的眞如門在1939年燒毁, 而後再建於1982年.
부도(浮屠)/탑비(塔碑)/공덕비(功德碑)
진여문에 들어서서 오른쪽을 보면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모양의 부도와 비석이 도열되어 있습니다.
부도는 모두 2기인데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잘 알 수 없고
석종형 부도는 청호당(晴湖堂)의 것입니다.
부도쪽으로 탑비 2기가 나란히 서있는데 부도 옆에 있는 것은 영암 대종사의 비이고
옆에 있는 탑비는 1932년에 세워진 봉은사 사적비(史蹟碑)입니다.
그리고 부도 남쪽으로 모두 16기의 비가 있는데 대부분 송덕비입니다.
浮屠和塔碑.功德碑
進入眞如門後, 在右側幷排着各種各樣的浮屠和碑石,在二座浮屠之中,其中石鐘形浮屠安奉晴湖堂和尙,但八角圓堂形的浮屠還不知道主人公是誰,浮屠北邊有二塔碑, 其中浮屠傍邊的是映嚴大宗師碑, 其傍邊塔碑是在於1932年建立的奉恩寺寺蹟碑.浮屠南邊還有16座石碑,大部分是頌德碑.
법왕루
진여문에 들어서면 정면에 큰 전통 한식 건물이 보입니다. 대웅전과 마주하는 곳에 한 칸 아래 누각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법왕루란 말 그대로 해석하면 법의 왕 즉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합니다. 요즘 사찰에서는 보통 많은 불자들이 모여 부처님 법석을 마련하는 자리로 설법전이라 이름 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주로 불전사물의 봉안 장소로 쓰여지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봉은사 법왕루는 대법회가 있을 경우 부족한 기도공간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97년 완공되었습니다.
法王樓
法王樓是在大雄殿對面下一間的樓閣.樓閣的機能有出入通路的作用, 是奉安佛前四物的場所及擧行大法會時準備行事的場所,可是奉恩寺的法王樓是以說法爲主, 有時候代替不足的祈禱空間使用.在1997年完成的
대웅전
대웅전은 1982년 새롭게 중창되었으며
법당 안에는 2층 닫집을 짓고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로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부처님 등 삼존불을 모셨으며
후불탱화는 삼여래회상도를 안치했습니다.
대웅전 어간문 오른쪽으로는 서울시 지방문화재 76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장흥사 동종이 있습니다.
불자들의 기도와 정진의 장소이며 조석 예불이 항상 이루어져 불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삼층석탑
대웅전 앞마당에 세원진 전형적인 3층 석탑으로서 부처님 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
石塔.石燈
在大雄殿前庭的石塔內供奉着一顆佛舍利, 石塔形態是典型的三層石塔.
石燈一共四座, 大雄殿前石塔左右各一, 還有在冥府殿和板殿前面也各有一座,
大雄殿前面的石燈是與石塔一起建立的, 除了下臺石和間柱石之外,形成八角形.
선불당
대웅전에서 왼쪽으로 선불당이 있습니다.
선불당은 말 그대로 부처를 뽑는 곳입니다.
이는 곳 조선시대 선종 수사찰로서 승과고시가 봉은사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며
선불당은 승과(僧科)를 실시하던 곳의 표현입니다.
이곳에서 조선시대 불교를 대표할만한 서산, 사명대사가 배출되었습니다.
정면 8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초익공양식을 이루고 있고
특히 팔작지붕 네곳에 작은 합각(合閣)을 이루고 있음이 특이하며
서울시 지방문화재 6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選佛堂
選佛堂包含有選佛的意味.卽指稱通過參禪引導進入成佛之道的殿堂.
創建年代 不淸楚,依據奉恩寺是朝鮮中葉禪宗首刹,可以推測在 久以前就已建立.
選佛堂重建於1941年.1992年得到漢城市援助重新裝飾.
選佛堂雖然歷史不久,但因爲是一棟保存19世紀樣式的建物而倍受評價,
現在被指定爲漢城市有形文化財第64號.
選佛堂內安奉着觀音菩薩立像及後佛幀畵.
심검당
대웅전에서 오른쪽, 선불당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입니다.
검이란 날카로움 즉 지혜를 상징하고 심(尋)은‘찾는다’는 뜻이 있으니
심검당은 바로 지혜를 찾는 곳, 즉 선방(禪房)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검당 역시 「정릉지」의 <봉은사 사적>에 의하면 창건 때부터 있었던 건물인데
지금 것은 1941년에 새로 지어진 당우입니다.
尋劍堂
在大雄殿前面偏右側的殿閣卽是尋劍堂.劍有銳利的意思,象徵智慧,尋卽探尋之意,尋劍堂是尋 智慧的場所,亦卽禪房.依據靖陵志的奉恩寺事蹟來看,創建當時就有尋劍堂, 而現在的尋劍堂則再建於1941年
지장전
대웅전 좌측 30m 정도의 위치하여 새로 지은 지장전이 있습니다.
지장전은 지장보살님을 모시는 전각인데,
지장보살은 원력의 보살이며 미륵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을 이어 고통과 어려움에 처해있는 중생들을 구해주고
특히 병든 이를 위하여 스스로 약초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워 원력의 보살이라 부릅니다.
보통 지옥세계 중생들이 모두 구제될 때까지 지옥에서 함께 고통을 받으며
중생을 구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악세중생의 부처님이라고도 부릅니다.
지장전은 2002년 6월 불의의 화재로 전소되어 본래 12평이었던 전각을
40평으로 중창하여 2003년 12월에 점안식을 가졌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또한 지장염불을 통하여 기도 수행하는
불자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습니다.
영산전
영산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좌우보처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양 옆으로 16 아라한이 옹위하고 있으며
후불탱화와 16나한도, 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습니다.
영산전은 나한님을 모셨기 때문에 나한님의 영험을 입고자 하는 불자들의 기도 발원이 간절한 곳입니다.
靈山殿
靈山殿內安奉着釋迦牟尼佛(主佛), 兩旁則有迦葉尊者和阿難尊者及16阿羅漢,
也有後佛幀畵和16羅漢圖,神衆幀畵等佛像.靈山殿重建於1942年.
靈山殿奉安阿羅漢, 是想得到阿羅漢靈驗的佛子們不斷懇切發願的場所.
북극보전
북극보전은 영산전과 함께 1942년 중건되었으며 산신 $칠성 $독성(나반존자) 등이 모셔져 있어
흔히 흔히 삼성각(三聖閣)이라 부르며 칠성각(七星閣)이라 불리웁니다.
북극보전은 민간신앙과 불교가 자연스럽게 접목되었음을 느낄 수 있으며,
민간신앙에 대한 불교의 관용정신이 깊이 스며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北極寶殿
重建於1942年, 奉安着山神,七星,獨聖, 亦稱七星閣或三聖閣.
北極寶殿雖然是民間信仰和佛敎自然融合的建築,但也深刻地描繪出佛敎對於民間信仰的寬容精神.
영각/충령각
영각에는 불단에 지장삼존불상과 탱화가 있고
벽면으로는 봉은사의 개산조인 연회국사를 비롯한 조선불교의 중흥조 보우대사와
서산, 사명, 남호 영기율사, 영암큰스님의 영정진영이 모셔져 있으며
오른쪽 벽면으로는 영단이 모셔져 있습니다.
충영각은 6ㆍ25때 국가 위난 시기에 나라를 위한 충성과 정열을 바친 호국의 별들을 기리고
영령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하기 위하여 지은 이름입니다.
운하당
운하당은 대웅전에서 서쪽으로 20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운하당이 올라앉은 축대도 대웅전 축대가 계속 이어진 것이며
용도는 심검당과 마찬가지로 승방으로 쓰이며 창건때부터 있었던 전각이지만
지금 건물은 1941년에 중건된 것입니다.
雲霞堂
雲霞堂離大雄殿西邊20m之處.與大雄殿都建在同一個築臺上.
是做爲僧房之用, 從創建當時就已存在, 現在建物重建於1941年.
미륵전
미륵대불을 완공하고 예전의 법왕루 건물을 옮겨지은 건물이다.
미륵대불
1996년에 완공된 미륵대불은 봉은사의 새로운 성보로써 높이 23m로 국내 최대의 크기의 부처님입니다.
미륵대불 앞에 위치한 미륵전은 법왕루를 새로 증축하면서 옛 법왕루를 그모습 그대로 옮긴 전각입니다.
현재 미륵전과 미륵부처님이 모셔진 광장은 신도들의 기도 장소이지만
큰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공연 등 문화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륵대불은 1986년 영암큰스님께서 발원하여 봉은사 사부대중이 모두 참여하여
1만명 이상이 불사에 동참하여 10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대작불사였습니다.
彌勒殿和彌勒大佛
完工於1996年, 彌勒大佛是奉恩寺新的聖寶, 高23m,是國內最大的石佛,
彌勒殿是在建新法王樓時,把原來的法王樓原封不動移過來的殿閣.
現在在彌勒殿和奉養彌勒佛的廣場, 擧行奉祝行事和公演等文化行事,
想得到彌勒佛的靈驗的佛徒, 一年四季不斷地來參拜.
판전
판전은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1855년 남호 영기 스님과 추사 김정희 선생이 뜻을 모아 판각한
화엄경 소초 81권을 안치하기 위하여 지어진 전각입니다.
후에 다시 유마경, 한산시, 초발심자경문, 불족인 등을 더 판각하여
현재 3,438점의 판본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판전은 봉은사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특히 판전 편액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마지막 글씨로 유명합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84호로, 판전에 판각된 화엄경 판본은 83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습니다.
板殿
板殿內安奉毗廬遮那佛,
保存著1855年南湖永奇和尙和秋史金正熙先生一起板刻的華嚴經疎抄80卷板本和金剛經,
維摩經,寒山詩,初發心自警文,佛足印等15種3,438枚木版本.
板殿是1856年(哲宗7年)爲保存木版本而建立的,是奉恩寺的殿閣當中歷史最久的建物.
板殿爲保存經板故無牆壁,只以門和板子構成,是建築特異的殿閣.
板殿 額是秋史金正熙先生在71歲病中寫的最後作品, 可以看得出秋史體的眞髓.
板殿有著貴重的文化價値,被指定爲漢城市有形文化財第84號.
비각
조선말의 흥선대원군 비와 추사 김정희의 비가 있다.
碑閣
建造於1870年, 是爲了保護興宣大院君的永世不忘碑而建的.
建立此碑的動機是因爲當時奉恩寺所有地的一部分與周邊農民的土地混同,而引起所有權分爭,
當時的政府實權者興宣大院君出面解決分爭後,把有問題的土地還給奉恩寺,
爲了讚揚這件事故建立碑閣.碑閣右側有建立於1986年的秋史金正熙先生紀蹟碑.
보우당
다래헌 아래로 새로운 전통양식의 건물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이 당우는 보우당으로서 2000년 10월 아셈(ASEM) 정상회의를 위해
국가의 지원을 받아 사하촌을 정리하고 건립한 건물로
보우대사의 불교 중흥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보우당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기초학당, 불교대학, 불교대학원, 연화대학(노인),
문화강좌 등 신도교육이 상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요일에는 어린이법회와 무의탁자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가 운영됩니다.
1층은 400여석의 식당을 마련하여 점심공양 및 무료 급식이 이루어지며
지하로 무료진료소 및 스님들이 지내는 요사가 있습니다.
☞ 여기서 1부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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