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곳에 가고싶다☞/♤ 소읍기행

[소읍기행]풍류와 낭만, 상춘곡이 태어난 곳 ‘정읍 태산선비마을’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9. 4.

[소읍기행]풍류와 낭만, 상춘곡이 태어난 곳 ‘정읍 태산선비마을’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정읍시 북동부에 자리한 칠보는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의 마을이다.
불우헌 정극인을 비롯해 최치원, 이항, 최익현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 낸 인재의 고을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전라북도 정읍하면 ‘혁명’이 떠오른다.
동학농민운동의 근거지이자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터를 닦기까지 정읍은 어떤 곳이었을까.
호남지방의 선비는 벼슬보다 ‘의리’와 ‘학문’을 앞세웠다.
자연을 벗 삼아 안빈낙도의 삶을 그린 가사문학을 꽃피운 곳도 바로 정읍이다.
충절을 지키고 풍류를 즐겼던 호남 선비의 모습을 찾아 정읍 칠보면으로 향한다.

풍류와 낭만의 문을 열다


정읍 칠보면 무성리 원촌마을을 찾았다.
무성서원을 비롯해 서원과 사당이 즐비하다.
작은 시골마을에 이렇게 많은 유교 문화의 흔적이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태산선비문화의 뿌리를 짚어봐야 한다.
886년 태산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의 성정은 태산지역에 유교문화를 꽃피우는 씨앗이 된다.
최치원이 살아있을 때에도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태산사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태산사와 함께 세워진 무성서원은 선비문화를 이끌어가는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태산 선비문화에서 주목할 것은 최치원의 시가에서 싹튼 풍류와 낭만이다.
최치원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놓고 시를 읊었다는 태산풍류는 조선시대 정극인(1401~1481)에 의해 완성된다.
우리나라 최초 가사인 ‘상춘곡’의 저자 정극인은 태산의 자연 속에서 세속의 명리를 멀리하고 청풍명월을 벗하는 글을 남겼다.
정극인 묘가 있는 원촌마을에는 ‘상춘곡 시비’와 ‘태산선비사료관’이 세워졌다.

벼슬보다 의와 충절을 지킨 선비들

송정가는 길에 내려다 본 무성리 원촌마을.

‘무성서원’등 큰 서원과 사당이 있어 ‘원촌’이라 불린다. /이윤정기자

 
원촌마을 태산선비사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읍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던 안성열(52)관장이 ‘칠광(七狂)도’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호남지방에는 벼슬도 마다하고 나라를 위해 충절을 지킨 선비들이 많습니다”라며 호남 선비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칠광도는 광해군의 폭정에 대한 반발로 미친 척하며 낙향한 7명의 선비를 기리고자 그린 그림이다.
원촌마을 뒤 성황산에는 당시 7명의 선비가 뜻을 나눴던 송정이 남아있다.

나라를 위해 옳은 말을 아끼지 않았던 호남 선비의 기개는 구한말 최익현(1833~1906)으로 이어진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최익현은 무성서원에서 임병찬과 함께 호남 최초로 의병운동을 일으켰다.
현재 무성서원에 보관돼 있는 고서에서 최익현이 무성서원을 오가며 남긴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전북에서 유일하게 존속한 무성서원은 호남 유림을 키우는 학당이자 나라를 위해 뜻을 모으는 곳으로 활약했다.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원촌마을에는 송정, 시산사, 송산사, 필양사 등 유교문화 유적지가 포진해있다.
또 원촌마을 바로 옆인 시산리 동편에는 용계서원이, 시산리 남전에는 고현동 향약이 남아있다.

고현향약, 보물이 된 마을 법규

7광도. 윗마을이 지금의 무성리 원촌. 아랫마을이 시산리 동편마을이다. /이윤정기자


칠보면에서 또 하나의 자랑을 꼽으라면 ‘태인 고현동 향약(泰仁古縣洞鄕約, 보물 1181호)’을 들 수 있다.
‘고현’은 일제가 ‘칠보’로 명칭을 바꾸기 전까지 사용했던 옛 지명이다.
 현재 27책이 현존하는 고현동 향약은 조선시대 최초의 것으로 평가받는다.
정극인(1401~1481)이 성종 6년(1475) 처음으로 향촌 사회의 자치규약을 정리한 이래 500여 년간 이어져 왔다.
15~16세기의 향약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선조 35년(1602)부터 1977년까지의 자료가 보존됐다.
이처럼 오랜 기간의 향약 자료가 남아있는 것은 드물다.

마을에서는 고현동 향약의 맥을 잇기 위해 매년 축제를 연다.
향음례(鄕飮禮)와 상읍례(相揖禮), 관례(冠禮), 혼례(婚禮) 등을 전통절차대로 재현한다.
태산선비마을을 가꾸고 있는 최재필(53)사무장은 “좋은 일을 서로 권하고, 어려움을 함께 돕는 향약정신이 살아있는 곳이 칠보예요. 앞으로 태산선비문화를 알릴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더 확충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한다.




가는길/
정읍시외버스터미널에서 ‘칠보행’ 시내버스 승차 후 원촌마을 앞에서 내리면 된다.
칠보무성교 삼거리에서 300m 전방에 ‘태산선비문화관’이 있다.
문화관이 있는 시산리 동편마을 바로 옆이 무성리 원촌마을이다.
무성서원을 들르기 전에 원촌마을 입구에 있는 ‘태산선비사료관’에 들러 자세한 설명을 듣는 것도 좋다.

태산선비마을/ http://www.taesanin.com/
태산선비문화관/ 063-531-6184


가마 타고 시집오는 날 고현동 향약의 맥을 잇기 위해 마을에서는 매년 축제를 연다. 사진은 실제 마을에서 전통혼례로 결혼하는 모습. 신부가 가마를 타고 들어온다. /태산선비마을 제공



무성서원 신라말 학자인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태산서원’으로 세워졌으나 1696년 ‘무성서원’으로 사액됐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전북에서는 유일하게 화를 면했다. 현재 2층 문루인 현가루와 강당, 장수재 등 건물이 예전 그대로 남아있다. /태산선비마을 제공



무성서원 고서 무성서원 문화재 관리를 맡고 있는 류성식(45)씨가 무성서원에 방치돼있던 고서를 꺼내 보이고 있다. “무성서원의 역사만큼이나 중요한 자료가 많아 연구할 가치가 높습니다”라며 한권씩 설명해준다. /이윤정기자



무성서원 방명록 몇백년동안 무성서원을 찾은 방문자가 적혀있는 서책. 구한말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 선생의 기록도 보인다. /이윤정기자



삼강오륜 조선시대 가장 오래된 향약이 있는 마을답게 문에 ‘삼강오륜’이 새겨졌다. 좋은 일을 서로 권면하는 향촌사회 문화가 마을 곳곳에 숨 쉬고 있다. /태산선비마을 제공



고현향약 향음주례고현향약 중 하나인 전통 `향음례'는 마을에 덕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각각 자리를 정하고 앉아 나이 많고 어진 자를 공경하며 법도에 맞도록 술잔을 돌리는 음주예교(飮酒 禮敎)였다. /태산선비마을 제공



정극인 묘역 불우헌 정극인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칠보로 내려와 후학을 가르쳤다. 우리나라 최초 가사인 ‘상춘곡’을 비롯해 주옥같은 시가를 남겼다. 정극인의 묘역이 현재 원촌마을에 남아있다. /태산선비마을 제공



송정 광해군의 폭정에 대한 반발로 미친 척하며 낙향한 7명의 선비가 뜻을 나눴던 송정. 이곳에 오르면 칠보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태산선비마을 제공



용계서원 칠보면에 있는 2원5사 중 한 곳. 대부분의 서원들이 풍수가 수려한 곳에 자리하거나 마을의 한 쪽 널찍한 곳에 자리한 반면, 용계서원은 특이하게도 넓은 들녘에 단출하게 자리했다. 시산리 동편마을에 있다. /태산선비마을 제공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