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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 도시와 산

[도시와 산](1) 순천 조계산 - 걷다 보면 저절로 順天케 하는 명상의 도량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9. 4.

[도시와 산](1) 순천 조계산 - 걷다 보면 저절로 順天케 하는 명상의 도량

▲ 전남 순천의 조계산에 안겨 있는 송광사는 독특하게도 개울을 건너야 절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다리를 건너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봄빛을 머금은 물에 비치고 있다.

전남 순천의 조계산(해발 884m)은 참 허술하다.

멀리서 내비친 넉넉하고 만만한 산세가 쉽게 보인다.

남녀노소가 오른다.

갖춰 입기보다는 이웃집 마실 가듯 헐렁한 옷이나 운동화 차림새도 그렇다.

등산로에는 노부부와 손자들까지 마치 도시락 싸들고 공원에 놀러나온 차림이다.

이들은 십중팔구 순천시민이거나 인근 여수, 광양 등에서 왔다.

 

●해발 884m… 남녀노소 마실 가듯

 

순천시민들은 조계산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단다.

선희곤(47·자동차정비업·순천시 조례동)씨는 “조계산을 오를 때는 오이 한 개만 달랑 들고 가도 장군봉까지 쉽게 간다.”고 자신했다.

지팡이를 짚은 정채봉(75·순천시 연향동)씨는 “일주일에 두 번은 이렇게 산에 오르지.”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암사에서 10분 거리인 야외생태체험장에서 동창생 10여명과 사진을 찍던 정병국(76)씨는 “목요일마다 사범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조계산에 놀러 오는 게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자랑했다.

반면 관광버스 수십대에서 내린 형형색색 복장의 등반객들은 짙은 선글라스에 한결같이 쏙 빼입은 멋쟁이들이다. 외지인들이다.

하나 놀라는 쪽은 오히려 이들이다.

누군가 “야, 저런 신발로 산에 오르나봐.” 하며 신기해했다.

서울에서 온 전인동(60)씨는 “조계산에는 유달리 여성 등반객들이 많다.”고 환하게 웃었다.

 

●주요 탐방로 5개… 혼자 걷는 명상길

조계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의 길목으로 광주 무등산과 장흥 제암산, 보성 일림산을 거쳐 나온 줄기다.

그리고 오성산을 거쳐 광양 백운산으로 가지를 뻗는다.

▲ 조계산 끝자락에 자리한 보리밥집.

산나물 등 12가지를 넣어 비벼 먹는 보리밥 맛이 일품이다.

▲ 전통적 화장실인 선암사 해우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냄새가 나지 않는 등 기능도 뛰어나다.

주요 탐방로는 5개.

1000년 고찰인 선암사와 송광사 앞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게 쉽고 편한 길이다. 일명 스님 오솔길이어서 ‘명상로’로 통한다.

길에 들어서면 잡념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러나 주봉인 장군봉을 놓치는 아쉬움이 남는다.

2~3부 능선으로 이어진 이 길은 끊이지 않는 계곡물 소리, 굴참나무 낙엽이 바람에 실려 발길 사이로 까끌거리는 소리, 짝을 찾는 새들의 지저귐이 어울린다.

길옆의 산수유처럼 노랗게 꽃망울을 터트린 생강나무는 영락없이 생강 냄새를 풍긴다.

요즘엔 귀한 선물이 더해졌다.

선암굴목재와 송광굴목재 사이 언덕이 은하수처럼 환해졌다. 아름드리 굴참나무 뿌리 사이로 보랏빛 얼레지 꽃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봉긋봉긋 솟아났다.

한 중년 여성이 나팔처럼 생긴 꽃봉오리가 땅으로 숙여진 모습에 “시골처녀처럼 낯가림한다.”고 어쩔줄 몰라했다.

 

▲ 조계산 마루의 천자암 뒤뜰에서 800년 세월을 견뎌낸 천연기념물 제88호인 곱향나무(일명 쌍향수).

‘조계산 지킴이’인 양회명(55) 순천시청 공무원산악회장은 “조계산 등산의 묘미는 한여름에도 햇볕을 쐬지 않고 흙길을 밟는 명상로에 있다.”고 설명했다. 명상로에서 스친 탐방객들은 혼자이거나 두 명씩이 대부분이었다.

도중에 소설 ‘태백산맥’ 안내판이 나왔다.

빨치산들의 연락로로 쓰였다는 설명이다.

작가 조정래는 선암사에서 자랐다.

반면 주암면 접치재에서 출발하는 탐방로는 순천시민들이 찾아낸 길이다.

1000원 내는 시내버스가 경유해 접근성도 좋다.

 

두 사찰에서는 탐방객에게 입장료(2500원)나 주차료(1500원)를 받지만 접치재에는 매표소가 없다. 하나 산 좀 타는 이들은 선암사~장군봉~연산봉~송광사에 이르는 종주산행을 즐긴다. 전문 산악인들은 선암굴목재~배바위~장군봉을 타기도 한다.

 

●선암사·송광사 천년 고찰 향기

 

‘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마라.’는 속설은 빈말이 아니다.

조계산 자락의 순천이 인심 좋고 경치 좋고 물이 맑은 까닭이다.

진인호(70·향토사학자) 순천문화원 부원장은 “일제 강점기 때 순천에 지주들이 많아 그 자식들이 비단옷으로 치장해 ‘순천에서 옷 자랑하지 마라.’고 했다.”며 “1960년대 세일러복을 입은 순천 여고생들의 인물이 남달랐고 이후 미스코리아가 나오면서 옷 자랑이 미인 자랑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특이하게도 조계산은 동쪽 장군봉 밑에 태고종 총림인 선암사, 서쪽 연산봉 아래에 승보사찰인 송광사라는 가람을 품고 있다.

선암사 전각 스님은 “산 하나에 태고총림(선암사)과 조계총림(송광사)이 있는 곳은 조계산밖에 없다.

총림은 선원·강원·율원 3개 경전 교육기관을 모두 갖춰야 지정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스님은 “조계산은 1천년 역사에 바랜 문화재 수천점이 숨쉬는 역사·교육·문화의 도량”이라며 “산에 갔다만 와도 수양을 쌓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요즘 선암사 경내 원통전 담 옆으로 600년 된 매화나무 20여그루가 추위를 이겨내고 활짝 꽃을 피워 볼 만하다.

송광사에는 한꺼번에 500개를 포갤 수 있는 능견난사(能見難思·나무그릇)가 흥미롭다.

공교롭게 선암사 어디서나 휴대전화가 잘 터진다(소통).

하지만 보조국사 지눌 등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참선).

 

조계산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조계산 주요 탐방도(클릭하면 확대됨) 

 

 

 

 

■ 봄 머금은 산사 비빔밥에 홀리고 18명 국사배출 十八公 전설 흐르고

 

조계산은 천년 고찰을 거느린 품새만큼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사찰 밑에는 식당 20여개, 숙박업소 8개가 성업 중이다.

도시 생활의 찌든 때를 산속의 맑은 공기로 씻어 버린 이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찰인 선암사와 송광사 아래를 찾아 휴식을 취한다.

특히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요즘 더욱 많은 등산객이 몰린다.

송광사 아래서 금광식당을 하는 김화영(43·여)씨는 “봄이 되면 손님이 많은데 요즘에는 수학여행 아이들이 몰려들어와 산채 비빔밥을 즐겨 찾는다.”며 웃었다. 학생들은 식당 옆 조계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어 갔다.

 

송광사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신라 때는 길상사, 고려 때는 수선사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때부터 송광사로 불렸다.

소나무가 무성해 당시 불렸던 ‘솔개이메(솔강이메)’에서 유래해 솔을 송(松), 갱이(광이)를 광(廣)으로 옮겨 송광산이라고 한 것으로 전한다.

전설에는 ‘송(松)’을 파자(破字)하면 ‘十八公’으로 송광사에서 18명의 국사가 나올 것이라고 풀이된다.

그래서 고려와 조선조에 16명의 국사가 배출되었으니 앞으로 2명의 국사가 더 배출된다는 기대를 가지고 스님들이 용맹정진하고 있다.

송광사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 송광사국사전(국보 56), 송광사경패(보물 175), 송광사영산전(보물 303) 등의 문화재 외에 곱향나무(천연기념물 88호)도 있다.

 

● 가는 길

광주~송광사는 광주 광천버스터미널(062-360-8114)에서 오전 8시50분부터 오후 3시45분까지 하루 5번.

광주~순천은 버스터미널에서 오전 5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10~20분 간격.

순천~송광사는 순천역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45분까지 40분 간격으로 111번 시내버스(061-753-5377).

순천~선암사는 순천역에서 오전 5시50분부터 오후 8시20분까지 수시 운행 1번 시내버스.

 

● 묵는 곳

선암사와 송광사 입구에 모텔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문의는 매표소(선암사 061-754-6160, 송광사 755-5308)

 

조계산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서울신문(2009-04-06 28면)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