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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읍기행]도심 속 살아있는 박물관, 답십리 고미술상가거리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9. 4.

[소읍기행]도심 속 살아있는 박물관, 답십리 고미술상가거리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잡동사니 ‘골동품’이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고미술’로 탄생하는 곳.
손때 묻은 선조의 이야기를 간직한 답십리 고미술상가거리로 마실을 나가본다.

서울도시철도 5호선 답십리역 1,2번 출구.
큰길에서 안쪽으로 몇 걸음만 옮기면 한눈에 봐도 오래된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답십리 고미술상가’.
주상복합건물인 삼희아파트 앞으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옛 물건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사람들은 흔히 예스러움을 찾아 인사동을 찾지만 ‘진짜 옛것’에 관심이 있다면 답십리를 찾아야한다.
1980년대 청계천, 아현동, 충무로, 황학동 등지에서 모여든 고미술상 140여 곳이 답십리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보고, 고, 만지고, 게다가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 ‘답십리 고미술상가 거리’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골동품은 타임캡슐이다, 고미술여행



“골동은 ‘뼈를 고아 깊은 국물’을 내는 중국의 음식재료를 일컫는다고 해요. 옛것을 보고 색다른 의미를 찾는다는 뜻이겠죠” 답십리 고미술상가번영회 주임상총무가 골동품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뉴욕에서 골동품복원가로 일하는 백춘기씨에 의하면 “골동은 본디 고대 중국에서 잡동사니를 가리키는 속어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독히 손때 묻은 구닥다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희소가치가 생기고 고고학적 의미를 띄면서 ‘골동품’은 어느새 ‘고미술’의 세계를 형성했다.

살아있는 박물관/ 답십리 고미술상가 내부.

목기와 각종 민속품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얼핏 보면 ‘골동품’에 지나지 않지만 저마다 역사와 사연을 품고 있다.

반짝반짝 손질해놓은 옛 물건에 고미술상인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 /이윤정 기자


그러나 왠지 ‘고미술’하면 어렵게 느껴진다.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찾지 않고는 접하기도 힘들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동조하고 새로운 것을 동경하던 삶의 자세도 ‘고미술’에 대한 거리감을 만들었다.
그런데 답십리 고미술상가거리를 걸으면 어느새 이런 편견에서 빠져나온다.
답십리 삼희아파트 2,3,5,6동을 비롯해 인근 우송, 송화빌딩 1층 상가에 위치한 고미술상점은 전시장에서 접하던 옛 물건을 바로 눈앞에 펼쳐놓는다.
발길을 옮기면 옮길수록 타임캡슐을 탄 것처럼 시대를 뛰어넘게 된다.

사소한 것도 버리지 않는 삶

자물쇠/ 조선시대

자물쇠를 질서정연하게 모아놓았다.

어찌 보면 박물관보다 더 친절하고 전시회보다 더 상세하다.

궁금한 점을 물으면 상인들이 자세히 설명해준다. /이윤정기자


“이건 조선시대 선조들이 쓰던 갓이고요, 저거는 보부상 모자예요. 이건 뭔지 아세요?...”
답십리에서 고미술가게 ‘가람’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근씨가 앞장섰다.
상가 1층 10평 남짓한 점포들이 질서정연하게 어깨를 맞대고 있다.
각자 전문분야가 있어서 도자기, 목기, 민속품, 고서화 등 취급품목이 상점마다 다르다.
상인들은 한국고미술협회 회원으로 고미술에 대한 전문성을 띄고 있다.

“예전에는 골동품점에서 청소도 하고 심부름도 하면서 어깨 너머로 고미술에 대한 식견을 쌓았어요.
1980년대에 고미술상이 대거 답십리로 옮겨왔죠. 당시만 해도 여기는 서울 변두리였으니까 세도 저렴했고 주차공간도 넓었고...” 이상근씨가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역사를 설명한다.
현재 답십리에는 전국 고미술상의 15%가 모여 있다.
직접 외국 경매에서 물건을 가져오거나 지방에서 교류를 통해 고미술품을 확보한다.
상점 가득히 차곡차곡 진열된 고미술품은 마치 살아있는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고미술상에 들어서면 상인들은 물건 하나하나의 이력과 사연을 읊어준다.
손때 묻은 물건은 절대 버리지 못한다는 고미술상인들의 애정이 고미술상가거리에 그득 묻어있다.

시간을 거스르는 사람들

옛 자수를 새것처럼/ 고미술상점

‘석황’의 박옥순사장이 옛 자수를 이용해 베개를 만들고 있다.

답십리 고미술상가 상인들은 고미술 연구부터, 감정 및 복원까지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윤정기자


상인들은 어떻게 고미술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을까.
이상근씨는 “어렸을 때부터 고미술을 많이 접했어요. 대부분 좋아서 발을 들였다가 평생 운명처럼 하게 되는 거죠”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려움도 많았다.
한국고미술협회 서부지회장 박윤환씨는 “문화재는 희소성을 갖고 있는데, 그런 고미술품을 확보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예요. 또 경기가 침체되면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 게 고미술 업계이기도 하고요”라고 말한다.
고미술상가번영회 조규용회장은 “흔히 고미술하면 고가의 물품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몇 만원짜리 소품들도 많습니다.
주로 일본인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답십리 고미술상가를 찾는데, 국내에서도 관심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실제 한국고미술협회에서는 고미술에 대한 국내 인식 확대를 위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800여명의 고미술문화대학 아카데미 졸업생이 배출됐다.
또 고고학을 전공한 젊은이들이 답십리에서 고미술상을 여는 등 세대를 이어가고 있다.
고미술상점 ‘원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선훈(29)씨는 “아버지가 하시던 고미술상을 물려받았어요. 어려서부터 보고 자랐기 때문에 고미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죠. 국내에서는 고미술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 역사의 특별함이 담겨있는 분야가 고미술의 세계예요”라고 말한다.
시간을 거스르는 사람이 모인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미래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는 길/
서울도시철도 5호선 답십리역 1,2번 출구로 나와 안쪽 골목으로 들어오면 ‘고미술상가 거리’가 펼쳐진다.
주상복합건물인 삼희아파트 2,3,5,6동과 인근 우송, 송화빌딩에 140여개의 고미술상가가 포진해있다.


답십리 고미술상가 앞에 쌓여 있는 구들장. 고미술상가 거리를 따라 옛 물건이 즐비하다. /이윤정기자



흔히 ‘고미술품’은 1945년 이전 물품을 뜻하지만, 답십리에는 근대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물품도 가득하다. /이윤정기자



시대와 국적을 넘어/ 답십리 고미술상가에는 우리나라 고미술품은 물론 중국, 일본, 동남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들어온 옛 물건들이 즐비하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도자기와 함께 다양한 국적의 도기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윤정기자



보물창고 공개/ 고미술상점 ‘동인방’의 정대영사장이 가게 안쪽 창고로 안내한다. 마치 보물창고를 공개하듯 조심스레 고미술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목기’에 대한 책을 6권 집필할 정도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정사장은 “무조건 옛것이라 좋은 것이 아니고 시대의 삶을 반영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일반인이 고미술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이윤정기자



조선시대 찬합과 목기/ 반짝반짝 잘 닦은 찬합과 목기가 고미술상에 자리를 잡았다. 플라스틱 용기에 익숙한 요즘 반질반질한 찬합은 오히려 멋스럽게 보인다. 한국고미술협회 서부지회 이상근총무는 “예전에는 이런 찬합이 많았죠. 새마을운동 한다면서 옛 물건을 많이들 버렸는데 아쉽습니다”라고 말한다.



고미술 전문가/ (왼쪽부터) 한국고미술협회 서부지회 이상근총무, 고미술상가번영회 조규용회장, 한국고미술협회 서부지회 박윤환회장. 고미술품을 다룬 지 수 십 년 경력의 전문가들이다. /이윤정기자



전시 라인/ 고미술상가 안에 들어서면 빼곡하게 자리 잡은 상점들을 접한다. 그러나 좁은 복도에도 규칙이 있다. 바닥에 그어놓은 노란 선을 지켜야한다. 화재에 대비해 서로 정해놓은 선이다. 이 선에 맞춰 고미술품들이 정렬됐다. /이윤정기자



고미술상가 거리/ 답십리역 1,2번 출구에서 안쪽 골목으로 들어오면 바로 고미술상가 거리가 펼쳐진다.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골목이지만 상가 안에는 시대를 넘나드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이윤정기자



복도/ 제각기 다른 종류의 고미술품들이 복도에 즐비하다. 고택 대청마루와 한옥 문, 장구와 도자기 등 아는 사람만 진가를 알 수 있는 골동품들이다. /이윤정기자



중국 골동품/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한국의 옛 물건이 유독 많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들어온 골동품도 만날 수 있다. /이윤정기자



전통 자기/ 한국의 옛 도기. 푸른빛이 도는 청자부터 조선시대 백자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이윤정기자



다식판/ 민속품상점에서 발견한 다식판.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지 궁금한 물건이 가득하다. /이윤정기자



고미술상가 골목/ 답십리 고미술상가 골목은 1980년대 처음 들어선 모습 그대로다. 오래된 표지판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한 고미술상인은 “인사동보다 고미술이 많은 곳이 답십리예요.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고 찾아온다면 고미술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아쉬워했다. /아윤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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