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西津에서 正東津까지 303㎞… 하루 밤사이 지는 해와 뜨는 해를 보다
- 입력 : 2013.12.26 09:20
- 23일 강릉 정동진(正東津)의 일출(日出) 장면.
- 낙조(落照)가 갯벌을 물들이며 하루의 저편으로 건너가고, 건너간 해는 동쪽으로 넘어와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 매일(每日)이 생기는 과정이다.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인류 최초의 시계는 해시계였다.
예부터 해의 반복은 삶을 은유하는 가장 정직한 운동.
매일 뜨는 해(日)를 보내고 맞이하면서 벌써 한 해(年)의 끝에 섰다.
마지막과 처음의 해를 미리 보기 위해 서쪽에서 동쪽으로 303㎞를 달렸다.
뱀(癸巳年·계사년·2013년)이든 말(甲午年·갑오년·2014년)이든 해는 붉고 뜨겁다.
- 22일 인천 정서진(正西津)의 일몰(日沒) 장면.
◇ 지는 해
22일 오후 1시 30분, 일몰(日沒)을 낚기 위해 서울 광화문을 떠났다.
행선지는 인천 서구에 있는 '정서진(正西津)'.
임금이 살던 경복궁에서 정서쪽으로 말을 달리면 나오는 나루라는 뜻을 지녔다.
2011년 인천시가 서구 오류동 일대에 이름 붙인 해넘이 관광 명소다.
말 대신 승용차를 몰아 양화대교를 건너 1시간여 달리니, 영종대교에 못 미쳐 정서진이 있다.
관광객들이 찬 바람을 피해 아라타워 23층에 있는 전망대로 몰려간다.
사방이 통유리로 탁 트인 이곳에서 물끄러미 서해를 굽어본다.
정도와 신도, 다대물도와 무명도… 둥근 섬들이 털갈이하는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다.
김포에서부터 흘러온 물은 강어귀에 이르러 조용하다.
이 물의 이름은 기수(汽水), 강물과 바닷물이 섞인 하구의 마지막 물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육지의 끝물이 헤엄치듯 비늘을 세운다.
강물이 발길을 멈춘 서해 배수문 옆엔 2011년 퇴역한 1000t급 해경 '1002함'이 떠있다.
속을 비운 배는 기꺼이 공원이 돼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함상에서 서해의 완만한 둔부를 바라본다. 온갖 것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그 위에 햇살이 떨어진다.
정호승 시인은 시(詩) '정서진'을 쓰며 "해가 지는 것은 해가 뜨는 것"이라고 읊었다.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듯, 해가 지지 않으면 떠오르지도 않는다는 달관이다.
정서진 입구엔 '노을 종(鐘)'이라 불리는 구조물이 서있다.
가운데가 종 모양으로 파인 가로 21m, 세로 13m의 조약돌 모양 철제 구조물이다.
해가 지면 노을 종 중앙에 매달린 추가 좌우로 흔들리며 설치된 스피커에서 24번 타종하는 소리가 난다.
24시간의 새 시작을 상징하는 소리다.
이날 일몰 예정 시각은 오후 5시 7분.
짙은 구름 뒤로 이날의 마지막 해가 진다.
잔광(殘光)이 잔설 위에 내려앉는다.
타종이 끝나자 노을 종 주변의 스피커에서, 일제히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온다.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노을이 눈꺼풀처럼 다 내려앉자, 사위가 캄캄해진다.
해의 끝을 눈으로 쫓던 사람들이 두 손을 모은다.
이윽고 일제히 차로의 가로등이 켜졌다.
떠날 시간이었다.
-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 뜨는 해
오후 5시 30분, 이번엔 일출(日出)을 보기 위해 강원도 강릉 정동진(正東津)으로 향한다.
광화문을 기점으로 정동쪽에 있는 나루다. 차로 4시간여를 달리자, 7번 국도에 들어선다.
달이 뚜렷해지자 철책 너머의 파도가 발광을 한다.
오후 10시, 정동진역에 이르러 차를 세운다.
맞은편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파도를 마시는 기분이다.
기적 소리가 울릴 때마다 역(驛)을 빠져나오는 이들의 면면이 비슷한 소망으로 반짝인다.
일출 예정 시각을 1시간여 앞둔 23일 오전 6시 30분, 정동진역 뒤편에 있는 해변에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등 뒤엔 여전히 상현달이 시퍼렇고, 아직 해는 수평선 아래에 있다.
7시 37분, 일출 예정 시각이 넘어서도 해가 보이지 않는다.
기꺼이 압도당할 채비가 된 사람들이 동시에 입을 딱 벌린 건 10분 뒤.
썬크루즈리조트 왼쪽으로, 감은 눈을 뜨듯 구름과 구름 사이로 해가 둥글게 차오르기 시작한다.
한결같이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사람들은 서로 껴안고, 자신의 이름을 모래에 새긴다.
오전 8시, 아침밥을 먹으러 떠나는 행렬 뒤편으로 설렁탕 맑은 국물에 깍두기 하나를 풀듯, 조금씩 햇무리가 번진다.
일출을 보고 난 뒤 '시간 박물관'에 들른다.
열차 7량을 연결해 지난 7월 정동진 해변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타이태닉호에서 발견된 회중시계를 비롯,
해시계·물시계·원자시계 등 150여 점의 각종 시계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마지막 칸에 닿으면, 박물관이 시계가 아닌 시간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를 알 수 있다.
둥근 창문 밖으로 보이는 파도와 해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 놓인 '정동진 해시계'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
'time and tide'.
시간과 파도가 만나면 세월이 된다.
그 위로 위무하듯 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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