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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 도시와 산

[도시와 산] (16) 충주 남산 - 장삼이사들의 대몽항쟁 혼이 깃든 충주산성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11. 11.
[도시와 산] (16) 충주 남산
장삼이사들의 대몽항쟁 혼이 깃든 호국의 산성

충북 충주시 호암동과 안림동에 걸쳐 있는 남산(南山·636m)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아담한 산세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동네 뒷산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남산에는 몽고 침입에 맞선 ‘장삼이사’들의 호국정신이 배어 있다.

산 정상부를 둘러싼 충주산성은 대몽항전지로 유명하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선조들이 처절하게 싸웠던 역사의 현장이다.

충주시는 역사테마 산길을 조성, 그 뜻을 이어가려고 한다.

 

▲ 한 등산객이 싱그러운 녹음과 새소리가 어우러진 충북 충주산성을 따라 난 호젓한 길을 걷고 있다.

대몽 결사항전지였던 충주산성은 역사와 전설이 교차하는 도시민의 쉼터다.
충주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봉황이 살아 금봉산으로 불려

 

남산은 마즈막재를 사이에 두고 계명산(774m)과 형제처럼 마주하며 분지 형태인 충주를 병풍처럼 휘감고 있다.

이 때문에 남산은 옛날부터 계명산과 함께 고장을 지킨 충주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졌다.

남산은 예로부터 ‘금봉산(錦鳳山)’으로 불렸다. 금봉산은 ‘비단’과 ‘봉황’이라는 의미가 더해진 예사롭지 않은 이름이다.

조선 성종 때 만든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에도 금봉산으로 나온다.

봉황이 살았다고 해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만 전해진다.

풍수지리학자들은 당시에 남산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는 방증으로 해석하고 있다.

충주 천지인 풍수지리학회 조준형(74) 회장은 “조상들이 대대로 하늘과 산을 숭배해 왔다.”며 “산 이름에 비단과 임금을 상징하는 봉황을 썼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의 정기를 끊으려고 산에 말뚝을 박았는데 같은 맥락에서 산 이름도 바꿨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향토 사학자들도 남산이 가진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가깝게는 제천과 단양, 멀리는 경상도로 가는 길목에 있어 충주를 빠져나가는 출구 역할은 물론 전쟁 같은 위급상황 때 피난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충주산성의 총 길이는 1120m, 높이 57m

 

남산의 명소는 정상부에 쌓은 충주산성이다.

이 산성은 충주 동쪽의 계명산과 서쪽의 대림산성, 북쪽의 탄금대 토성지와 더불어 충주를 사방에서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의 총 길이는 1120m, 높이는 5~7m 정도다.

흙이나 모래를 사용하지 않고 돌로만 쌓았다.

‘조선약사’를 보면 백제 구이신왕 시대(420~426년)에 남산에 성을 쌓았고 국성으로 불렀다.

백제 개로왕 시대(455~475년)에 이를 보수해 적을 방어한 뒤 남산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했다고 써 있다.

고려 고종 40년(1253년)에는 몽고의 5차 침입을 물리쳤던 곳으로 전해진다.

승려 출신 김윤후 장군은 그해 10월부터 12월18일까지 70여일간 몽고군에 포위당했지만 장군의 뛰어난 지휘력에 충주 민초들의 강인한 저항정신이 합쳐져 당시 몽고군을 격퇴했다.

이후 몽고군은 경상도로 내려가지 못했고, 조기 철군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전해진다.

 

산성은 삼한시대에는 사람들의 원성을 산 ‘마고할미’라는 늙은 신선이 옥황상제의 벌을 받아 쌓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충주산성은 다른 성과 달리 안에서 저수지와 우물이 발견되고, 성 안에서 사다리를 내려줘야 들어올 수 있는 형식의 출구가 있다는 점 등이 특징이다.

충주박물관 길경택(50) 학예연구담당은 “충주산성은 중부권을 대표하는 가치가 큰 산성이다.”며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주산성은 1980년 1월9일 충북도기념물 31호로 지정돼 충주시가 관리하고 있다.

거의 다 무너지고 300m가량 남았던 것을 복원했다.

 

●웰빙바람 타고 도시민의 쉼터로

 

남산은 10여년 전부터 웰빙바람을 타고 도시민의 쉼터로 변했다.

1년 내내 등산객들이 붐벼 호젓한 산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피하는 게 좋을 정도다.

정동벽(55) 충주산악연맹회장은 “새벽 4시에 산에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퇴근 후 저녁 때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다.”며 “충주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이라고 말했다.

주말에는 남산 밑의 주택가에서 주차전쟁이 벌어진다.

충주시가 50여대를 세울 수 있는 무료 주차장을 만들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까닭이다.

남산에 이렇게 주민들이 몰리는 것은 도심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데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부담없이 오를 수 있어서다.

등산로도 잘 정비돼 있고, 충주시가 곳곳에 운동기구와 벤치를 갖다 놓아 아기자기하다.

남산 산행 코스는 6개다. 용산동 남산아파트 옆 대봉정사 입구에서 시작하는 코스가 접근하기 가장 좋다. 1시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경우(42)씨는 “누구나 부담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어 자주 찾는다.”며 “등산로 곳곳에 벤치와 운동시설이 있어 마치 체육공원에 온 것 같다.”고 했다.

한달에 25번가량 남산에 온다는 김병천(68)씨는 “남산은 등산객들에게 적당한 운동을 하게 해준다.”며 “남산을 꾸준하게 오르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남산은 무척 깨끗하다.”며 “시민들이 남산의 고마움을 알고 아끼고 보살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충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발길마다 자연의 향기 골짜기마다 역사의 숨결

 

충북 충주시는 남산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2000년부터 예산을 들여 곳곳에 운동기구와 벤치를 설치, 작은 체육공원을 조성했다.

충주를 표현한 아름다운 시들을 새겨놔 등산객들이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해줬다.

산 구석구석을 아기자기하게 꾸민 덕에 등산객들은 남산을 시민공원이라고 부른다.

남산을 가꾸는 작업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충주시는 1억원을 투입해 안림동 마즈막재 방향에서 남산에 이르는 1.5㎞ 구간의 산길을 충주의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테마산길로 꾸미고 있다.

테마산길에는 충주가 자랑하는 역사의 명장면 10여개가 그림과 함께 설명이 곁들여져 곳곳에 세워질 예정이다.

통일신라시대 당시 국토의 중앙이라는 의미로 충주에 세워진 중앙탑에서 고구려·백제·신라 백성들이 모여 화합을 다지는 장면과 신라의 가야금 명인인 우륵 선생이 탄금대에서 연주하는 모습 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역사적 사실들이 그림으로 표현된다.

남산 정상을 둘러싼 충주산성에서 대몽항쟁을 펼친 고려 때 김윤후 장군의 늠름한 모습과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적과 싸우는 장면도 걸릴 예정이다.

충주시내를 한눈에 가장 잘 볼 수 있는 7부 능선에는 전망데크가 마련된다.

시는 이곳에 1970년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걸어 충주의 옛 모습과 지금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충주시 관계자는 “삶의 질 향상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시민의 여가선용 장소로 제공하기 위해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이 사업이 완공되면 남산은 자연을 만끽하며 충주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마산길 조성사업은 다음달 말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충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서울신문 2009-07-20  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