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도보여행후기☞/☆ 남한강 자전거길

[20100516]낭만도보 - 팔당역에서 양수역까지 중앙선 폐철도 따라 걷기 - 4부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5. 17.

 

29712

 


 2010년 05월 16일(일)  
낭만도보-팔당역에서 양수역까지 중앙선 폐철도 따라 걷기
 
  '낭만도보-팔당역에서 양수역까지 중앙선 폐철도 따라 걷기' 코스
 
팔당역→남양주 역사박물관→상팔당 버스정류장(팔당2리 표지석)→舊 팔당역→도깨비박물관 입구→폐철도 시작점→와카리하우스
→팔당댐 전망대→팔당댐→봉안터널→밀알의 집→팔당수력발전소→봉주르→능내연꽃체험마을→다산정약용유적지능내역 대합실

→진중삼거리→양수교→양수5일장터→두물머리 입구→석창원→두물머리 느티나무→두물머리 입구→체육공원 앞→세미원→양수역

 맥가이버의 '낭만도보 - 팔당역에서 양수역까지 중앙선 폐철도 따라 걷기' 이야기 

  

남양주市는 2012년까지 북한강과 팔당호, 광릉수목원 길을 포함한 경기 남양주시 전역에


트레일 코스 164.6㎞를 '남양주 트레일'이라는 이름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남양주 트레일 코스는 총 12개 구간인데 지난 3월 27일(토)에 그중 와부길과 한강길을 이어서 걸었다.
와부길(도심역~고려대농장~새재고개~세정사~운길산역 13.3㎞),
한강길(덕소역~팔당역~중앙선 폐철로~능내역~운길산역 19.8㎞), 

 

▼ 2010년 3월 27일(토) 남양주 트레일 중  와부길ㆍ한강길 이어걷기'를 보시려면 아래 ↓ 코스도를 클릭하세요.

  늘 언제나 항상 변함없이

 

오늘은
지난 번에 남양주 트레일 中 '와부길'과 '한강길(운길산역에서 팔당역까지)' 이어걷기를 하면서
좋은 날에 좋은 님들과 다시 걸으면 역방향으로 걸으면서
몇 군데를 둘러보며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코스를 걷는다.
 
팔당역에서부터 중앙선 폐철도를 걸으며 
팔당댐과 봉안터널을 거쳐 팔당호가 보이는 '봉쥬르'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능내리공원(능내리 연꽃체험마을)을 거쳐 다산정약용유적지를 찾아간 후
 다시 중앙선 폐철도을 찾아 능내역으로 나오면서
마재성지를 거쳐 능내역 폐역사에서 휴식 겸 간식시간을 갖고,
진중삼거리에서 양수교를 도강하여 양수5일장터를 둘러보고
두물머리입구에서 산책로를 따라가다가 석창원을 둘러보고,
두물머리 느티나무에서 다시 한 번 휴식 겸 간식시간을 가진 후,
세미원을 일주하며 둘러보고 나서 인근 식당에서 저녁식사 겸 뒤풀이를 하고,
양수역에서 18시 43분경 전철을 타고 귀경한다.
 
'낭만도보 - 팔당역에서 양수역까지 중앙선 폐철도 따라 걷기'

자세한 이야기는 맥가이버의 블로그 사진후기로 대신한다.

 

 

 '낭만도보 - 팔당역에서 양수역까지 중앙선 폐철도 따라 걷기' - 4부를 시작하며...



▼ 13시 11분 - 다산 정약용 묘를 둘러보고...

 

   

 

 

 

 

 

 

  

  

 

 

 

 

 

  

▼ 13시 20분 - 이제 능내역으로...

 

 

▼ 13시 22분 - 저녁바람이 부드럽게

 

  

 

 

 

  

 

▼ 13시 27분 - 마재마을 입구

 

 

  

 

 

 

 

▼ 13시 30분 - 마재성지

 

마재성지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4형제의 생가 터로 이름난 마재성지는
양수리에서 팔당댐 방향으로 3km가다 왼쪽으로 그 입구가 나타난다.
마재의 정다산 성지에는 사당과 기념관, 생가 터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언덕 위에는 다산의 묘소가 있다.
이 묘소에서 내려다보면 마을과 한강을 넘어 천진암이 있는 앵자봉 계곡이 펼쳐지고
그 오른쪽은 약종이 살았으며 묘소가 있던 배알미리(拜謁尾里)가 된다.
 
정약현, 약전, 약종, 약용 등 여기서 태어난 4형제 중 셋째인 약종은 천주 신앙을 위해 피를 흘린 순교자로,
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이다.
그러나 정약현의 부인이 이벽 성조의 누이, 정씨 형제의 누이가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
약현의 사위가 황사영이라는 것을 알면 정씨 형제가 얼마나 천주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중 정다산은 그의 형 약종처럼 순교하지는 않았으나  "목민 심서", "경세 유표", "흠흠 신서" 등 수많은 명저를 남겼다.
그는 본래 세례자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갖고 10여 년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다.
 
제사 문제로 번진 신해박해 때(1791년)만 해도 그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을묘년(1795년) 포도청 장살 사건이 당쟁으로 발전,
좌천되면서 반대파의 원성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명소(自明疏)를 올린다.
즉 천주교를 떠났다는 것을 글로써 명백히 밝힌 것이다.
이어 그는 신유박해(1801년) 때 배교함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갔다.
 
실학을 집대성한 5백여 권의 주옥 같은 저서는 바로 이 무렵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쓰여진 것이다.
이 때 그는 스스로 호를 여유당(與猶堂)이라고 불러 초대 교회 창립을 위해 명도회를 조직,
회장으로 크게 활약한 형 약종과 매부 이승훈이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데 대해 부끄러움을 표시했다.
 
그는 당시의 참담한 심정과 외로움을 "만천 유고(蔓川遺稿)"에서
"한평생을 살다보니 어쩌다가 죄수가 되어 옥살이를 하게 되었을까,
그 옛날 어질던 스승과 선배 그리고 절친했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고 노래했다.
그러나 그는 20여 년간의 기나긴 유배 생활 중에 잃었던 신심을 되찾는다.
 
1811년에는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한 교회 재건 운동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할 정도였다.
그가 완전히 교회로 돌아온 것은 유배에서 풀려 난 지 2-3년 뒤로 볼 수 있다.
그의 생활은 은둔과 묵상, 고행과 기도로 일관했을 뿐만 아니라 회갑을 맞으면서
미리 작성해 둔 자신의 묘비명 가운데는 참회와 성찰의 문구가 역력히 들어 있다.
 
유배 생활을 끝내고 다시 이곳 마재로 돌아온 그는 보속하는 뜻에서 기도와 고행의 삶을 살다
중국인 유방제 신부에게 병자 성사를 받고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글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 13시 35분 - 능내역

 

팔당역과 양수역 사이에 있는 능내기차역은
1956년 5월 1일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무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2008년 12월 중앙선광역전철의 운행구간이 국수역까지 연장되면서 선로가 다른 곳으로 옮기어 설치되어 폐역(廢驛)되었다.

 

 

 

 

 

 

▼ 14시 11분 - 다시 출발...

 

 

  

  

 

 

 

 

 

▼ 14시 17분 - 고능 가도교

 

 

  

 

 

 

  

 

 

 

▼ 14시 32분 - 고당 / 조안면사무소를 지나...

 

 

  

 

 

 

 

 

 

   

 

 

 

▼ 14시 26분 - 조안천 철교를 건너고..

 

 

 

 

 

 

  

 

 

 

▼ 14시 54분 - 중앙선 폐철길을 벗어나 진중삼거리로...

 

▼ 14시 57분 - 진중삼거리에서...

 

 

☞ 여기서 '낭만도보-팔당역에서 양수역까지 중앙선 폐철도 따라 걷기' - 4부를 마치고...

 

 

 

2010년 05월 16일(일)
'낭만도보-팔당역에서 양수역까지 중앙선 폐철도 따라 걷기'

   

-▥☞ 1부[팔당역→폐철도 시작점→팔당댐 전망대→팔당댐→봉안터널→봉주르]는 여기를 클릭.☜▥-

 

-▥☞ 2부[봉주르→능내1리 연꽃체험마을→머루터널→연꽃 관찰데크→토끼섬]는 여기를 클릭.☜▥-

 

-▥☞ 3부[토끼섬→다산유적지 산책로 입구→아조타농원→강변연가→다산유적지]는 여기를 클릭.☜▥-

  

-▥☞ 4부[다산유적지→마재성지→능내역→고능 가도교→조안천교→진중삼거리]는 여기를 클릭.☜▥-

 

-▥☞ 5부[진중 삼거리→양수교→두물머리 산책로→석창원→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여기를 클릭.☜▥-

  

-▥☞ 6부[두물머리 산책로→두물머리 입구→체육공원 앞→세미원 탐방→양수역]는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