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곳에 가고싶다☞/♤ 도시와 산

[도시와 산] (7) 경북 영양 일월산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9. 11.

[도시와 산] (7) 경북 영양 일월산

우리나라는 곳곳이 산이지만 경북 영양은 온통 산이다.

이렇듯 무수한 산 가운데 우리 민족의 영산이 백두산이라면 영양의 영산은 일월산(해발 1219m)이다.

영양군민들은 한결같이 일월산에 신령스러운 일월(日月)신이 살고 있으며, 이로부터 정기를 받고 영험을 얻는다고 믿는다.

안동·영주시 등 인근 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즐겨 찾는다.

경북의 최고봉인 일월산은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해와 달이 솟는 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해서 이름지어졌다.

고산자 김정호는 조선 철종 12년(1861)에 작성한 대동여지도에서 일월산을 찬양했다.

그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쪽은 영동, 서쪽은 영서, 남쪽을 영남이라 일컬었고, 이 세 곳의 정기를 모은 곳이 바로 일월산이라 했다.

▲ 일월산 정상에 활짝 핀 노란 민들레가 등산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경북 최고봉인 일월산에서 끝없이 어어진 산등선을 조망하면 천하를 얻은 듯한 감동이 벅차 오른다. 산마루에 걸린 흰 구름이 신령함을 더한다.
영양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태백산맥의 영험스러운 ‘여산(女山)’

 

일월산은 세인들의 접근을 쉬 허락하지 않는다.

그만큼 여정이 험난하기 때문이다.

안동과 영주에서 국도를 따라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길은 좁은 데다 구불구불하다. 초보 운전자들은 기겁할 정도다.

하지만 일단 일월산을 향하면 때묻지 않은 산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연방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마침내 안동에서 1시간여 만에 맞는 일월산은 둥글둥글 큰 덩치의 모습이다.

 

영양군의회 권영기 전문위원은 “일월산은 영양 일월면과 수비면, 청기면, 봉화군 재산면을 아우르며 인근에 청량, 백암, 칠보, 통고산 등 수많은 중봉과 소봉을 거느린 높은 산이지만 정작 산세는 완만해 ‘순(順)산’이다.”라며 “그래서 사람들은 일월산을 여자의 산이라 칭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이런 만큼 산행코스는 다양하면서도 쉽다.

등산로 대부분은 가파르지 않다. 어떤 코스도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기름진 흙길로 이어져 있다.

이 중 일월면 용화리 대티골에서 정상부의 일자봉(1219m)과 월자봉(1205m)으로 오르는 2개 코스가 가장 인기다.

이를 번갈아 오르내리면 4시간 남짓 걸린다.

등산로변은 4~6월이면 정상까지 이름 모를 수많은 야생화가 널려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자랑한다.

잘 보존된 원시림이 하늘을 가려 긴 터널을 이룬다.

▲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고 소박맞은 황씨 부인의 전설이 깃든 황씨부인당.
영양 이호정기자

정상에 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태백산맥 줄기의 수없이 많은 작은 산들이 구름바다를 이루며 저마다 두둥실 떠다닌다.

그 너머로 멀리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경기 용인시에서 온 권종덕(39)씨는 “정상으로 오르는 길섶은 야생화 군락인데다 처녀지 같아 밟기조차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상에 서니 천하를 얻은 느낌”이라면서 “전국의 많은 산을 올라 봤지만 이런 묘한 기분이 들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전국 명산과 달리 천년고찰 없어

 

일월산은 무속 신앙의 명소다.

무속인들은 접신을 위해, 일반인들은 영험을 얻기 위해 사시사철 찾는다.

월자봉 남서릉에 있는 황씨부인당은 영험의 상징이다.

옛날에 첫날밤을 치르기 전에 소박맞은 황씨 부인의 영혼을 모신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권 전문위원은 “황씨 부인의 신랑은 신혼 첫날밤 뒷간에서 볼일을 보고 신방 앞에 서자 문 창호지에 칼날 그림자가 얼씬거리자 연적의 소행이라 오해하고 놀라 달아났다. 칼날 그림자는 사실 문 앞에 있던 대나무 그림자였다.”면서 “황씨는 신랑을 기다리다 지쳐 한을 품고 죽었다.”고 들려줬다.

 

일월산의 음기와 영기가 가장 강하다는 일월 용화리 선녀골의 선녀탕(기도객들이 목욕 재계하는 곳)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계곡과 잇닿은 곳에 수많은 넙적돌로 쌓아 만든 굿당과 기도처가 즐비하다.

계곡은 온통 무속의 기운뿐이다.

이 때문인지 일월산은 전국의 다른 명산과는 달리 천년 고찰이 없다.

 

일월면에 사는 이모(78) 할아버지는 “예부터 일월산의 주신은 황씨 부인이어서 부처님을 모시지 못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비록 암자 크기인 용화사와 천문사 등의 절이 있지만 불상을 모시지 않는 사찰이다.”라고 귀띔했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인재의 산실 일월산

 

일월산 자락은 명당으로 소문났다. 수많은 인재가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자봉 아래에 자리한 한양 조씨의 동족 마을 ‘주실마을’은 ‘승무’로 유명한 시인 조지훈을 비롯해 문인과 박사만 28명, 장성 10여명 등 숱한 인재를 배출했다.

 

일월산 골짝 중 가장 골이 깊고 넓은 일월면 오리동은 1970년대 한국 구세군사의 전환점을 마련한 김해득(1918~80) 제14대 구세군 한국사령관이 태어난 곳이다.

일월산의 물줄기가 면면히 이어지는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은 작가 이문열의 고향이다. 그는 2001년 이곳에 광산문학연구소를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의 어머니 상으로 떠오른 조선 중기 여성 군자 장계향 선생도 일월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영양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조물조물 산나물 食神들도 군침

 

‘참나물, 취나물, 어수리나물, 병풍취나물, 우산나물….’

산나물 천지인 일월산은 요즘 채취객들로 북적거린다.

경북 영양 주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산에 오른다.

전국 각지에선 대형버스와 승합차가 몰려든다.

하루 평균 500여명에 이른다.

4~6월이면 주민들은 짭짤한 수입을 얻으려고, 외지인들은 전국 산나물 가운데 으뜸으로 쳐주는 일월산 산나물의 진미를 맛보기 위해서다.

 

영양군 농정과 김상준 유통계장은 “청정지역 일월산의 기름진 부식토에서 자라는 산나물은 40여㎞ 떨어진 동해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산악지대 특유의 큰 일교차 영향으로 향이 진하고 부드러워 전국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는다.”고 자랑했다.

이어 “조선시대 때 일월산에 생산되는 60여종의 산나물 중 금죽, 참나물, 고사리 등은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영양 주민들은 일월산 산나물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봄철 잠시 산나물로 올리는 매출액은 30억~40억원에 달한다는 것.

일부는 한철에만 2000만~3000만원의 목돈을 거머쥔다고 영양군의회 권재욱(영양읍 일월·수비면) 의원은 귀띔했다.

일월산 마니아인 권 의원은 “일월산 산나물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주민들을 연명하게 했고, 이후엔 돈을 벌어 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영양군도 산나물을 관광자원화해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2005년부터 매년 ‘일월산 산나물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올해 축제엔 외지 관광객 25만명이 다녀갔다.

군은 이번 축제를 통해 산나물 및 특산품 25억원 어치를 판매했다.

경제유발효과는 1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권영택 영양군수는 “일월산 산나물축제는 이미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으며, 지역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면서 “일월산이 영양 주민에게 안겨 주는 정신적·물질적 혜택은 실로 엄청나다.”고 말했다.

 

영양 김상화기자

서울신문 2009-05-18  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