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산] (4) 남양주 운길산~예봉산
운길산(610m)은 순하지도 거칠지도 않다. 높지도 낮지도 않다.
하지만 한강 두물머리가 지척이어서일까 구름을 모은다.
태조 이성계는 이 산에서 구름이 흘러가다 쉬어가는 곳이라 해서 운길산이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운길산에서 적갑산(560m), 철문봉(630m) 등을 지나면 역시 수도권의 명산 예봉산(683m)으로 연결된다.
조선시대 경기 동부, 강원 중북부 선비들이 한양으로 갈 때 임금이 사는 도성을 향해 신하로서 예를 표해 예봉(禮峰)이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운길산~예봉산 능선에는 아련한 역사의 숨결이 여기저기 스며 있다.
이춘규 편집국 부국장 taein@seoul.co.kr
▲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가 낙향한 다산 정약용 선생을 찾을 때면 언제나 수종사에서 차를 함께 마셨다는 기록이 전해지듯이 운길산 수종사는 차향의 산실로 이름이 높다. 2000년 3월부터 무료로 개방된 수종사 삼정헌을 찾은 시민들이 신록과 어우러진 두물머리를 지척에 두고 차향에 젖어들어 있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200년전 다산 정약용 선생 체취가 느껴진다
운길산~예봉산 능선은 다산능선이라고도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 형제들과 인연이 많다.
특히 철문봉 정상에는 ‘정약용, 약전, 약종 형제가 집 뒤 능선을 따라 이곳까지 와 학문을 밝힌 곳’이라고 적혀 있다.
다산은 40세 때인 1801년 강진으로 유배생활을 떠나기 전에 약전·약종 형들과 현 팔당호 인근 생가를 나서 능선길을 산책하며 학문에 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약용·약전(귀양지서 사망)의 귀양과 약종의 순교로 삼형제는 이후 함께하지 못하게 된다.
다산은 생가 앞 두물머리 풍경에 대해 18년 유배생활을 했던 전남 강진군 다산초당이나 백련사에서 바라본 강진만의 풍경과 유사해 고향을 생각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두물머리에 팔당호가 생겼지만, 강진만 일부도 간척돼 풍경이 변했다.
생가는 예봉산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에 있다.
운길산 산허리에 자리잡은 수종사에도 역사가 숨 쉰다.
조선후기 사회변혁을 꿈꾸던 선각자들이 모여들었다.
초의선사, 다산, 추사 김정희 등 선사와 묵객들이 종파와 당색, 신분을 따지지 않고 사회변혁의 꿈을 다듬은 곳이다.
수종사(주지 동인)측은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다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새벽에 이상한 종소리가 들려 잠을 깨 부근을 조사하게 하자 바위굴 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 나왔으므로,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水鐘)사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심었다는 550년 이상 된 거대한 은행나무 두 그루는 강변풍경과 조화롭다.
▲ 팔당호 근처에 있는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 세상을 얻지 못한 조선후기 비운의 천재 다산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사진 위). 조선 세조가 수종사 창건 기념으로 심었다는 거대한 은행나무. 수령이 550년을 넘겼고 나무 둘레만 7m가 넘는다. 바로 옆에 한 그루가 더 있다. 나무 밑 의자에서 한숨 돌리며 바라보는 두물머리 풍광이 수려하다(사진 아래).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시골처녀의 풋풋함과 만난다
다산능선을 종주하다 중간에 음료수가 필요하다 싶을 때면 맛 좋은 약수터가 있다.
수종사 입구와 절 안에 맛있는 약수터가 있다.
수종사 삼정헌에서는 멋진 두물머리 풍경을 보면서 공짜로 주는 차를 마실 수 있다.
고마운 마음은 불전함에 넣는다.
운길산으로 오르는 수종사코스는 수종사의 전망대가 좋다.
절상봉 코스는 정상에서 북한강과 두물머리쪽이 근사하다.
운길산 정상에서는 새해 일출이 압권이다.
여기서 보는 운길~예봉 능선과 골짜기 전경은 거대하다.
서울시내에서 전철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산이 깊다.
도시의 번거로움이 절로 사라진다.
자동차 소음에서 완벽하게 해방된다.
명상에 제격이다.
봄~가을까지는 숲이 우거져 낮에도 어둡다.
지난해 말 운길산역이 개통되기 전에는 접근이 어려워 산꾼들만 찾던 코스였다.
특히 숲이 좋아 알레르기 치료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많이 뿜어낸다.
알레르기 환자들이 이 능선길을 걸으며 상쾌한 호흡을 기원한다.
L이비인후과 이모 원장은 “다른 숲도 마찬가지지만 숲이 좋은 이 능선길은 폐의 기능을 강화시켜 주어 알레르기 예방과 치료에 좋다.”고 말했다.
1년 전만 해도 시골처녀의 풋풋함을 간직했던 이 능선길이 이제 도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땅들이 침식당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나무계단을 순차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원종철 남양주시 문화관광과장은 “전철 연장개통과 함께 미처 몰랐을 정도로 등산객이 몰려온다.
지역경제에도 도움된다.
부족한 주차장 등을 확장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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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자원의 보고에서 새들과 얘기하다
3~4월 능선 좌우에 생강나무꽃이 흐드러진다. 은은하게 퍼져오는 향기는 황홀하다. 이어서 진달래와 철쭉이 화려함을 다툰다. 능선산행만 4시간 안팎이나 걸리는 이 산 토양은 기름져 이곳 진달래나 철쭉은 팔뚝만큼 두꺼운 것이 많다. 사철 생물다양성의 보고임을 확인한다.
소나무와 낙엽송이 여기저기 군락을 이룬다. 참나무과로만 굴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들이 지천이다. 물푸레나무, 산벚나무, 피나무, 쪽동백, 참개암나무, 개옻나무 등 수종이 무척 다양하다.
바람의 능선이다. 능선에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나 참나무, 물푸레나무들은 줄기가 2~7개로 갈라진 게 많다. 짐승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멧돼지는 흔한 동물이다. 골짜기에서는 고라니를 볼 수 있다. 너구리, 산토끼 등 포유류가 서식한다. 여름철새인 검은등뻐꾸기, 벙어리뻐꾸기, 뻐꾸기는 물론 꿩이나 산비둘기 등 새들과 얘기할 수 있다. 겨울에는 지척인 북한강, 남한강에서 기러기, 청둥오리들이 떼지어 물질을 한다.
총길이 13㎞ 안팎인 종주길은 수도권에서는 귀한 육산이다.
운길산 정상 양쪽에 약간 돌산의 형세가 있지만 그밖의 대부분 능선은 흙산이다. 그래서 무릎에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관절이 좋지 않은 서울시민 송(75)씨 할아버지는 무릎 주변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할머니와 자주 찾는다.
등산은 운길산역에서 수종사를 거치거나 능선길을 따라 운길산, 새재고개, 적갑산, 철문봉을 거쳐 예봉산을 지나 팔당역으로 향하는 종주코스가 산꾼들에게는 인기가 있다.
예봉산서 율리봉, 율리고개를 거쳐 팔당역으로 가면 6~7시간 걸린다.
힘이 부치면 새재고개에서 약수터를 지나 도곡리, 도심역으로 가는 4~5시간 코스가 있다.
역코스도 좋다.
운길산역서 운길산만 올랐다가 내려가거나 팔당역서 예봉산만 올랐다 내려가는 3시간 안팎 걸리는 코스는 가장 대중적이다.
■ “다음 내리실 역은 운길산역입니다”
지하철·전철노선의 확장은 산행지도를 확 바꾼다. 중앙선전철의 단계적 연장도 마찬가지다.
중앙선은 2007년 말 덕소에서 팔당역까지 연장개통되면서 주변 명산을 찾는 등산객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임섭 팔당역 역무원은 “재래선 역사일 때 하루 2~3명만 이용했으나 개통 뒤 평일 1500여명, 주말 5000여명이 이용한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말 중앙선이 양평군 국수역까지 연장되자 산행지도는 놀랍게 변했다.
국수역의 청계산(658m)이나 직전 양수역에서 갈 수 있는 부용산(366m)으로 가는 등산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전철이 연장개통되며 예봉산을 찾는 등산인구가 줄어들지 않고 중앙선 이용 전체 등산인구가 증가했다. 그래서 예봉산 등산을 마치면 한 시간에 두 번씩 있는 용산행 전철은 덕소역까지는 좌석이 충분했었지만 올해 들어 자리잡기가 어렵다. 국수역의 경우 “재래역사일 때 하루 100명 이하이던 이용객이 최근 80배인 8000명 정도로 늘었다.”고 이광훈 역무원이 밝혔다.
올해 말 산행지도는 또 바뀐다. 용문역까지 연장개통되기 때문이다.
원주까지도 빠르면 내년 말 개통될 예정이지만 예산문제로 1~2년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들 구간은 멋진 산들을 품고 있어 향후 산행지도는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상권에도 대변화가 일고 있다. 팔당역 인근 예봉산 입구는 지난해부터 음식점이 늘었다. 등산전문점도 생겼다.
능선길 여기저기는 간이 막걸리가게들이 있다.
최근엔 운길산역과 국수역 주변에 가게가 늘고 있다. 운길산 수종사 입구에는 농산물 좌판점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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