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곳에 가고싶다☞/♤ 도시와 산

[도시와 산] (15) 수원 광교산 - 왕건에겐 빛, 우리에겐 쉼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11. 11.
[도시와 산] (15) 수원 광교산
왕건에겐 빛, 우리에겐 쉼

북한산은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175명/㎢)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수도권 어디에서든 접근하기 쉬워서다.

북한산보다 3.4배(591/㎢)나 더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 경기 수원시의 광교산이다.

수원·용인·의왕시에 걸쳐 있는 광교산(해발 582m)은 도시와의 경계가 애매모호할 정도로 도심에 가깝다.

빼어난 경관은 아니지만 부드럽고 완만한 산세에 등산 코스가 다양해 주말에는 하루 5만여명이 찾는다.

 

▲ 경기 수원의 광교산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굴곡의 민족사를 묵묵하게 지켜본 산이다. 이제는 도시민들에게 넉넉한 품을 내줘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 등산객이 형제봉 정상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수원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남정맥 700여리 중간지점에 있는 광교산은 한남정맥의 수많은 산 가운데 가장 높고 덩치 또한 가장 크다.

경기남부권을 포용하고 있는 진산(鎭山)으로 꼽히는 광교산은 후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민족사를 간직하고 있다.

▲ 바위에 새겨진 김준용 장군의 전승비(위). 새끼 딱따구리가 먹이를 찾을 정도로 광교산은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가운데). 등산객들이 맨발로 걸으며 흙기운을 받고 있다.

광교산의 원래 이름은 광악산(光嶽山)이었으나 서기 928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평정, 후삼국 통합의 뜻을 이루고 귀경하던 중 이 산에서 광채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해 ‘광교(光敎)’라고 붙였다고 한다.

 

●후삼국~조선 격동의 민족사 간직

 

이곳에는 신라시대부터 불교 성지로 평가받을 정도로 수많은 사찰이 있었다.

이 가운데 고려시대 진각국사와 현오국사가 머물던 창성사가 있었다고 한다.

진각국사는 우리나라 고건축물 중 최고로 꼽히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을 건축했다.

고려 우왕 12년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창성사 경내에 세운 진각국사탑비는 현재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동공원에 보존돼 있다.

역사탐방연구회 염상균 이사는 “광교산은 지리적인 위치나 특성으로 볼 때 주민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산신이었을 것이고, 불교 전래 이후에는 불교문화가 꽃핀 현장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때는 전라 순찰사 이광이 지휘한 삼남근왕병 6만명이 왜군 총수 우키다 히데이의 기병 1600명에 충격적으로 패배했다.

 

경기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김준용 장군 전승비’도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산이다.

비로봉(490m)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샛길 안쪽의 자연암반에 김준용(1586~1642년) 장군의 전공이 새겨져 있다.

김 장군은 병자호란 때 광교산 골짜기에서 청 태종의 사위인 양고리를 비롯한 청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은 광교산 자락이 흘러내린 곳에 조성됐다.

창룡문 4거리에서 남수문에 이르는 곳과 방화수류정에 이르는 줄기가 모두 광교산의 맥이다.

 

●다양한 생태계·등산코스 인기

 

정조가 사도세자 묘인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화성행궁도 광교산과 가까운 곳에 세워졌다.

공교롭게 고려 궁터와 백제 온조왕의 숙소인 백제행전도 광교산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백제, 고려, 조선에 이르는 행궁이 한 장소에 있었던 셈이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은 수원의 들판을 살찌우는 젖줄이다.

시내를 가로질러 황구지천에 모여 안성천에 합류하고 아산만을 통해 서해로 향한다.

광교산에 눈이 쌓인 모습을 일컫는 광교적설(光敎積雪)은 수원 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 광교산 입구의 반딧불이 화장실 외관(위)과 내부.

광교산은 수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음에도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98과 301속 455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호랑버들, 가능장구채, 터리풀, 조팝나무, 노랑갈퀴, 병꽃나무 등 6종의 한국특산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낙지다리 등 희귀식물도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류는 해오라기, 중대백로, 왜가리, 외오리, 말똥가리, 직박구리 등 26종, 포유류는 고슴도치 두더지 너구리 족제비 삵 멧돼지 고라니 등 16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시 정남채 산림휴양팀장은 “광교산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환경 훼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산림생태계 보존과 이용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훼손된 곳은 친환경 복구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산용품점 호황… 지역 경제에 한몫

 

광교산이 서울 근교의 산 못지않게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것은 버스나 승용차에서 내리면 바로 산에 오를 수 있어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경기대 정문 또는 반딧불이 화장실 앞을 시작으로 형제봉~시루봉~통신대~지지대까지 13㎞에 이르는 장거리 코스에서부터, 청년암~한마음광장~거북바위~광교헬기장(6.5㎞), 상광교 버스종점~사방댐~토끼재(1.6㎞) 등 10개의 코스가 있다.

최정상인 시루봉에 오르면 멀리 남산과 북한산이 눈에 들어온다.

수원 영통에 사는 윤석두(49·자영업)씨는 “광교산의 매력은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강·약 코스와 함께 50분~5시간30분 소요되는 장단 코스가 있어 노약자부터 전문 산악인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은 도시민들의 취미생활을 바꿔 놓으며 지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광교산 덕분에 수원은 ‘산악자전거’ 이른바 MTB 동호회가 활성화돼 있다.

동호회 20여곳이 조직돼 있으며 100~300명씩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수원시가 지정해준 청년암~통신대 구간에서 산악자전거를 즐긴다.

등산용품 업소도 호황을 누린다.

수원에만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 18곳에 각 5~10개의 등산용품매장이 입점하고 있다.

등산용품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5·수원시 인계동)씨는 “주 5일제 근무 영향도 있지만 수원에는 광교산 덕분에 등산인구가 많아 다른 지역보다 등산용품점들이 많고 장사도 잘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반딧불이·다슬기·항아리’ 광교산 명물, 명품 화장실

경기 수원 광교산의 또 다른 명물은 화장실이다.

산 입구에 설치한 ‘반딧불이 화장실’은 1999년 제1회 아름다운 화장실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당시 아파트 가격보다 3.3㎡당 100여만원 비싸게 건축돼 화제를 모았다.

화장실에 들어서면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대리석 바닥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기가 민망할 정도로 흙 먼지 하나 없이 청결하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어린이 및 유아들을 동반한 가족들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비데, 위생시트, 베이비 시트 및 부스, 파우더 실 등 위생 기기들을 설치했다.

좌변기에 앉으면 창밖을 통해 광교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화장실 밖에는 20여평 크기의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어 커피 한잔을 마시며 미술작품 등을 감상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루 평균 2200명이 화장실을 찾는다.

 

등산객 이필근(47·회사원·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씨는 “가족들과 함께 광교산 등산을 자주 하는데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집 화장실보다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말했다.

광교산에는 반딧불이 외에도 다슬기, 항아리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상광교 버스종점에 위치한 다슬기 화장실은 고급 별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개나리를 연상시키는 노란빛과 연한 오렌지색의 외관으로 은은함을 더해준다.

내부 벽면은 친환경 목재를 사용해 친근함을 안겨주고 창밖으로는 광교산 전경이 펼쳐진다.

반딧불이 화장실은 우리나라 화장실문화 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수원시는 지난 1997년부터 아름다운 화장실가꾸기 사업을 벌여 지역마다 특색있는 공중화장실 40여개를 설치했다.

봉화대, 바람개비, 수롱이, 솔밭산 등 시설 못지않게 이름도 아름다워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이나 관광코스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99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수원의 공중화장실이 표지 모델로 등장한 바 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