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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읍기행]산과 호수가 빚은 한폭의 풍경화, 대전 ‘대청호 두메마을’

by 맥가이버 Macgyver 2010. 12. 10.

[소읍기행]산과 호수가 빚은 한폭의 풍경화, 대전 ‘대청호 두메마을’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대전시 대덕구 이현동은 ‘대청호 두메마을’로 불린다.

북쪽으로는 대청호를 끌어안고 남쪽으로는 계족산 자락을 업었다.

이현동은 ‘산, 호수, 들’을 모두 가진 한폭의 풍경화 같은 마을이다.

1980년 12월 충북 청원군 하석리와 대전 대덕구 신탄진동 사이 금강 본류를 가로지른 댐이 완공됐다.

대청다목적댐은 대전과 청주 등 인근 11개 지역에 연간 50만 톤이 넘는 물을 공급한다.

또 대청댐 발전소는 연평균 20억kw의 전기를 생산해낸다.

용수공급과 전기생산은 물론 금강 수위조절까지 하고 있는 대청댐은 국내에서 3번째로 큰 호수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대청댐 축조로 편입된 면적은 4783만 6452㎡(충남 1704만 6179㎡, 충북 3079만 275㎡),

이주민은 4075세대 2만 6178명에 이른다.

마을 전체가 잠기거나 일부를 내줘야했던 대청호 마을들. 지금은 어떤 모습을 갖고 있을까.

임진왜란 때 피란 들어 온 산골마을

1980년 12월 댐이 완공되고 난 뒤 수몰지역 주민들이 댐을 바라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부고속도로 신탄진 IC에서 나와 대청호 방면으로 향한다.

아홉 번 꼬부라진 양의 창자처럼 넘실대는 길을 따라나선다.

산 속에는 푸른 물이 고요하게 담겨있다.

 마치 고운 비단 위에 파란 꽃을 수놓은 듯 대청호는 하늘과 맞닿아있다.

파랗게 구부러진 이 길을 7km 넘게 가야 대전 ‘대청호 두메마을’에 다다른다.

 ‘도회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변두리나 깊은 곳’을 뜻하는 ‘두메’가 마을 이름에 들어간 게 당연하다.

행정구역은 대전시 대덕구 이현동이지만 여느 시골과 다름없는 산골이다.

마을은 대청호수길을 경계로 두 부락으로 나뉜다.

‘배고개’와 ‘심곡’ 부락이다.

‘배고개’는 마을이 배 모양을 닮아서, 또는 배나무가 많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심곡은 ‘깊은 골짜기’라는 의미다.

두 부락 모두 ‘고개’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니 이곳은 분명 깊은 산골 이었을 게다.

 

배나무 이(梨), 고개 현(峴)을 따 이현동이라 불린다.

마을 토박이 김문기(83)할아버지는 “마을은 예부터 경주 김씨, 동래 정씨의 집성촌이었지.

경주 김씨가 마을에 처음 들어온 게 4~5백년 전이야.

임진왜란 때 11대조 할아버지가 이곳으로 피란을 오면서부터지.

여기가 아주 산골이었으니까”라고 설명한다.

마을 반이 수몰된 산골마을, 강촌이 되다

대청호 두메마을에서 호수를 바라보았다.

댐이 생기고 난 뒤 마을의 반이 수몰되었다. (이윤정기자)


“1973년엔가 이주하기 시작했어. 댐이 생긴다고.

그 때 80가구 중 40여 가구가 이사 나갔으니까.

논밭도 다 물에 잠기고. 마을 반이 없어진 셈이지”

김 할아버지는 마을의 변화에 대해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대청댐이 생기기전 마을과 물길은 5km정도 거리가 있었다.

대청댐이 건설되고 생긴 호수는 마을 아래로 차올라왔다.

집과 함께 농사지을 땅이 물에 잠기자 사람들은 이사를 나갔다.

산골 깊숙이 자리하던 마을은 자연스레 강변마을이 됐다.

댐이 생기기 전 ‘배고개’와 ‘심곡’부락은 이장이 따로 있었다.

한 가구당 식솔만 7~8명, 마을 주민은 600여명에 달했다.

현재 마을에는 48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새로 들어온 귀촌가정을 빼고 주민은 70대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대도시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죠.

산과 강을 모두 끼고 있는 이현동이 대청호 강변부락 중 가장 아름다웠어요”

마을에 귀촌한지 10년.

마을 부녀회장을 맡다 지금은 사무장으로 활동 중인 황부월(59)씨는 오랜 시간 이현동에 눈독을 들였다고 말한다.

 

북쪽으로 대청호를, 남쪽으로 계족산을 안고 있는 이현동에 반했기 때문이다.

배고개 자락에서 대전예술치료센터를 운영하는 신정숙(42)예술치료사는

한국화 화가인 남편 조윤상(45)씨와 함께 이현동에 터를 잡았다.

부부 또한 이현동의 풍경에 반해 귀촌했다.

신씨는 “마을이 강과 산을 모두 가지고 있더라고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참 좋아 ‘예술치료’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다.

마을 주민들은 대청 호수길을 지나다 이현동을 보고 귀촌하려는 문의가 많다고 귀띔한다.

담배밭은 약초밭으로, 웰빙마을로의 변신


물에게 대지 반을 내주었지만 마을에는 오히려 아름다움이 더해졌다.

대청호수길 위에서 내려다보면 배고개부락에는 계단식으로 층층이 일군 다랑이 논이 펼쳐진다.

마을 안쪽에는 호수변을 따라 2km 산책로가 나있다.

배고개 언덕을 넘어가면 전설 속 고래가 바위로 변했다는 ‘여수바위’가 나온다.

마을에서 여수바위까지 왕복 1시간 반 코스다.

맞은편 골짜기 심곡부락에는 약초밭이 펼쳐진다.

심곡의 산줄기는 마을에서 왕복 3시간 코스인 계족산 등산로와도 연결된다.

봄이면 대청호수길을 따라 마을까지 만개하는 벚꽃이 일품이다.

‘대청호 두메마을’안에서도 볼거리가 많다.

1970년대까지 마을 주수입원이었던 담배농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

댐이 생기기 전 마을에서는 20여 가구가 담배농사를 지었다.

마을이 수몰된 후 경작지가 줄면서 담배농사를 짓지 않게 됐다.

그러나 마을에는 여전히 공용으로 사용하던 담배건조장 두 채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 채는 창고로, 또 다른 한 채는 마을펜션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주민들은 담배대신 약초를 재배한다.

마을 사무장인 황부월씨가 전공이었던 ‘화학’ 지식을 살려 마을에 ‘약초’ 재배를 권장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는 산야초 비빔밥, 약초 된장, 한방추어탕 등 웰빙 음식을 내놓았다.

강촌이자 산촌이요, 또 농촌의 모습으로 이현동은 호수마을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가는길
기차를 타고 신탄진역에서 내려 71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는 하루 7번 대전시 대덕구 이현동 ‘대청호 두메마을’로 들어간다.

신탄진역에서 택시를 타면 마을까지 1만원 정액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신탄진 IC에서 나와 대청호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다시 신탄진 네거리에서 우회전해 옥천, 추동 방면 대청호수길에 접어들면 호수와 산이 만드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대청호수길에서 7km 정도 진행하면 ‘대청호 두메마을’을 만난다.

봄이면 대청호수길을 따라 마을까지 벚꽃터널이 형성돼 절경이 펼쳐진다.

대청호 두메마을
대표전화 010-5018-5949 /
홈페이지 www.dumevil.com



대청호 석양 대청호는 1980년 대청다목적댐이 생기면서 형성된 인공호수다. 국내에서는 세 번째로 큰 호수다. 대청호는 충남북 지역의 4783만 6452㎡ 땅을 호수로 편입시켰고 당시 이주민만 2만 6178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청호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대청호의 아침, 저녁은 고운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눈이 부시다. (대청호 두메마을 제공)



목련이 필 즈음 올해는 유난히 봄의 행차가 더디다. 평소 벚꽃이 화려한 옷을 갈아입을 시기지만 대지의 초목은 오히려 몸을 움츠렸다. 마을회관 앞 목련도 저마다 솜털을 벗지 못했다. 화려한 꽃을 숨겨놓은 채 내일이라도 ‘펑’ 꽃잎을 터뜨릴 듯 목련나무가 숨죽이고 봄을 맞이한다. (이윤정기자)



담배건조장 1970년대까지 마을 주수입원은 담배농사였다. 마을이 수몰되면서 경작지가 줄자 담배농사를 짓지 않게 됐다. 그러나 마을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던 담배건조장 2채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진 속 담배건조장은 그냥 창고로 쓰인다. 다른 한 채는 펜션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윤정기자)



담배건조장 내부 창고로 쓰이고 있는 담배건조장 내부를 찍었다. 본래의 용도를 잃은 건조장은 마치 폐허처럼 변해있었다. 그러나 벽과 기둥 등 담뱃잎을 말리기 위한 담배건조장 구조는 신기하기만 하다. (이윤정기자)



텅 빈 빨랫줄 담배건조장 바로 옆 오래된 한옥이 보인다. 특이하게 담이 없다. 대청마루에 냉장고를 올려놓은 모습이 생경하다. 취재를 간 이튿날에는 마을 어르신 대부분이 단체관광을 떠났다. 약초를 심던 어르신들이 모두 떠나고 조용한 마을에 텅 빈 빨랫줄이 덩그러니 남아 오래된 한옥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윤정기자)



황부월 사무장의 약초 사랑 담배밭으로 그득하던 마을에 다시 약초를 심게 된 건 황부월(59)사무장의 역할이 컸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편생활을 한 황 사무장은 전공이 ‘화학’이었다. 그래서 약초와 효소의 역할을 연구하다 마을에 산야초 등 다양한 약초 재배를 권하게 된 것. 사진은 한옥을 개조한 연구실이자 거처에서 약초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 (이윤정기자)



들꽃내 황부월 사무장의 집은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것이다. 개조라고 하지만 흙집을 그대로 두고 문과 등을 새로 단 정도다. 그 모습이 참 곱게 느껴져 사진에 담았다. 집의 이름은 ‘들꽃내’다. 우리 선조들은 사랑채, 안채, 별채 등에 저마다 따로 이름을 짓고 살았었다. ‘들꽃내’라는 이름이 집 주인의 기품을 느끼게 한다. (이윤정기자)



대청호 두메마을 대청호 두메마을은 대전시 대덕구 이현동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현동은 ‘배고개’ ‘심곡’ 두 자연부락으로 이뤄져있다. 사진은 대청호수길에 서서 배고개를 찍은 것이다. 왼쪽으로 다랑이 논이 층층이 흘러내리고 있다. 가을, 겨울을 지난 누런 들판에 나슬나슬하게 초록빛 풀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윤정기자)



대청호수길 벚꽃터널 대청호 두메마을에 다다르려면 봄에는 무조건 이 벚꽃터널을 지나야한다. 마을이 호수길을 따라 7km 이상을 들어와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을에서는 벚꽃이 필 즈음 ‘벚꽃축제’를 연다. 축제지간 동안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마음을 채우고 마을 약초로 몸의 기운을 보강할 수 있다. (대청호 두메마을 제공)



대보름제 음력 1월 14일에 마을에서는 대보름제를 지낸다. 6명으로 구성된 풍물단원이 풍물을 치며 흥을 돋우는 제에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참여한다. 할아버지탑과 할머니탑을 왼새끼를 꼬아서 서로 줄로 연결한 뒤 할머니탑에서 먼저 제를 지내고 그다음 할아버지탑에서 제를 지낸다. (대청호 두메마을 제공)



경주 김씨 사당 배고개 부락 어귀에 경주 김씨 사당이 있다. 마을은 예부터 경주 김씨, 동래 정씨 집성촌이었다. 마을 토박이 김문기(83)할아버지는 “경주 김씨가 마을에 처음 들어온 게 4~500년 전이야. 임진왜란 때 11대조 할아버지가 이곳으로 피란을 오면서부터지. 여기가 아주 산골이었으니까”라고 설명한다. (이윤정기자)



심곡부락 집 ‘심곡’부락은 ‘깊은 골짜기’라는 이름처럼 배고개보다 조금 더 가파른 산골이다. 마을 안쪽은 계족산 등산로와도 연결된다. 마을을 걷다 보면 최근에 새로 정비한 듯한 예쁜 집들이 꽤 보인다. 심곡길에 있는 한옥이 운치가 있어 카메라에 담았다. (이윤정기자)


귀촌한 젊은 부부의 보금자리 배고개마을을 걷다보면 예쁘게 꾸며놓은 한 집을 만나게 된다. ‘대전예술치료센터’를 운영하는 신정숙(42)예술치료사와 한국화 화가인 남편 조윤상(45)씨의 보금자리다. 이 예술가 부부는 이현동의 풍경에 반해 귀촌했다. 신정숙씨는 “마을이 강과 산을 모두 가지고 있더라고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참 좋아 ‘예술치료’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다. (이윤정기자)



여수바위 ‘대청호 두메마을’은 다양한 산책로로 이어진다. 계족산 등산로, 대청호 호수변 산책로, 그리고 여수바위까지 이어지는 소원성취산책로다. 여수바위는 기이한 모양의 자연 암석 5개와 돌탑3기, 약수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들은 여수바위를 영험한 장소로 여겨 기도를 드리러 이곳에 오르기도 한다. (대청호 두메마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